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안식 “고통도 영원하지 않고 아름다움도 영원하지 않아요. 그걸 이해한다면 관조(觀照)할 수 있어야죠”
정안식 “고통도 영원하지 않고 아름다움도 영원하지 않아요. 그걸 이해한다면 관조(觀照)할 수 있어야죠”
  • 박종언 기자
  • 승인 2019.09.04 03:3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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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안식 코리안매니아 카페 대표 인터뷰
조울증, 한의학적으로 음인 체질이 많아
울증이 오면 아침에 커피 한잔이 건강에 좋아.
조울증은 완치가 아니라 관리의 개념으로 접근해야
결혼을 약속할 경우 질병 숨기지 말고 상대에게 알려야
결혼하고 아이 낳는 건 당사자 자기선택…된다, 안된다는 무의미
무슨 일을 하는 것보다 병을 치유하는 게 가장 중요
자연요법·영양요법 공부…40% 정도 치료에 도움돼
한국의 정신건강 모델이 외국에 전파되는 게 꿈
가족은 의사만 믿으면 안돼…정신장애에 대한 심층 공부해야
생명 있으면 뒷면에는 죽음 있어…있는 그대로 바라봐야
단극성우울증은 수면 깊게 취해야 자살 감정 막을 수 있어
고통에 매몰되지 말고 한 걸음 물러서서 관조할 수 있어야
고통 없이 행복을 알 수 없어…부정 있어야 긍정도 있는 것
통증을 부정적으로 보면 성장 없어…통증 통해 성장해야
의사가 모든 걸 다 해결해줄 거라는 막연한 믿음은 위험해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아버지는 신학대를 나온 목회자였다. 그렇지만 목회보다 사회운동에 열심이었다. 서슬 퍼렇던 박정희 시대 ‘긴급조치’ 위반으로 아버지는 1년6개월의 실형을 살았다. 20년 형이 언도됐지만 세계 인권단체들의 구명 시위로 그만큼의 시간만 징역을 살고 나왔다. 그에게 아버지는 늘 존경의 대상이면서 의문의 대상이었다.

아버지의 잦은 이사 때문에 그는 초등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했다. 이후 성인이 됐을 때 그는 ‘몰아서’ 여름방학 숙제를 하듯이 초·중·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마쳤다. 이후 대학도 검정고시로 합격해 졸업을 했다. 정신적 질병에 걸린 이후 그가 이뤄놓은 작은 성과들이었다. 21살 때였다. 조증이 찾아왔다. 그는 그게 무슨 병인지 알지도 못한 채 거리를 떠돌았다.

작가를 꿈꿨다가 나중에는 영화배우로 진로를 바꿨다. 물론 조증 상태에서 나타난 일종의 ‘과대망상’이었다.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난 그에게 종교 망상은 어쩌면 벗어날 수 없는 하나의 형벌이 됐을 것이다. 지상(地上)은 다른 행성처럼 느껴졌고 현실 감각도 모두 사라졌다. 어느 날 누군가 차를 세워두고 전화를 하는 모습을 보고 면허증도 없던 그는 그 차를 운전하다가 차량 추돌사고를 냈다. 파출소에서 얻어맞고 경찰서에서도 얻어맞았다. 그는 소리를 질렀고 경찰이 주는 밥을 엎어버렸다.

호송차를 타고 교도소에 도착했을 때도 그는 우주선에서 착륙한 기분이었다. 교도소에서 밤마다 괴성을 질렀다. 열흘 쯤 지났을 때 정신과 의사가 와서 정신질환 진단을 내렸고 그는 교도소를 나왔다. 이후 정신병원에서 한 달 반 정도 있으면서 자신의 병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됐다.

이후 안전관리 작업사 자격증도 따 일을 했다. 아내도 그 무렵 만났다. 그리고 재발. 입원을 했지만 아내는 그를 떠나지 않았다. 병원에서 나온 그는 아내에게 청혼을 했다. 그는 자신의 병이 ‘조울증’이라는 걸 무수한 시행착오 끝에 알게 됐다. 병의 회복을 위해서는 단순히 약을 먹는데서 그치지 말고 정보를 많이 받아들이고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 정보의 중요성은 당사자 가족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2005년에는 자신의 조울증 경험을 함께 나누기 위해 카페 ‘코리안매니아’를 개설했다. 현재 이 카페의 가입자 수는 3만5천여 명에 이른다. 그는 인터넷 익명의 공간에서 조울증에 시달리는 이들의 상담을 길게 했다. 그러나 한계가 있었다. 시간적으로도 상담은 너무 길었다. 그는 책을 출간하기로 했다. 5년의 준비 기간을 거쳐 2012년 ‘조울증은 회복될 수 있다’는 책을 상재하게 된다.

이후 그는 조울증을 상담하는 이들에게 이 책을 먼저 권했다. 그에게도 조울증은 일 년 반을 주기로 찾아왔다. 울증은 잡을 수 있어도 조증은 질병으로 진입하면 답이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러므로 정신장애와 관련된 정보를 잘 알아야 하고 자신과 같은 병을 경험하고 회복된 이들의 말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정안식(47) 코리안매니아 대표를 만난 건 3일 서울 봉천동 인근의 한 카페에서다. 다음은 일문일답.

정안식 코리안매니아 대표 (c)마인드포스트.
정안식 코리안매니아 대표 (c)마인드포스트.

-조증과 울증은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다른 가지인가요. 출발점이 긴밀하게 연관된 질병이라고 하셨는데.

“제가 코리안매니아(조울증 치료 상담 인터넷 카페)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관찰했는데 조울증의 특징이 있더라고요. 조울증 있는 남성은 대머리가 별로 없고 머리숱이 많아요. 한의학적으로 보면 소음인이나 태음인 같은 음인 체질이에요. 그 중에서도 소음인이 압도적으로 많더라고요. 조현증은 양인 기질을 가진 다혈질적이고 욱하는 사람들이 잘 걸리는 걸 봤어요.

태어날 때부터 아토피를 잘 일으키는 체질이 있고 같은 형제인데도 알러지가 잘 안 일어나는 형제가 있어요. 그게 체질하고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저의 아버지가 대머리인데 우리 형이 대머리이고 저는 머리숱이 많아요. 우리 형은 조현증 증상이 있었어요. 저하고 남동생은 조울증 증상이 있고. 아버지는 조울증 증상이 있었던 거 같아요.

조울증은 특징이 많이 돌아다니는 거고 조현증은 심할 때 집에만 있잖아요. 약도 비슷해요. 그래서 교감신경이 올라가는 것도 유사하고. 교감신경이 올라가고 신경계가 과흥분돼서 병이 일어나는 건 맞는데 그 양상은 다르게 나타나요. 뿌리가 같다기보다는 체질에 따라서 어느 사람은 조울증, 어떤 사람은 조현증, 우울증으로 오는 거 같아요.”

-조울증의 원인은 너무 많아서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라고 했습니다.

“그게 의사들이 하는 말이에요. 어떤 사람은 잘 못 먹어서 정신병이 온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어릴 때 두드려 맞아서 왔다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성폭력 때문에 그렇다는 거죠. 환자들에게 물어보면 대부분 어떤 사건 때문에 정신적 질병이 왔다고 얘기를 해요. 사람마다 다 사건이 다르잖아요. 그러니까 무엇 때문에 왔다라고 정의를 못 내리는 거죠.

그런데 원인 없는 결과는 없어요. 상처 있는 사람이 다 조울증이 오면 대한민국은 조울증 환자 천지가 되겠죠. 그래서 그것보다는 그 사람 체질이 뇌신경 쪽으로 원래 취약했는데 그 생물학적 특성 때문에 오는 거라는 관점이 저는 맞다고 봅니다.”

-누가 그러더군요. 조증에는 약이 있지만 울증에는 약이 없다고요. 아니면 그 반대입니까.

“우울증에 두 가지가 있어요. 전형우울증, 비전형우울증이 있는데 조울증 환자가 겪는 우울증은 비전형우울증이에요. 이건 잠이 많이 와요. 전형우울증은 잠이 안 와요. 그러면서 우울해요. 전형우울증은 잠이 안 와서 잠자는 약을 투여해요. 조증이나 조현증에 먹는 약과 같은 걸 전형우울증에 써죠.

비전형우울증은 잠이 많이 오는 거잖아요. 잠이 안 오게 해주는 흥분제 같은 약이 있긴 있어요. 문제는 이걸 먹고 조증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거예요. 그래서 의사들은 비전형우울증에서 잠이 많이 오는 사람한테는 약간의 비전형 항우울증제를 투여하는 거죠. 그런데 진짜 항우울제를 투여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죠. 그게 혼란을 겪는 경우가 많아요.

조울증 환우가 겪는 우울증은 별도의 우울증 약을 처방하기 보다는 조울증 약을 좀 줄이는 게 보통 처방이에요. 그 다음에 아침에 커피를 한 잔 마신다거나 천연 카페인을 마셔준다든가 좀 걷는다거나, 자극적인 매운 떡볶이를 먹는다거나 해서 이런 걸로 기분을 올려주는 거지 거기다 기분을 뜨게 하는 약을 넣어주면 이게 조증으로 갈 수가 있죠.”

-세상 종말에 대해 두려워했고 베스트셀러가 될 거라는 망상을 했습니다. 그게 아니라는 걸 어떻게 깨달았습니까.

“조증 때는 별 망상이 다 오는데 조증이 잡히고 정상으로 돌아오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걸 생각했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리고 정신병자가 기억을 할 수 있냐 그러는데 기억하는 문제와 정신장애인이 행동을 하는 건 다른 문제예요. 알코올 환자가 술을 많이 먹고 주사를 부렸어도 술이 깨고 나면 ‘아, 그때 내가 오버했구나’ 그러잖아요. 똑같은 거죠.”

-조울증은 완치가 아니라 관리해야 되는 병이라고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조울증이 완치된 사례도 분명히 있습니다. 제 남동생도 지금 8~9년째 약을 끊고도 잘 살고 있어요. 어떻게 보면 완치일 수 있죠. 그런데 그 동생도 잠재적으로 재발할 가능성을 갖고 있어요. (어려움에 놓이면) 그 사람의 취약성이 드러나거든요. 악조건에 놓이면 병이 드러납니다. 그래서 안 드러났다고 해서 완치라기보다는 잠재적인 인자를 갖고 있어서 관리가 중요한 개념이라고 봐요.

따라서 초점을 완치의 개념이 아니라 관리의 개념에 두는 게 맞아요. 또 조울증 환자 100명 중에 30%는 저절로 나아요. 그리고 50~60%는 약을 먹고 잘 재활하면 적당히 살아갑니다. 그런데 10~20%는 아주 힘들게 살아요. 그렇다면 초점을 자동으로 완치되는 사람들에게 둘 것이 아니라 약을 먹으면서 사회에 잘 적응하는 데 두는 게 맞죠. 마치 고혈압이나 당뇨처럼요.”

-아파서 주저앉고 싶을 때 주저앉으면 우울증이 오고 용기를 내 억지로 마음에 불을 지피면 조증이 온다고 했습니다. 진퇴양난 같은 느낌이 듭니다.

“맞죠. 우울증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무력감이고 조증은 과도한 몰입이잖아요. 저는 조증환자들은 아무것도 하기 싫은 허무감도 경계해야 하지만 지나친 열정과 몰입도 경계해야 된다고 봐요. 그래야 몸에 좋다.

몰입할 때는 행복하지만 조증이 오면 피해가 크잖아요. 그런데 그걸 관리 못하는 환자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인지행동요법이 많이 필요해요. 그리고 내가 인지를 못하면 그걸 잘 경험한 환우들과 소통해가지고 말을 듣고 받아들이는 게 필요해요.”

-조증이나 울증이 오면 선생님은 어떻게 대면하고 극복합니까.

“저는 뒤돌아보면 조증 왔을 때 제가 대처가 미숙했던 거 같아요. 우울증은 나름대로 대처를 잘 했습니다. 우울증은 제가 가라앉아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잠이 많이 와요. 의사한테 수면이 많다는 걸 얘기하면 약을 좀 줄여줘요. 그럼 기분이 조금 올라옵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천연 카페인 아메리카노 같은 걸 마시면 확실히 나아요.

그리고 약간 목표 설정을 하고 몸을 빨리 움직이면 확실히 도움이 되더라고요. 물론 조울증이 강도가 다르기 때문에 천편일률적으로 똑같다고 볼 수는 없어요. 우울증 감정에 빠져들면 답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건 진짜 감정이 아니라는 걸 알면 열흘이나 보름이면 충분히 빠져나올 수 있어요. 그런데 조증은 딱 시작됐을 때 이미 늦어요. 경조증이 시작되면 늦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평소에 중독이나 몰입으로 안 가게끔 관리를 잘 해서 약을 정확히 먹고 수면시간 잘 지키고 일을 많이 벌리지 않는 게 중요해요. 그리고 일 중심이 아니라 몸 관리 중심으로 패턴을 맞춰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조증이 딱 진입하면 컨트롤하기라 어렵습니다.”

-조증에 진입하면 그 다음부터 어렵단 말입니까.

“네. 진입 전에 주의해야죠. 울증은 들어가도 빠져나오는 걸 인지하는 게 쉬워요.”

정안식 코리안매니아 대표 (c)마인드포스트.
정안식 코리안매니아 대표 (c)마인드포스트.

-부친이 목사님이었습니다. 선생님에게 부모님은 어떤 존재였습니까.

“(돌아가신) 아버님은 세상에서 제일 큰 존재였고 제일 두려운 존재였어요. 아버님이 약간 정신적으로 건강하지는 못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오히려 종교에 더 깊이 몰두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아버님은 정직하고 강직하고 사회 불의를 못 참는, 그러나 현실성은 떨어지는 분이었어요.

그리고 어려운 사람 돕는 생활을 하셨고 항상 가난한 자, 불쌍한 자를 도왔어요. 또 종교도 큰 교회 보다는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좁은 길을 가셨던 분으로 제가 봐요. 어머니는 살아 계신데 순종적인 분이었고 아버지를 존경하셨고 모든 일에 원만했어요. 조용하지만 강한 분이라서 제가 힘들어도 항상 놀라지 않고 ‘네가 하나님 뜻이 있어서 그런 병이 왔고 하나님 뜻을 찾아서 생활해라’ 이런 식으로 얘기를 했죠.”

-아내와 아이들은 선생님의 질병을 이해하고 옹호하는 편입니까.

“큰애가 고1, 작은애가 중1인데 제가 아픈 모습을 애들한테 그렇게 많이 보여준 적은 없어요. (제가 아픈 걸) 몇 번 보기는 했는데 요즘 애들이라서 크게 걱정하지 않아요. 그리고 아빠가 아플 때 아프지만 좀 유능한 부분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걱정은 많이 안 하더라고요.”

-어떤 부분에서 아이한테 아픔을 보여주는 겁니까.

“조증이 오면 갑자기 집에 안 있고 밖에 나가 있어서 애들이 볼 기회가 별로 없었죠. 또 병원에 있었기 때문에 기회가 없었어요. 우울증 때는 몸이 가라앉으니까 누워서 잠을 자니까 애들이 눈치를 못 채잖아요.

(애들이) 제가 조증이 심할 때를 본 적이 있어요. 조증 때 평소와 다르게 예민하게 행동을 하니까 놀라긴 하더라고요. 그걸 보고 애들이 아빠가 아프구나를 알게 된 거죠. 그렇지만 제가 책 쓴 것도 알고 아빠가 얘기도 했고 또 병이 장기화되지 않으니까 애들이 공포심을 갖지는 않더라고요.

아내는 지적인 게 아니라 행동파라서 제가 깊은 이해를 못 받았어요. 그러나 저를 의지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니까 믿어주죠.”

-정신장애인이 결혼을 할 때 자신의 병을 상대방에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네. 숨기고 결혼하는 건 상대에 대한 기만이죠. 저는 아내 만날 때 질병이 있다는 걸 얘기를 했어요. 그런데 아내는 안 봤기 때문에 지금 건강한 모습만 보고 별 생각을 안 하더라고요. 그런데 말을 했기 때문에 속인 건 아니잖아요. 내가 의식적으로 얘기를 안 했더라면 아내가 나중에 알았을 때 나쁜 놈이 되는 거죠. 그래서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정신장애인도 결혼을 원합니다. 어떤 조언을 해 주고 싶습니까.

“정신장애가 있어도 일반인(비정신장애인)과 잘 사는 행운의 남성·여성도 많이 있어요. 그건 다 오픈한 케이스고 상대방이 그걸 수용한 사례입니다. 같은 질병을 갖고 있는 사람들끼리 만나서 잘 사는 경우도 있어요. 건강한 사람들도 만나서 잘 사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혼하는 사람들도 3분의 1이나 되잖아요. 복불복이라는 거죠.

일반인도 결혼 네 번, 다섯 번 하는 사람이 있는데 정신장애인라고 왜 결혼하면 안 되겠어요. 아이를 낳는 문제에 있어서는 그것도 자기 선택이라고 봅니다. 된다, 안 된다 이런 거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봐요.”

-왜 그렇습니까.

“대부분 전체주의 국가에서 인간을 기능적으로 파악해서 소외된 집단(을 만들어내잖아요). 히틀러도 유대인을 죽였지만 장애인들도 많이 죽였거든요. 또 소비에트 사회주의 국가도 장애인들 대부분을 처분하는 쪽으로 갔죠. 그런 나라가 잘 사나요? 망했잖아요. 약자를 보호해줄 수 있는 정책을 펴는 나라가 오히려 더 강해지고 부유해지죠.”

-책 ‘조울증은 회복될 수 있다’는 많이 팔렸습니까.

“3000부 정도 팔렸어요.”

-쓰게 된 계기가 있습니까.

“21살 때는 처음 겪는 일이라 이게 종교적 체험이라고 생각했어요. 재발을 하면서 이게 병이라는 걸 인식하게 됐고 일 년 반 주기로 재발 주기가 오더라고요. 그러면서 약을 먹어도 신통치가 않고 약을 먹어도 재발이 오더라고요. 그래서 답이 없다. 좌절했죠. 심지어 가족 동반자살 생각도 우울증일 때 우울망상과 함께 오더라고요.

그리고 2007년쯤에 제가 봉사단체를 크게 하고 있었는데 어떤 서류적인 오류로 해서 제가 시련에 봉착했어요. 또 회장단 회의에서 제가 환자로 찍혀서 오너십(ownership·소유권)을 잃었죠. 저 사람은 정신병자이기 때문에 회장을 오래 하면 안 된다 이런 오해도 받고요.

그때 제가 내린 결론은 뭘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병을 고치는 게 제일 중요하구나. 그렇지 않으면 아내, 아이들, 나의 미래도 없다. 그래서 그때부터 건강 공부를, 특히 자연의학이나 영양요법을 공부하면서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100%는 아닌데 30~40% 정도 도움이 되더라고요.

그러나 또 그것의 함정은 뭐냐면 거기에 의지하고 약 관리를 잘 하지 못해 재발을 하게 되더라고요. 어쨌든 2005년에 (코리안매니아) 카페를 만들었는데 너무 힘들어서 소통하고 싶었어요. 소통만으로도 좀 치유가 될 거 같더라고요. 힘든 현실에 우울감이 오면 아무것도 못하는 거예요. 그런데 소통하면서 많이 힐링이 됐어요.

카페가 커지면서 정기모임을 2006년부터 두 달에 한 번씩 했는데 힐링이 많이 됐어요. 남들은 제가 좋은 일을 한다고 말은 하지만 좋은 일 하는 건 맞죠. 그런데 저는 그걸 함으로써 제가 삶의 의미와 가치를 느끼는 거예요. 저도 도움을 많이 받은 거죠.

제가 2012년쯤에는 어느 정도 지식이 좀 생겼어요. 그러다가 사람들이 저한테 질문을 하는데 얘기를 해주다보니까 너무 긴 거예요. 그래서 책으로 정리를 해서 보라고 그러면 간단하겠다 싶었죠. 그래서 말을 하기 싫어서 책을 출간한 거죠. 책 한번 보시고 통화합시다 그러면 이해가 빠를 거니까요. 책을 쓰려는 마음은 책 출간 5년 전에 했는데 지식도 없으니까 뭔가 공부도 하고 경험을 하고 하는 게 5년 걸렸고요. 책 쓴 시간은 6개월밖에 안 걸렸어요.”

-정신건강 전문가가 돼서 영어, 일본어 등으로 번역도서를 출간해 외국인들이 정신건강을 배우러 오게끔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세계의 정신건강 의제를 주도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꿈은 크게 가져야요(웃음). 저는 가능성은 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한국이 뭐든지 빠르잖아요. 후진적인 면도 많지만 최근에는 당사자들이 많이 일어나면서 목소리도 모아지고 있고요. 온라인이 발달된 한국에서 좋은 모델들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촉매 역할을 할 수 있다. 한류(韓流)라고 해서 노래만 수출할 게 아니라 정신건강 회복에 대한 것도 좋은 모델을 전파하는 나라가 되는 게 꿈이죠.”

정안식 코리안매니아 대표 (c)마인드포스트.
정안식 코리안매니아 대표 (c)마인드포스트.

-가족은 정신장애인을 어떻게 케어해야 합니까.

“정신장애인이 관해된(치료된) 상태에서는 크게 일반인과 다르지 않아요. 하지만 정신병이 재발을 한 상태에서는 정신연령이 6~7살로 떨어진다는 걸 느꼈거든요. 우울증 때는 청소년 반항기 정도의 나이가 되고요. 그런데 가족들은 환자의 정신상태에 대해 파악을 못하고 건강한 상태로 말을 하려고 하죠. 그러다보니 눈높이가 안 맞고 관리 방법 자체를 몰라요.

정신장애인 가족들이 해야 될 일은 정신장애에 대한 심층 공부, 스터디가 우선이라고 봅니다. 그것 없이 의사들의 말만 듣고 약만 주고 입원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건 건 완전히 오판이죠. 정신건강 가족 모임인 패밀리링크 등을 통해서 공부하고 커뮤니티 모임에 가서 물어보고 들어서 환우 가족이 뭘 취해야 하는지 정확히 인지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2005년 개설된 조울증 커뮤니티 ‘코리안매니아’는 현재 등록 회원수가 3만5천여 명입니다. 그만큼 조울증을 겪는 이들이 많다는 방증으로 보입니다.

“코리안매니아에는 조울증뿐 아니라 조울, 우울, 불면증, 공황장애 다 있어요. 조울증이 인구 비례로 약 1%가 발병하잖아요. 조현병도 그렇고. 1%만 해도 50만 명이죠. 그런데 대부분 숨어 있어요. 관리가 잘 되는 사람도 있고 회복돼서 약 안 먹는 사람도 있지만 카페에 들어와야 할 회원은 훨씬 많은 거죠.

환우가 100%라면 한 1~2%밖에 카페에 안 들어와 있어요. 정신장애와 관련된 환우들 수가 거의 100만 명 가까이 되지 않나 싶어요. 가족들 연계하면 400만 명이죠. 그런데 다들 조용해요. 엄청 조용한 거죠.”

-안인득 사건(지난 4월 경남 진주시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42세의 안인득이 자신의 아파트에 불을 지르고 대피하던 주민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2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편집주)이 있었습니다. 그가 왜 그런 짓을 저질렀다고 생각하십니까.

“정신장애인은 대부분은 겁이 많고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없는 사람들이에요. 그렇지만 폭력적인 성향의 사람도 있다고 봐요. 안인득은 성격이 와일드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봐요. 가족이나 사회복지체계 등 국가의 보호시스템이 연결되지 않으니까 눌려질 수 있는 사람이 폭발해 버린 거죠.

그냥 그 사람이 위험한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상황에 놓였을 때 위험해질 수 있잖아요. 사회안전망이 부족했기 때문에 안인득도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된 거죠.”

-안인득 사건과 같은 사고가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국가는 어떻게 개입해야 합니까 .

“그 사건을 통해서 국가가 경각심을 얻은 거 같아요. 최근에 통장이 저한테 잘 지내고 있냐고 전화가 왔어요. 제가 정신장애인이라는 게 파악이 된 거죠. 그리고 집 앞에 정신장애 문제가 있으면 정신건강복지센터에 연락하라고 대자보가 붙어 있어요. 그게 안인득 사건 이후로 나타났어요.

제가 임대아파트에 사는데 부자 아파트 같으면 그런 대자보가 안 붙을 거잖아요. 영세민 아파트라서 붙인 거 같아요. 평소에는 그런 것도 없었거든요. 정부에서는 정신보건 예산도 많이 증액했다고 하는데 어쨌든 기본적으로 정부가 지금까지 너무 무관심했다. 목소리가 없었으니까요. 오히려 정신장애 단체들이 활동한 것보다 안인득이 사고를 쳐갖고 정부가 정신 차린 효과가 더 세다는 느낌도 받았어요.”

-선생님을 회복시킨 건 무엇이었습니까.

“저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 정신이라고 생각해요. 조울증이나 조증 때는 들떠서 분별을 못 해요. 그런데 관해된 상태(조증이 가라앉은 상태)에서 약을 먹으니까 증상이 없는 상태잖아요. 이걸 관해된 상태라고 하죠. 일반적으로 노멀(normal)한 상태죠.

그런데 조증이나 조현증이 심할 때는 분별력이 없는데 우울증이 올 때 좌절감이 큽니다. 그때 인생 포기하고 싶거나 자살 충동이 생겨요. 감당이 안 돼요. 그리고 관해됐지만 약간 우울하면서 자기와의 관계가 끊긴 상태, 혹은 자기가 능력이 없다고 판단될 때 엄청난 위기가 와요. 심리적으로 타격이 오죠. 그때 저는 자살 충동을 느꼈어요.

그런데 언젠가 이런 깨달음이 오더라고요. 어차피 내가 죽으려고 안 해도 죽음은 한 발자국씩 다가오고 있다. 쇼펜하우어가 한 말이죠. 인생은 태어나면서 죽음을 향해서 한 발자국씩 걸어간다. 어차피 자동으로 죽을 건데 굳이 내가 당겨서 죽을 필요는 없다. 이런 철학적 생각이 들었어요. 힘든 건 사실이지만 힘든 걸 그냥 즐기자. 죽을까 말까 자꾸 헷갈리지 말고 그냥 죽지 않기로 결정을 내리자. 죽으면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어머니, 형제 등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거잖아요.

그리고 어차피 인생이 힘든 거라고 생각하면 힘든 건 당연한 게 되죠. 인생이 행복한 거라는 전제를 깔면 불행한 거예요. 인생은 어차피 힘든 거라고 정해놓고 힘든 걸 감사하고 즐기고 거기서 의미를 찾아요. 저는 그렇게 자살이나 절망을 하지 않기로 결정을 내렸어요. 결단을 내린 겁니다. 담배 끊기로 마음을 먹은 것처럼.

그래서 자살 생각 들어도 내가 자살 안 하기로 했기 때문에 바로 쳐내는 거죠. 그게 인지행동요법 중의 하나거든요. 예를 들어 인지행동은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요. 그래서 결단을 내리면 마음이 편해지거든요. 내가 대기업에 안 가기로 결단을 내리면 내가 편해지거든요. 중소기업을 가면 되니까. 그러니까 포기할 거는 빨리 포기하고 고민해야 할 것을 빨리 정리해서 결단을 내려놓으면 쓸데없는 고민을 안 하게 되죠. 물론 다 적용되는 건 아니겠죠.”

-조울증을 겪는 당사자를 둔 가족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습니까.

“조울증 걸린 환우들은 이 병이 제일 무섭고 힘들다고 생각을 해요. 그런데 제 친구는 건강한 군인이었는데 30살 중반에 위암으로 죽었습니다. 장애라는 건 일반인하고 똑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불편함은 감소를 해야죠. 그 장애를 얼마만큼 감사함으로 끌어안을 수 있는지는 가족의 역량이라고 봐요.

끌어안을 수 있는 따뜻한 가족이 있는가 하면 어떻게 해서든지 외면하고 싶어하는 가족도 있을 거예요. 축복받은 가정에 태어나 사람은 사랑을 받을 것이고 그렇지 못할 가족에서는 가족들이 외면하겠죠. 그때 가족이 못하는 걸 국가가 해 줘야 합니다.

가족들에게 해 주고 싶은 얘기는 할 수 없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조울 환우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많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어요. 그건 돈이 아니라 정보라는 거죠. 정보는 당사자 단체나 관련된 단체에 물어보면 알아갈 수 있어요. 그래서 돈이 없어서 안 된다, 시간이 없어서 안 된다라고 하지 말고 단체에 물어보면 어떻게 해줘야 할지 알게 된다는 걸 얘기해 주고 싶어요.”

-우울로 형성된 감정에 속지 말라고 했습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조증이나 조현증이 심하면 망상(妄想)이 오잖아요. 우울증도 우울망상이라고 망상이 옵니다. 조증망상은 과대망상이죠. 우울망상은 그 반대 망상이예요. 자기는 과대했다고 생각했는데 우울망상이 오면 자기는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역의 망상이 오는 거죠. 그리고 조증이 오면 나는 죄가 없다라고 생각하지만 울증이 오면 내가 죄가 제일 많다라고 생각하죠. 그리고 미래를 그냥 막연하게 잿빛으로 보는 거죠.

사실 삶은 생명과 죽음이 맞붙어 있잖아요. 오늘 장례식 하는 사람이 있고 태어나는 사람이 있어요. 지구는 생명과 죽음이 일대일로 딱 붙어 있거든요. 그럼 어디에 무게를 둘 것이냐. 죽음에 두면 다 허무해요. 생명의 뒷면에는 죽음이 있단 말이에요.

그래서 생명 자체는 판타스틱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너무 고통스러운 것도 아니에요.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게 건강한 정신인데 우울망상 때문에 모든 게 다 허무하다, 가치 없다라고 해 버리면 그게 옳은 생각일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정안식 코리안매니아 대표 (c)마인드포스트.
정안식 코리안매니아 대표 (c)마인드포스트.

-조울과 자살의 관계, 혹은 우울과 자살의 관계는 어떤 게 더 위험합니까.

“조울증 환우가 일반인에 비해 자살 빈도가 일곱 배 높다는 통계가 있어요. 그리고 우울증도 자살과 관계가 깊은데요. 우울증은 보통 두 가지로 분류됩니다. 하나는 비전형우울증(과다수면우울증)과 전형우울증(불면증), 즉 단극성우울증이라고 하는데 단극성우울증의 특징은 불면을 경험하면서 오는 우울증이에요. 그들의 공통점은 입원을 안 해요. 그리고 자해를 해요. 왜 자해를 하나 봤더니 자해를 하면서 해소를 하더라고요. 조울증 환자들은 자해를 하기도 하고 안 하기도 하는데 저는 자해를 해 본 적이 없어요.

조울증 환자들은 우울에 빠졌을 때 잠을 자느라고 자살하기가 힘들어요. 그렇지만 평소에 자살할 확률은 좀 있어요. 내가 우울하고 조증 시달릴 바에는 죽자(라고 생각하죠). 그런데 조증이 오면 자살 못합니다. 왜냐하면 기분이 좋으니까요. 그래서 조울증 환자는 관해된 상태일 때 정신을 잘 컨트롤하는 게 중요해요.

단극성우울증 환우들은 불면으로 오는 우울증이기 때문에 수면을 깊이 취하는 데 초점을 두면 자살을 예방할 수 있어요. 사람들은 그게 자기 감정에 달렸다고 그러는데 신체 변화, 호르몬 변화에 의해서 감정이 좌우되거든요. 감정을 좀 객관적으로 보는 시각이 필요해요.”

-종교와 관련된 질문을 좀 하고 싶습니다. 선생님은 극으로 치닫는 신앙보다 중용을 지키는 편이 더 옳다고 했습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종교는 개인적 경험도 하지만 보통 부모님의 영향을 많이 받잖아요. 저는 (목사님이신) 부모님 자녀로 태어났고 신앙 경험도 있고 신앙 체험도 있어요. 제가 조울증이 된 이후로 무신론자가 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무신론으로 가니까 인생이 참 허무하더라고요. 그래서 무신론이 저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느꼈어요.

그리고 신(神)이라는 건 천국의 하나님이 의자에 앉아서 지켜보는 존재라기보다는 우리가 신의 능력과 범위를 알 수 없다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보거든요. 사실 우리 내부에도 신적인 기능이 있어요. 악마적 기질도 있고 천사적 기질도 있어요. 초능력 기질도 조금은 있습니다. 내가 긍정적으로 상대방을 보면 상대방도 나를 긍정적으로 볼 수 있잖아요. 그런데 내가 상대방을 나쁜 쪽으로 보면 그 사람도 그걸 느껴갖고 나한테 어떻게 할 수가 있어요. 저는 그것도 하나의 신의 세계라고 봅니다.

제가 느끼는 신의 세계는 인간의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분야고 있다, 없다라고 말할 수도 없어요. 우주 과학자들도 우리가 아는 지식이 우주 지식 총량의 4%도 안 된다고 그래요. 신이 있다, 없다 이렇게 정의하는 것도 무의미하죠. 그런데 저는 힘들 때 나도 모르게 기도가 나오더라고요. 사람이 물에 빠지면 하나님 살려주세요 이러잖아요. 그게 실제로 자기를 붙드는 힘이 되기도 해요. 그래서 저는 신앙이 있으면 도움이 되면 됐지 해가 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희망이 있다고 해서 극단적으로 가는 건 위험해요. 아랍도 극단주의, 원리주의가 사고를 치잖아요. 모든 게 그래요. 그래서 극단보다는 모든 걸 자제하는 편에서 중용이 필요하죠. 중용은 동양철학인데 기독교 논리와는 안 맞죠. 전 한의학 공부를 하면서 인간은 음과 양의 조화로 몸이 돌아간다는 걸 느꼈어요.

성경 잠언서에도 그렇게 말하잖아요. 지나치게 의인이 되려고 하지 말라, 일찍 죽는다라고. 또 지나치게 악인이 되려고 하지 마라, 바로 잡혀가니까. 인간은 어차피 이기적인 존재라고 저는 봐요. 인간은 선하다, 악하다보다는 이기적인 존재예요. 그럼 이기적인 존재가 나쁜 거냐. 전 아니라고 봐요.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기적일 수밖에 없어요. 내 생명 내가 지켜야지 남이 지켜주는 게 아니잖아요.

이기적으로 설정돼서 이기적으로 살다보면 남에게 피해를 줄 수 도 있지만 그걸 내가 직시하면서 세상이 돌아가는 거죠. 결국은 선과 악을 초월해서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지만 긍정적으로 세상을 봤으면 좋겠어요.”

-종교망상에 빠진 이들이 많습니다. 정신장애인은 신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합니까.

“처음 받아보는 질문인데요. 정신장애가 없던 사람이 정신장애가 오면 신이라는 세계를 감각적으로 느끼게 돼요. 청소년기에는 신의 세계가 철학적인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 20대 초반, 늦으면 40대 전후반이 되면 신의 세계와 종교에 인간이 관심을 갖게 되죠. 그런데 조현증, 조울증이 오면 뇌 회로가 빨라져요.

그래서 평소에 생각하지 않는 세계를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겨요. 거기서 천재성도 생기고 무한한 상상력이 발현이 되거든요. 어떻게 보면 신의 세계는 상상력의 세계일 수도 있어요. 조울증이나 우울증이 온 사람 중에 크리스천이 돼서 도움을 받는 사람들도 봤어요. 또 신앙이 있는데 자의적으로 욕심대로 신앙을 해석해서 자기가 만든 종교에 빠져서 엉터리로 사는 사람도 봤습니다.

정신장애인들은 신앙을 자기 입맛에 맞게 조작하지 말아야 해요. 인간이 신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신이 인간을 위해서 있다고 저는 봐요. 자식이 부모를 위해서 있지 않고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있는 것처럼요. 그래서 자기가 바른 마음, 바른 생각을 갖고 일단은 인간이 돼야죠. 인간성을 회복하고 바른 마음으로 살면 바른 신이 역사해요.

동양에서 신은 정신(精神)을 신으로 봐요. 신은 플랜(plan·계획)을 의미하거든요. 신은 계획을 하면 추진이 됩니다. 왕이 플랜을 짜면 장군들이 일을 하잖아요. 사람도 어떤 결단을 내리면 나도 모르게 진행이 되는 걸 경험을 하게 될 겁니다. 그런데 내가 긍정적인 결단을 내리면 어떤 에너지가 돕는 걸 전 느꼈어요. 그리고 내가 부정적인 결단을 내리잖아요. 그러면 부정적인 어떤 일이 열리더라고요.

그래서 사람의 마음은 신의 기운이 있다. 그래서 바른 마음을 쓰면 바른 에너지가 합해져서 일이 진행되기 때문에 바른 마음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신은 인간이 고통받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참된 신의 본질은 사랑이기 때문이라고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인간은 인간이라는 자체로 고통받지 않습니까.

“고통이라는 건 그래요. 우리가 쾌락이나 즐거움을 알려면 그 반대 개념을 경험해야 존재하는 겁니다. 고통이라는 건 그 반대의 개념을 알게 해 주는 개념이거든요. 우주는 항상 앞면이 있으면 뒷면이 존재해요. 추함이 없이 아름다움이 있을 수 없잖아요. 고통이 없이 행복함을 알 수 있을까요? 우주는 이미 그렇게 설정돼 있다는 거죠.

고통도 영원하지 않고 아름다움도 영원하지 않아요. 우리가 그걸 이해하고 삶을 산다면 이 고통 속에 매몰되는 게 아니라, 또 이 중독과 쾌감에 매몰되는 게 아니라 거기서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관조하고 조절할 수 있지 않나 봅니다.”

-신이 인간에게 고통을 준 것도 의미가 있다는 건 자기변명이 아닐까요. 우리는 원하지 않는데 고통과 대면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신을 사랑해야 할까요.

“신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있다고 생각하면 되고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 질문은 신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이겠죠. 일단 신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고통이라는 개념을 이렇게 볼 수 있어요. 여기 피부에 상처가 나요. 그럼 통증이 있습니다.

이게 만약 통증이 없으면 오히려 해로운 거예요. 통증이 있기 때문에 경각심을 갖게 돼죠. 통증이 일어난다는 건 화학 반응이 일어나면서 치료하는 과정이거든요. 한의학에서는 통증은 축복이다라고 얘기해요. 그런데 우리가 통증이라는 걸 부정적으로만 보면 성장이 없습니다. 비닐하우스에 통증 없이 큰 식물이 빨리 커지만 빨리 죽어요. 비바람 맞고 자란 나무가 조그맣고 볼품은 없어도 약 효과가 있고 강합니다.

그렇듯이 모든 부정적인 뒷면에는 긍정이 있고 긍정적인 면 뒷면에는 부정적인 게 숨어 있어요. 때문에 이분법적으로 보면 안 된다고 봅니다. 항상 사람은 둘로 생각하거든요. 이것 아니면 저것. 항상 세 개로 생각해야 된다고 봐요.”

-세 개가 뭡니까.

“이쪽이 극단적으로 좋은 거, 저쪽이 극단적으로 나쁜 거면 이 가운데(를 지향해야죠). 이분법적 사고가 사람을 건강하게 못 만들어요. 세상이 좌파 아니면 우파, 그것밖에 없나요. 그건 아니잖아요.”

-권위(權威)에 대해서도 얘기를 했습니다. 우리는 어떤 권위를 받아들이고 어떤 권위에 복종해야 합니까.

“교회에 가면 목사님이 권위가 있고 학교에 가면 선생님이 권위가 있고 병원에 가면 의사가 권위가 있어요. 우리는 서바이벌(생존자), 유저(이용자)라는 말을 쓰잖아요. 그렇다면 우리는 이용자라는 개념을 저버렸다는 거죠. 약을 우리가 사 주기 때문에 제약회사와 의사들이 잘 먹고 살 수 있는 거죠. 그러면 소비자보호원이 있는데 우리는 거기를 이용할 줄 모른다는 거죠. 그런 개념이 없어요.

예를 들어 티셔츠를 사러 갔을 때 '아줌마, 티셔츠 하나 주세요' 하잖아요. 그런 아줌마나 아저씨인데 우리가 약 하나 얻으러 갈 때는 선생님이 된단 말이에요. 의사는 전문직이지 선생님이 아니에요. 그 분야에서만 지식을 갖춘 사람이지. 우리는 소비자로서 엄밀히 관찰해 봐야 될 부분이 있죠. 의사가 모든 걸 다 해결해줄 거라는 막연한 믿음은 위험해요. 목사가 나를 천국에 데려다줄 거라는 믿음도 위험한 것 같이. 정치인이 대한민국을 잘 살게 해 줄 거라는 믿음도 위험한 거잖아요.”

-정신장애인이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합니까.

“모든 문제의 출발은 자기를 과소평가하거나 과대평가하는 데서 온다고 봐요. 자기의 한계를 분명히 솔직하게 인정을 해야죠. 또 자기의 가능성도 인정을 하는 거죠. 한계를 인정하기 때문에 조심하게 되고 절제하게 되고, 또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도전할 수 있는 거죠.

정신장애인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은 잠재적인 고혈압이나 당뇨나 여러 가지 질병들을 하나씩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건강한 사람이 나보다 먼저 죽을 수도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최악의 조건이라는 설정을 갖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삶은 자기 분수에 맞게 지혜롭게 생존하는 게 현명한 거지 내가 토끼로 태어났다고 해서 사자로 태어나지 못했다는 거에 대해서 불평할 필요가 없다는 거죠. 태어난 대로 감사하면서 살면 되죠. 한계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도전 정신을 잃지 말았으면 해요. 그리고 이 질병이 힘든 건 사실이기 때문에 공부하는 자세를 갖고 조심하되 여러 가지 가능성에 대해서 미리 포기하지는 말아라(라는 얘기를 해 주고 싶어요).”

-정신병원이 세계적으로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한국의 정신병원은 어떻게 변해야 할까요.

“정신병원에 입원해 보면 알지만 밀폐된 곳에 갇힌 느낌이 들어요. 텃밭도 없고, 토끼나 강아지를 볼 수도 없고 너무나 삭막하죠. 감옥은 아니지만 비슷한 느낌을 줘요. 병원을 만들려면 친환경적으로 만들어서 힐링이 잘 될 수 있게 해 줬으면 좋겠고 환자 스스로 입원하고 싶은 병원을 만들어라(라고 주장하고 싶어요).

들어가기 싫은 병원으로 만들지 말고 입원 좀 할 수 있게 만들어야죠. 국가가 잘 감독해서 병원이 적절한 비용을 받게 만들고요. (병원끼리) 경쟁을 붙이면 가격은 내려갈 거라고 봐요. 구태의연한 병원을 늘리는 건 좋지 않다고 봅니다. 구체적으로 사회에서 어떤 정신질환 환우든지 병원에 가는 걸 원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통제가 안 되는 사람들이 있긴 한데 그 분들은 병원에 입원하더라도 아름다운 환경 속에서 생활할 수 있게 배려해줬으면 좋겠어요. 대부분은 지역사회에서 재활하면서 살 수 있게 돈을 그쪽에 쏟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게 돼야죠.”

정안식 코리안매니아 대표 (c)마인드포스트.
정안식 코리안매니아 대표 (c)마인드포스트.

-조현병과 조울병으로 정신과를 찾아야 하는 이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습니까.

“병원을 찾아가면 정신병원에 기록이 남는 걸로 알아서 두려움을 갖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데 대학병원 말고 일반병원 있잖아요. 일반 개인병원에 가서 의료보험을 하지 않고 사비(私備)를 내면 7만 원 정도 됩니다. 그럼 사비를 내고 상담을 받아요. 흔적이 안 남습니다. 그리고 약 처방 받을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돈을 현찰로 다 지불해버리면 돼요. 진료비를 싸게 하려니까 국가에 돈을 지불하면서 기록에 남는 거거든요. 십만 원 주고 약도 탈 수 있습니다. 기록에 안 남아요. 상담하고 체크하고 약이 효과가 있나 없나 체크를 해서 이후에 그게 맞다고 판단되면 이용할지 말지를 결정하면 돼요.

정신건강복지센터나 관련 단체에 물어보면 상담을 해 주잖아요. 동료상담가들이나 저 같은 활동가들에게 물어보면 당신은 어떻다라는 조언을 얻을 수 있어요. 저는 의사는 아니지만 이 사람이 무슨 질병인지 거의 파악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의료보험을 적용하지 않으면 근거가 안 남으니까 괜찮다라고 말하고 싶어요.”

-더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마인드포스트가 나와서 저는 반갑게 생각해요. 2005년만 해도 가족협회 말고는 거의 없었거든요. 그런데 2010년에 카미(한국정신장애연대)가 생긴 데 대해 감사하고 2015년쯤에 여러 단체들이 생기고 활동하는 거 보면서 ‘아, 이제 때가 거의 왔구나’ 이런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우리나라 온라인의 강점인 거 같아요. 저는 제가 정신장애운동 2세대라고 생각하거든요. 앞으로는 많은 것들이 변화될 거 같고요. 정신장애 언론이 확대돼서 정부 정책이 많이 바뀌었으면 좋겠고요. 마인드포스트 많이 보시더라고요. 많이 발전했으면 좋겠습니다.”

기사를 발행한 후 그에게서 문자가 왔다.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이 있다면 자신의 메일 주소로 문의를 해주기를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조울증을 비롯한 정신건강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은 정안식 대표 메일로 상담을 해 보길 권한다. 메일 yasiworl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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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주희 2019-09-04 22:00:20
평소 존경하던 분이었는 데 이렇게 좋은 내용의 인터뷰를 통해 많은 이야기를 전해들을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네요. 조울증인 분들이 이 글을 읽고 힘내셨으면 좋겠어요. 조울증 당사자 분들께는 코리안 매니아가 좋은 정보를 얻을 뿐 아니라 마음의 안식처같은 곳이기에 사과나무님(정안식님 까페 닉네임)께 늘 고마움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알차고 유익한 내용의 인터뷰를 해주신 박종언 국장님과 정안식님 너무 수고하셨어요. 항상 응원합니다!

권혜경 2019-09-04 09:01:04
정말 유익한 내용이 많고 도움이 되었습니다. 1독을 권해드립다.
감사합니다.
정안식선생님, 박종언 데스크 수고많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