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용진 “인간은 인간으로서 명예가 있어요, ‘내가 정신장애인’이라는 걸 말할 수 있는 명예요”
제용진 “인간은 인간으로서 명예가 있어요, ‘내가 정신장애인’이라는 걸 말할 수 있는 명예요”
  • 박종언 기자
  • 승인 2019.08.21 0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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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마주쳤던 라틴 댄스…탱고를 출 때 가장 행복해
댄스스포츠 통해 우울·정신 질환 환자들에 도움 주고파
라틴 댄서 일인자 문하생으로 들어가 탱고 자격증까지 따
춤을 통해 타인과 어울리는 건 조현병 치료에도 효과적
정신병원 개원 도와야 할 서구보건소가 오히려 불허 내려
필요한 시설, 인력, 장비 다 갖춰도 민원 이유로 개설 반려
대한의협, 정신병원 불허 이재현 서구청장 직권남용으로 고발
천명 당 1병상 WHO 권고기준은 국가마다 사정이 달라
정신장애인 범죄율 일반인의 26분의 1 수준…편견 바꿔야
정신장애인 편견없이 치료받을 권리 묵살당하고 있어
대법원, ‘정신병원 증설 공공복리에 반하지 않아’ 판례
반드시 병원 개설해서 정신질환 편견 없애는 데 일조할 것
탈원화는 시대적 대의…다만 지역사회 인프라 갖춰져야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그는 1984년 고려대 의대에 입학했고 1998년에 정신과 전문의 자격증을 취득했다. 부산과 충남, 서울의 정신병원에서 진료부장 등을 역임했다. 그렇게 21년간 그는 정신과 의사로서의 자기 삶을 이끌어왔다.

부산의 한 정신병원에서 진료과장을 맡고 있던 그는 어느날 백화점에서 열린 라틴댄스를 보았다. 음악은 흥겨웠고 남녀는 호흡을 맞추며 춤을 췄다. 춤은 지루박 같은 구시대적 춤의 내용만을 생각했던 그에게 그 춤은 신선함이자 호기심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살사, 탱고, 삼바 등 라틴음악을 건강에 적용시킨 스포츠댄스을 배웠다. 30살 무렵이었다.

춤은 그에게 해방의 몸동작이었다. 같은 여성 파트너와 호흡을 맞추면서 인간에 대한 배려와 예의를 배웠다. 아내도 탱고를 가르치는 문하생으로 만났다가 결혼으로 이어졌다. 춤은 그에게 위대한 동반자였다.

기자는 최근 인천 서구 원당사거리에 개설하려던 정신병원이 지역 주민들의 민원 때문에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는 기사를 접했다. 필요한 인력과 시설들을 모두 충족시켰지만 허가를 내리는 주체인 서구보건소는 입원환자가 아닌 병상수에 맞는 의사 인력들을 요구했다. 개설되지 않은 병원에 지원할 의사는 없었다.

게다가 보건서와 서구청은 세계보건기구(WHO)가 권고하는 인구 1천 명 당 1개 병상의 비율을 이유로 들어 개설을 불허했다. 인천 서구 주민이 51만여 명이니 510개 병상이 WHO 권고 기준에 맞지만 현재 서구청 지역은 천여 병상이 이미 포진하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대한민국 어디에서도 정신병원을 개원할 수 없다.

지난 5일, 서구보건소는 그가 개원하려던 정신병원의 개설을 불허한다는 통지를 보냈다. 대법원이 앞서 유사한 사례에서 공익의 부분에 합당하다며 정신병원 개원을 허가한 보편적 인권 준칙에 모순되는 불허 사유였다. 차별과 혐오로 세계에 표상되는 정신병원과 정신병원에 있는 정신장애인들에 대해 국가기관은 꼭 그만큼의 편견과 혐오를 갖고 정신병동 개원 자체를 막아 버린 것이다.

기자는 그를 만나보고 싶었다. 정신병원을 개원하려는 그는 스포츠댄스를 추는 제용진(55) 정신과 전문의였다. 아르헨티나 탱고를 사랑한다는 그는 어떤 경우에도 정신병원 개원을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마침 현재의 복잡한 상황을 잊기 위해 유럽을 방문해 며칠 휴식을 취하고 왔다고 했다.

그를 만난 건 20일 오후의 합정역 인근의 한 카페에서다. 다음은 일문일답.

제용진 아너스병원장 (c)마인드포스트.
제용진 아너스병원장 (c)마인드포스트.

-한국댄스치료학회가 2007년도에 창립했습니다. 학회가 추구하는 목적은 뭡니까.

“한국댄스치료학회는 댄스를 통해서 환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치료방법이나 프로그램들을 개발합니다. 댄스를 통한 치료를 모색하는 학회입니다.”

-댄스치료가 정신과만 적용되는 겁니까. 아니면 육체적인 부분도.

“댄스치료학회는 각 (의료계) 과의 전문의 선생들이 많이 포함돼 있고요. 무용과 교수님, 예술하는 선생님들, 또 직접적으로 댄스를 가르치는 무용가라든지 댄스 학원장 등 다양한 분들이 참여하는 학회입니다.”

-현재 한국임상댄스치료학회 학술이사로 재직 중입니다. 역할은 뭡니까.

“댄스를 통해서 연구나 논문을 발표하려고 준비하고 있고요. 이전에도 발표된 여러 논문들이 있습니다. 그런 결과물을 한국에도 적용시키고 직접적으로 환자들에게 치료가 될 수 있도록 돕는 활동을 합니다.”

-한국댄스스포츠 챔피언도 하셨더군요. 몇 년도에 열렸습니까.

“프로 선수대회는 아니고 아마추어 대회였는데 거기서 제가 왈츠 부분에서 일등을 했죠.”

-댄스는 혼자 추는 겁니까.

“댄스 스포츠 같은 경우는 파트너랑 둘이서 호흡을 맞추고 동작을 맞추고 음악에 맞추고 해야 합니다.”

-상금도 있습니까.

“아마추어 대회라서 특별한 상금이 있는 건 아니고요.”

-댄스에 입문한 계기가 있었겠지요.

“제가 1998년에 전문의를 취득하고 취미생활을 좀 해봐야 겠다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부산에서 일할 때) 롯데백화점 문화센터를 방문했다가 우연히 댄스스포츠를 추고 있는 모습을 보고 그 음악을 들었어요. 그렇게 시작하게 됐고요.

첫발을 내딛는 순간 문화충격이라고 할까요. 그런 충격을 받고 ‘아, 댄스스포츠가 상당히 저에게 많이 도움이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스트레스 해소라든지 체력 증진에 좋을 것 같았고요. 파트너하고 교감을 통한 춤이기 때문에 배려를 배우죠. 또 둘이서만 추는 게 아니라 동호회에서 같이 어울리기 때문에 사회적인 커뮤니케이션에 많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죠.”

-문화충격은 어떤 느낌이었습니까.

“처음에는 댄스스포츠라는 게 지루박이라든지 약간의 그런 (춤 정도로 생각했어요). 지금은 지루박이 훌륭한 소셜 댄스입니다마는 옛날에는 카바레 문화로 많이 생각됐지 않습니까. 1998년대에도 그런 생각들이 많았습니다. 제가 문화센터에서 직접 춰 본 댄스스포츠는 밝은 환경 속에서 진행됐고 직장인들도 많았어요. 특히 교사들이 많았는데 그분들하고 라틴 음악에 맞춰서 파트너 손을 잡고 호흡을 맞춰서 춤을 추는 자체가 처음이었던 거죠.”

-20대 후반에 춤을 배우기 시작한 겁니까.

“30대 초반이었습니다.”

-살사나 탱고, 삼바 등 춤의 형태는 어떻게 구별할 수 있습니까.

“세계 각국의 문명에서 춤들이 많잖아요. 그런 각 나라의 춤들을 영국에서 체계화시켜 스포츠화 시킨 게 댄스스포츠입니다. 그 중에서 라틴댄스 5종목이 있고 모던댄스 5종목이 있고요. 이건 댄스스포츠 영역인데 그 외에 라틴계에서 추는 살사라든지, 아르헨티나에서 시작된 탱고 등 그 지역의 문화에서 발생된 그 춤들이 있고요.

다음에 소셜 댄스라고 해서 살사 영역에서도 바차타, 메렝게 등이 있어요. 이걸 아울러서 라틴댄스라고 하고요. 탱고의 경우 아르헨티나 탱고에 밀롱가, 발스, 탱고 이 세 가지 종류의 춤이 있어요. 삼바의 경우 브라질에서 파생된 고유의 춤이지만 영국에서 살짝 변경해서 스포츠화 시켰는데 댄스스포츠에서 라틴댄스의 다섯 가지 종목 중에 하나가 삼바입니다. 그건 브라질에서 추는 삼바하고는 달라요. 스포츠화시키고 쇼(show) 식으로 보여주는 그런 춤입니다.”

-영국에서 그 댄스들을 스포츠화시키는 건 어느 시대입니까.

“제가 알기로는 약 20세기 초반으로 알고 있어요.”

 

제용진 아너스병원장 (c)마인드포스트.
제용진 아너스병원장 (c)마인드포스트.

-탱고 강사 자격증까지 취득했습니다. 이 자격증은 어디서 주는 겁니까.

“아이디티에이(IDTA·Internation Dance Teacher Association)라고 국제댄스교사협회에서 주는 댄스스포츠 교사 자격증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이한이라고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국제탱고대회에서 일등을 하신 분이 계세요. 그 분이 아르헨티나 탱고 댄스자격증을 줄 수 있는 자격이 있었어요. 제가 그 분 1회 문하생이 됩니다. 그 분에게 탱고를 집중적으로 배우면서 아르헨티나 탱고를 가르칠 수 있는 교사 자격증을 받았습니다.”

-리듬에 맞춰 육체를 흔들며 땀을 흘리는 건 일반적 건강 규칙이 아닙니까. 그런데 이 운동이 어떻게 정신과 치료와 관련이 되는 건가요.

“댄스스포츠가 운동을 하는 것도 있지만 일단 춤 자체가 상당히 즐거워요. 그리고 파트너하고의 교감이 필요하기 때문에 파트너를 배려해야 하고요. 꼭 둘만 추는 게 아니라 같이 교류하는 집단이 있기 때문에 같이 춤을 추게 됩니다. 그러니까 사회적 교류에도 도움이 되죠. 가령 우울증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는 논문도 있어요. 또 노인들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연구논문도 있고요. 파킨슨병을 앓는 환자들에게도 댄스치료가 효과가 있다는 논문들이 외국에는 많이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댄스테라피(Dance Therapy)’가 있더군요.

“(댄스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술단체들도 많이 있고, 또 그걸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병원 기관들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그 치료 모델을 가지고 와서 파킨슨 환자들을 위한 치료프로그램을 하고 있는 곳도 몇 군데 있습니다.”

-원장님 내담자 중에 댄스를 배우는 이가 있습니까.

“제가 한때 댄스 전도사로 주변의 아는 분들하고 환자분들 중에 관심 있어 하시는 분들에게 권해 드렸는데 아직 댄스에 대한 인식들이 좋지는 않아요. 좋지 않은 시각을 가지고 있는 분들도 있고 또 여성 분을 만나서 추는 춤이다 보니까 꺼려하시는 분들도 있고요. 일부는 적극적으로 가족들끼리 춤을 추는 분들도 계세요.”

-저의 지인은 라틴댄스를 출 때 가장 행복하다고 하더라고요. 원장님은 어떻습니까.

“제가 준 프로공연단에서도 활동했고 여러 가지 댄스를 한 20가지 정도 출 수 있고 가르치기도 해왔었는데 아르헨티나 탱고가 가장 매력적인 춤이었어요. 저로서는 가장 행복한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류 정신의학에서는 이 댄스치료를 ‘이단(異端)’ 정도로 취급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이단으로 생각할 정도는 아니고요. 의료보험에서 그런 댄스 프로그램을 했다라고 하면 오히려 보험료가 나오게 돼 있습니다. 가령 하나의 자기훈련이든 놀이치료든 그 영역에 포함이 돼 가지고요 수가를 받죠.”

-정신적 질환, 조현병이나 조울증, 우울증도 춤을 통해 회복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조현병이나 조울증 중 중증정신질환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약입니다. 약으로서 70~80% 이상 치료를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보조적인 수단으로서 미술치료, 놀이치료, 연극치료뿐만 아니라 댄스치료가 상당이 많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조현병 환자들은 사회적으로 굉장히 위축돼 있고 다른 분들하고의 교감을 잘 느끼지 못하고 고립돼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 춤을 통해서 다른 분들하고 어울릴 수도 있고 충분히 치료효과가 있다고 생각해요.”

-정적(靜的)이고 권위가 필요한 정신과 의사의 모습만 보다가 댄스를 즐기는 의사를 만나니 괴리감이 느껴집니다.

“정신과 의사들이 정신치료만 하고 환자들의 콤플렉스나 어려움을 들어만 주는 영역에서 이제는 여러 치료의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음악치료, 놀이치료, 미술치료 등 정신치료의 부분에서뿐만 아니라 댄스치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정신의학이 환자들에게 접근하고 있습니다. 저로서는 치료적인 목적도 있지만 춤을 통해서 스트레스를 푸는 의미도 있어요. 저의 아내도 댄스를 통해 만났어요. 많은 분들이 댄스를 통해 즐거움과 행복감을 많이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사모님은 어떻게 만나신 겁니까.

“저에게 탱고를 배우러 왔는데 제가 열심히 가르치다가 결혼했죠.”

-라틴댄스는 춤을 통한 몸의 해방인 동시에 정신의 해방을 추구하는 듯합니다.

“꼭 라틴댄스뿐만 아니라 어느 한 가지에 집중을 하게 되면 몰입하게 되고 그 순간만큼은 잡생각이나 스트레스를 잊게 돼요. 그러면서 스트레스가 해소되고요. 그런 시간을 갖지 않으면 반복되는 고민들만 머릿속에 맴돌게 되면서 정신건강에 좋지 않게 되죠. 댄스를 통해 파트너하고 춤 자체를 즐길 수 있다면 좋은 거라 생각합니다.”

제용진 아너스병원장 (c)마인드포스트.
제용진 아너스병원장 (c)마인드포스트.

-댄스를 통해 무엇을 얻었습니까.

“저기 와이프도 얻었고(웃음). 저 스스로는 나름대로의 성취감도 댄스를 통해서 많이 느꼈어요. 이제는 강사로서 다른 분들에게 탱고를 가르켜 드리고 있고요. 가르쳐드린 분들이 탱고를 통해 즐거워하고 만남도 이어가고 교류도 하고요. 그런 면에서 댄스는 내 인생에 있어서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정신장애인들에게도 댄스를 권하고 싶으십니까.

“물론 충분히 권하고 싶죠. 그런데 시간이나 장소, 인력들이 필요하기 때문에 쉽게 접근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댄스치료학회에서도 노력을 하고 있고 저도 병원을 개원하면 장소를 마련해서 댄스뿐만 아니더라도 여러 가지를 통해 정신장애인들의 재활을 돕고 싶습니다. 그 중에서 댄스가 큰 역할을 할 거라 생각합니다.”

-병원 개원과 관련해 질문하겠습니다. 지난 5일 이재현 인천 서구청장이 원장님이 운영하려고 하는 원당사거리 ‘아너스’ 정신과병동 개설을 불허했습니다. 문제의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 가지 문제가 있는데 가장 큰 문제는 정신병원 개설을 담당하는 보건소의 한 부서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신과 환자들에 대한 편견은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어느 나라에서도 있어 왔던 일이죠. 그렇지만 이제는 정신질환자들을 위한 치료약도 많이 개발됐고 치료할 수 있는 방법들이 많이 있어요. 정신질환자들도 충분한 치료를 받으면 거의 정상인처럼 생활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은 정신병원이 우리 집 근처에 생긴다는 것에 대해 싫어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을 해요. 그렇지만 정부와 지자체에서 인식 개선을 위한 노력을 해야 된다고 생각을 하고 해요. 지금 서구청 보건소의 한 부서에서는 그런 편견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병원을 개설하는 (역할을 하는) 예방의학팀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민원 때문에 개설하기 어렵다, 대법원까지 가실 생각하고 신청하세요’ (이래요). 지역주민들의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보건소가 민원이 발생하니 업무가 마비되고 힘들다면서 계속 허가를 해주지 않겠다는 거예요. 그게 심각한 문제라 생각합니다.”

-적법한 시설 기준을 다 갖추었는데도 병원 개설을 허가하지 않았죠.

“의원은 신고만 하면 개설하게 돼 있어요. 병원은 허가사항이기 때문에. 시설, 장비, 인력의 기준을 갖추고 개설 신청을 하면 (보건소가) 꼼꼼히 살펴보고 적합한 시설이냐, 장비가 있느냐, 인력이 갖춰졌냐를 보고 허가를 내주도록 돼 있습니다. 그런데 시설, 장비, 인력을 다 채웠는데도 불구하고 불허를 낸 거는 법과 질서를 위배한 겁니다. 그리고 다른 병원은 다 되는데 정신병원은 안 된다, 다른 구에서는 되는데 우리 구에서는 안 된다, 이건 행정의 형평성에 맞지 않는 일이죠.”

-가장 허가를 불허한 핵심적 집단이 보건소?

“보건소 예방의학팀입니다.”

-서구청은 어떻습니까.

“서구청 내에 서구보건소가 있고 서구보건소 내에 병원 개설을 담당하는 예방의학팀이 있어요. 그 팀의 주무관을 처음 만났을 때 ‘적법하게 다 갖추신다면 병원 허가를 내줄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제가 분명히 들었어요. 그래서 거기에 맞춰 시설 장비 인력을 모두 갖추고 신청을 했는데도 보건소에서 ‘민원 때문에 안 된다’ 그렇게 해서 결국에는 불허가 결정이 난 거죠.”

-이재현 서구청장에 대해 대한의사협회가 직권남용 혐의로 인천지검에 고발했죠. 현재 어떤 과정에 있습니까.

“저희들이 촉구하는 건 일단 불허 결정을 좀 번복을 해 달라. 다시 한 번 검토를 하고 허가를 해 달라는 입장인데 그게 되지 않을 경우 검찰에 고발해서 직권남용과 위법성을 따지겠다는 거죠. 그래서 지금 진행이 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재현 구청장은 세계보건기구(WHO) 규정을 이유로 들었습니다. WHO 권고기준은 인구 1천 명 당 1개의 병상이죠. 인천 서구 인구가 51만여 명이면 510개 병상이 필요합니다. 현재 서구는 1056병상이 있어서 이를 초과했다는 의미입니다. 무엇이 잘못일까요.

“세계보건기구(WHO) 규정은 각 나라별로 권고하는 병상 기준수입니다. 그런데 각 나라들도 실정이 다 다르기 때문에 획일적으로 천 명 당 하나로 할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단지 권고 기준일 뿐이죠.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벌써 천 명 당 1.6병상 정도로 초과돼 있습니다. 그 이유가 뭐냐면 선진국에서는 재활복지시설, 재활시설, 거주시설 등 병원만이 아니라 여러 시설에서 케어를 하고 있거든요.

각 나라의 정신질환자 수는 1%로 동일합니다. 우리나라가 특별히 많은 경우가 아니에요. 우리나라는 병원에서 치료를 많이 담당해왔고 예산 자체가 굉장히 낮습니다. 결국 병원에서 케어를 많이 하고 사회복귀시설을 많이 만들어서 차차 탈원화를 하면 선진국처럼 병상수가 줄어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우리나라의 병상수는 천 명 당 1.6병상입니다. WHO 권고 기준이라면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도 정신병원을 개설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지금 개설돼 있는 병상수의 80%를 없애야 해요. 말이 맞지 않는 권고 기준이죠. 인천 지역은 병상수가 1.4로 16개 자치구 중에서도 가장 낮습니다. 그런데 인천의 서구는 인천시에서도 가장 인구가 밀집돼 있는 곳이고 지역적으로 굉장히 넓습니다.

거기에 대형 정신과 병원이 몇 군데가 있다 보니 병상수가 천 병상 넘어선 걸로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WHO 권고기준이 하나의 구를 타겟으로 해서 그 구에 맞추는 기준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WHO에서 권고하는 인구 일인당 정신건강복지 예산이 우리나라는 5분의 1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런 사항에서 WHO 권고기준을 들어 그 평균값을 무시하고 있고요.

이전에도 WHO 권고기준을 가지고 불허한 적이 있었는지 묻고 싶어요. 그게 타당한 논리라면 우리나라 어느 지역에서도 정신병원 개원을 허가할 수 없어요. 우리나라 어떤 법에서도 WHO 권고 기준으로 병원을 개설하라는 조문은 없습니다. 말이 안 되는 거죠.”

-서구보건소는 기초 정신건강복지센터와 함께 주민 정신건강을 돕는 공적 기관인데 앞장서서 정신병원 개원을 거부하는 이유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서구에 보건소에도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사업 내용 중 첫 번째가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정신질환 편견해소 및 예방교육을 하라, 정신과 질환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돕는 교육을 하라고 돼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건강건강복지센터에 연락을 해서 정신병원을 개설하려고 하니 정신과 질환에 대한 편견해소를 위해 노력을 해주고 병원을 개설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알려 달라 하니까 그쪽에서 하는 얘기는 보건소와 부서가 다르기 때문에 우리들이 할 수가 없다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행정이 한쪽으로는 정신질환 편견 해소를 위한 노력을 하라는 거고 다른 한쪽에서는 지역주민들 민원 때문에 자기들이 너무 힘들고 귀찮고 업무가 마비되니 정신병원 개설 허가 안 내주겠다 이런 식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보건소는 입원환자 60명 당 1명의 전문의를 둬야 한다는 규정을 ‘병상수’에 맞추도록 말을 바꿨습니다. 이는 법적으로 타당한 지적입니까.

“이게 법적으로 자의적인 해석이 될 수 있습니다. 가령 제가 병상을 허가해 달라는 거지 지금 당장 186명을 입원시키겠다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면 186병상에 맞춰서 전문의를 다 두고 거기에 따른 간호 인력, 행정 인력 다 갖춘다 그러면 50명이 넘는 인력을 채용해야 됩니다.

환자가 한 명도 없고 개설 허가도 나지 않은 상태에서 50명 이상을 제가 채용을 하고 허가를 기다려야 된다는 건 현실적으로 말도 안 되는 거죠. 그렇다면 처음에 담당 주무관을 만났을 때 ‘의사 한 명이 개설해도 됩니다, 이후에 일 년 동안 입원 병상수에 맞게, 입원 환자에 맞게, 외래보는 환자에 맞게 전문의를 채용하시면 됩니다’라고 분명히 저에게 말씀했어요.

그래서 시설, 장비, 다 맞추고 개설 신청을 했는데 거기 있는 팀장은 ‘안 된다, 186병상을 신청을 했으니 186병상에 맞는 전문의를 채용해야 하고 그 전문의가 다른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으면 안 된다, 무조건 다 퇴직시키고 거기 있는 약사, 간호사, 다 채용을 하고 신청을 하라’ 그래요. 오산 세교신도시에 있는 P병원은 의사 한 명으로 개설 허가를 내줬거든요. 그렇다면 저도 개설허가를 내줘야죠.

그런데 오산 세교신도시에서 문제가 생기면서 2008년도에 병상수 정원에 맞춰 인력기준을 충족하라는 유권해석이 있었습니다. 10년도 더 지난 유권해석을 이유로 P병원 개설 허가 취소를 내렸지 않습니까. 이게 부당하다는 걸 알고 있지만 병원 개설을 하는 게 우선이었기 때문에 제가 의사 간호사를 모집하려고 두 달 동안 공고를 냈습니다.

결국 제가 혼자서 개설하겠다고 해서 59병상으로 축소해서 신청을 했는데도 그것조차도 안 된다고 불허 통보가 온 거죠. 처음부터 병상수 초과 때문에 안 된다라고 얘기했으면 그걸 가지고 따지겠는데 처음에는 인력 때문에 안 된다, 시설이 부족해서 안 된다, 그래서 그 모든 것들을 다 갖추고 신청을 했는데도 막판에는 WHO 권고기준으로 우리 서구에서는 정신과를 개설할 수 없다 불허한다고 그래요. 이건 개인뿐만 아니라 정신과 환자들에 대한 폭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용진 아너스병원장 (c)마인드포스트.
제용진 아너스병원장 (c)마인드포스트.

-보건소는 서구 정신의료기관에 입원한 서구민이 치료받는 비율이 20~30%에 불과하다며 이를 개설 허가 취소의 이유로 들었습니다.

“병원이 그 구에만 속해서 구민들만을 위한 의료기관이 아니지 않습니까. 인근 지역에 있는 다른 구에서도 올 수 있다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죠. 제가 개설하고자 했던 지역은 근처에 군포 지역도 있고 서울 지역하고도 가까운 곳입니다. 서구에 개설돼 있다고 해서 서구민들만 진료를 해야 되나요? 아니죠.

근처에 가깝게 있으면 누구라도 와서 진료를 받는 거지, 이게 공산주의 사회도 아니고 무조건 구민들만 치료받아야 한다? 세상에 이런 법은 없어요. 당연히 30%만 치료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걸 사유로 들어서 우리 구에는 병원을 개설할 수 없다, 이건 논리가 맞지 않는 거죠.”

-서구청은 병원이 들어설 건물 반경 200미터 안에 초등학교 3곳과 유치원이 있다는 이유를 불허사유로 들었습니다. 위험성이 높다는 건데 이는 명백한 정신장애인에 대한 차별이죠.

“그렇죠. 정신과 질환자들 중 극소수가 정신치료를 받지 않으면서 지역사회에 있다가 망상이나 환청 때문에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경우가 언론을 통해서 알려지다보니 지역주민들이 걱정을 할 수 있다고 저는 충분히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정신과 질환자들의 범죄율은 일반인들의 29분의 1밖에 되지 않아요. 이게 2017년 대검찰청 통계거든요. 그러니까 정신질환자들은 이런 범죄를 저지를 수가 없어요.

살인, 강간, 방화 등 강력범죄를 저지르는 비율도 일반인들의 6분의 1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정신질환자들은 일반인에 비해서 위험하지 않아요. 중증정신질환자 중 극히 일부에서 치료를 받지 않으면서 지역사회에서 그런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죠. 오히려 병원이 있으면 빨리 치료시킬 수 있고 병원 안에서는 한 1~2주 정도만 잘 안정을 시키면 망상이나 환청이 많이 없어져요.

그리고 퇴원 이후에도 근처에 있어야만 계속적으로 치료를 잘 받을 수 있다는 거죠. 그런데 멀리 한두 시간씩 차 타고 다니면서 약 타러 다니면 치료의 연결성이 떨어지는 거죠. 그러니까 정신질환자들이 평등하게 치료받을 수 있는 권리, 이런 것이 다 지금 묵살되고 있어요. 가족들도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가족들이 정신과에 대한 낙인·편견으로 많이 고생을 하고 있는데 치료를 받으려고 해도 근처에서 받을 수 없다, 이건 상당한 불평등이죠.

누구라도 가족 중에서 정신질환자가 생길 수 있어요. 그런데 내 가족이 만일 정신질환이 생겼는데 그럴 때도 반대를 할까요. 우리 집 근처에는 정신병원은 안 된다. 그건 정신과 환자들과 가족들의 기본적 인권을 다 무시하는 거죠.”

-186병상으로 시작하려다가 현재 59병상으로 줄였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제가 처음에 개설 신청하러 갔을 때는 ‘정신과 한 명으로 시작하셔도 됩니다’ 그래요. 분명히 그 이야기를 듣고 시설을 갖추고 신청을 했더니 거기에 있는 팀장이 ‘안 된다, 무조건 186병상에 맞는 전문인력, 간호 인력, 약사들 다 채용하고 신청을 하시라’ 그래요. 제가 2달 동안 공고를 냈는데 개설이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병원에 (누가 오겠어요). 아무도 신청하지 않아서 결국 어쩔 수 없이 저 혼자 59병상으로 축소해서 신청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의사 1인당 할 수 없는 인원이 59명?

“60명이죠.”

-아직 인력은 다 안 갖춰진 거죠?

“59병상에 맞게는 갖춰져 있죠. 추후에 환자들이 저희 병원에 많이 입원을 하고 많이 외래를 다닌다면 증설할 계획이 분명히 있죠. 증설을 해야 하는 게 당연한 거고. 그렇다고 나 혼자서 100명, 200명을 보겠다는 게 아니거든요. 그리고 이제는 건강보험공단에서 보험수가로 다 받기 때문에 환자를 초과해서 받을 수가 없어요. 초과해서 받으면 다 삭감이 되기 때문에요. 그런 시스템으로 되어 있는데 처음부터 채용을 다 하는 건 안 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저 혼자서 59병상을 개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신병원 개원과 관련한 대법원 판례는 ‘막연한 우려만으로 정신병원 증설이 공공복리에 반한다고 볼 수 없다’고 해석했습니다. 병원 개설에서 이 논리가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이 대법원 판례가 어느 지역이었냐면 바로 여기 인천 서구 지역의 블레스병원이란 곳이에요. 이 병원의 증설을 막았던 사람이 지금 서구보건소 예방의학팀의 A씨에요. 대법원 판례에는 병원 증설이 공공복리에 반할 수 없다고 해서 이 병원이 증설을 했습니다. 인천 서구보건소에서 똑같은 사람이 이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그 이유가 대법원 판례를 받고 그 사실을 알고도 처음 만났을 때부터 ‘대법원 가실 줄 아시죠, 대법원 가실 생각하고 신청하세요’라고 해요. 그 담당자예요. 증설을 막으면 안 된다는 판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위반하고 본인은 민원 때문에 힘들고 귀찮고 어렵기 때문에 개설을 해 주지 않겠다라고 하는 거죠.”

-주민설명회 역시 무산됐습니다. 주민들은 아예 들을 생각이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보건소를 처음 찾아갔을 때 민원이 많은 지역이니 (그쪽에서) 주민들에게 직접 설명을 좀 하십시오라고 그래요. 그래서 저희들이 동사무소를 찾아갔습니다. 주민설명회를 좀 개최하려고 하니 강당을 좀 빌려주시고 주민 대표들에게도 연락해달라고 했는데 동사무소에서 공문이 온 게 ‘강당을 빌려 줄 수가 없다, 지금 스케줄이 다 차 있다’며 설명회를 해줄 수 없다는 거예요.

담당했던 동장님하고 부서장들을 만났을 때 하는 이야기가 자기들은 주민들이 반대하는 걸 괜히 나서서 설명회를 개최하면 자기들에게 화살이 돌아올 수 있기 때문에 어렵다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동사무소에서 주민설명회는 무산이 됐고요. 그 다음에 제가 각 지역 아파트들의 관리사무소를 찾아다니면서 지역 주민대표를 만나기 위해 노력을 했습니다. 연락처도 주고 명함도 주고 좀 연락을 달라고 했는데 한 군데서도 연락이 안 왔어요.

우연히 아파트 연합회장님이 있어서 그 분에게 정신과 병원을 개설한다고 하니까 그 분이 자기는 정신병원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지만 주민들, 특히 애기 엄마들이 반대를 하니 어쩔 수 없이 설립불허 진정서를 낼 수밖에 없었다고 그래요. 당시 주민 5천여 명이 진정서를 제출했다고 하더라고요. 그 분은 ‘정신병원, 글쎄 나도 나이 들면 갈 수 있지 않을까’ 그래요.

그 분이 다른 언론에서 인터뷰한 걸 보면 우리 지역에 정신병원이 들어온다는 게 위험이 높아지고 아파트 값 떨어지고 주민들이 싫어한다고 얘기를 했더라고요. 다시 한 번 주민설명회를 하려고 준비를 했는데 당일 아침에 주민설명회 취소됐다고 하더라고요. 저희들이 누구라도 좋으니까 저희 병원에 방문을 하시라고 플래카드도 걸었습니다.

찾아오신 분들은 시설도 보시고 저희 이야기도 들으면서 병원 좋다고 격려도 해주셨는데 아주 강성(强性)인 사람들은 오라고 해도 오지를 않아요. 연락을 달라고 해도 아무도 연락하지 않고요.”

-병원을 반드시 개원할 생각이십니까. 지금 서구청장 직권남용 외에 법적으로 대응하는 부분이 있습니까.

“제가 처음에 이 일을 당하고 다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인터넷에 보면) 댓글에 ‘병원장 미쳤다, 나가라’ 그러고. 그 악플들을 보면서 속이 많이 상했어요. 그런데 제가 여태까지 배우고 해왔던 일이 정신과 환자들을 위한 치료와 진료였고 또 제 꿈이 정신질환자들을 위해 지역 내 정신건강, 정신보건을 담당하고 싶었어요. 그 꿈이 있어서 좌절하고 포기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해서든 병원 개설을 해서 정신과 환자들을 진료하고 지역주민들에게도 다가가서 정신과 병원이 막연한 공포감을 주는 공간이 아니라는 걸 알려드리고 싶어요. 우리나라의 정신과 질환자들에게 대한 편견 해소와 인식 개선을 위한 노력들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서 포기할 수 없어요.”

-탈원화라는 시대적 대의를 따르자면 정신병원은 하나씩 폐쇄돼야 하지 않을까요.

“탈원화라는 시대적 대의는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 탈원화라는 것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되면 상당히 위험합니다. 2017년 5월에 법이 개정되면서 입원을 위해 정신과 전문의 2인이 진단을 해야 되고 전문의도 한 병원에서 근무하면 안 되고 다른 기관에서 근무를 해야 되잖아요. 3개월이면 무조건 퇴원을 시켜야 되고 퇴원시키지 않으려면 연장을 위해 또 전문의 2명이 진료를 해야 되고요. 입원시키기 위한 문턱이 상당히 높아져버렸습니다.

어떻게 보면 입원을 해서 치료받아야 할 중증정신과 환자들이 제때 치료받지 못하고 있고, 치료를 잠시 받았다 하더라도 계속적으로 치료를 받지 않으니까 지금 사회적으로 문제들이 발생하는 거죠. 탈원화는 분명히 해야 될 일이지만 충분한 준비와 시설과 인력, 연계가 필요해요.

환자들이 무조건 퇴원시키는 게 문제가 아니라 퇴원시킨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치료를 받고 이분들을 잘 케어할 수 있는 환경들이 조성이 돼야죠.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탈원화시켜라? 이게 문제가 되고 있는 거죠.”

제용진 아너스병원장 (c)마인드포스트.
제용진 아너스병원장 (c)마인드포스트.

-과거 정신병원은 무자비한 폭력과 규율, 억압이 공존하는 장소였습니다. 지금은 그 같은 억압이 줄어들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나라의 정신질환자들의 치료의 역사를 보면 형제복지원이라든지 정신요양원이라든지 그런 시설에서의 문제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지 않았습니까. 1988년 올림픽이 개최되면서 이제는 정신과 환자들을 복지원 같은 데 수용시키지 말고 병원을 개설해서 병원에서 치료를 하자, 그렇게 하면서 대형 병원들이 많이 늘어났습니다. 서울 외곽지역에 천 병상 이상의 대형 정신병원들이 많이 생겼어요.

그런데 그 당시에 저도 그런 병원에서 근무를 했습니다만 그 병원이 아주 인권을 유린하는 폭력이 난무하는 곳이 아니었어요. 그렇지만 계속 시설이나 병원에서 감금이나 폭행이 연속적으로 일어날 거라고 생각한 부분이 있었겠죠. 이전에는 정신과 전문의 한 명이 60명을 보게 하는 그런 법이 없었기 때문에 의사 한 명이 많은 환자들을 볼 수밖에 없었어요.

어쨌든 80~90년대에 수용하는 시설로 역할을 했던 건 사실이죠. 이제는 정신과 전문의 한 명 당 60명을 보게 되는 상황이잖아요. 약도 많이 개선됐고 재활시설도 많이 생겼고 환자들의 인권이 보호받는 입장이기 때문에 폭력적인 일이 일어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정신과에서 치료하는 치료 인력들이 환자들에게 맞거나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제는 치료진들에 대한 인권도 보호해야 하는 시점입니다.”

-정신병원 개원을 통해 지역사회 정신건강을 담당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어떤 의미입니까.

“지금 우리나라에 한 25%가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고 합니다. 캐나다의 경우에는 46%, 미국은 40% 이상이 정신과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정신과 병원이 지역 주민들을 위한 병원이 될 수밖에 없고요. 제가 표방하는 건 커뮤니티케어라고 해서 지역사회에서의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정신과적 불안, 우울증, 청소년들의 자살, 노인들의 치매, 주부 우울증, 적응장애, 공황장애 등을 예방적 차원에서 알려주고 지역사회 정신건강의 한 부분을 담당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지역주민들이 정신과에 와 상담도 받을 수 있고 치료도 받고요. 지금 조현병 환자들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데 이들이 그런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빨리 치료를 시킬 수 있는 병원이 있고 또 지역사회로 복귀해 지속적으로 외래를 다니도록 관리하는 건 병원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사회 여러 기관들이 어울려서 그 일을 할 수 있거든요.

경찰서에서도 응급환자가 생기면 환자를 병원으로 데려오는 시스템이 있어야 하고 병원에서 치료한 분이 지역사회로 갔을 때 동사무소나 정신건강복지센터에 연계를 해서 이분들이 잘 치료받고 있는지, 약은 잘 먹고 있는지를 계속 케어하고요. 세계적으로 권고하고 있는 게 리빙랩(Living Lab)이라는 게 있어요. 책상 앞에 앉아서 연구를 하는 게 아니라 지역 전체를 하나의 랩(lab·실험실)으로 해서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자원이 필요한지 등을 실천하는 게 리빙랩이거든요.

정신과에 있어서는 리빙랩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치료받지 않는 중증정신질환자들의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 정신과적 응급상황에서 경찰서에 빨리 연락을 해서 위험한 일이 벌어지기 전에 환자를 어느 병원으로 이송할 것인가 등 체계를 만들어야죠. 그게 안 돼 있으니까 환자를 입원시키려고 세 군데, 네 군데 전화를 해도 입원시설이 없다는 답변을 듣죠. 결국 다른 지역으로 가야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거든요. 이걸 체계화해서 빨리 발견하고 병원에 빨리 입원시켜서 정신과 응급환자들을 케어하고 또 범죄예방에 대한 것도 할 수 있고요.

지금 청소년들이 남학생은 20%, 여학생은 15%가 심각하게 자살을 생각한대요. 그럼 그런 애들은 방치할 게 아니라 심도 있게 설문도 하고 면담과 상담을 통해서 치료가 필요하면 병원에서 연계해야죠. 또 노인들의 치매 도 그렇게 접근하고요. 그렇게 정신건강에 꼭 필요한 영역들을 담당하고 싶었어요.”

-정신병원과 정신장애인은 사회적 혐오의 대상이자 도덕적 피해자입니다. 이 편견은 어떤 방식으로 극복돼야 할까요.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정부에서 직접적인 활동을 해줘야죠. 각 행정자치기구라든지 자치단체에서 사회적 편견 해소를 위한 노력을 해야죠. 예산도 충분히 확보해서 인식개선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대법원은 정신과 병원 개설을 취소해서는 안 된다, 증설 불허하면 안 된다고 하는데 대법원보다 높은 게 민원인가요? 민원 때문에 자기들 힘들고 어렵다고 해서 계속 개설이 안 된다고 한다면 그 책임자는 문책성 인사를 당해야죠.

그런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신과 의사 단체들도 정신건강의날 등 홍보활동을 하지만 부족한 상황이죠. 정신과 병원을 개설하려는데 민원이 생기면 홍보를 해서 그렇지 않다고 해줘야죠. 자기들이 민원의 화살을 맞을지언정 그렇지 않다라고 홍보를 해야 바뀔 거 아니에요. 그런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보건소는 허가를 내주지 않고 또 국회의원까지 나와서 ‘(병원을 개원하면) 의사 삼대에 걸쳐 벌어놓은 걸 다 내놓게 하겠다’라고 하잖아요. 저희 병원 반대집회를 하는데도 다음 국회의원 선거에 나가려는 지역 당협위원장이 나서서 개설허가를 반대하잖아요.

인기 있는 발언을 해서 표를 얻을 지는 모르겠지만 그 속에서 눈물 흘리고 있는 정신장애인들과 가족들이 얼마나 힘들어하겠어요. 저로서도 병원을 개설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 왔는데 이렇게 막혀버린 상태에서 제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좌절감, 또 재산상의 손해, 그런 것들이 피해가 막심하다고 생각합니다.”

-병원 이름을 ‘아너스’로 지은 건 정신장애인의 명예를 존중한다는 의미라고 했습니다. 정신장애인의 어떤 명예를 말하는 겁니까.

“인간은 인간으로서 살면서 가지고 있어야 할 명예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정신질환자들은 사회적 편견 때문에 내가 정신질환자라는 이야기를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가족들도 마찬가지죠. 내가 누구라는 걸 밝힐 수 있는 것이 명예라고 생각합니다.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편견이 빨리 없어지고 그 분들의 명예가 존중되기를 바라는 입장에서 아너스라는 이름을 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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