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주의 원칙 지키고 장애인복지법 15조 폐지 공동 투쟁 진행해야”
“당사자주의 원칙 지키고 장애인복지법 15조 폐지 공동 투쟁 진행해야”
  • 박종언 기자
  • 승인 2019.10.16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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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신장애 당사자 운동과 총선 전략 과제 토론회 개최
정신보건법 제정으로 헌법 보장하는 인격권·자유권 상실
‘도살장’ 같은 정신병원 입원 구조…아무도 책임 안져
정신보건센터, 정신병원이 위탁하면서 병상수만 늘어나
절차보조서비스 법제화하고 공공후견제 확대해야
정신장애인 당사자 운동 전국적으로 확산돼야

 

한국장애인인권포럼, 사람사랑양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 등 5개 단체가 주최한 ‘한국정신장애 당사자 운동과 2020년 총선 전략 과제 토론회’가 16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렸다.

발제에 나선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 이정하 대표는 “현재의 정신장애 운동의 동력이 세지 않고 커밍아웃하기도 어려운 극단적 환경에 놓여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가장 중요한 쟁점을 갖고 투쟁을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소수의 당사자 운동이 무너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그동안 집중했던 것은 법과 제도를 바꾸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20년 전 그는 처음 강제입원을 당했다. 응급이송단에 ‘납치’가 돼 정신병원에 들어갔을 때 그는 병원 공중전화로 경찰서에 전화를 해 불법으로 납치됐으니 이 병원을 조사하고 자신을 꺼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경찰은 “불법이 아니”라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때 그는 깊은 절망감을 느꼈다.

그는 “그때 정신보건법이 있었는지도 몰랐다”며 “왜 내가 무엇 때문에 강제입원을 당해야 했는지 몰랐고 권리 구제를 받을 수 있는 방법도 몰랐다”고 토로했다.

1995년 한국은 최초로 정신장애인 관리와 관련된 정신보건법을 제정한다. 그렇지만 그 법은 정신장애인의 자율적 가치와 존재로서의 이미지를 훼손시켰다.

이 대표는 “정신보건법 조항으로 인해 정신장애인은 헌법이 보장하는 인격권, 자유권, 평등권, 행복추구권, 건강권 등 모든 권리를 박탈당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정신장애인 당사자운동은 2013년 국가인권위원회 발표회에서 획기적 변화를 맞게 된다. 파도손 역시 이 해에 ‘오프라인’으로 나와서 활동을 하게 된다. 그해 12월 20일 정신장애인 200여 명이 모여 정신병원 장기입원과 강제입원 피해자 집단진정을 하면서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 대표는 “한국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이 정신보건법 폐지를 선언한 그 당일”이라며 “정신장애인들이 주체가 돼 정치적 해방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원년”이라고 말했다.

2016년 5월 서울 서초구의 한 노래방에서 30대 김모 씨가 화장실에서 나오던 20대 여성을 흉기로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당시 김씨는 피해자와 일면식도 없었던 사이였다. 국민적 분노가 터져나왔다. 정신장애인에 대한 편견은 강화됐다.

이 대표는 “조현병 환자의 인권은 강남역 살인사건 전과 그 후로 나뉜다”며 “이때부터 정신장애인들을 범죄자로 등극을 하게 된다”고 밝혔다.

“당시 법무부 정신질환 범죄자 대책에는 정신병원과 경찰서가 (환자) 명단을 주고 받았다. 지역 경찰서와 정신병원 업무협약 체결이 그 당시에 30곳 이상이었다,”

그는 “그전에도 범죄자 취급을 안 한 게 아니었다. 살인자도 교도소에 끌고가서 격리실에서 사지를 묶고 성분을 알 수 없는 주사를 놓느냐”며 “왜 당사자에게 아무런 의사표현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악의적으로 강제투약을 했냐”고 질타했다.

이어 “그런 대우를 받고 살았지만 아무도 여기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전문가들은 자신들의 입장에서 정신장애인들을 프레임화시켰다”며 “복지계든, 의료계든 정신장애인들을 자신들의 필요와 이익에 따라 홍위병으로 세워 놓고 수단화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당사자주의의 패러다임은 당사자가 주체가 돼서 우리의 법을 우리가 직접 만들어가고 우리가 살아갈 토대를 당사자의 힘으로 만드는 것”이라며 “당사자주의의 패러다임이 치고 나갈수록 낡은 패러다임이 저항을 하게 된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의료산업과 사회적 차별로 인해 빼앗긴 것이 무엇인지 눈앞에 들이대야 한다”며 “이 세계를 회피하지 않고 당사자성을 교육하고 새로운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용표 가톨릭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임세원 사건 이후 의료계가 구(舊) ‘감금법’으로 되돌리려는 의도를 보였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12월 강북삼성병원 임세원 정신건강 전문의가 내담 온 환자의 흉기에 찔려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여론은 정신장애인에 비난을 집중시켰다.

이 교수는 “배울 만큼 배운 인간들이 다시 감금법안을 희생되신 분의 이름을 팔아가지고 (개악)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참 조소를 금할 수 없었다”며 “그 옛날 법으로 돌아가려는 걸 당사자 단체들이 막았다”고 말했다.

당사자 운동은 그에게도 의미가 크다. 그는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에 있어 옛날에는 의료계가 마음대로 했다”며 “이제는 당사자 단체가 양해해주지 않으면 중요한 개정을 할 수 없는 시대로 넘어갔다”고 분석했다.

1979년까지 우리나라의 정신병상 수는 2000베드도 채 되지 않았다. 1982년 장애자복지법이 제정되고 성인 신체장애인을 위한 성인불구시설의 명칭은 장애인복지시설로 바뀐다. 이때 정신장애인은 장애범주에 없었다. 정신장애인 수용이 늘어나면서 당시 정부는 급하게 정신요양시설을 만들었다.

이 교수는 “정신병상이 이때 2000병상에서 이후 1만 병상 이상씩 늘어나기 시작했다”며 “신경정신과로 통칭되던 전문의도 정신과만 전문으로 하는 의사들이 배출되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정신요양시설은 1988년 한국 올림픽 때까지 늘어난다. 1990년대 1만7000 베드였는데 정신보건법이 제정되면서 이후 큰 변화를 보이지 않게 된다.

이 교수는 “정신요양시설의 수용자 수가 변화가 없었던 건 정신병원이 너무 많이 생겼기 때문”이라며 “2000년 3만6000병상, 2004년 6만2000병상으로 늘어나면서 정신보건법이 강제입원을 합법화시켰다”고 말했다.

2001년 정신병원 자의입원 환자 비율은 전체의 6.7%에 불과했다. 2008년에 강제입원 비율이 87%로 줄었지만 정신병원은 계속해서 증가했다. 정부는 대안적으로 지역사회 정신보건을 위한 정신보건센터(현 정신건강복지센터)를 증설했다. 이것이 늘어나면 정신병원 입원 비율도 줄어야 하는데 반대로 더 늘어났다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왜 그럴까.

이 교수는 “정신보건센터가 대부분 정신병원에 위탁되는 구조”라며 “정신보건센터가 지역에 살고 있는 정신장애인들을 병원으로 옮기는 데 역할을 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4월 경남 진주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40대 안인득은 자신의 집에 방화를 하고 불길을 피해 건물을 피신하던 주민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2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이 있었다. 안인득은 정신질환을 겪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언론은 안인득을 병원에 일찍 입원시켰어야 했다는 비판 글을 내보냈다.

이 교수는 다르게 생각했다. 정신건강복지법은 입원을 함부로 시키지 말라고 만든 법이고 일정 부분 임무를 달성했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안인득 어머니가 일곱 번이나 경찰에 신고를 했지만 정신건강복지센테에 그 사람 이름 등록도 안 돼 있었다”며 “공공정신보건체계가 아무 작동을 안 하는 걸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병원에 신고도 안 됐고 공공보건이 작동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병원에 입원을 시켰다고 해도 병원이 감당하기 어려워서 금방 퇴원시켰을 거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가둘 필요가 없는 온순한 사람들을 평생 가둬두고 골치 아픈 사람은 일찍 내보낸다”며 “장기입원자들을 어떻게 퇴원시켜야 하는가의 문제와 함께 지역사회 서비스를 어떻게 확충할 거냐의 문제가 제기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절차보조서비스를 법제화해 병원에 있는 사람들에게 자기 권리와 지역사회에서 어떤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지를 알게 해줘야 한다”며 “정신요양시설에 있는 무연고자들에게 공공후견을 확대하고 이를 법제화해서 인권보호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서울에 정신장애인 대상 공동생활가정 입소율은 80%다. 아직 20%의 여유가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왜 들어가지 못하는 것일까. 이 교수는 “이용 기간을 3년으로 제한해서 생긴 문제”라고 지적했다.

다른 장애인 쪽은 공동생활가정에 거주 기간 제한이 없지만 유독 정신장애인만 3년으로 고정해 놓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라고 그는 지적했다.

이어 “당사자들이 재활치료를 다니다가 공동생활가정에서 상태가 안 좋으면 지원할 수 있는 공공위기시스템이 하나도 없다”며 “이를 법제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20년 총선과 관련해 이 교수는 “총선 입법 과제 우선순위에서 정신장애인들을 배려해 달라”며 “대승적으로 장애계 내 차별을 해소한다는 의미에서 정신장애인 입법 과제를 우선적으로 해줄 관용과 지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삼호 장애인아카데미 인식개선교육센터 소장에 따르면 세계 최초의 정신병원은 1247년 건립된 베들렘 병원이었다. 그곳은 현재와 같은 치료 기능으로서의 병원이 아니라 감금과 고문, 실체적 가혹 행위 등이 개입되는 ‘학살 장소’였다. 그렇지만 이 병원은 이후 세계적 정신병원의 원형을 역할을 한다.

18세기 프랑스 정신장애인 당사자인 장 밥티스트 푸시는 ‘도덕치료’라는 새로운 정신 치료법을 개발한다. 기존의 고문과 학대가 아닌 인간적이고 종교적인 방식을 통한 치료를 도모하는 취지였다. 그런데 도덕치료가 기획되면서 더 많은 정신병원이 확대되는 역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윤 소장은 “도덕치료가 결과적으로 정신병원의 확산과 정신병원의 법제화를 만들었다”며 “정신병도 법으로 규제하는 질병이 돼 버렸다”고 분석했다.

정신질환 치료와 관련해 1930년대에는 과학의 이름으로 전기충격요법이나 뇌의 일부를 절단시키는 로보토미 의학 수술이 확대된다. 의사들은 그 시술이 치료에 절대적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윤리적, 생물학적 부작용이 나타나면서 이 시술법은 비판을 받는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정신 의약품이 비약적으로 발전을 보인다. 윤 소장은 “당시 전쟁 트라우마를 겪는 이들이 많아서 이를 연구하던 중 약물들이 개발됐다”며 “이후 로보토미와 전기충격요법이 사리지고 새로운 정신과 치료 약물들이 보편화됐다”고 설명했다.

윤 소장은 정신장애인 당사자 운동이 1960년대를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말했다. 토마스 사스, 데이비드 쿠퍼 등 정신과 의사들이 이 운동을 이끌었다. 반정신의학 운동이 그 일례다. 토마스 사스는 “정신장애는 없다”는 급진적 주장까지 하기에 이른다. 196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초까지 이 같은 급진적 운동 노선은 힘을 얻는다.

반정신의학 운동을 통한 정신장애인 당사자 운동을 힘을 얻고 아이디어를 가져오게 된다. 그리고 1978년 미국 여성 정신장애인 당사자이자 활동가인 쥬디 챔벌린과 같은 걸출한 사상가가 나오게 된다.

윤 소장은 “정신장애운동이 대중화되고 폭이 넓어지면서 국제 네트워크가 만들어지는데 이 운동의 대중화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사람이 바로 쥬디 챔벌린”이라고 소개했다.

쥬디 챔벌린(Judi Chamberlin)은 ‘멘탈리즘’(정신장애 차별주의)이라는 운동 용어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윤 소장에 따르면 세계의 정신장애인 당사자 운동은 1980년부터 약물 복용이나 정신병원 이용을 자신이 선택하는 자기 결정권이 이데올로기적 힘을 얻게 된다고 밝혔다. 우리는 지금 어떨까?

윤 소장은 정신장애 당사자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신체장애인 조직이 정신장애인 당사자 조직을 지원해야 한다”면서 “그렇지만 신체장애인은 정신장애인의 문제에서 당사자가 아닌 만큼 당사자주의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장애인복지법 제15조 폐지 투쟁이 우리 운동의 공동 투쟁 과제로 삼아야 한다”며 “또 동료 지원 프로그램을 확산시키는 것이 공동으로 할 수 있는 투쟁 목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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