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톺아보기: 사랑에 미치다(2)] "우린 '정신병자' 잖아. 우린 '신의 실수'야!"
[미디어 톺아보기: 사랑에 미치다(2)] "우린 '정신병자' 잖아. 우린 '신의 실수'야!"
  • 배주희 기자
  • 승인 2019.10.06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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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만들어진 영화도 번역에 따라 오해 야기
'정신장애인'이라는 단어를 널리 알리고 사용해야 영화 속 오역 줄일 수 있어
당사자들 스스로가 세상에 태어난 것이 '실수'로 여기지 않게 올바른 인식과 따뜻한 관심 필요
정신질환의 유전성에 대한 구체적 연구와 정확한 정보 절실

지난 [미디어 톺아보기]에서는 영화, '사랑에 미치다'의 강제격리 장면을 다룬 바 있다. 그 기사에 이어 이번에도 같은 영화를 다뤄보겠다. 남녀 주인공인 마르코(루크 커비)와 카를라(케이티 홈즈)는 미처 연락처를 교환하지 못한 채 각각 독방으로 격리되고, 이어 마르코가 다른 병동으로 옮겨지면서 강제로 갑자기 헤어지게 됐다.

이후 두 사람은 삶의 의욕을 모두 상실한 채,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만다. 하지만 그들은 자살시도에 실패하고 살아남는다. 그리고는 아주 어렵게 서로를 다시 찾아내어 이번에는 병원 밖에서 해보고 싶었던 일들을 마음껏 해본다.

그러던 중, 카를라가 임신을 하는데, 그녀는 유전적인 이유로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 부모가 모두 조울증 당사자이기에 자녀도 유전될 것이라는 걱정을 하게 된 것이다.

양가의 부모님을 모두 집으로 불러놓고 카를라에게 진실을 말하라고 하는 마르코. 사진=영화 사랑에 미치다 화면 갈무리
아기를 위한 파티를 한다는 거짓말로 양가의 부모님을 모두 집으로 불러놓고 카를라에게 진실을 말하라고 하는 마르코. 사진=영화 '사랑에 미치다' 화면 갈무리
카를라가 한 일에 대해 따져 묻고 있는 마르코. 사진=영화 사랑에 미치다 화면 갈무리
카를라가 한 일에 대해 따져 묻고 있는 마르코. 사진=영화 '사랑에 미치다' 화면 갈무리
양가 부모님께 카를라가 아기를 지웠다고 말해버리는 마르코. 사진=영화 사랑에 미치다 화면 갈무리
양가 부모님께 카를라가 아기를 지웠다고 말해버리는 마르코. 사진=영화 '사랑에 미치다' 화면 갈무리
아기를 갖기로 했던 처음 그 마음을 다 잊은 것이냐고 묻고 있는 마르코. 사진=영화 사랑에 미치다 화면 갈무리
아기를 갖기로 했던 처음의 마음을 다 잊은 것이냐는 마르코의 물음에 울고있는 카를라. 사진=영화 '사랑에 미치다' 화면 갈무리
두 사람 사이의 기적이었던 소중한 아기를 잃은 마르코가 카를라에게 그 사실을 상기시키는 장면. 사진=영화 사랑에 미치다 화면 갈무리
두 사람 사이의 기적이었던 소중한 아기를 잃은 마르코가 카를라에게 그 사실을 상기시키는 장면. 사진=영화 '사랑에 미치다' 화면 갈무리
하느님이 '아픈 두 사람'에게 주신 선물인 아기를 잃고 격분하는 마르코. 사진=영화 사랑에 미치다 화면 갈무리
하느님이 '아픈 두 사람'에게 주신 선물인 아기를 잃고 격분하는 마르코. 사진=영화 '사랑에 미치다' 화면 갈무리
아기가 마르코에게만 소중했을까. 아이를 잃을 수 밖에 없었다고 울부짖는 카를라. 사진=영화 사랑에 미치다 화면 갈무리
아기가 마르코에게만 소중했을까. 아이를 잃을 수 밖에 없었다고 울부짖는 카를라. 사진=영화 '사랑에 미치다' 화면 갈무리
도대체 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냐고 소리 지르는 마르코. 사진=영화 사랑에 미치다 화면 갈무리
도대체 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냐고 소리 지르는 마르코. 사진=영화 '사랑에 미치다' 화면 갈무리

이 장면 바로 뒤에는 카를라가 낙태 수술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마르코에게 울부짖으며 소리치는 장면이 이어진다. 기자는 다음 장면에서의 왜곡된 변역에 대해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자극적인 번역으로 인해 원래의 의미의 본질에서 멀어져 버린 이 장면. 정신장애인이 극중 당사자라고 해서 '정신병자'라는 혐오스러운 단어를 아무렇지 않게 번역해서 내뱉어도 되는 것인가. 사진=영화 사랑에 미치다 화면 갈무리
자극적인 번역으로 인해 원래의 의미의 본질에서 멀어져 버린 이 장면. 정신장애인이 극중 당사자라고 해서 '정신병자'라는 혐오스러운 단어를 아무렇지 않게 번역해서 내뱉어도 되는 것인가. 사진=영화 '사랑에 미치다' 화면 갈무리

이 장면의 원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Because, I didn't want it to be raised by our illness!

그런데 그 어디에도 정신병자라는 단어를 쓸 수 있는 영어 어휘를 찾아볼 수 없다. 기자가 대안으로 내놓은 번역은 다음과 같다.

 

우리의 아픔을 아기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어!

혹은,

아픈 우리들의 손에 자라게 할 수는 없었어!

이렇게 번역하는 편이 정신장애인의 애환을 잘 표현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낙태 수술까지 강행해야 했던 정신장애인의 슬픔과 안타까운 현실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하게 되는 대목이기에 더더욱 번역에 신중해야 한다. 극중에서 나온 표현인 'illness(병)'가 정신질환일지라도, 적절한 단어를 선택해 번역을 하는 것 역시 정신장애인의 입장과 인권을 존중한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이 대화 이후에도 슬픈 장면이 이어진다.

태어날 아기가 조울증일 것이라고 확신하여 낙태 수술을 한 카를라에게, 마르코는 그럼 우리도 신의 실수 인것이냐며 재차 묻는다. 사진= 영화 '사랑에 미치다' 화면 갈무리
태어날 아기가 조울증일 것이라고 확신하여 낙태 수술을 한 카를라에게, 마르코는 그렇다면 그 우리도 신의 실수 인것이냐며 재차 묻는다. 사진= 영화 '사랑에 미치다' 화면 갈무리
이 영화의 클라이막스인 장면. 정신장애인에게는 스스로를 실수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슬픈 현실이 있다. 사진= 영화 사랑에 미치다 화면 갈무리
이 영화의 클라이막스인 장면. 정신장애인에게는 스스로를 실수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슬픈 현실이 있다. 사진= 영화 '사랑에 미치다' 화면 갈무리

이 대화 장면의 원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So we're a mistake? We're a mistake? We're a mistake? Are we a mistake, Carla? Are we a mistake?

'mistake(실수)'라는 단어를 5번이나 강조해서 묻고 또 묻는다. 정말 그런 것일까. 우리 정신장애인이 태어난 것은 신의 실수일까? 그렇게 여기고 있는 정신장애인이 있다면, 영화에 나온 것처럼, 본인 스스로에게 5번을 더 물어봐야 할 것이다.

그만큼 정신장애인의 삶과 출생에 대하여 신중하게 생각하고 무엇보다도 소중히 여겨야 하기 때문이다. 극중에서 조울증 당사자인 카를라는 "우리가 실수냐?"고 계속해서 물어보는 마르코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만다. 이 영화에서 가장 비참한 순간이다.

그렇다면, 그 '실수'를 만회하는 길은 스스로 자멸해야 마땅한 것인가. 정신장애인에게는 아주 중요한 문제다. 바로 목숨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을 정신장애인에게 심어주는 것은 극단적인 선택의 지름길로 안내하는 것과 같다.

2007년 한 법정에서, 카드빚 때문에 자살하려고 자기가 투숙하고 있던 여관에 불을 질렀다가 구속된 피고인에게 판사는 '자살'이라는 단어를 큰 소리로 10번 외쳐보라고 말했다. 피고인이 "자살자살자살자살자살자살자살자살자살자살"을 되풀이하게 만든 다음 판사는 이렇게 말한다.

"피고인이 읊은 '자살'이 우리에게는 '살자'로 들린다. 죽어야 할 이유를 살아야 할 이유로 바꿔 새롭게 고쳐 생각해보라."

판사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고, 피고인은 끝내 자살하지 않았다는 판례가 있다.

정신장애인들이, 부디, 약자에게 인간적인 배려를 해주었던 이러한 '판사와 같은 존재'를 자신의 마음 속에 한 명 정도 품고 살았으면 좋겠다. 마음이 약해지고 자신의 처지가 비관스러울 때에 '자살'을 '살자'로 바꾸어 줄 수 있는 희망을 품고 사는 것, 그것이 우리 정신장애인들의 소명이 아닐까. 그러나 희망을 품는 일에도 '용기'가 필요한 법이다. 그 용기는 사소하고 작은 것에서 생겨난다.

가족 중 정신장애인이 있거나 지인이 힘들어 하고 있다면, '자살'을 생각하는 그들에게 우리 같이 '살자', 힘든 한 세상, 함께 '살아보자'라고 용기를 키워줄 수 있는 따뜻한 손길이 되어주자.

그래서 '정신장애인이 자신의 삶이 신의 '실수(mistake)'가 아닌 소중한 '선물(gift)'이라고 여길 수 있도록 희망을 주는 것은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의 소명이 아닐까.

다음은 해당 장면의 영상이다. 자막은 수정 전 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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