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드 프라이드 성료] ‘우리를 가두지 말라’는 요청이 그렇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나요?
[매드 프라이드 성료] ‘우리를 가두지 말라’는 요청이 그렇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나요?
  • 박종언 기자
  • 승인 2019.10.27 22: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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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매드프라이드 광화문에서 개최…500여 명 참여 축제
마르코 카발로 밀며 광화문 행진…시민들 호응 높아
‘매드에 대한 자부심’은 ‘미침’에 대한 전복적 사유
‘거리로 나온 하얀방’과 ‘힙합’ 행사에 인원 ‘북적’
주최 측, 내년에도 매드 프라이드 축제 열 것
"우리는 지금 여기 있다" (c)마인드포스트.

그래요. 이제 시작이에요. 우리가 공동체에 요청해온 건 ‘우리를 가두지 말라’는 거였어요. 그 요구가 그토록 어려웠나요. 이렇게 해도 ‘정신질환자’로 저렇게 해도 ‘잠재적 범죄자’로 우리를 바라보던 시선들 앞에서 우리는 우리를 표현할 언어가 없어 깊이 좌절했었지요. 그런 시간들이 길었고, 그래서 우리는 어느 날 생각을 모았어요. 바로 “광장으로 나가자”였죠.

광장은 골목보다 넓은 곳이죠. 우리 정신의 ‘골목’에 숨죽이고 있는 우리들이 비 내리는 황량한 골목을 나와 광장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내보고 싶었어요. 우리를 미쳤다고 한다면 “그래 우리 미쳤어. 그래서 뭐?”라고 말하고 싶었죠. 우리를 광인(狂人)으로 낙인찍은 사회의 폭력적 구조에 대해 “그래 우리 광인이야. 그래서 뭐?”라고 대응하고 싶었죠. 그래요. 정말 ‘쿨(cool)’하게 광장에서 외치고 싶었어요. 바로 매드 프라이드(Mad Pride)를요.

26일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로 공원. 오후 12시에 우리는 모였어요. 몇 명이나 모일 수 있을까. 인근에서는 광화문 보수집회가 열리고 따가운 태양처럼 확성기에서는 자신들의 정치적 요구가 관철되지 않은 자들이 소리를 지르고 있었죠. 그 곁에서 우리는 부스를 꾸리고 행사 시작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지요.

아, 매드 프라이드부터 설명을 해야 하겠네요. 1993년 캐나다 토론에서 처음 열린 이 매드 프라이드 행사는 이후 영국, 프랑스,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20여 개 나라에서 열렸죠. 지금도 매년 열리고 있어요.

퀴어(Queer·괴상한)라고 불리는 성적 소수자들에 대한 사회의 폭력적 시선을 전복하기 위해 사회적 약자이자 소수자인 이들이 바로 ‘퀴어 프라이드’를 열었던 것과 같은 심정이었을까요. 혹자는 그래요. 숨어서 하고 광장으로 나와서는 하지 마라. 우리가 너희들 성 정체성까지 확인하고 이해하고 포용해줄 생각은 없으니까.

인간의 삶은 정치적일 수밖에 없어요. 정치적 동물로서의 우리가 우리의 정치적 요구를 권력에 요구하는 것은 인간이기에 당연한 요청이죠. 그런데 그 요청이 불순하다는 이유로 억압에 길들여져야 했던 성 소수자들이 바로 그 억압에 대항하기 위해 광장으로 몰려나온 것이었죠.

매드 프라이드도 그래요. 우리는 늘 미친 존재로 규정돼 왔어요. 사회적 의제에는 참여할 수 없으며 어디 저 멀리 차도 겨우 올 수 있는 산중턱에 정신병원을 짓고 그 안으로 모두 집어넣던 시절이 불과 10년, 20년 전이었어요.

지금도 그 같은 폭력의 맥락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어요. 강제적 약물투여, 의사와 간호사라는 권력의 시선에 굴종하고 쥐죽은듯이 살아가기. 우리의 온당한 요구가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져 손발이 묶인 채 CR(독방) 침대에 묶여 살아야 했던 시간들. 혹자는 지나간 기억이니 잊자라고 말해요.

하지만 당신이 치료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물적·심리적 폭력이 기억에 남긴 트라우마를 잊을 수 있을까요. 몸에 각인된 낙인이라는 이름의 폭력. 그것을 단순히 잊자라고 말하기에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너무도 많았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매드 프라이드가 시작됐어요.

각설하고 12시 30분쯤 되니 행사 시작이 알려졌어요. 40여 명의 정신장애인·비정신장애인들이 질서 있게 춤을 추기 시작했어요. 노래는 흥겨웠고, 차려진 부스에는 한 명, 두 명씩 찾아가 부스 프로그램을 질문하기 시작했죠.

'쿨'한 댄스로 시작된 오픈 세러머니 (c)마인드포스트.

기자인 저는 몇 명의 사람들을 인터뷰했어요. 소감을 물었죠. 박재우(50) 서초열린세상 센터장은 “매드라는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것들이 인간에 대한 다양한 모습으로 받아들여지고 모두가 자신의 정신 세계에 자부심을 느끼는 세상이 되는 첫걸음이 되길 바란다”는 덕담을 해 주네요.

이어 만난 시민 이한결(26) 씨는 “당사자들은 지난 20년간 정신병원에 갇혀 있었어요. 집에만 있는 당사자들이 오늘 많이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이날만큼은 에너지가 분출되는 모습을 보기 위해 나왔다”고 참여 소감을 밝혔죠.

송승연(36) 가톨릭대 박사 과정생은 “앞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을 거고 많은 토론이 필요하겠지만 일단은 깃발을 꽂고 시작했다는 것에 감회를 느낀다”고 말했어요.

아, 멀리 부산에서 오전 8시 KTX를 타고 올라왔다는 지미루(62) 씨도 있네요. 그는 동료 아홉 명과 같이 서울로 올라왔다고 합니다. 지씨는 “정신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많은데 그런 부분을 파기하고 정신장애인의 어려운 사정을 함께 공유하기 위해 참석했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두세 명 더 인터뷰를 해 보았습니다. 정신장애재활시설 동광임파워먼트에서 팀장으로 일하는 김유라(38·여) 씨는 “발병 등 증상으로 인해 감정조절이 어려웠지만 그걸 받아들이고 감정을 표현하는 자리가 됐으면 한다”며 “이 행사가 계속 연결돼서 정신장애인 인식 개선을 통해 당사자가 공적 자리에서 행동하고 힘이 돼 파급력이 커졌으면 한다”고 소망했습니다.

참여자가 마스크에 색칠을 하고 있다 (c)마인드포스트.

우연히 페이스북을 통해 이날 행사를 알고 참여했다는 비정신장애인 정인학(38) 씨는 조현병이 사회적 문제로 부각된 점에 아쉬움을 표했어요. 그는 “많은 범죄가 있는데 한 명의 정신장애인이 그런 범죄를 저지르면 사회적으로 매도해 버리는 상황을 보고 그분들이 억울하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다른 장애와 같은 장애일 뿐인데 그런 병을 가진 이들이 존중받고 어울리는 사회가 돼야 한다. 매드 프라이드가 있고 사회로 나오려는 노력이 있어 함께하기 위해 나왔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공원에 설치된 부스들을 돌아보았죠. 15여 개의 부스가 서로 어깨를 맞대고 설치돼 있네요. 하나씩 확인해 봅니다. 침묵의소리, 안티카, 정신장애동료지원센터, 동광임파워먼트, 마노스예술교육사회적협동조합, 소화누리 틈새미술관, 브솔시냇가, 퀴어 리즈 라온, 서울인권영화제, 법률상담, 의료지원 등의 부스가 세워져 있습니다. 그 중 ‘마인드포스트’도 자리 하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마인드포스트 부스 테이블 앞에 누군가 앉아 있네요. 어떻게 참여했는지를 물었죠. 그가 자신을 정신보건 정책에 대해 연구하는 사람이라며 명함을 건넵니다. 신영전(55) 한양대 의대 교수였습니다. 그는 “우리나라의 정신장애인에 대한 차별은 지나치다고 생각한다. 우리도 다 정신질환에 걸릴 수 있고 정신장애인이 될 수 있다. 우리 사회가 너무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며 차별은 없어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오프닝 세러머니 이후 연극이 시작됐습니다. 연극 제목은 ‘거리로 나온 하얀방’. 무대 위에 다섯 명의 환의를 입은 배우들이 서 있습니다. 그들은 강제입원 당한 당사자들이네요. 한 명이 말합니다. “나는 사회복지사 놈이 좋은 데 가자고 해서 왔는데 여기로 데려왔어.” 이어지는 목소리. “나는 혼자 집에만 있는데 아버지가 놀러가자고 해서 나왔는데 모르는 사람들이 나를 데리고 온 곳이 여기야. 왜 여기 있는지 모르겠어.” 또 다른 여성의 탄식. “어떻게 나가나.”

연극 '거리로 나온 하얀방' (c)마인드포스트.

무대에서 하루의 일상이 시작됩니다. 호루라기 소리. 정신병원 직원이 환자들을 깨웁니다. “일어나. 체조.” 이어 자치회의. 이때 여성 정신과 의사가 나옵니다. 그녀는 “자치회의 잘하고 있어요. 무슨 일 있으면 찾아오세요”라고 단조롭게 말한 후 퇴장합니다.

계속되는 자치회의. 도중 한 환자가 “내가 음식 더 먹겠다는 데 왜 지랄이야”라고 따집니다. 그러자 남자 직원이 “이걸 확”이라고 위협합니다. 갑자기 등장하는 코끼리 주사. 이 주사는 처음 입원한 환우들이 소란을 일으킨다는 이유 등을 들어 ‘약방의 감초’처럼 개입되는 일종의 ‘혼수상태’로 만드는 약입니다. 코끼리도 맞으면 쓰러질 수밖에 없다는 뜻에서 유래됐죠.

할머니 역을 맡은 여성이 넋두리를 합니다. “여기가 사람 사는 곳이냐. 강제입원도 억울한데 강제주사냐.” 그녀의 악다구니가 대중에게 파고듭니다. 이어 쏟아지는 요구들. “간식 줘. 폐쇄병동 금지 물품 없애라. 복숭아, 사탕, 껌도 목에 걸리면 질식한다면서 반입 못하게 한다.” 이때 직원이 한마디 툭 던집니다. “자유가 그렇게 쉬운 줄 알아?”

그러면서 박스가 하나씩 올라갑니다. 박스 겉에는 치료환경, 과도한 검사비, 무시, 무조건 보호자 동반, 편견, 불신, 강제입원이 적혀 있습니다. 무대의 절정에서 환자들은 이 박스들을 발로 차버립니다. 그러면서 외칩니다. “낙인은 사실이 아니라 정치다.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자.”

관객들이 길고 긴 박수를 보냅니다.

이윽고 행진이 시작됩니다. 500여 명의 참여자들이 길게 늘어서기 시작합니다. 가장 앞에는 정신병원 병상을 상징하는 베드에 한 명의 여성 당사자가 앉아 있고 옆의 사람들이 베드를 밀면서 선두를 지휘해 가네요. 태극기 보수 집회에 나온 노인들이 “지금 이게 뭐야”라고 묻습니다. 누군가가 “매드 프라이드 행사”라고 하자 노인도 신기하다는 듯 행렬을 바라봅니다.

행렬의 중간에는 푸른 색의 말 동상이 굴러갑니다. 마르코 카발로(Marco Cavallo). 이탈리아 산지오바니 정신병원에서 세탁물을 나르던 저 말은 자유를 꿈꾸는 정신장애인 세계의 상징적 존재가 됩니다. 높이가 2미터 50센티미터라고 합니다.

자유의 상징 '마르코 카발로' (c)마인드포스트.

세종대왕상과 이순신 장군상을 지나 동화면세점 앞에서 유턴해 멀리 광화문 정문을 돌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행진이었습니다. 행렬 가운데 여성분이 외칩니다. “정신장애인도 사람이다. 우리도 사람답게 살고 싶다. 자유가 치료다.” 이어 아까 잠시 만났던 신영전 한양대 의대 교수가 푯말을 치켜들면 외칩니다. “우리가 여기 있다.” 한 1킬로미터 남짓한 거리를 우리는 그렇게 한 바퀴 돌았습니다.

 

행진, 행진하는 거야 (c)마인드포스트.

다시 세종로공원. 힙합에 맞춰 여러 사람들이 춤을 춥니다. 즉석 랩을 만들어내는데 ‘천재적’으로 언어를 조합해 냅니다. 거기에 리듬과 박자까지 아주 물 흘러가듯이 읊습니다. 이 힙합 축제는 장창현(37)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이끌고 있습니다.

정신장애인도 사람이다 (c)마인드포스트.

다시 부스를 돌아보았습니다.

랩에 빠진 참여자들 (c)마인드포스트.

정신재활시설 한마음의집에서 온 사회복지사 김재이(47·여) 씨는 “이런 대규모 행사는 처음인데 회원들 마음을 좀 더 이해라 수 있고 편견을 없애는 좋은 기회라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시설 회원들에게 사진 출사(出寫)를 가르치고 있다고 합니다. 이번 행사에는 회원들이 찍은 풍경 사진 100장을 가져왔는데 다 나눠주고 3장 정도 남았다고 하네요.

정신장애동료지원센터 소속으로 자원봉사를 나왔다는 대학생 임지현(22·여) 씨도 “정신장애인들이 사회구성원으로 목소리를 내는 게 의미가 크고 여기에 봉사활동하면서 보람을 느낀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전남 광주에서 올라왔다는 정신요양시설 소화누리 사회복지사 이경도(47·여) 씨는 “소화누리에서는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에게 미술 교육을 시켜 재능을 일깨운다”며 “이들이 그리는 미술 아르브뤼(art brut·정신장애인 미술) 교육을 3년째 하고 있는데 오늘 작품을 판매하고 수익금을 기부할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요양시설은 지난해 시설 안에 작은 미술관을 개관했다고 하네요. 그리고 전국적 공모를 통해 작가들을 배출하고 있다고 합니다.

마노스예술교육사회적협동조합의 마준호(29) 팀장은 이 조합이 정신장애인 교육기관이라고 소개하네요. 그는 “정신장애인 주거시설이나 재활시설에 나가 노래 교육을 시키다가 정신장애인들과 인연을 맺게 됐다”며 “생각보다 당사자들이 노래에 재능이 많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오후 4시 20분. 백재중 녹색병원 교수가 광장을 찾았습니다. 그는 이탈리아 정신보건 개혁 운동사를 정리한 ‘자유가 치료다’의 저자입니다. 이탈리아 정신과 의사 바살리아가 전국적 공립 정신병원 폐쇄를 하게 된 정치적 의지와 그 가운데서 정신장애인의 자유의 방향을 모색하는 이 책을 한국에서 최초로 발표하면서 이후 정신장애인 당사자 운동의 지침서로 인정받게 됩니다.

백 교수는 “정신장애인들이 처음으로 광장으로 나온 게 기쁘다”며 “정신장애인이 광장에 언제나 나올 수 있게 사회적 여건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아, 마인드포스트 부스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그곳에는 마인드포스트 만평을 담당하는 이동수 화백이 참여자들을 대상으로 캐리커처를 그려주고 있었습니다. 그는 5시쯤 자리를 털고 일어납니다. 몇 명 정도 그렸냐는 질문에 이 화백은 “한 30명 정도 그린 거 같다. 밝은 기운을 나도 받고 남들에게 발산하는 느낌이었다”고 소회를 털어놓습니다.

캐리커쳐 그리는 이동수 화백 (c)마인드포스트.

서서히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세종공원. 태극기 보수집회에서 나오는 확성기 소리가 더 크게 들리기 시작합니다. 참여 부스들은 조금씩 ‘파장’을 맞듯이 조금씩 폐장 준비를 합니다.

문득 서정주 시인의 시 ‘잔치는 끝났더라’가 떠올랐습니다.

‘잔치는 끝났더라, 마지막 앉아서 국밥들을 마시고 빠알간 불 사르고 재를 남기고, 포장을 걷으면 저무는 하늘, 일어서서 주인에게 인사를 하자 결국은 조금씩 취해가지고 우리 모두 다 돌아가는 사람들.’

행사는 그렇게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기자 역시 퇴근 준비를 하듯이 어둠 속에 잠깐 서 있었습니다. 그때 심명진(34) 정신장애인 예술창작단체 ‘안티카’ 대표를 만났습니다. 그는 “매드 프라이드 광장 행진에 행복했다. 내년에도 당연히 매드 프라이들 열겠다”고 말했습니다. 안티카는 이번 행사를 주최·주관한 단체입니다.

어둠이 깊게 드리우기 시작했습니다. 태극기 보수집회에서의 확성기 소리는 어둠을 뚫고 광장을 메우고 있었습니다.

문득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이런 행사를 해야 하는 이유를. 아까 서정주 시인의 시를 인용했듯이 우리 모두는 조금씩 삶의 슬픔과 고난, 아픔에 ‘취해서’ 살아가야 하는 존재가 아닐까요.

삶이 멀리서 보면 희극이 되어버리듯 우리가 가진 인간으로서의 취약한 부분, 그것이 감정일수도 있고 물리적일 수도 있고, 경제적 통증일 수도 있고, 정신적 고통일 수도 있죠. 그렇지만 우리는 그것이 삶의 본질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한 걸음씩 걸어가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골목이 아닌 광장에서 만난 동료들과 함께 소리치고 함께 걸어가려 하는 거겠지요. 골목에서 광장으로 나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억압의 상징인 ‘정신적 쇠사슬’을 끊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그 억압의 상징세계를 향해 우리는 외친 게 있습니다. 바로 “우리를 가두지 말라”는 명령이었습니다. 그 가두지 말라는 우리의 요구가 그렇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청이었나요?

우리는 지금 여기에 있다 (c)마인드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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