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토크] 무기력함을 대하는 자세, "아무것도 하기 싫어도 괜찮아"
[셀프토크] 무기력함을 대하는 자세, "아무것도 하기 싫어도 괜찮아"
  • 배주희 기자
  • 승인 2019.09.05 19: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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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인 셀프토크의 강력한 힘
심한 우울감 속의 무기력감에 대한 올바른 대처방안
'무기력함'을 허용치 않는 우리 사회 현실
자기 자신에게 '쉼'을 허락하는 요령이 필요
긍정적인 셀프토크(Self-talk)는 자책감 줄이고 자존감 높여

얼마전 지인의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숨막히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보내는 시간을 다 모으면 얼마나 될까? 출퇴근 시간을 평균 3시간이라고 가정했을 때, 그걸 일 년으로 환산하면 무려 한 달을 길 위에서 보낸다고 한다. 한 달의 시간, 아무것도 안 하고 멍 때리고 웹툰 드라마나 보면서 보내기엔 너무 아깝고 한심하지 않는가.”

이 글을 읽고 우리 사회에서는 한 가지의 선택지만 제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잠깐 딴짓하면 낙오’라고 생각하며 달려온 기성세대의 가치관이 여전히 정답이라고 강요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이 SNS의 주인도 그 선택지를 택한 경우인 것이다.

그렇다면, 질문을 던지고 싶다. 과연 그 기성세대의 가치관을 따라야만 삶이 풍요로워지고 남들보다 뒤쳐지지 않게 되는 것일까? 얼마나 많이, 그리고 빨리 ‘달려야만’ 주변에서 한심하다는 소리를 듣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우리는 관점을 다르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가 사치라고 여기는 ‘쉼’이 어떤 이들에겐 ‘일’만큼 중요할 수 있다. 특히 정신장애인의 경우에는 이러한 ‘쉼’이라는 삶의 여유가 약보다 더 좋은 치료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들은 각박한 우리 사회에서 대부분 무시된다. 많은 경우, 우울증이나 조울증의 기분조절장애를 겪고 있는 정신장애인들은 깊은 우울감을 느낄 때 동시에 극심한 ‘무기력감’을 느끼며 스스로를 아주 많이 자책하게 된다. 이럴 때 굳이 몸을 일으켜 소위 ‘생산적인 일’을 하려고 애써 노력하는 동안, 오히려 병이 악화되는 괴로운 경험을 하기도 한다.

정신장애인 당사자뿐 아니라 당사자의 보호자나 가족들도 “환자를 간병하는 보호자가 씩씩하게 이겨내야지, 축 쳐져서 아무것도 안 하면 안 된다”라고 생각하며 ‘무기력감’이라는 감정에 대해 거부감을 나타내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어쩔 수 없는 ‘무기력감’ 역시 인간이 느끼는 당연한 감정 가운데 하나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당사자와 당사자 보호자가 더 건강하게 당면하고 있는 병을 이겨낼 수가 있다.

 

무기력함을 극복하는 좋은 도구로 셀프토크(Self-talk)가 있다. 셀프토크란 혼자서 자기자신에게 말을 거는, 이른바 ‘혼잣말’ 또는 ‘자기 암시’의 한 종류다. 가령 무기력함으로 지쳐있는 상태에서 너무나 힘든 일을 스스로에게 강요하고 있을 때, “이거 안 해도 죽지 않아” “이걸 하지 않아도 내가 형편없는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야”라고 되뇌어 보는 것이다. 

나아가 “이거 좀 못하면 어때, 이걸 안 해도, 못 해도, 여전히 나는 괜찮은 사람이야”라고 말하며 자기 자신도 모르게 강박적으로 빠져있는 생각들에 대해 “노(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정신과 약물의 주요 부작용인 체중 증가를 겪는 환자들은 타인의 손가락질보다 자신의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비난과 명령들 때문에 더 괴로워한다. “운동을 해야해! 약으로 살찐 것 얼른 빼야지!” 이러한 마음의 소리에 솔직해지는 연습을 하는 것이 좋다. 진짜 속마음을 꺼내 보는 것이다. 그럴 땐, “오늘은 아니야. 오늘은 아무것도 하기 싫어. 오늘은 나, 나 자신을 그냥 놔 둘거야. 나한테 아무것도 강요하지마. 오늘 운동은 노(No)!야” 라고 셀프토크를 해보는 것이다.

당사자의 가족들이 운동을 하라고 권유하거나 심지어 그것이 잔소리가 되어 강요로 돌아오는 경우도 많지만, 정말 중요한 건, 본인의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자기 자신이 "괜찮다"고 ‘뇌’라는 관제탑에서 신호를 보내주면 아무리 누가 뭐라해도 ‘괜찮은’ 감정을 느끼게 된다.

 

너무나 당연한 말인데도 금기시 하는 말, 다시 말해 “아무것도 하기 싫으면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를 우리의 뇌에서 허락해보자. 그리고 소위 ‘내가 먹고 사는 데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닐지라도, 이른바 ‘생산적인 일’이 아니어도, 조금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우리 정신장애인에게 그보다 더 도움이 되는 치료가 있을까?

웹툰 드라마를 보는 것이 잘못된 일인가?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면 좀 어떤가? 가사의 뜻을 몰라서 영어 공부에 도움이 되지 않는 팝송을 즐기는 것이 잘못인가? 그 속에서 작은 쉼의 여유를 느낄 수 있다면,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 아닌가, 말이다.

 

기자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긍정적인 셀프토크를 정신과 병원이나 심리상담소에서 적극 추천하면서 그 방식 등의 요령을 가르쳐주면 참 좋을 것 같다. 어쩌면 그것이 고기를 잡아주는 대신 ‘고기 낚는 법’을 알려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루종일 아무도 만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하루종일 ‘멍 때리며’ 누워있어도 괜찮습니다.” ”하루종일 잠을 자도 상관없습니다.” “그렇다고 한 인간으로서의 자신의 가치가 떨어지거나 큰 일이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당사자를 안심시켜주는 말을 당사자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다. 

당사자가 자신의 마음이 내킬 때까지 스스로에게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게 된다면 당사자의 자책감을 덜어줄 것이다.

당사자의 보호자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사실 당사자 가족도 만성우울에 시달리며 강박적으로 ”약을 먹여야 하는데 (…) 입원시켜야 하는데 (…) 좀 더 재워야 하는데 (…)” 등 부정적인 셀프토크를 하면서 괴로워하는 경우가 많다.

 

비유하자면, 비행기에서 위급한 상황일 때 ‘보호자가 먼저’ 산소마스크를 쓰고 그 다음 자녀에게 마스크를 씌워주라는 지침과 마찬가지다. 당사자도 당사자 나름의 아픔이 있겠지만 당사자의 가족들이 먼저 정신 건강에 적신호가 오지 않아야 환자를 건강한 마음으로 돌볼 수 있다.

 

따라서 ‘아무것도 하지 않음’에 대해, 당사자 보호자인 자신에게도, 당사자에게도 단죄하지 않아야 한다. 특히 보호자들은 정신장애인을 돌볼 때, 당사자들이 ‘하고 싶다는 것’만큼 ‘하기 싫다는 것들’도 귀담아 들을 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깊은 우울의 무기력함이 찾아오면 예전엔 쉽게 끝낼 수 있던 일도 너무나 힘겹고, 하지만 그것을 하지 않으면 내 가치가 떨어지고 형편없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 같아서 자신을 심하게 채찍질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감정들은 확실히 병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럴 때는 한번 시험삼아 다 내려 놓는 연습을 해보자. 채찍질하고 있는 자신에게 스스로를 허락해주는 것이다. 다음과 같이 셀프토크를 해보자.

괜찮아. 너 지금 많이 우울하잖아. 피가 나지 않는다고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야. 잠을 좀 많이 자면 어때. 그동안 너무 바쁘게 살아서 여태껏 못 잔 잠을 지금 자는 거잖아. 괜찮아. 자면서 낫기도 한다잖아. 내가 아픈 건 내 잘못이 아니듯,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큰일 나는 건 아니야. 다시 힘을 모을 때까지 나 자신을 기다려주자. 기력이 돌아오면 이 모든 걸 잘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어. 지금은 잠시 멈춰 숨을 고르자. 그래도 나는 여전히 소중한 존재야.

 
 

당사자의 가족도 마찬가지다. 당사자의 가족은 이렇게 말해보자.

내 가족이 아픈건 누구보다도 억장이 무너지지만 나 자신부터 괜찮아야 당사자인 가족을 지킬 수 있어. 내가 하기 싫은 것, 오늘은 하지 말자. 환자를 대하는 것이 힘들면, 힘들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오늘은 환자에 대한 걱정을 내려놓자. 쓸데 없는 일이라도 재밌는 일을 하며 나도 스트레스에 노출되지 않아야지. 그래도 괜찮아. 환자도 이해할 거야..

정신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일, 또 그들을 곁에서 간병하는 일, 그래서 같이 병을 이겨내는 일들은 여간 만만치 않은 일이다. 그럴 때, 환자도 보호자도 ‘한 템포 쉬어가도 괜찮은, ‘자기 자신’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보는 것은 어떨까.

 

보이지 않는 병을 가지고 살아가며 몸과 마음이 너무나 지친 사람들, 무기력함과 애써 싸워 이기려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자기 자신’이 ‘쉼’을 허락할 때, 비로소 자유로운 마음으로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즐거움 역시 꼭 ‘쓸모 있어야’ 하는 즐거움이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무기력함으로 인해 말도 잘 나오지 않고 사람을 만나기도 두렵고 생각도 느려지고 반응도 늦은 자기 자신에게 '나 자신이 가하는 상처의 말' 대신, 삶이란 '한 번 살아볼 만한 즐거움이 있는 것'이라는 감정을 새삼 느끼며 나 자신과 사이좋게 살아가면 어떨까. 우리 인생에서 '쉼'은 결코 '사치'가 아닌 '가치' 있는 일이다.

자, 지금 당장 내일 할 일들 목록에 ‘아무것도 안 하기’를 써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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