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장애인이라는 낙인, "뭐? 우울증이 아니라 다른 정신병이라고?"
정신장애인이라는 낙인, "뭐? 우울증이 아니라 다른 정신병이라고?"
  • 배주희 기자
  • 승인 2019.09.04 21:5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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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10명 중 7명, 주변에 정신적 문제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응답
우울증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많이 누그러진 편
우울증 아닌 '다른 정신질환에 대한 차별적인 태도'에 대한 문제의식 시급
정신장애인들을 사회적으로 낙인찍는 일 없어야
정부차원에서 실시하는 미국, 캐나다, 스코틀랜드의 '정신장애인 낙인 없애기 운동'
미국에서 정신장애인의 낙인을 없애기 위해 제안하는 여러 가지 수칙 우리도 살펴야
사회적인 차원에서 정신질환에 대한 정보 알리고 공유하는 노력 필요

"나 요즘 정신과 다녀."

이 말을 가까운 지인들에게 서슴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지, 우리는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한국 사회에서는 아직도 정신질환이 있다는 사실을 주변에 털어놓거나 공공연하게 밝히는 게 어렵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는 여전히 정신질환을 일종의 낙인처럼 간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분위기가 전혀 변하고 있지 않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원인으로 연예인들의 영향이 크다. 고(故) 최진실, 샤이니의 고(故) 종현 등 연예인들의 극단적인 선택이 뉴스에 방영되는가 하면, 다른 많은 연예인들이 방송에서 정신적 문제에 관한 언급을 하거나 고백을 함으로써 우울증이라는 정신질환에 대해 조금 더 열린 생각을 가지게 된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울증 외의 다른 정신질환에 대해서도 우리는 열려있을까?"라는 질문이 생긴다. 그 대답은 ‘아니오’다. 우리 사회가 여러 정신질환들을 마음속으로는 ‘등급’을 매겨놓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자각해야 한다.

시장조사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전국 만 19~59세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현대인의 정신건강’과 관련한 인식조사를 실시한 결과, 성인 10명 중 7명(69.9%)이 최근 들어 주변에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데 공감하는 모습을 보였다.

가장 대표적인 증상인 ‘우울증’의 경우 전체 응답자의 73.7%가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겪고 있는 증상'이라고 받아들일 정도였다. '요즘 사람들은 누구나 우울증에 시달린다'는 인식은 여성(남성 66.4% 여성 81%) 및 30대(20대 73.6%, 30대 80.4%, 40대 71.6%, 50대 69.2%)에서 가장 뚜렷한 편으로, 그만큼 이들이 일상적으로 우울함을 많이 느끼며 살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우울증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많이 누그러진 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63.3%)도 있고, '우울증을 겪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80.7%)라는 생각도 있다는 점을 보면,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이 많이 변하고 있다는 게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게 있다. 우울증이 아닌 ‘다른 정신질환에 대한 태도’ 말이다. 우울증처럼 구체적인 질환이 아닌 전반적인 정신질환에 대한 질문일 경우, 절반 이상(54.8%)이 “한국사회에서는 정신질환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살아남기 어렵다”고 응답했다는 사실은 중요한 점을 시사한다.

정신질환을 바라보는 개개인의 인식은 달라졌지만, 여전히 이왕이면 ‘마음의 병’을 숨겨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 것이다. 대부분 '우리 사회는 심리적 고통이나 증상을 차별하는 경향이 있고'(77%),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한국사회에서는 불이익을 보기 십상'(75.9%)으로 바라볼 만큼, 정신질환은 일종의 ‘낙인’과 다름없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이러한 낙인이 찍히면 그 사실만으로 예비 범죄자 취급을 받는다'(56.2%)는 인식도 상당했다. 실제 조현병 환자에 의한 범죄사례가 미디어에 보도되면서, 모든 조현병 환자를 바라보는 시각에서 쉽게 공포와 불안감을 찾아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와 관련해 해외에서도 연구가 활발하다. 싱가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라이(Y. M. Lai) 교수와 연구진은 '정신질환이라는 낙인(Stigma of Mental Illness)’이라는 논문에서 비판적 시각으로 우울증과 다른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을 조사했다.

싱가폴에서 진행된 이 연구는 300명의 정신과 통원치료를 받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그 결과 조현병을 가진 환자들은 '평소 본인에게 부정적인 낙인이 찍혔다'(71.5%)고 응답했으며, '일자리를 찾는데 어려움을 겪는다'(73%)고 응답했다. 또 51%의 환자들이 '주변 이웃이나 지인들에게 병에 대해 털어놓으면 본인을 피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회에 이렇게 물어야 한다. "왜 우울증은 이해가 되고 조현병이나 조울증은 용납이 되지 않는가?" 가령, 심장병을 앓고 있는 환자와 류마티스 관절염을 앓고 있는 환자를 차별하여 한쪽의 환자가 더 중요하다거나 다른 쪽의 환자는 덜 중요한 환자라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는가? 이 환자들 가운데 누가 더 위험한지, 또 어떤 병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이 큰지에 대해 누가 감히 대답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정신질환은 왜 배제되는가? 누가 배제하는가?

심장병이나 류마티스 관절염 같은 신체질환을 가진 환자들도 일부는 열심히 치료를 받으며 살아가는 환자들이 있는 반면, 또 일부는 관리가 소홀해서 병을 방치하는 환자들도 있을 것이다. 정신질환도 이와 다르지 않다. 조현병, 조울증, 분노조절장애, 성격장애 등을 가진 환자들도 각자의 상황이 다르고 병식(insight)도 제각각이다.

병식이 없고 관리를 소홀히 하는 일부 소수의 환자들 때문에 그 병을 가진 사람들 전체를 낙인찍고 곱지 않은 시선들을 보내는 것 자체가 일종의 엄청난 차별이며 정신장애인에 대한 보이지 않는 폭력이다.

다시 우울증 문제로 되돌아가보자. ‘우울증’에 대한 편견은 어떻게 누그러진 것일까. 아마도 사회에서 공공연하게 언급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울증에 대해 거리낌 없이 주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고 주변 사람들도 그 병에 충분히 익숙해서 비교적 많은 정보를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우울증'으로 고통 받는 사람에게 많은 배려와 지지를 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울증이 아닌, 앞서 언급한 다른 여타의 정신질환자가 어렵고도 어렵게 자신의 병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을 때는, 그때는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우울증을 대할 때처럼, 다른 질환들과 차별하지 않고, 병이나 환자에 대한 맹목적인 거부감보다는, 그 병에 대해 관심을 보이거나, 직접 그 병을 알아보고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고민하며 ‘정확한 사실’을 근거로 환자를 대하는 태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당신의 사소한 검색 하나, 최근 쉽게 접할 수 있는 유투브의 관련 동영상 시청 등의 관심 하나 하나가 모여 정신질환자에게 큰 위로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근본적으로, 이러한 정신질환의 ‘등급’을 매기는 것과 관련해 이를 '사회적으로 아주 큰 문제점으로 인식'하고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편견과 선입견, 차별적 시선을 바꾸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 다양한 증상을 진료하고 상담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지원하는 제도도 필요하다. 더불어 우울증을 비롯한 여타의 정신질환에 대해 언론과 정부 차원에서도 정확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정신장애인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이나 잘못된 인식을 바꾸는 노력이 지속적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러한 노력을 통해 그 동안 수없이 상처받아야 했을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의 낙인을 지워줄 수 있는 따뜻한 사회가 될 수 있도록 모두 힘을 모아야 한다.

 

*참고: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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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민 2020-11-06 19:26:11
본인도 과거에 익산신경정신과병원에 입원을 하였는데, 정말 혼자서 입원한 상태에서 병에 걸린 사람들과 같이 있었을때는 군대에서 마치 일병에게 일을 시키듯이 하라고 했고 조직에 몸을 담근 사람도 있었고 CCTV처럼 생긴 문을 깨트리는사람도 보았다. 그곳에 입원을 하였을때는 마치 학교 칠판처럼 이름을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