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목소리] “우리가 정신장애인 인권윤리를 세계사적으로 선도해나가자”
[우리의 목소리] “우리가 정신장애인 인권윤리를 세계사적으로 선도해나가자”
  • 박종언 기자
  • 승인 2019.08.07 19:53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 트럼프, “총기 사고는 정신질환자 때문” 발언
세계적으로 정신장애인에 대한 공포는 보편적
총기 소유 문제의 본질을 정신질환 탓으로 돌려
한국이 정신장애인 윤리 세계사적으로 선도할 수 있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c) Global Research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c) Global Research

존재론적 두려움이었다. 아니면 집단적 광기였다. 지난 3일과 4일 미 텍사스와 오하이오 주에서 발생한 무차별 총격으로 30여 명이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총격 사건의 원인으로 ‘정신질환’을 언급했다.

지난 5일 트럼프 대통령은 “방아쇠를 당기는 건 총기가 아니라 정신질환과 증오”라며 “정신질환자들을 더욱 잘 식별하기 위한 정신보건법을 개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알다시피 정신장애인은 어디에 가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들이다. 그런데 이들이 유독 시선을 잡을 때가 있다. 바로 사회적 사건에 대한 ‘희생양’으로 부각될 때 그렇다. 미국이라고 해서 특별하겠는가.

기자는 미 FBI가 1명 이상이 사망한 테러 사건의 용의자들의 정신질환을 감정한 결과 정신질환자에 의한 테러는 전체의 4분의 1 수준이었다는 것을 정신장애인의 ‘면책 사항’으로 내놓고 싶지 않다. 그러기에 인류는 정신장애인에 대한 너무 많은 편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기자는 실재하지 않으면서 이미지로 남는 이 그로테스크한 두려움을 ‘존재론적 두려움’이라고 명명한 적이 있다. 정신장애인, 혹은 정신질환자는 공동체의 발전과 안전을 위해 추방돼야 한다는 집단적 동의가 전 세계 어디에서나 동일한 이데올로기로 작동한다고 기자는 생각한다.

미 정신의학회(APA)는 사건 이후 성명에서 “정신질환자 대다수는 폭력적인 사람들이 아니며 폭력의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일 가능성이 더 크다”며 “(트럼프 대통령 발언은) 정신질환자에 낙인을 찍으면서 이들의 치료를 방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문구 아닌가. 바로 정신의료계나 정신질환 관련 인권단체가 내놓는 정신장애인 권리 옹호와 똑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 역시 정신장애인의 사회적 낙인은 아직 ‘진보적’이지 않은 편이며 그곳 역시 정신장애인은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더 크다.

우리 정신보건 운동의 역사는 미국에서 많은 영감을 얻어왔다. 미국 반정신의학 운동가 토마스 사스, 여성 정신장애인 당사자 운동가 쥬디 챔벌린을 비롯해 우리 지식사회는 정신건강과 인권과 관련해 미국의 지식인들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

물론 이탈리아의 바살리아법, 핀란드의 ‘오픈 다이얼로그’나 영국의 IMHA(독립적정신건강옹호)를 비롯한 정신보건법, 호주의 버드킨보고서, 일본의 ‘베델의집’ 모델, 북유럽의 정신보건 정책 들에도 영향을 받았지만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의 중심은 미국이었다.

그런데 정신장애와 관련된 진보적 국가로 인식됐던 미국에서, 그것도 통수권자인 미 대통령의 입에서 ‘정신질환’을 이번 총기난사사건 범죄 원인과 관련지을 줄은 기자는 몰랐다.

미국총기협회는 “자신과 주위에 위험할 수 있다고 판명난 정신질환자들에게 총기 판매를 금지하고 이들이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고 입장을 밝혔다.

분명히 텍사스와 오하이오주 총격 사건은 20대 백인 남성들이 저지른 행위다. 이들이 정신장애를 가지고 있었을까. 그리고 정신장애인에게 총기 판매를 금지시킨다고 해서 미국의 사회 안전이 보장될 수 있을까. 기자는 아니라고 본다.

국제장애인올림픽에서 정신장애인은 사격과 양궁 종목 등에 출전할 수 없다. 사격과 양궁은 총과 화살이 필요하며 정신장애인은 이를 함부로 다룰 수 있다는 이 ‘집단적 공포감’이 장애인올림픽에서 배제시키는 이데올로기가 된다. 그냥 두려운 것이다.

이 배제를 통해 유추해보자면 인류는 정신장애인에 대한 깊은 두려움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정신장애인이 진실로 해방돼 자유롭고 인간적 권리를 향유하면서 살게 하는 국가는 아직 없다고 기자는 본다.

치료의 기술적 부분에서 조금은 앞서 있을 뿐, 정신장애인의 권리가 실질적으로 작동하는 나라는 없다. 기자의 결론이다. 어쩌면 한국에서 이런 사건이 발생했다면 우리나라 대통령이 그 원인을 ‘정신질환자’로 돌렸을까. 사회가 그로 인해 분노가 들끓는다고 해도 대통령은 그런 말을 하지 않을 것이며 해서도 안 될 것이다.

그런데, 미국은 너무나 당당히 ‘정신질환’의 문제를 총격사건의 원인으로 지목해 버렸다. 트럼프는 그만큼 몰지각한 인물이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트위트에서 “전 세계 어느 국가에서나 정신질환으로 고통을 겪는 이들과 비디오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은 존재한다”며 “(미국과 다른 나라 간) 차이는 총기 유무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 역시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비디오 게임을 즐긴다고 해서 실제 폭력적인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며 게임산업이 발달한 한국과 일본은 총기규제가 매우 강력하고 강력범죄율도 세계 최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문제의 본질인 총기의 자유로운 소지권을 막기 위해 정신장애인은 ‘희생양’으로 사회로 소환된다. 그리고 낙인과 배제와 차별을 구체적으로 겪은 후 다시 존재성 없는 존재로 사회의 구석에 처박히게 된다. 이 처벌의 문법은 너무나 세계적으로 흡사해서 어느 한 나라만 그렇다고 말할 수 없는 구조가 돼버렸다.

공동체의 책임은 묻지 않고 정신장애인만 범죄의 주체로 구성하는 것은 세계적 보편현상이라는 것을 이번 트럼프의 발언에서 기자는 유추할 수 있었다.

일본은 20세기 초, 집안에서 정신장애인을 케어하는 사택감치를 강제했다. 이후 1950년대에 정신보건법이 만들어지면서 이들은 집단적으로 정신병원으로 존재를 이전했다.

이 사건을 거론하는 이유는 아직도 아프리카 등 제3세계에서 ‘사택감치’가 횡행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서다. 집안에서 쇠사슬로 발을 묶어두거나 몸을 포박하거나 하는 행위로 정신장애인의 사회적 참여를 원천봉쇄해 버리는 것이다.

정신장애 관련 시민단체 회원들이 13일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c)마인드포스트.
한국의 정신장애 관련 시민단체 회원들이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c)마인드포스트.

세계사를 바라볼 때 한국사회는 서양의 역사를 존재(be)로, 우리의 역사를 생성(being)으로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 어떤 이는 한국사회의 문화의 장점을 말하면서도 ‘자칫 잘못하면 한국이 세계의 중심이 된다는 착시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경계를 드러내기도 했다.

묻고 싶다. 왜 우리 민족의 세계사의 주역이 되면 안 되는 건지. 그것이야말로 일제가 심어놓은 식민사관이 아니겠는가.

일본의 무역보복으로 한일 갈등이 심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일부 매국노들이 “아베 수상님께 사과드린다”고 절규를 했다. 기자는 이 같은 맥락은 100년 전에 매국노들이 하던 행위와 같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우리는 매국노가 무엇인지, 친일파의 행위와 정치적 문법이 어떠했는지에 대해 초중고 과정에서 배우지 않았다. 다만 매국노는 잘못된 인물으로만 치부했지 이들의 어떤 행위가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구성되었는지를 배우지 못한 것이다. 그러니 또다시 이 같은 매국노들의 발언이 아무 문제의식 없이 나오는 것이다.

안중근과 윤봉길 의사가 의거를 일으키면 일진회와 같은 친일단체들은 ‘천황폐하’에게 찾아가 집단 사죄했다. 자유한국당이 일본과 ‘냉정한 외교 해결’을 요청하는 것에는 실상 우리 대통령이 일본에 머리를 숙이라는 에두른 수사에 불과하다. 이들은 이렇게 100년 전 매국노들의 집단행위와 정치 문법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기자가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우리의 정신장애인 해방 운동이 굳이 외국의 사례만을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는 점을 말하기 위해서다. 물론 그들의 선제적인 정신보건 운동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분명히 있다. 그렇지만 그들의 정신보건 정책만이 우리의 대안이 될 것이고, 돼야 한다는 사유는 이제 멈춰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너무 자학해왔다. 우리는 우리가 정신장애인의 권리 옹호와 사회적 에토스(윤리)를 만들어낼 거대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손으로 만들어지는 윤리가 세계적 모범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정신장애인 진보적 운동계도 정신보건 관계자들도 우리의 노력으로 새로운 정신장애 인권운동이 개발되고 보충되고 완결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배울 것을 배우되 우리가 주체적으로 인류를 리드할 수 있다는 점을 기자는 강조하고 싶다.

인류는 정신장애인에 대한 존재론적 두려움을 갖고 있고 우리 역시 갖고 있다. 그러나 더 높은 인권 가치의 확장을 우리 사회가 먼저 세계사적으로 선도해나갈 수 있다고 기자는 생각한다. 적어도 트럼프처럼 일국의 원수가 ‘정신질환자’를 희생양으로 만드는 발언은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인랑제수민 2019-08-08 23:40:18
총격사건은 범죄자가 사이코패스가 저지른다. 조현당사자는 사이코시스이며 잠재적범죄자가 아니다. 정신장애인이라서 총기소유학살하는게 아니라 총기소유했기에 학살범죄자로 범죄한다. 트럼프는 당사자에게 사죄하라. 트럼프자신이 말많은 다언증 환자일 수도 있다 수많은 헛말 속에 약속지켜진 말이 50%가 되지않는 국가원수. 미국내 애국이란 푯말로 세계를 쥐락펴락 이뤄지지않는 말로 트윗해서도 안된다.

총기규제 원점 토론하자. 감정 기질 정서 성격 사회심리적 환경에서 언제든 총기살해가 있을 수 있다. 그만큼 미국 윤리성 문제이며 수백년 내려온 총기 전통의 문제이지, 조현당사자의 문제가 아니다. 당사자는 피해자일 가능성 100이다.

치안목적 당사자억압 100년 뒤로 물러가는 복지를 트럼프가 원한다면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