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차별대환영대회... “내 말을 들어주고 ‘그래, 고생했어’라고 말해줄 때 고생이 눈 녹듯이 사라져요”
편견차별대환영대회... “내 말을 들어주고 ‘그래, 고생했어’라고 말해줄 때 고생이 눈 녹듯이 사라져요”
  • 박종언 기자
  • 승인 2019.10.10 22:50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19년 편견차별대환영대회 열려
당사자 연구 통해 대인관계 탄탄함 느껴
환청·망상을 들어주는 동료들에 고마움
무자비한 환청에 긍정적 반응해야
존재한다해도 믿지 않는 망상, 고생으로 연구
일상을 열심히 살아내면 환청 불안감 옅어져
부정적 충동에 대응하는 패턴 연구, 실천 필요

“저의 병명은 ‘조현병 내 마음을 읽지 마’입니다. 내 마음을 읽히는 것 같고 나를 험담하며 누군가 나를 지켜보는 것 같습니다. 그게 저를 포악하고 나쁜 사람으로 만들고 욕을 하게 만듭니다.”

10일 서울 영등포구 하자센터. 200여 명의 관객들이 한 사람의 ‘삶의 고생’을 듣고 있었다. 발표자는 전남 광주의 사회복지법인 소화누리에서 온 박혜진(37·여) 씨. 이날 행사는 2019년 편견차별대환영대회였다. 이들은 자신이 겪었거나 겪고 있는 환청과 망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혜진 씨는 “나의 고생은 독심술이자 남들이 뒤에서 제 흉을 본다고 느낄 때가 많다”며 “남을 때리고 화를 참지 못해 물건을 집어던지고 엄마의 묵주를 뜯어 버려서 정신병원으로 직행하기도 했다”고 고백했다.

누군가 자기를 흉보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게 환청으로 들렸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이 모두 자신의 이야기처럼 들렸다.

현재 전남의 한 병원에서 내시경과 간호조무사 보조 일을 하고 있는 혜진 씨는 직장 동료들이 자신이 어제 한 이야기를 미리 알고 있는 듯한 행동을 하고 결국 자신을 왕따시키는 두려움이 있다고 했다. 그녀는 그 느낌을 ‘손님인 찍새’라고 고생 명을 달았다. 그 찍새는 자신이 목욕하는 순간에도 찾아와 창피하게 만들었다.

혜진 씨는 “내 마음을 읽어서 사람들에게 정말 안 돼 하는 순간 코메디처럼 나오고야 마는 찍새를 없애고 남들처럼 활기차게 살고 싶다”며 “찍새가 활동해서 사람들에게 왕따를 당하게 되니까 괴롭고 힘들다”고 토로했다.

그녀는 이후 삶에서 당하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고통과 고생을 연구하기로 했다. 당사자연구다. 일본 홋카이도 우라카와 마을의 정신장애인 공동체 ‘베델의집’에서 처음 이 연구는 시작됐다. 이전까지는 내면에 감추고 살아야 했던 환청과 망상을 세계 앞에 드러내놓고 자신의 태도를 바꿔나가는 ‘내러티브’ 치유의 모색이다. 한국도 이 담론을 수입하면서 정신질환에 대한 객관적 접근과 ‘말해질 수 없는 것들을 말하는’ 내면 탐색과 분석, 치유를 모색하게 된다.

혜진 씨는 “지금까지 찍새로 인해 왕따가 됐다”며 “당사자 연구의 성과는 대인관계를 더욱 돈독히 해 대인관계가 무너질 때 오는 환청과 흉보는 듯한 느낌을 막아보자라는 마음가짐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당사자 연구를 통해 그녀는 자신을 흉보는 느낌이 들 때 그럴 수 있다는 관대한 시선으로 세상을 보게 됐고 그 위축감이 스스로 갇혀있고자 했던 행동임을 깨닫게 된다.

이후 그녀는 병원 일에 집중했다. 현실 생활의 고생이지만 이 ‘여유 없는 바쁨’은 ‘찍새’를 물리쳤고 피해망상과 병적 고생이 조금씩 사라져갔다고 한다.

혜진 씨는 “나를 왕따와 환청에서 벗어나게 하는 방법은 스스로 긍정적으로 생각해서 무서운 환청을 줄이고 새롭게 사람들과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라며 “무작위로 들려오는 무서운 환청은 너는 병신이야, 너는 아무 것도 아니야 라는 등의 비난이었는데 지금은 스스로 너는 참 착한 아이야, 너는 근면성실해로 부르기 시작했다”고 고백했다.

그녀는 그러면서 “찍새의 활동이 줄어들기 위해서는 현실 속의 사람들과 유대 관계를 잘 유지하는 수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됐다”고 당사자연구의 의미를 강조했다.

이어 청주정신건강센터에서 온 이기선(53) 씨.

기선 씨는 “제 에너지를 통해 여자들을 초대할 수 있다”며 “현재는 하룻밤에 10억 명의 여성들과 함께 할 수 있게 됐다”고 정신적 ‘고생’을 털어놓았다. 이 같은 자신의 능력 때문에 남자들의 미움을 받고 신(神)도 자신을 시기하고 있다고 했다. 당사자 연구가 시작됐다.

기선 씨는 20대 첫 발병 때 병원에서 어린 소녀를 만나게 된다. 그 소녀를 후에 찾았는데 어느 순간 그 소녀가 찾아왔고 하나가 되기 시작했다. 물론 환시였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고 현실적으로 있다고 우길 때마다 그는 강제입원을 당해야 했다.

그때의 고생 명을 그는 ‘오매불망 김태희 집착증’이라 붙였다. 그 김태희에 대한 갈망이 조금씩 사라지면서 어느 날부터는 스스로 세계 10억 명의 여성들과 교제할 수 있다는 쪽으로 방향이 바뀐다. 고생 명은 ‘나의 에너지를 통해 관계를 맺음으로써 연결되는 타입’으로 ‘개명’된다.

함께 무대에 오른 사회복지사 이영수(33·여) 씨가 물었다. “하루에 여자가 몇 명이나 오나요?” 기선 씨는 “많을 때 열 명 정도 오고 시간이 갈수록 에너지가 더 퍼지면서 지금은 10억 명 가까이 온다”고 말했다. 관객석에서 웃음이 퍼졌다.

기선 씨는 당사자 연구를 통해 현실 속 사람들과의 관계가 끊어지면서 자신과 소통할 수 있는 ‘또 다른 나’를 찾아 소통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처음에 정신질환을 앓게 되면서 주변 사람들이 저를 떠나게 됐고 점점 외로워지고 힘들어지면서 어느 누구와도 대화할 수 없는 상태가 됐을 때 저는 또 다른 나를 만들었습니다.”

영수 씨가 “또 다른 나 때문에 발생했던 고생들은 어떤 게 있냐”라는 질문을 던졌다. 기선 씨는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사람들이 믿지 않는다”며 “존재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믿지 않고 너 돌았다, 정신병원에 가야 해 하면서 강제입원하게 됐다. 그게 고생이었다”라고 말했다.

영수 씨는 “기선 님은 또 다른 나가 하는 이야기가 현실 생활에서 똑같이 일어나게 되면 많이 혼란스러워한다”며 “현실을 구분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면서 '또 다른 나'가 여자로 나타나거나 남자로 나타난다. 나를 시험하는 목소리까지 들리면서 또 다른 나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고 이를 당사자 연구했다”고 말했다.

특히 기선 씨는 텔레비전에서 여성 앵커에게 기운을 보내면 앵커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린다든지 호흡이 불규칙해진다는 걸 느낀다고 했다. 그 에너지의 이동에 대해 시간이 갈수록 확신을 했다. 당사자 연구를 통해 자신의 고생 패턴을 찾기 전까지의 ‘확신’이었다.

자신이 지구상의 10억 명의 여성들과 교제하고 있고 관계를 맺는다는 ‘확신’을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했지만 돌아오는 결과는 강제입원이었다.

기선 씨는 “강제입원이 반복되면서 이런 이야기들을 하기 보다는 혼자서만 느끼고 감추는 고생을 했다”며 “나를 방어하기 위해 또 다른 나와 대립하고 논쟁하고 싸웠다”고 말했다.

그는 “나의 환청과 계속 논쟁하고 논리 싸움을 했다”며 “너 죽어, 라고 하면 내가 왜 죽어야 하는지 이유를 말해 봐 하면서 (환청과) 싸우고 그러면서 점점 의문이 깊어졌다. 이후 (정신적으로) 성장하면서 또 하나의 나를 인정하고 좀 더 좋은 관계로 변했다”고 회상했다.

기선 씨는 “외롭고 힘들고 어디에 기댈 데가 없을 때 나 자신의 생명마저도 놓치고 싶지 않은 상황일 때 그걸 붙잡기 위해 또 다른 나 자신을 만들어 내고 거기에 에너지를 쏟았다”며 “신기한 건 에너지를 쓰면 쓸수록 점점 더 강한 에너지가 합쳐졌다. 10억 명의 여자들이 그렇게 찾아왔다”고 밝혔다.

기선 씨는 “제 병을 얘기함으로써 사람들하고 공감을 얻어냈는데 그 공감이 옳다는 건 아니”라며 “아, 너 그런 고생을 했구나, 수고했어. 이런 말 한 마디와 눈빛에 저의 고생이 눈 녹듯이 사라진다”고 말했다.

광주의 요한빌리지에서 온 오연화(49·여) 씨는 “하루 내내 환청과 함께 한다”며 “불안, 초조, 공포감이 수시로 드나든다”고 고생을 이야기했다.

그녀는 “제 모습이 수시로 변하는 것 같고 끝내는 자해까지 했다”며 “‘부정을 저질렀으니 죽어라’, ‘태우거라’ 등 환청이 몰아치면 라이터로 얼굴에 화상을 입힌다든가 머리카락을 태운다든가 가위나 칼로 자해를 하곤 했다”고 토로했다.

그녀에 따르면 이 환청과 환시의 세계는 자신들만의 논리와 방식이 있어서 그럴싸한 세계가 형성돼 있는 것 같다. 이 세계는 로마 신화의 ‘미노타우로스 미로’ 같기도 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빠져나올 수 있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고 그녀는 말했다.

연화 씨는 “환청과 불안, 공포에 시달리는 데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일상생활에서 뭔가에 몰입하는 것”이라며 “정적인 방법보다는 동적이고 활동적인 방법을 써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환청에 대해서는 무조건 무시해야 하지만 이 방법이 어렵다”며 “무시를 한다고 해서 쉽게 없어지지도 않고 어떤 경우에는 환각 증상들이 총공세를 펼쳐 무서워서 숨도 못 쉰다”고 밝혔다.

당사자 연구를 통해 이에 대한 대처법을 발견했다. 바로 이성적 대처방법이다. 환청에 의한 지시가 있지만 이를 무시하기. 연화 씨는 “환청을 무시하는 것 자체도 불안감 때문에 잘 할 수 없지만 최대한의 노력을 해 본다”며 “청소하고 독서하는 등 일상을 만들어 내 열심히 하면 환청과 불안감이 약해진다”고 밝혔다.

그녀는 “환청과 환시를 완전히 없애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긍정적인 환청을 분리해내 잘 지내야 한다”며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당사자들의 마음이 제게 힘이 된다”고 말을 맺었다.

경기 평택의 정신재활시설 나무에서 온 허상현(26) 씨는 ‘내 마음 속의 충동 드리블러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상현 씨는 이날 갑작스런 사정으로 참여하지 못하고 나무 동료들이 그의 이야기를 대신 읽어줬다.

상현 씨는 양극성정동장애인이다. 피파라는 축구 게임에 빠져 아이템을 사는 데 갖고 있는 돈을 모두 썼다. 어머니에게 손을 내밀면서 갈등이 생겼다. 어느 날 아버지가 천만 원이라는 큰 돈을 줬다. 그 돈으로 게임 캐릭터를 사는데 모두 소비했다. 그후 일 년 동안 게임을 하지 않았고 500만 원을 모았다. 하지만 역시 오래가지 못했다. 축구 게임에 다시 손을 댔고 어머니 휴대전화로 게임 소액결제를 하면서 어머니와 갈등이 더 깊어졌다.

상현 씨는 그때 “예전에 축구게임을 일 년이나 끊었던 힘을 어디서 나왔을까. 나도 내 고생인 내 마음 속의 드리블러를 막을 수 있는 강력한 수비수나 골키퍼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당사자 연구는 그렇게 시작됐다.

그는 “자존감이 낮아지거나 밤에 자다가 깨면 축구 게임을 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며 “이 ‘충동이’가 오면 전력을 다해 수비해도 결국 PC방으로 가게 만든다”고 토로했다.

상현 씨는 당사자 연구를 통해 자신이 겪는 고생의 패턴을 읽게 된다. 즉 축구게임에서 아이템을 50% 할인한다는 소식이 들릴 때, 새로운 상품이 출시됐을 때, 주위 사람이 자신과 같은 게임을 할 때, 살이 쪄서 자존감이 낮아질 때 그는 어김없이 축구게임을 찾았다.

자존감이 낮아지면 축구게임을 하려는 충동이 찾아오고 결국 다시 게임을 하게 되는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상현 씨는 축구 게임을 찾아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패턴에 대한 대응책을 연구했다. 게임회사에 신규 아이템이 출시돼 50% 할인하면 게임 사이트에 접속하지 않기. 축구 게임 이야기가 나오면 다른 이야기로 주제를 돌리기. 어머니 핸드폰으로 결제하지 않고 내가 모은 돈으로 사용하기. 결제를 밤에 휴대폰으로 주로 하는데 잘 때는 휴대폰을 부모님께 맡기고 자기. 고생에 대해 부끄럽다고 숨기기보다 동료들과 주변에 솔직하게 말하고 도움을 받기 등.

상현 씨는 현재 사진찍기를 취미로 삼아 활동하고 있다. 그는 “사진은 긍정적인 충동이 들게 한다”며 “충동이의 드리블을 멋지게 막아내는 수비수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다”고 말을 마쳤다.

이번 편견차별대환영대회는 청주정신건강센터, 한국당사자연구네트워크, 나무, 소화누리, 송광정신재활센터, 송국클럽하우스, 아미정신건강센터, 요한빌리지, 청주어울림센터, 한울지역정신건강센터가 공동 주최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인랑제수민 2019-10-11 23:38:42
당사자치료 만세, 베델의 집 만세, 한울정신건강센터 만세, 참여팀 만만세~~

서울에서 시작하여 청주에서 폭발하고 광주로 뻗쳐가고 경기도 평택으로 휘돌아 감아 오르는 당사자 치료여~~이젠 환청망상 덜덜덜, 불안불면 우울 도망빼고, 조현정동장애 웃기는 병이 되어버린다. 당사자가 나아가는 길에 조무래기일 뿐.

내가 내병을 패턴화 하고 알리고 치료하고 도움받고 또 발전 변화하고~~~우리는 당사자!! 해낼수 있다!!

권혜경 2019-10-13 07:59:56
정말 감동입니다. 당사자 연구 하신분들, 용기있고 멋진 고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