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석 “불법 체류자들은 한국사람이 되고 싶어 해요…그들은 돌아갈 조국이 없어요”
정재석 “불법 체류자들은 한국사람이 되고 싶어 해요…그들은 돌아갈 조국이 없어요”
  • 박종언 기자
  • 승인 2019.10.28 19: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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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석 서울아이클리닉 원장 인터뷰
빈센트의원서 무료로 외국인 노동자 정신과 치료 맡아와
ADHD나 자폐아 대상 전문의 많은데 난독증은 ‘황무지’
수학 잘 할 수 있는데 못하는 건 학습 의지 부족 원인 많아
가톨릭 선배 따라 얼떨결에 간 빈센트의원서 봉사 시작
말 안 통하는 외노자는 증상 따라 약물 치료…한계 있어
통역 없는 외노자와는 구글 번역기 틀어놓고 진료해
젊은 외노자들은 의외로 희망 많아…극빈자들이 우울 심해
따뜻한 나라 출신은 ‘공황장애’, 추운 나라는 ‘우울증’ 강해
한국, 동남아 멸시하고 백인에 대한 선망 강해
외노자들, 한국 선망…귀화하려는 의지 강해
가난하고 우울할수록 자살률 높아…정신력 문제로 모는 건 부당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을 쓴 정신의학자 프란츠 파농은 서인도의 프랑스령 마르트니크 섬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의학을 전공했다. 2차 세계대전에도 참여할 정도로 그는 프랑스를 자신의 모국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이후 프랑스 식민지인 알제리에서 정신과 의사로 일하며 알제리인들의 정신장애와 광기가 식민지 사회의 폭력적 억압에 기인한다는 걸 알게 된다. 그는 이후 신경증의 대승적 치료는 피식민지의 해방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사유해 이후 알제리 민족해방운동에 ‘전사(戰士)’로 참여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이주노동자를 비롯한 외국인 이주민들이 200만 명에 이른 상태다. 한국사회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정(情) 문화’는 유독 이들에게는 차갑다.

‘거무튀튀한’ 피부색을 가진 동남아인들에 대한 멸시감, 혹은 중동에서 온 이들에 대한 경계심은, 역으로 하얀 피부에 대한 백인 선망의식의 반동적 사유로 읽힐 수 있을 정도다.

물론, 인간은 자신의 고향과 조국을 떠나면 뼈아픈 노스탤지어를 겪게 된다. 그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어떤 것으로도 치유될 수 없는 인간의 근원적 욕망이 된다. 그런 배제당한 이들이 국가적 모순 상황 때문에 조국에 돌아갈 수 없다면 그 절망은 더 깊이 내면화되어 버린다.

언어마저 통하지 않아 봉쇄돼 버린 곳에서 이들의 정신세계는 어떤 신경증을 앓고 있지는 않을까. 물론 누군가는 항의할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도 70~80년대에 미국을 동경해 그곳으로 갔고 말이 통하지 않는 사회에서 황인종으로 최선을 다해 살았다.

그러니 한국에 와 있는 외노자들이 자기 능력에 맞는 일만 찾으려는 ‘이기적’ 난민 지위에 머무르려고 하는 건 역차별이라는 항의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백인 선망 의식이 역으로 비(非) 백인에 대한 타자화의 과정으로 너무 쉽게 몰아온 것은 아닐까에 대한 반성적 성찰이 전제돼야 한다는 점이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곳에서 문화적으로 익숙하지 않은 타자화된 정치공동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인류애적 시선에서 바라볼 수는 없는 것일까. 왜냐하면 타자화된 이들이야말로 신경증을 비롯한 정신질환에 가장 쉽게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자는 이 외국인 노동자들의 심리상태가 궁금했다. 물론 전수조사를 한 자료는 없지만 많은 이들이 어느 정도의 신경증에 휩싸여 있을 것이란 가설을 세워 보았다. 그들을 만날 수는 없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보내던 중 기자는 우연히 경기도 안산에 외국인노동자들을 위한 의료기관 빈센트의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가톨릭 성인 빈센트의 뜻을 받들어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에게 무료로 의료 인술을 펴는 곳이다.

지난해 이곳을 찾은 외노자를 포함한 빈자(貧者)의 수는 8000여 명이 넘었다. 정형외과와 내과를 찾는 외노자들이 많지만 일부는 정신적 질환을 이유로 빈센트의원의 정신과를 찾았다. 기자는 그 빈센트의원에 연락을 했고 그곳 수녀님의 도움으로 정신과 진료를 하는 - 봉사하는 - 정신과 전문의를 만나게 됐다.

정재석(49) 서울아이클리닉 원장이었다. 그는 흔쾌히 인터뷰에 응했다. 가톨릭 신자인 그는 선배의 권유로 우연히 빈센트의원을 알게 된 후 틈틈이 이곳을 찾아 동남아,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에서 온 외노자들의 정신과 치료를 해오고 있다. 13년째다.

정 원장은 서울대 의대를 다니던 레지던트 시절, 소아정신과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후 소아정신과 전문의로 일하면서 난독증이라는, 아주 익숙하지 않은 정신적 증상의 한 부분을 알게 된다. 읽어도 뜻을 알 수 없는 이 난독 현상과 치료법을 이해하기 위해 오랜 시간 외국 원서에 의존해 하나씩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기 시작했다.

한국에는 난독증을 가진 이들이 결코 적은 수가 아니라는 점도 알게 된다. 그는 아이들을 상대로 난독증 치료를 해오며 이 증상과 관련한 여러 권의 책도 펴냈다. 그리고 빈센트의원에서의 이타적 봉사.

기자는 그에게 사회적 타자들에게 취약한 폭력의 구조와 정신적 치료에서 나타나는 어려움들, 그리고 그 빈자들을 위한 이타적 희생에 대한 신(神)의 의미들을 묻고 싶었다. 지난 24일 그를 찾아 진료실이 있는 수원으로 향했다. 인터뷰를 시작한 건 그의 진료가 다 끝난 직후인 오후 6시30분이었다. 이미 창밖으로 어두워져 있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정재석 원장 (c)마인드포스트.

-소아청소년 정신건강에 관심을 가지게 된 배경이 있었습니까.

“서울대 레지던트였을 때 정신과에서도 세부전공으로 나뉘어져요. 내과의 경우 심장내과가 있듯이 정신과도 노인내과, 소아정신과 등이 있어요. 전 전공을 소아정신과로 택한 거죠. 선택 이유는 자폐증을 하고 싶었어요.”

-왜 그랬습니까.

“예를 들어서 물어요. 넌 왜 암을 치료하는 내과 의사가 되려 하냐고. 그건 난공불락이니까. 병 중에 제일 사람 많이 죽이고 제일 큰 괴물이 암이니까 암한테 덤벼드는 거구요. 정신과 의사에게 정신분열병이 괴물이죠. 소아는 거대한 자폐증이 의사한테 적이죠. 좀 큰 놈하고 붙고 싶었죠(웃음). 그때는 젊은 패기에 자폐증을 정복하겠다 그런 생각을 했어요.”

-정복했습니까.

“전혀. 알다시피(웃음).”

-난독증이 단순히 글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그 범주에 포함됩니까.

“아니요. 글을 소리로 바꾸는 과정과 바뀐 소리를 이해하는 과정으로 나뉘는데 글을 소리로 바꾸는 과정이 안 되는 사람이 난독증이죠. 읽는 자체가 안 되는 이들도 난독증이고요.

글을 모르는 사람이 난독증이 더 가까워요. 글을 아는데 이해를 못하는 사람은 이해 부족이지 난독증은 아닌 거죠. 물론 난독증은 잘 못 읽으면 이해도 당연히 못하겠지만 읽어주면 이해를 잘 해요. 왜냐하면 읽는 게 안 돼도 이해력 지능은 살아 있으니까.”

-기자 역시 사람들 말을 못 알아들을 때가 많습니다. 이것도 난독증에 해당됩니까.

“말을 못 알아들는 건 난독증과 거리가 멀죠. 말도 잘하고 사람 말도 잘 알아듣는데 이상하게 읽고 쓰는 것이 안 되는, 이상하게 읽기 쓰기에만 약점이 국한된 경우를 난독증이라 하니까요. 말하기 듣기까지는 보통 정상이죠.”

-난독증하고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와 동반되는 경우가 흔하다고 합니다. 부모의 경우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요.

“우리가 잘못 접근하는 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그 둘을 인과 관계로 묶는 거예요. 집중을 못해서 글을 못 배우나 보다라는 거죠. 또 하나는 글을 모르니까 재미가 없어서 집중을 못하나 보다 하는데 이 둘은 인과관계가 없어요.

ADHD 따로, 난독증 따로 있는 거죠. 따로 취급해야지 집중력 치료한다고 난독증 결코 좋아지지 않고 난독증 치유한다고 ADHD 좋아지지 않아요. 그건 아주 별개의 병이죠. 손가락의 병과 발가락의 병처럼 둘이 인과 관계가 있는 병으로 보는 오류를 범하는 거죠. 사람들은 집중을 못해서 글을 못 읽는 것으로 오해한단 말이에요.”

-레오나르도 다빈치, 에디슨, 처칠, 아인슈타인 들이 난독증 환자였다고 합니다. 이들은 천재들이지만 모든 난독증 환자들이 이 같은 천재가 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물론이죠. 천재니까 사람들이 위인으로 기억하는 거죠. 난독증 있어도 할 거 다하니까 천재라는 거죠. 그런데 아인슈타인도 처칠도 난독증 아니었어요. 그게 다 잘못된 얘기예요.

저는 한 신문에 쓴 ‘교사를 위한 난독증 이야기’에 아인슈타인이 난독증이 아닌 이유 12가지를 조목조목 댔어요. 아인슈타인은 초등학교 1학년 때 라틴어하고 독일어하고 만점 받았어요. 그런 이유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 이유를 댔죠.

아인슈타인은 공부 잘했어요. 자폐란 말도 있는데 그는 친구도 많았어요. 아인슈타인에 대해 ADHD니 난독증이니 온갖 걸 다 뒤집어씌우는데 아인슈타인은 아무 문제가 없어요.”

정재석 원장 (c)마인드포스트.

-처칠도 난독증 아닙니까.

“처칠은 난산증(難算症)이에요. 그는 노벨문학상을 받았어요. 엄청 글을 잘 쓰는 사람이에요. 2차대전사를 써서 노벨문학상을 받은 사람이에요. 얼마나 글을 잘 쓰는데요. 그런데 수학 때문에 대학 갈 때 낙제했어요.

2차대전 때 처칠이 이끄는 뉴질랜드 해군이 지도를 못 읽어서 낭떠러지인데 1만2천 명 상륙시켜가지고 몰살당했죠. 올라갈 수 없는 건데 처칠이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해서 상륙했다가 그렇게 된 거예요. 야, 이 사람 진짜로 감각이 없다 (생각했죠). 지도를 못 읽어서 부하들을 많이 죽였던 난산증이죠.

처칠 스스로가 수학은 나한테 끔찍했다고 말했는데 읽기 쓰기는 아주 잘했거든요. 난독증이 있다고 볼 수 있는 사람은 피카소 정도에요.”

-수학 부진아 지도프로그램 매스 리커버리를 번역했습니다. 번역한 주된 이유가 있습니까.

“다 맞물리는 거예요. 시작은 이탈리아 출신의 빈센치오 보르도(한국명 김하종) 신부님이 우리나라에 와서 성남에서 무료 급식소 ‘안나의집’에서 노숙자 급식 사업하고 난독증 알리기 사업을 했어요. 그 분도 난독증이에요.

이 분이 (난독증) 알리기 사업을 할 때는 대한민국에서 난독증은 완전히 불모지였어요. 소아정신의학과 의사들도 관심이 하나도 없었죠. 김 신부님이 이후 부모 자조모임을 만들었고 나한테 우연히 이 자조모임에 의학적 자문을 해 달라고 해서 부모들 질문에 답변을 인터넷에 달아줬어요.

제가 소아정신과 의사지만 난독증에 대해서 아는 게 전무했어요. 그래서 영어 책 찾아서 읽고 답을 달아주면서 우선은 제가 난독증에 대해 똑똑해지는 거예요. 두 번째는 환자가 날 찾아오죠. 저 사람은 많이 아나보다 생각하고 갈 데가 없으니까 찾아오죠.

나는 그때 자폐성하고 있었는데 부모들이 와서 아이 치료해달라고 하는데 (난독증에 관한) 황무지니까 처음에는 치료할 방법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난독증 치료 프로그램을 만들고 그걸 개량하고 개량해서 2014년에 ‘읽기 자신감’이라고 한국 최초의 난독증 프로그램을 출판했죠.

난독증 일 년 치료하면 거의 다 읽어요. 좋아져요. 난독증 환자의 60%는 난산증이에요. 그러니까 이 프로그램만으로는 안 되겠다. 그럼 수학은? 뭐 국어만 하고 수학은 나 몰라라 하면 안 될 거 같았죠.

공부도 하고 프로그램도 만들 겸 해서 외국 책들 번역하고 난독증에 적용하고 고칠 건 고치고 하면서 2018년 한국화된 ‘계산 자신감’ 네 권을 출판했어요. 그래서 매스 리커버리(math recovery)를 번역하고 또 그걸 개량해서 계산 자신감이라는 난산증 치료 프로그램도 만들고 했죠. 난독증 환자는 영어를 100% 못 해요. 영어 난독증 프로그램도 있는데 그걸 개발해서 치료하고 많이 쌓이면 출판하고 있죠.”

-우리는 왜 수학을 어려워하는 걸까요.

“두 가지인데 타고나기를 수(數)감각이 약한 뇌를 갖고 태어난 경우에요. 그리고 수감각이 조금 약한데 수감각을 강화할만한 성장 여건 환경이 있을 경우에요.

수학을 어려워하는 건 5, 6, 7세에 다 결정난다고 봐요. 초등학교 입학할 때 잘하는 애와 못하는 애가 벌써 3년 차이가 나서 들어오는 거예요. 미국에서는 3년의 갭을 가지고 초등학교 들어오니까 그 3년의 갭이 벌어지면 벌어졌지 줄어들지는 않는 거죠.”

-기자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칠판에 적힌 덧셈을 하지 못해 선생님에게 슬리퍼로 머리를 맞은 적이 있습니다. 이후 수학은 난공불락의 바벨탑처럼 보였습니다.

“불안하게 만들죠. 수학은 불안을 만들고 불안은 의욕을 떨어뜨리고 공부를 계속 안 하게 되는 거죠. 어떤 애들은 보면 수학을 엄청 못하는데 검사해보면 수감각이 멀쩡해요.

하면 잘 했을 애인데 교육 기회의 부족 때문에 수학에 쩔쩔매는 거죠. 수학은 고등학생 절반은 수학 못하는 애들은 하나도 없어요. 다만 중간에 교육 의지, 학습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에 수학을 포기하게 되고 나머지 절반은 생물학적·인지적으로 어려운 측면이 있죠.”

-난독증 아이들을 치료한 경험을 바탕으로 독자적 검사 도구를 만들었습니다. 학계가 이 도구를 이용하고 있습니까.

“소아정신과에서 사용하죠. 예를 들어 읽기 자신감 프로그램도 지금 6만 권 넘게 팔렸어요.”

-측정 도구가 잘못됐다는 항의는 들어오지 않습니까.

“소아정신과의 문제가 뭐냐면 ADHD나 자폐아는 많은데 학습장애 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교과서도 내가 쓰고 레지던트도 내가 가르치고 전문의 시험도 내가 내고 하니 나에 대해 디스할(제재할) 만큼 덤벼들 사람이 없어요.

이 분야를 공부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견제받지 않는 지식권력이라고요. 큰 문제가 있는 거예요. 나도 걱정이 돼요. 내가 잘못 읽고 잘못 이해하고 있는 점은 없을까 생각해요.

학계가 활성화되지 않아서 나를 견제하고 잘못됐다고 해 주는 얘기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요. 십몇 년 동안. 저변이 낮다보니까 견제 받지 못해서 나도 문제라고 생각해요.”

-초등학교 3학년 이전에 발견하면 치료할 수 있다고 했는데 어른의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른은 정확하게 못 읽는다면 정확하게 읽도록 치료할 수 있지만 정확하게 읽으나 느리게 읽는다면 그건 치료가 불가능하죠.”

정재석 원장 (c)마인드포스트.

-왜 그렇습니까.

“만 열 살이면 뇌가 닫히니까. 새로운 단어를 등록해주지 않으니까.”

-안산 빈센트의원을 알고 참여하게 된 계기가 있습니까.

“서울대 동문회에 내과 선생님 김동수 선생님이 계셨는데 그 분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예요. 제 선배인데 일요일 아침에도 병원에서 진료하고 그 다음에 열두 시에 나를 태워서 빈센트의원으로 운전해 가요.

싫어하는 저를 억지로 끌어서 그곳에 사람들 많이 심어놓고 빈센트를 떠나요. 그리고 다른 척박한 지역에 봉사하는 데로 가요. 그분의 인도를 받은 거죠. 큰 사명감 갖고 간 게 아니고 얼떨결에 끌려갔죠.”

-몇년도에 가신 겁니까.

“그쪽에서 내가 3년 전에 10년 표창 받았으니까. 비숍 대주교한데. 13년 정도 됐을 거예요. 10년 거기 근무하면 10주년 기념패를 수원대교구 교구장인 비숍이 줘요.”

-외국인 노동자의 경우 정신과 진료가 언어 소통의 문제로 힘겨울 것 같습니다.

“어려운 건 없어요. 힘든 사람은 확실히 힘들어요. 러시아는 통역이 있어요. 봉사 오는 남자 분이 통역을 해주니 좀 낫죠. 방글라데시인 같은 경우에는 자기도 영어를 잘 못하고 통역해줄 사람도 없으면 진짜 갑갑해요.

그럼 한국에 오래 있어서 한국말을 좀 하는 방글라데시인 친구가 와서 통역해주는 경우도 있어요. 통역이 정 안 되는 우크라이나인의 경우에는 구글 번역기 갖고 놓고 그도 치고 나도 치고 해요.

그럼 번역기에서 ‘하늘에서 마음이 떨어져’로 번역돼 있어요. 뭔 말이야? 하늘에서 마음에 떨어졌다고 하는데 소통이 번역기로 원활치 않은 게 많아요.”

-그럼 어떻게 해결하십니까.

“아무래도 말이 너무 안 통하면 증상 위주죠. 불면 있으면 불면, 불안 있으면 불안, 공황장애 등 증상 위주로 하지 증상의 배경이 되는 스트레스에 접근하기에는 어렵죠.”

-외국인이든, 우리 사회의 가난한 자들이든 이들이 가지는 보편적 고통은 어떤 게 있던가요.

“저는 오히려 외국인 젊은 노동자들에서 희망을 봐요. 주변에 친구도 있고 돈 벌어야 한다는 의지도 있어요. 그런데 한국 극빈자(極貧者)들은 오히려 희망이 더 없어요. 능력도 없고 희망도 없어서 더 어두움을 발견하는 게 한국의 가난한 사람들이에요.”

-절망하는 건가요?

“그렇죠. 결국에는 그 사람들한테는 진짜로 먹고 살 돈이 없는 문제가 굉장히 커요. 당장 먹고 사는 문제. 며칠씩 굶는 사람도 많고, 돈을 벌어들일 가능성도 갈수록 줄어드니까요.”

-외국인 노동자들은 한국이라는 낯선 문화에 대한 충격, 고향에 대한 뼈아픈 그리움 등이 병으로 발전해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홈시크(homesick·향수병) 있는 사람들 있죠. 고향 그리워하는 사람들이요. 누가 문제가 되냐면 요즘은 영상통화가 있어서 낫긴 한데 불법 체류자들이 힘들어요.

왜냐하면 ‘합법’들은 한 2년 있다 자기 나라에 한 번 들어갔다 나오거든요. 크리스마스에 자기 나라에 한 번 갔다 오면 나은데 불법들은 한 번 들어가면 못 들어오니까 들어갈 날이 기약이 없어요. 그 사람들 보면 집에 형제가 열 명에, 형제의 자식하면 부가로 먹여 살리는 사람들이 30명이나 되기도 해요.

자기 돈 번 걸로 다 먹고 사는데 돈 남는 것도 없고 자기가 돌아가면 다시 못 오잖아요. 돌아갈 수가 없는 사람들 중에는 상당히 돈을 모아서 돌아가서 자영업이라도 하겠다는 희망이 있는 사람은 괜찮은데 기약이 없는 사람들은 답답해하고 우울해하죠.”

-알제리 정신과 의사 프란츠 파농은 식민지 민중들이 겪는 신경증이 제국주의의 폭압적 사회 억압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선생님은 외국인 노동자들과 가난한 이들을 진료하면서 어떤 특징이 있던가요.

“내가 그냥 보는 우리나라의 환자랑 어떤 다른 특징이 있느냐. 첫째 젊으니까 아무래도 공황장애가 많아요. 따뜻한 나라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들은 공황장애가 많죠.

러시아나 우크라이나 등 추운 나라에서 온 사람들은 우울증이 많고요. 식민지 폭압을 얘기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신경증을 누가 많이 앓고 있냐면 조선시대부터 내려오는 며느리였어요.

며느리는 자기 표현이 금지됐어요. 그게 억압적인 전통 문화에서 많았어요. 요즘은 좀 더 자유로워지고 문명화되면서 신경증이 적어졌다고 보는 편이죠. 알제리의 경우 프랑스가 들어오면서 식민지 근대화는 되니까 인권 존중이나 사법의 근대화는 갖춰진 편이었죠.

그러면서 그런 전통문화가 깨지는 면도 있을 거고요. 파키스탄이나 중동에서 오면 우리나라가 더 열려 있는 곳으로 봐요. 자기 나라보다 열린 문화이니까 자기 표현이 가능해 오히려 신경증을 줄여주는 요소가 돼죠.

억압적인 전통 문화가 신경증을 유발하는 거죠. 옛날 시어머니에게 당하면 갑자기 실어증 걸려서 팔 마비되고 하는 건 억압적 전통문화의 소산이라고 봐야죠. 프랑스 식민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시대보다도 일제가 들어오면서 여성이 신경증에서 약간 해방됐을 거 같아요.”

-무슨 말씀입니까.

“식민지 근대화론이죠. 여성의 경우는 조선시대가 더 억압적이지 않았을까요. 이제는 여성도 머리도 매고 학교도 많이 다녔잖아요. 여성의 경우 오히려 신경증 완화라는 약간의 득도 있지 않았을까. 신경증은 주로 억압받는 여성들이 일으키는 거니까요.”

정재석 원장 (c)마인드포스트.

-남성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남성은 기본적으로 알코올이에요. 알코올중독이 조선시대에 많았고 식민지 이후에 알코올이 더 많았겠죠.”

-한국사회가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해 편견과 배제라는 폭력적 억압을 강요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맞죠. 우리나라 사람들은 미국사람보고 흑백 차별 심하다고 욕하지만 우리나라는 더 심하다고 봐야죠. 동남아에 대한 차별, 백인에 대한 선망은 더 지저분할 정도로 아직 심해요. 그런데 조금씩 좋아지고 있어요.

‘사장님 나빠요’는 훨씬 적어지고 있는 게 사실이에요. 물어보면 ‘사장님 나빠요’는 팍팍 줄어요. 왜? 사장님이 나쁘면 일자리를 바꿔요. 합법적으로 직업을 바꿀 수 있으니까요. 불법 노동자는 못 바꾸죠.

특히 종교가 있는 사장 중에는 인격적으로 대해주는 사람들이 많아요. 항상 세상은 나쁜 놈과 좋은 놈이 다 있는데 그래도 조금씩 좋아지고 있어요.”

-불법 체류 이주 노동자들의 정신적 상황은 어떻던가요.

“불법 체류자 정신적 상태는 대체로 필사적이죠. 어떤 아프리카 친구들은 내전으로 자기 가족 다 죽임 당하고 정권을 지금 반대파가 잡고 있어서 돌아갈 곳도 없는 불법자들도 꽤 있어요.

베네주엘라에서 온 사람들은 절망적인 사람도 있고요. 그 사람들은 한국사람이 되고 싶어 해요. 돌아갈 조국이 없으니까 기회가 되면 한국에 귀화해서 한국인이 되고 싶은 거죠. 그 사람들은 갈 데가 없어요. 돈 벌어서 돌아갈 조국이 없는 사람들이에요. 특히 내전이 심한 아프리카 같은 데는요.”

-제가 브라질에서 공부를 할 때 문화적 충격을 받고 병들었는데 혹시나 우리나라에서도 이같은 충격으로 신경증을 앓는 이들이 많지 않을까요.

“아뇨. 한국이라는 나라를 좋아해요. 한국은 자기 나라보다 낫죠. 우리나라 이주노동자들은 우리보다 더 잘 사는 나라에서 오지 않죠. 다 우리나라보다 못 사는 데서 와요. 그 사람들은 우리나라를 선망해요. 우리나라 좋아하고 영주권 주면 영주권도 신청할 거예요. 한국사람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2018년 한 해 53개국 출신 8천여 명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빈센트의원에서 무료 진료를 받았습니다. 이중 정신과 환자는 몇 명 정도 되던가요.

“통계를 안 챙겨봐서 모르겠는데 많지는 않아요. 많지 않는데 참 놀라운 게 특히 유교적인 국가, 베트남이라든지 그런 국가들 보면 우리나라 60년대랑 똑같이 정신과에 대한 편견이 심하고 정신과 약에 대해 두려워해요. 약물 의존에 대한 두려움을 엄청나게 갖고 있어요.

옛날 구닥다리 한국인이 했던 정신과에 대한 생각을 지금 갖고 있단 말이에요. 그 나라들은 우리보다 정신과 문턱이 훨씬 높아요.”

-인간은 가난하고 아플 때, 의지할 곳이 없을 때 극단적 선택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럼 심리를 가진 이들도 찾아오던가요.

“우울한 사람은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은 많죠. 가난한 사람들이 훨씬 자살을 많이 생각하죠.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건 배가 불러서 우울하다, 거지는 자살 안 한다고 하는데 절대 빈곤과 우울 문제는 밀접하게 관련돼 있어요.

많이 가난할수록 많이 우울하고 자살률이 훨씬 올라가요. 생계가 어려우면 우울할 틈이 없다고 하는데 잘못된 말이에요. 외국인 노동자들이 우울할 확률이 높죠. 당연히 문화적 적응의 문제가 있고, 언어가 안 되는 사람들은 훨씬 더 힘들어해요.

한국말 좀 하는 사람들은 훨씬 적응을 잘 하죠. 외국인 노동자에게는 한국어를 배울 수 있게 하는 지원이 있거나 만날 수 있는 같은 나라 동료들이 있으면 훨씬 적응을 잘 하죠. 그게 없으면 힘들어요.”

-단순히 약물을 제공하는 것으로 외국인 노동자의 심리적 고통을 완화되지는 않을 거 같습니다.

“그렇죠. 어림없죠. 한국어 서비스가 있고 누가 일터로 찾아가서 고용주와의 커뮤니케이션하기. 그러니까 약을 주는 것보다 직무배치가 힘들지 않느냐 물어보고 해결해주는 게 더 중요하죠.

누군가 공장을 찾아가줘야 돼요. 가서 거기서 처리하는 게 가장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죠. 이 같은 자원봉사는 공적 영역보다는 민간 영역에서 해야죠. 나라에서 불법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심리지원을 해 줄 수 없는 일 아닙니까.”

-하느님을 사랑하는 게 가난한 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네. 가장 어려운 자한테 하는 것이 나한테 하는 것이니라. 틀림없죠.”

-좋아하는 성경 구절이 있습니까.

“갑자기 생각이 (웃음)”

정재석 원장 (c)마인드포스트.

-예수님은 가난한 이웃을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자본주의 체제에서 사랑은 ‘교환가치’만을 가집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종교가 타락했다? 돈이 신(神)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까 그렇게 교환되죠. 문제죠. 문제지만 나 또한 그런 타락에서 자유로운지 모르겠네요.

사실은 부자가 천국 가는 건 낙타가 바늘귀를 들어가는 것과 같다고 하는데 더 도와줄 수 있는데 내 가족, 내 편안함을 챙기는 게 더 많지 않은가 싶죠.”

-인간은 이기적이면서 동시에 이타적이기도 합니다. 선생님이 보기에 인간은 어떤 존재 같습니까.

“가장 이기적인 자가 가장 이타적인 존재고 가장 이타적인 자가 가장 이기적인 존재다. 그러니까 어디 가도 남에게 이타적으로 잘 해 주면 결국에 자기한테 돌아와서 이롭다고 생각해요.

이타적으로 보는 게 결국에는 자기 자신에게 남는 장사다. 절대 손해 보지 않는다는 거죠. 자기 양심에도 그렇고 나중에 타인의 평판에서도 그렇고요. 역으로 한 사람 한 사람 만날 때마다 손해 안 보려고 그러면 결국은 자기가 손해를 봐요.”

-우리 사회의 기독교인들이 소금과 빛이 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세상으로부터 염려와 걱정을 받고 있습니다. 이는 누구의 잘못일까요.

“개신교가 특히 그렇죠. 이는 자본주의의 잘못이죠. 돈이 최고의 가치가 됐으니까요. 내 환자 중에도 개신교를 엄청 믿었는데 교회의 타락 때문에 성당(가톨릭)으로 바꾸겠다고 해요.

아니 종교개혁을 해서 개신교가 됐는데 더 타락한 이 상황은 뭐냐. 적폐세력이 개혁세력이 되고 개혁세력이 적폐세력이 됐어요. 신(神)하고 종교를 믿는 무리들하고, 종교와 관련된 제도를 따로 봐야죠.

제도가 타락했다고 신이 타락한 거 아니지 않느냐. 목사들이 타락했지 하느님이 타락한 거 아니지 않습니까.”

-선생님은 가난하고 낮은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어디에 있던가요.

“마음에 있죠(웃음). 내가 손해 보면서 어려운 사람 도와주고 그럴 때 잠깐 하느님을 접하는 순간이죠. 늘 접할 수는 없는 같아요.”

-종교적 맹신으로 조현병에 접근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합니까.

“종교적인 맹신을 가진 사람이 조현병 환자들이 종교적 망상이 많아요. 종교적 망상을 이해 못하고 팩트로 이해하는 문제가 생겨요. 그 다음에 우리가 하는 말이 정신과 의사도 신이 내린 거고, 약도 신이 내린 거고, 입원병실도 하느님이 만드신 거라고 해요.

유명한 얘기 있잖아요. 물에 빠진 사람이 헬기가 왔는데 거부하고 배가 왔는데도 거부하고 하느님이 날 구해줄 거다 기다리다가 물에 빠져 죽는 사람이 있잖아요. 그가 천당에 가서 왜 안 구해주셨어요 하니까 하느님이 내가 너 구하려고 배도 보내주고 헬기도 보내줬는데라고 하는 거예요.

내가 널 구하려고 정신과 의사도 보내주고 약도 보내주고 했는데 왜 날 거부하고 나만 찾았냐. 맹신하면 하느님과의 직접적 교류만 치료로 생각하지 말고 정신과 의사도 약물도 하느님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치료를 받았으면 좋겠어요.”

-종교망상을 많이 보셨습니까. 예를 하나 드신다면요.

“많죠. 올 12월에 휴거, 세계종말이 온다는 거죠. 자기가 신의 아들이고 재림 예수고 그런 사람도 있고.”

-예수님은 아이와 같은 마음이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직접 아이들의 정신세계를 오래 체험해 오신 분으로써 아이들의 어떤 부분들이 성(聖)스럽다고 느껴지던가요.

“난 그건 좀 반대하는데. 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이 천국에 갈 자격이 있다는 말은 맞는데 진짜 가치 있는 건 걔네들은 그것밖에 모른다는 거예요. (세상에) 물들기 이전인 거죠.

물이 들어도 아이처럼 사는 방식과 탐욕스럽게 사는 방식이 둘 다 주어졌는데도 아이처럼 살 수 있는 사람이 정말 괜찮은 존재죠. 아이들에게는 선택지가 이것밖에 없으니까요. 진짜로 아름다운 거는 선택지가 있는데도 아이와 같은 상태를 유지하는 거면 훌륭하죠.”

-어리석은 것도 아이의 마음입니까.

“아이한테는 어리석음조차도 논하지 않아야죠. 왜냐하면 선택지가 없으니까. 아이들한테는 자신밖에 모른단 말이에요. 먹을 게 있으면 엄마가 먹기 전에 다 먹어버린다는 거예요. 그걸 이기적이라고 말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내 행위가 엄마한테 피해를 준다는 데 대한 계산이 없으니까요. 이건 이기적 행위라기보다는 뭣도 모르는 행위인 거죠. 그런데 어른이 그렇게 하면 남한테 피해를 주는 걸 알고도 하니까 이기적인 행위죠. 다르죠.”

-판단의 영역이 커질수록 어른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거네요.

“그래서 이기적이고 어리석은 거죠. 애들이 자기 엄마 먹는 걸 다 뺏어먹어 버리는 건 어리석다고 보기는 힘들죠.”

-정신장애인이 종교망상에 많이 빠집니다. 이걸 어떻게 치료해야 할까요.

“종교망상이라기보다는 조현병이라는 병을 관리하려는 마음이 있어야죠. 조현병 치료는 80%가 약이고 20%가 심리적 치료나 주변 사람의 힘이에요. 우울증은 약이 50%로 본다면 그것보다 조현병은 훨씬 더 약이 차지하는 비율이 큰 병이에요. 약 없이는 금식기도 한다고 될 일이 아니죠.”

정재석 원장 (c)마인드포스트.

-정신장애인이 치유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편견 없는 세상이겠죠. 편견이 생기지 않도록 노력하는 분위기가 필요하죠. 정신장애인은 병에 죽는 게 아니라 편견에 죽는 거예요.”

-예수님은 가장 천하고 낮은 자리에서 오셨습니다. 정신장애인은 3등 시민으로 가장 천하고 낮은 자리에 있습니다. 정신장애인은 어떻게 치유되고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같이 살아야죠. 그러니까 그 말은 정신장애인은 위험하다, 분리를 해서 살아야 된다, 혹은 병원이나 치료시설에 가는 게 아니라 되도록 지역사회에 복귀해서 자기 능력에 맞게 살아가야죠.

그런 사회복귀 시설이 우리나라가 아직 잘 안 돼 있죠. 가족과 함께 살아야죠. 그런 사회복귀시설이 우리나라가 잘 안 돼 있죠. 당사자는 온전히 가족의 책임이고 직업도 얻기가 힘들고 배려받지 못해요. 갈 길이 멀죠.”

-이주 노동자 치료를 하면서 어떨 때 가장 가슴이 아프십니까

“제일 힘든 점 중 하나가 자살 사례가 그래요. 그리고 하나는 파키스탄 사람인데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한국으로 왔어요. 지금 애가 여섯 살인데 태어난 것도 자기가 못 봤다고 그래요. 안타깝죠. 불법체류자니까 못 가는 거죠. 동영상으로 보지만 만져볼 수는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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