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께 돌려받은 편지
교수님께 돌려받은 편지
  • 이관형 기자
  • 승인 2019.08.21 19:5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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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께 돌려받은 편지

 

2009년 어느 대학교 평생교육원에

학부를 막 졸업한 남학생이 들어왔습니다.

강의를 담당한 중년의 여교수는 궁금했습니다.

왜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평생교육원에 입학했는지 의아해서

그 남학생을 눈여겨 보았습니다.

 

말도 없고 표정도 어두운 그 학생이 부담스러웠습니다.

게다가 그 남학생은 거의 날마다 수업에 지각했습니다.

아침 9시 수업인데도 늘 10시가 지나서야

교실에 나타나는 그 학생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교수는 어느 날 학생을 따로 불러 물었습니다.

 

"혹시 날마다 수업에 지각하는 이유가 있니?

말하기 힘들면 말하지 않아도 된단다."

 

그러자 남학생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습니다.

 

"제가 마음의 병이 있어서 날마다 약을 먹어요.

그 약이 너무 독해서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어요."

 

그 말을 들은 교수는 학생에게 한 가지 제안합니다.

 

"날마다 운동을 해보자. 그리고 내게 매일 확인시켜주렴."

 

그때부터 학생은 교수님 말대로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하루 한 시간 씩 산책로를 걸으며 운동을 했습니다.

교수님은 매일 수업이 끝나면 학생을 따로 불렀습니다.

어제도 운동을 했는지 확인을 했습니다.

 

그리고 요즘엔 힘든 건 없는지 거의 날마다 상담을 해주었습니다.

교수는 학생을 위해 많은 조언과 용기가 되는 말을 해주었습니다.

학생도 어릴 적 받은 상처와 힘들었던 이야기를 털어 놓았습니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나자 학생은 더 이상 지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루 8알이던 약을 절반인 4개로 줄였기 때문입니다.

아직 독한 약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진 건 아니었으나

이제는 9시 등교가 가능할 정도로 건강해졌습니다.

 

그리고 1년 후 스승의 날,

교수는 그 학생에게서 작은 선물과 편지를 받았습니다.

이후로도 간간이 교수와 학생은 서로 연락을 주고받았습니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른 어느 날, 교수는 학생에게 안부 차 전화를 했습니다.

 

"교수님, 죄송한데 제가 지금 마감기간이라 나중에 연락드리겠습니다."

 

언론사 기자가 된 학생은 통화를 이어가지 못해 교수님께 죄송했습니다.

하지만 교수님은 그 순간이 너무 기쁘고 감사했답니다.

 

내가 가르치던 그 학생이, 늘 어둡고 연약해서

앞으로 사회생활이나 가능할지 걱정되던 그 학생이

바쁘게 직장생활을 감당할거라곤 상상조차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2019년 그 학생은 책을 준비하는 작가가 되었습니다.

자신의 책에 교수님의 글을 외부 원고로 넣고 싶다며 찾아 왔습니다.

정년 퇴임을 앞둔 교수는 얼마 전 백내장 수술까지 받았지만

사랑하는 제자를 위해 기꺼이 써주겠노라고 흔쾌히 승인했습니다.

그리고 한 장의 편지지를 학생에게 내밀었습니다.

 

"10년 전 스승의 날, 네가 나에게 써준 편지란다.

이 편지를 받은 날, 내가 얼마나 울었는지 아니?

심지어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단다."

 

사실, 학생은 10년 전 자신이 지각쟁이였다는 사실도,

스승의 날 교수님께 편지를 썼던 사실도 잊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날마다 수업이 끝나면 따로 상담을 받고 운동을 확인 받던 것도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습니다.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그 교수님은 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모습보다도

더 많이 저를 걱정해주시고, 기도해주시고, 사랑해 주셨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기도로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 사람, 한사람, 너무 귀하고 소중한 분들을 생각하며

오늘도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갑니다.

 

 

 

* 이 글은 바울의 가시(나는 조현병 환자다) 개정판에 들어갈 글 입니다. 2019년 말 개정판 출간을 목표로 열심히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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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랑제수민 2019-08-24 14:43:34
선생님도 학생도 착한 사람입니다. 아직은 착하고 군수한 사람들이 넉넉히 지구를 떠받치고 있네요. 조현 당사자를 지각에서 구하고 8알에서 4알로 기자가 되게 해준 선생님의 정성과 사랑에 머리 숙여집니다.

돕는 사람들 있으니 조현 마인드로 도리어 세상을 따뜻이 덮어나갑시다. 공감으로 설득으로 화합하는 세상 만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