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의사 장창현의 사색] "각자 아름다운 우리...자부심 드러내는 것이 '매드 프라이드'"
[정신과의사 장창현의 사색] "각자 아름다운 우리...자부심 드러내는 것이 '매드 프라이드'"
  • 장창현
  • 승인 2019.07.28 22:2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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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드프라이드 행사 10월 26일 목표로 준비 중
비평 정신의학으로 당사자 운동 지원하고 싶어
흑인 민권운동도 '자부심'이라는 구호에서 출발
정신질환은 남의 이야기 아닌 우리 이야기
어쩌면 비당사자들은 당사자에게 빚지고 있을지도

7월 15일 월요일 오전 11시. 감기에 걸려 유치원에 가지 못한 둘째 아이를 들쳐매고 서울혁신파크 미래청을 찾았습니다. 매드프라이드 기획회의에 참여하기 위함입니다. 10월 26일 개최를 목표로 제가 정신장애인 예술창작단 단체 '안티카'와 함께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날은 당사자와 비당사자 참여자들에게 ‘매드 프라이드’(MAD PRIDE)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그리고 왜 대한민국에서 지금 매드 프라이드가 필요한지에 대해 말씀을 드리고자 했습니다.

예정 도착시간보다 1시간이나 늦게 도착했습니다. 컴퓨터가 든 가방과 아이 돌봄에 필요한 가방을 챙기고 아이를 안고 가는 게 힘겹게 느껴졌습니다. 때마침 당사자 활동가이자 안티카의 사무총장이 저에게 전화를 주어 주차공간으로 미리 나와주었습니다. 육아로 인해 제가 겪는 일시적 어려움에 대한 도움의 손길이었습니다. 소중했습니다.

회의 현장에 도착하자 1시간이나 지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저와 제 아이는 회의 참여자 분들에게 환대를 받았습니다. 당사자 활동가 덩그러니님은 사무실에 두었던, 아이가 좋아할 만한 무시무시한(?) 미니어쳐 해적 룰렛을 가져다 주셨습니다. 4살 딸아이의 엄마이시기도 한 심명진 대표님의 돌봄으로 제가 성공적으로 발제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사진=장창현
사진=장창현

저는 비당사자로 매드 프라이드 준비 기획모임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 모임에서는 제가 소수자일 수 있습니다. 이 모임 참여자 대부분이 정신장애 당사자들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소수자이기 때문에 제가 배제되거나 차별받지는 않습니다. 너무나도 감사한 일입니다.

저는 마음에 대해 돕는 사람으로, 그리고 제가 공부하고 있는 비평 정신의학적 맥락에서 당사자 운동을 지원하는 사람으로 함께하고 있습니다. 저는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것이 매일매일 제가 하고 있는 진료 일과 다름 없기 때문에 이렇게 회의에 참여하는 건 큰 부담도 되지 않고 즐거움으로 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이 기획회의 안에서의 소통을 조율하기도 합니다.

다름은 틀림이 아닙니다. 마음이 걸어온 길이 다르고, 그 모양이 다른 것은 절대로 흉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각자로서의 아름다움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걸 자부심을 갖고 마음껏 ‘함께’ 드러내는 운동이 <매드 프라이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70년대 미국에서 있었던 흑인 민권운동에서는 “I am black, and I am proud!”라는 구호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구호를 내걸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마음이 아픕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자랑스럽습니다!”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전체 국민 4명 중 1명은 평생 한 번 이상 마음의 병(정신질환)에 걸립니다. 마음의 병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매드 프라이드를 통해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런 것들입니다. 우선, 마음의 병에 걸렸다는 이유로 부끄러워 하거나 사회 속에서 위축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오히려 우리를 낙인찍고 손가락질하고 비웃고 경멸하는 그들이 진정 부끄러운 자들입니다. 둘째로, 누구나 마음의 병에 걸릴 수 있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돌보고 존중하고, 필요할 경우 치료를 포함한 그들에 대한 조력에 힘써야 한다는 말도 전하고 싶습니다. 저는 이 뜻에 함께 하고자 하는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비당사자들도 이 운동에 얼마든지 동참하실 수 있고, 동참하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70년대 흑인 민권운동이 성공했는지에 대한 견해는 분분합니다. 하지만 그 운동을 통해, 예전에 비해 흑인의 참정권 등 기본권이 좀 더 확보된 것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흑인 민권운동의 확산에는 흑인들의 목소리뿐만 아니라 반전 평화운동의 메시지를 흑백 평등의 메시지로 확장했던 백인들의 참여와 헌신도 중요한 동력으로 작동했습니다. 어쩌면 저희 비당사자들은 당사자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 시스템 안에서 저 같은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은 상대적으로 더 힘을 가진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매드 프라이드 운동을 통해 제가 가진, 제가 감당하기 힘든 힘을 잠시 내려놓고 싶습니다. 그리고 당사자 분들과 함께 웃고 즐기고 소리치고 행복해지고 싶습니다. 너무 감성적이라고 비난하셔도 좋습니다. 저는 당사자 운동에 미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이기 때문입니다.

느티나무의료사협의원, 살림의료사협의원, 원진녹색병원을 주 1,2일 순회하며 문턱낮은 진료를 하고 있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장창현입니다. 비평 정신의학, 함께하는의사결정모델, 정신장애인 당사자운동, 성소수자 정신건강에 관심이 있습니다.
느티나무의료사협의원, 살림의료사협의원, 원진녹색병원을 주 1,2일 순회하며 문턱낮은 진료를 하고 있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장창현입니다. 비평 정신의학, 함께하는의사결정모델, 정신장애인 당사자운동, 성소수자 정신건강에 관심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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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랑제수민 2019-07-29 00:37:17
마음의 촛불을 같이 들고싶습니다 1026. 허나 장애계와 시민운동 과 교류도 조심히, 퀴어는 더 조심히 연계했으면 좋겠습니다. 당사자마인드는 당사자다웠으면 합니다. 휘둘리는건 싫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