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장애인이어도 괜찮아요"... 천재와 광기는 종이 한 장 차이? 정신질환과 창의성 이야기
"정신장애인이어도 괜찮아요"... 천재와 광기는 종이 한 장 차이? 정신질환과 창의성 이야기
  • 배주희 기자
  • 승인 2019.09.23 19: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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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성과 정신질환관계 연구결과 계속 나와

There is no great genius without a mixture of madness.

광기 없는 위대한 천재는 없다.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남긴 말이다. 창의성과 정신질환의 관계에 대한 연구결과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연구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살았던 고대 그리스 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의 과학전문 매체 「라이브사이언스」(Live Science)는 미국에서 열린 제5차 세계과학축제에서 천재(genius)와 광기(madness)는 종이 한장 차이라는, 이른 바 ’고통받는 천재(tortured genius)’ 가설을 뒷받침하는 과학적 근거와 연구들이 소개됐다고 보도했다.

「라이브사이언스」는 "왜 천재와 광기는 연결돼있는가(Why Are Genius and Madness Connected?)"라는 기사에서 극심한 기분변화와 괴팍한 성격 등 천재들에게 많다고 알려진 이러한 증상이 과학적으로 지능과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증명됐다고 전했다.

천재 화가로 알려진 빈센트 반 고흐, 작가 버지니아 울프, 애드거 엘런 포, 음악가 로베르트 슈만, 그리고 미국 남북 전쟁에서 창의적인 전술로 승리한 윌리엄 셔먼 등 역사에 이름을 남긴 천재의 상당수는 조현병을 비롯한 우울증, 조울증 등 정신건강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조울증 당사자이면서 조울증을 연구하는 존스홉킨스 의대 케이 R. 제미슨(Kay Redfiled Jamison) 교수는 “기분장애, 특히 조울증이라고 불리는 양극성 기분장애(bipolar disorder)가 천재들이 가지는 창의성과 연관이 있다는 연구결과가 20~30건에 이른다고 밝혔다.

양극성 장애는 극단적 행복감(조증, mania)과 심한 우울감(울증, depression)을 오가는 병으로, 갑작스레 양극단의 기분을 오가는 병이다. 다시 말해 아주 기분이 좋고 행복한 생각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도취될 때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우울한 기분, 불안, 초조함, 절망감과 무기력감을 번갈아 느끼는 것이다.

물론 이는 누구나 보편적으로 느끼는 감정들이지만 조울증 환자는 그 정도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심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캘리포니아대(어바인 캠퍼스) 신경생물학과의 제임스 펠론 교수는 조울증과 창의성의 관계에 대한 연관성을 찾아냈다.

그는 심한 우울증에서 벗어나 조증으로 향하기 시작할 때, 뇌의 전두엽 아랫부분의 활동이 저하되면서 윗부분이 강하게 활성화되며, 이때 창의성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때 조울증 환자는 오감이 열리고, 영감이 떠오르고, 안풀리던 문제가 떠오른다.

또 남가주대학의 에일린 삭스 교수는 “일반인(비정신장애인)에게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의식 표면까지 떠오르지 않고 걸러지는 게 정상이지만, 정신건강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는 그렇지 않다”고 설명했다.

정신장애인의 무한한 상상력이 창의성의 원천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보통사람(비정신장애인)들은 말이 안 되는 ‘상상’이 의식의 표면에 떠오르기 전에 걸러지지만 정신장애인들은 그렇지 않아서 서로 상충하는 생각을 동시에 떠올리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데, ‘튤립’이란 단어가 연상시키는 내용을 모두 적게 했을 때, 조울증이 있는 사람은 일반인의 세 배나 많은 단어를 연상했다. 삭스 교수는 “’억압되지 않은 아이디어’는 심오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바탕이 된다”고 설명했다.

조사에 포함된 인물 외에 스페인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í)도 이러한 정신질환을 예술로 승화시킨 바 있다. 그는 편집광적 비판적 방법이라고 불리는 창작 수법을 구사하며 독자적 영역을 구축한 미술가다.

비합리적 환각을 객관적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기이한 화법으로 하나의 대상이 2, 3중의 다른 이미지로 보는 병리학적인 착각을 이용한 것이다.

이번 결과에 대해 전문가들은 “천재적인 발생은 인류발전에 도움이 되었을지언정, 당사자들에게는 극심한 고통이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언급한 케이 제미슨 교수는 이런 연구를 뉴욕의 '월드사이언스 페스티벌(World Science Festival)'에서도 발표했다. 당시 제미슨 교수는 스웨덴 연구팀의 연구결과를 인용했다.

16세 청소년 70만 명을 대상으로 지능 테스트를 한 결과, 당시 뛰어난 지능을 가진 사람이 평범한 지능을 가진 사람보다 10년 뒤 조울증을 얻게 될 확률이 4배 높았다는 연구결과를 얻었다는 내용이다.

당시 연구에 참여한 스웨덴 룬드 대학 시몬 키야가 정신의학과 교수는 “정신질환과 관련되는 현상을 알 수 있다면 이 질환을 치료하는데 새로운 접근법을 취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긍정적 의견을 덧붙였다.

조울증뿐 아니라 다른 정신질환과 창의성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결과가 나왔다. ‘마음의 사생활’이란 책의 저자 김병수 작가는 우울증을 겪은 사람들에 대한 연구에서 우울증을 겪은 사람이 타인의 아픔을 남들보다 더 크게 공감한다고 언급했다.

그는 대표적으로 간디를 사례로 들었는데, 실제로 간디의 우울증은 타인에 대한 공감으로 승화된 케이스라고 한다. 간디도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할 정도로 정신적 고통을 겪었기 때문에 타인의 아픔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아마 간디가 우울증을 겪지 않았다면 ‘비폭력 불복종 운동’은 없었을 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또 어쩌면 역사적 인물과 예술가 가운데 정신질환이 없는 사람을 찾는 게 더 빠를지도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근 미디어의 왜곡된 방영으로 인해 치료할 수 없고 위험하고 무서운 병이라는 편견을 얻은 조현병에 대한 연구도 이어졌다. 펜실베니아 대학의 정신의학과 스콧 베리 커프만 교수, 콜롬비아 대학 엘리엇 폴 철학과 교수와 연구진은 천재와 조현병 환자에 대한 연구에서 놀라운 사실을 밝혀냈다.

역사적으로 특별한 업적을 쌓은 사람들 가운데 조현병 당사자이거나 당사자를 가족이나 친척으로 둔 경우가 일반인(비당사자)보다 훨씬 많다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실제로 노벨상을 받은 유명한 수학자 존 내쉬는 조현병 치료를 받았다. 이 외에도 많은 이들이 조현병 치료를 받으며 역사적인 업적들을 남겼다.

조현병의 도파민 가설을 생각해보면 이러한 연구결과들에 대한 이해가 어렵지 않다. 도파민은 창의력, 집중력 및 상상력과 직접적으로 관계되는 신경전달물질이다.

조현병의 근본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뇌의 특정 부위에서 도파민 등 신경전달물질의 과잉이나 결핍과 관련돼 있음은 자명하다. 뇌에서 일어나는 어떤 현상은 너무 심하면 병이 되고, 본인이 제어할 수 있는 정도가 되면 천재성이 될 수 있다.

인류가 지구상에서 환경을 극복하고 현재 위치까지 오게 되는 데는 독보적인 창의성과 상상력이 필요했다. 미래 세계에서 인공지능이 쉽게 침범할 수 없는 인간의 능력의 하나가 이 부분이기도 하다.

흔히 괴짜라고 일컬어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획기적 발명과 작품을 만들었는지 생각하면 조현병 유전자가 왜 없어지지 않는지 이해할 수 있다. 곧, 천재 유전자와 조현병 유전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또 조현병 환자는 대뇌 좌반구와 우반구의 독립적인 기능이 잘 유지되지 않는 현상을 보인다. 이는 오히려 현실적인 아이디어를 내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아인슈타인은 그의 모든 중요한 과학적 발견이 숫자나 글자가 아닌 이미지로 떠올랐다고 했다.

우리 사회가 특히 민감한 이슈로 생각하는 조현병에 대해 우리는 올바른 관점을 견지해야 한다. 이러한 연구들을 통해서 도출할 수 있는 결론은 조현병을 초기부터 잘 치료하고 다스리기만 하면 조현병이 아닌 사람이 갖지 못한 능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조현병 당사자는 타인이 경험할 수 없는 신비한 세계를 경험한다. 이러한 신비 체험이 바로 훌륭한 상상력과 창의력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독창적인 능력을 얼마나 제대로 표현하고 사용하는가다. 정신의학적 치료는 이 과정을 도와준다. 사회가 있는 한 조현병은 현재의 풍요로운 삶을 누림과 동시에 우리가 함께 감싸고 가야할 병이기도 하다.

어쩌면 우리는 증상으로 고통받는 조현병 환자에게 빚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우리 사회는 관점을 달리해 잘못된 편견과 정확하지 않은 정보들로 만든 선입견을 지우고 조현병 환자들을 올바르게 바라봐야 한다. 다른 존재처럼 당사자들 역시 매우 귀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 확실히 해야 할 점이 있다. 모든 정신장애인이 천재라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진실도 아니고 너무나 성급한 일반화일 것이다. 그리고 정신질환이 전혀 관리가 되지 않고 치료를 받지 않은 극심한 상태일 경우, 창의력은 물론 다른 능력들조차 발휘할 수도 없다는 것도 명백한 사실이다.

하지만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에게도 비당사자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무언가가 있다. 그 무언가를 긍정적인 쪽으로 잘 발전시켜 삶을 영위해 간다면, 병에 대한 ‘원망’보다는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사회에서 차별의 시선을 받으며, 또 병마와 싸우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견뎌내고 있는 정신장애인들이 ‘역사는 고통을 겪어본 사람이 만든다’는 것을 마음에 담아두고 너무 좌절하지 않기를 바란다. 당신은 지금 날개를 얻기 위해 번데기 속에 웅크려 견디고 있을 뿐이다.

정신장애인 당사자. 당신은 좁고 어두운 방에서 울고만 있기엔 너무나 소중한 존재다. 이 사실을 잊지 않고 용기를 내어 삶을 아름답게 꾸며가길 바라는 응원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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