[당사자 김성규의 자살예방론] 자살 공화국에서 복지 공화국으로...외국은 어떻게 자살률을 줄였나
[당사자 김성규의 자살예방론] 자살 공화국에서 복지 공화국으로...외국은 어떻게 자살률을 줄였나
  • 김성규 기자
  • 승인 2019.07.24 22: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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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자살은 개인 문제로 치부돼 사회적 대응 늦어
해외의 자살률 감소 성공사례 자살예방대책 반면교사 삼아야
미국은 인권보다 생명권 우선...환자중심적인 정책
뉴욕시, 자살 시도자 방대한 데이트 축적...고위험자 조기 발견
영국은 '외로움부' 부처 신설...외로움으로 인한 자살 예방 정책 펴
핀란드, 자살원인 배후에 언론 주목...자살보도권고안 준수
일본, 민관 연계 체제로 사회안전망...맞춤형 자살종합대책 시행
대만은 자살예방센터를 중심으로 경찰,소방,병원 공조 체계 구축

우리나라는 수십 년 전부터 자살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거의 방치 및 방관하다시피 했습니다.

1990년대 초 우리나라는 한때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잘 알려진 북유럽 국가들보다도 자살률(인구 10만당 자살률)이 현저히 낮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으로 가입하고 나서 불과 1년 후인 1997년, IMF 외환 위기로 자살률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게 됩니다. OECD 회원국 평균 자살률 수치를 넘어서면서 OECD 자살률 1위를 기록해 '자살공화국'이라는 타이틀을 달게 되는 시작점이 됐습니다.

과거 몇 년 간 자살률 추이를 살펴보면 자살이 급증했던 시기는 혹독한 경제적 위기를 겪는 시기와 포개진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997년 IMF 외환위기, 2003년 카드대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모두 경제적인 요인들이었습니다.

자살의 원인은 다양하고 복합적이지만 전문가들은 근본적으로 건강 문제(정신적, 육체적인 건강)와 경제 문제를 주요 원인으로 꼽습니다.

그러나 수십 년간 자살은 개인의 문제로 치부됐고 통계상의 자살률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을 보여줬었지만 이는 간과되고 방치됐습니다.

우리나라는 2011년 자살예방법을 제정했습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자살 문제에 대해 논의를 시작한 것은 2014년이었습니다. 불과 5년 전 일입니다. 당시 자살예방과 관련한 예산도 적었고 연구 또한 빈약했습니다. (2014년 당시 자살예방 관련 예산은 약 75억 4000만 원이었습니다)

수치가 말해 주듯이 근본적 문제점을 외면한 정신보건정책과 자살예방법은 실패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자살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자살예방 대책을 내놓고 실행해야 할까요.

이 부분에서 저는 해외의 자살률의 감소 성공 사례를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해외의 경우 역시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자살 문제를 안고 있고 사회적 병리 현상으로 인한 자살률 급증의 문제들을 거쳐왔습니다.

우리가 살펴봐야 할 점은 자살률을 획기적으로 감소시킨 나라들의 사례를 보고 한국도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해외에서는 어떤 자살 예방 대책을 하고 있을까요?

 

1. 미국

미국에선 자살시도자의 응급 상황 발생시 인권보다는 생명권을 우선시합니다. 사실 전 세계에서 정신건강 문제를 포함한 자살 문제, 예방 분야의 연구가 가장 활발한 국가가 미국입니다.

미국은 국가 계획으로 자살예방국가전략(NSSP)을 수립하고 자살예방 관련 사회적 인프라 강화를 위한 법제적인 노력을 끊임없이 하고 있습니다. 연방정부 차원에서 자살예방과 관련된 법을 제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공중보건서비스법(USC)과 참전군인 자살예방법, 원주민법, 원주민 청소년 자살 예방법, 자살 예방기금지원법 등 특정 대상을 위한 자살예방 관련 법을 정하고 있습니다.

효과적인 자살예방 정책을 수립하기 위해 자살 관련 데이터를 활용해 방안을 모색하고 퇴역 군인을 비롯한 마약, 알코올중독자, 원주민, 성소수자, 청년층 등 자살 고위험군에 속하는 대상을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을 강화해 왔습니다.

미국의 정신보건정책과 정신장애인서비스의 핵심은 지역사회에서 삶을 유지하도록 최대한 지원하는 방식입니다. 곧 환자 중심적 정책을 시행하는 것입니다.

미국도 발병 초기에는 정신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는 것이 보편적이었습니다.

1963년 지역정신건강법은 탈원화를 주목하는 계기가 됐으며 1965년 저소득층과 장애인 대상의 의료급여의 실시로 지원이 확대됐습니다. 이어 1970년대 장애인을 대상으로 공적부조인 생계안전지원금과 사회보장장애수당에 기초한 중증장애인의 생계지원으로 지역사회 중심의 지원이 탄력을 받게 됩니다. 이는 현재의 탈원화 성공의 요인이 됐습니다.

미국 뉴욕시에서는 자살 전 한 번은 꼭 병원을 찾는 특징을 이용해 의료 빅데이터 시스템 사이키를 통해 과거 처방약, 진료 날짜, 주거지, 진료 기록 등 수만 건의 데이터를 축적했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자살 고위험자를 미리 발견해 자살률 10만당 8.5명으로 급감시키는 효과를 본 사례가 있습니다.

게다가 자살 시도자는 정신과적 증상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아 자살 시도 사건이 발생하면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시켜 정신과 전문의의 판단 등 의학적 도움을 받습니다. 미국에는 응급정신과 병원 강제입원 제도가 있어 3일까지 강제 입원이 가능한 일명 '72 Hours Hold'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자살 시도자가 단 며칠이라도 안전하게 보호받으면서 반복적이고 모방적, 충동적 자살 시도자가 지닌 자살 충동의 성향을 크게 낮출 수 있는 효과를 보기도 했습니다.

2. 영국

영국은 2018년 1월 세계 최초로 '외로움부 장관(Minister for Loneliness)'가 탄생하면서 주목을 받은 바 있습니다.

이는 영국이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인 외로움을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인 문제로 다루면서 국가가 국민의 외로움을 돌보고, 외로움으로 인한 자살 문제도 해결하는 정책입니다.

영국은 외로움이 흡연, 음주보다 훨씬 위험한 사회적 질병으로 인식합니다. 영국의 '조 콕스 고독위원회'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 내 고독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900만 명이나 됩니다.

그리고 외로움부 장관에 이어 자살 예방 문제를 직접적으로 주도할 자살 예방 장관이 2018년 10월에 세계 최초로 탄생하기도 했습니다. 자살예방 장관으로 임명된 재키 도일 프라이스 자살예방장관 겸 건강장관은 국가 차원에서 정신건강 문제에 시달리는 이들을 지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잉글랜드의 경우 매년 4500여 명 이상이 극단적 선택을 하고 45세 이하의 연령층에서도 주요 사망 원인이 자살로 꼽힐 만큼 영국 내에서도 자살 문제는 심각합니다.

영국 정부는 자살의 근본적인 원인이 될 수 있는 고독의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심각하게 받아들이면서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3. 핀란드

핀란드는 심리부검과 자살 고위험군의 상담과 약물 치료 병행, 자살보도 권고안, 유형별 예방책 등을 통해 자살예방 정책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핀란드 정부는 자살의 원인으로 언론을 주목했습니다. 이른바 '베르테르 효과' 때문입니다. 자살 사건사고를 다루는 언론이 기사를 작성할 때 자살 방법이나 자살 상황을 묘사하는 내용을 담아 한때 핀란드도 자살 문제가 심각했습니다. 핀란드 정부는 국가 자살예방 정책으로 '자살보도 권고안'을 만들어 언론과 함께노력을 한 결과 1990년대 인구 10만당 자살률 30.2명이, 2013년에는 15.8명으로 감소하는 효과를 보았습니다.

 

4. 오스트리아

오스트리아도 한때 지하철 투신 자살 문제가 굉장히 심각했습니다. 1983년부터 1987년까지 자살률이 급증했지만 자살보도권고안 시행 이후 지하철 투신 자살자 수는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오스트리아의 스탠다드 신문사 관계자 말에 따르면 오스트리아의 언론계는 자살의 문제 인식이 1970~1980년대에는 전혀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언론사 내부에서도 피드백이나 토론이 이뤄지지 않았고 뉴스나 스포츠 신문에 자살 사건사고에 대한 내용을 여과없이 보도했다고 합니다.

1980년대 중반 오스트리아는 인구 10만당 자살률이 26명에 달했습니다. 그러나 자살보도권고안을 통해 2017년 기준 인구 10만당 자살률은 11.7명으로 떨어졌습니다. 몇년 간의 연구를 통해 언론의 영향력에 인식을 하게 됐고 이후 오스트리아 언론사들은 자살보도권고안을 지키면서 자살률의 감소 배경 사례를 만들었습니다.

 

5. 일본

일본은 한 때 현재 우리나라처럼 자살 대국이었습니다.

일본도 우리나라와 비슷한 시기인 1997년 금융위기, 2003년 취업 빙하기, 2008년 리먼 사태 등 국가적 경제 위기를 겪었고 그때마다 자살률이 급증했습니다.

일본 내 자살예방 NPO(민간) 단체들과 전국 신용카드, 빚 피해자 연락 협의회와 같은 금융복지 민간단체 들의 노력으로 정치권을 움직이게 했고 일본 정부는 자살의 문제를 사회적 문제로 본격적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2007년 1차 자살종합대책대강이 마련됐고, 2012년 작성된 2차 자살종합대책대강에는 1차 때와 달리 '누구도 자살로 떠밀리지 않는 사회 실현을 목표로'라는 문구가 새롭게 추가됐습니다.

자살예방 관련 민간단체들은 자살시도자 발견 후 질병이나 육체적 문제가 있을 경우 병원에 치료를 받게하고 무료로 법률을 상담할 수있는 민간단체로 연결해 줍니다. 또 경제 취약 계층에는 정부의 사회안전망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줍니다. 다중채무 등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들에게는 저금리 대출상품으로 대출을 해 주면서 동시에 구직 상담 겸 일자리를 연계해주는 시스템도 마련돼 있습니다.

사회 수평망(안전망)을 강조하며 정부, 법률 기관, 은행, 병원, 시민단체 등 민, 관, 공기관 등 중앙정부의 컨트롤타워를 중심으로 다양한 기관에 연계해 도도부현과 시정촌(지자체)가 맞춤형 자살예방 정책을 시행합니다. 예를 들어 학생이 많은 지역에는 청소년을 위한 맞춤형 자살예방정책을 집중하고, 노동자가 많은 지역에는 노동자들을 위한 맞춤형 자살예방정책에 집중하는 정책을 시행하는 겁니다.

지하철 투신 자살 문제는 시간도 많이 걸리고 공사비도 천문학적인 비용이 드는 스크린도어 대신 블루 라이트를 설치해 지하철 투신 자살 감소의 효과를 톡톡히 본 바도 있습니다.

또 일본은 각 도도부현 및 시정촌에서 자살자 관련 통계를 월 단위로 수립하면서 자살 통계를 신속히 공표합니다. 각 지방마다 성별, 연령대, 직업, 거주지, 자살의 이유 등 자살자의 특징에 대한 세부적인 부분까지 조사하고 통계를 냄으로써 자살의 경향에 어떤 특징이 있는지에 대한 분석이 용이하고 이에 따른 빠른 대응이 가능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일본은 2012년 인구 10만당 자살률 28.1명이였지만 수년 간의 노력으로 2018년 기준 16.3명으로 감소했습니다.

일본의 후생노동성(우리나라로 치면 보건복지부+노동부가 통합된 일본의 국가 기관) 전체 예산 3800억 엔(약 318조 6500억 원) 중 약 7920억 원이 자살예방 관련 예산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일본은 사회 구석구석에 빈틈없이 자살시도자들에게 희망의 연결선을 제시하며, 돈이 한푼도 없더라도 정부와 사회, 시민단체들이 사회안전망의 역할을 합니다. 일본의 자살률 30% 감소와 자살지수 7년 연속 감소의 배경이 된 사례입니다.

일본은 2017년 OECD 회원국 기준으로 자살률 9위, 인구 10만당 자살률 16.8명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6. 대만

대만은 자살예방센터가 모든 정보를 취급하고 90%가 넘는 자살시도자를 관리하며 센터 중심적으로 자살예방 대책을 시행합니다. 3개월마다 시정부 12개 부처가 한자리에 모여 자살예방 정책에 대해 논의합니다.

대만 타이베이 시 자살예방당국은 고층 건물 투신 자살 예방을 위해 고층 건물마다 투신 예방 간판을 설치했는데 이는 자살예방에 효과를 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2004년 제정된 '긴급의료제도'를 발판 삼아 시립연합병원의 정신과 전문의들은 경찰의 출동 명령 요청에 응하기 위해 '5분 대기조' 근무를 섭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자살시도자의 정신과 입원 유무를 판단하기 위해 정신과 의사들에게 긴급히 도움을 요청할 수 있으며 경찰-소방관-병원의 유기적인 공조 체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자살 고위험자의 정보가 관계 기관에 즉각 공유되며 자살시도자가 병원에 입원하면 즉각 타이베이시 자살예방센터에 통보되는 시스템이 있습니다. 별도의 사인 없이 환자가 구두로만 승낙하면 의료진이 개인정보를 자살예방센터에 전달하고 이 정보는 사후 사례 관리 용도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대만은 2017년 기준 인구 10만명당 자살률 11.8명으로 OECD 회원국 자살률 평균인 12.0명을 밑돌고 있습니다.

해외의 실제 자살예방정책에 대한 감소 효과의 사례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국내에 자살예방 대책 시행시 해외의 자살률 감소 사례를 보고 배우고 반면교사를 삼으면서 때로는 연대하며 우리도 자살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자살률을 효과적으로 감소하는 효과를 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왜 우리는 해외의 좋은 사례들을 반면교사 삼지 않을까? 현재 우리 사회의 자살 문제와 잘못된 자살예방 정책의 방향성에 대해 해외 사례와 비교하면서 많은 생각이 듭니다.

글로벌 시대인 만큼 국내에만 국한하지 않고 수많은 국가들의 자살률 감소 및 자살예방 성공 사례에 대해서 배우고 연구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때로는 다른 나라의 자살예방기관이나 단체와 연대하며 자살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면 많은 국가들이 성공 사례를 보여주었듯이 우리도 성공 사례가 되는 국가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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