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못버리는 사람들...저장강박장애 '호더스(hoarders) 증후군'
죽어도 못버리는 사람들...저장강박장애 '호더스(hoarders) 증후군'
  • 배주희 기자
  • 승인 2019.10.31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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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집에는 비밀의 방이 있다. 일명 '드레스룸'이라고 칭하는, 하지만 실제로 사용하지 못하는 방이 있는 것이다. 누구도 그곳에서 자거나 밥을 먹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기자조차도 그곳이 너무 더러워서 오래 머물지 못하고 필요한 옷을 꺼내서 바로 나와야 하는 실제로는 그저 창고 같은 방이다. 그 곳에는 옷가지들과 가방, 악세사리 및 잡동사니들이 어지럽게 뒹굴어 다니고 쌓여 있다. 사용 빈도가 1년에 두 번 정도 되는 옷들이 옷걸이에 이미 빼곡하게 걸려 있고 공간이 없어서 걸어두지 못하는 옷들은 방바닥을 모두 차지하고 있다. 잘 사용하지 않는 악세서리, 유통기간이 이미 지난 화장품들, 예전부터 사 모은 잘 들지 않는 가방들도 모두 이 방에 아무렇게나 어질러져 놓여있다.

가족들과의 다툼도 잦아졌다. 가족들은 그 방을 정리하기 위해서 기자에게 많은 물건들을 "버려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기자는 그 말을 들은 순간 갑자기 심장이 요동을 치고 심하게 불안해지고 '극도의 두려움'까지 느꼈다. 모든 것을 걸고 저 물건들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치워도 '내가 치운다' 며 정리를 계속 미루었다. 보다못한 가족이 기자가 집에 없을 때 물건들을 버리고 정돈했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 기자는 순간 말 그대로 '죽을 것만 같은' 숨막히는 감정을 느꼈다. 다음에 꼭 필요할 때 찾아서 쓸 수도 있는 데 그걸 '다른 이가 마음대로 버렸다는 것에 대한 원망'과 '몸의 일부가 잘려나가는 공포'를 느꼈다.

이러한 심리는 전형적인 저장강박장애의 사례다. 저장강박증(compulsive hoarding syndrome)은 물건에 대한 사용 여부와는 관계없이 버리지 못하고 일단 저장해 두는 강박장애의 일환으로, 습관적인 절약 또는 취미로 수집하는 것과는 별개로 심각한 증세가 보일 경우 치료가 절실한 정신질환이다.

앉을 수 있는 소파를 빼고는 발 딛을 틈도 없는 집에서 수많은 물건들을 쌓아놓고 살고 있는 저장강박증 호더들.(c)indiatoday.com
앉을 수 있는 소파를 빼고는 발 딛을 틈도 없는 집에서 수많은 물건들을 쌓아놓고 살고 있는 저장강박증 호더들.(c)indiatoday.com

저장강박증 당사자들을 '호더(hoader)'라고 부르는 데 호더들은 저장해 놓은 물건에 둘러쌓여 있을 때 안락함과 안전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그 물건을 건드렸을 때 자신에게 해를 입히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아 다른 사람을 기피하는 성향이 있다.

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실수에 대한 두려움이 크기 때문에 의사 결정을 회피하게 되고 결국 저장 행동을 계속해서 반복하게 된다.

저장강박증의 원인은 정확히 규명된 것이 없지만 크게 두 가지로 생각될 수 있다. 뇌의 활성화에 대한 능력 상실과 우울증과 불안한 정서에 동반되는 강박장애다. 가치를 판단하는 능력과 의사결정 능력이 손상됐기 때문에 물건이 필요한지, 버려야 하는지 가치평가를 내리지 못해 일단 저장해 두는 경우를 저장강박으로 보는 것이 의학계의 주된 입장이다.

저장강박은 단순한 나태함이 아닌 뇌의 호르몬의 문제이다.(c)http://www.aistudy.com/physiology/brain/frontal_lobe.htm
저장강박은 단순한 나태함이 아닌 뇌의 기능저하 문제이다.(c)http://www.aistudy.com/physiology/brain/frontal_lobe.htm

이는 의사결정 능력과 행동에 대한 계획을 담당하는 전두엽 부위가 제 기능을 못할 때 이런 증상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여기서 건강문제, 스트레스 문제가 뇌전두엽 부분에 이상을 줄 수 있으므로 근본적인 원인이 될 수 있다. 또한 전두엽이 제 기능을 해도 시상하부 중추에 존재하는 신경전달 물질 중 하나인 세로토닌의 부족도 저장강박증과 연관이 있을 수 있다.

유아기의 애착관계 형성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저장강박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c)goodtherapy.org
유아기의 애착관계 형성이 잘 이루어지지 않으면 저장강박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c)goodtherapy.org

정신적 문제로 시작되는 원인을 살펴보면 호더들은 유아기 시절 주변의 관계인들로부터 충분한 사랑과 인정을 못 받았을 경우 이를 심리적으로 보상하기 위해 물건에게 과도한 애착을 가지게 된다.

이는 유아들이 자신의 물건에 타인의 접촉을 거부하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또 다른 경우에는 상실 또는 외상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우울증으로 발전하여 그 아픔을 보상하려는 심리로부터 만족감을 느끼고 강박증 증상을 가지게 된다.

집을 쓰레기 더미로 만들어 놓고 그것에 만족감을 느끼며 웃고 있는 호더.(c)hellocaremail.com.au
집을 쓰레기 더미로 만들어 놓고 그것에 만족감을 느끼며 웃고 있는 호더.(c)hellocaremail.com.au

그래서 그 트라우마로 인해 물건을 쌓아두는 행위 즉 '저장'로부터 안정감을 느낀다. 추억이 담긴 물건, 구하기 힘든 수집품, 손톱 등을 저장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아내가 '남편의 시신'을 집에 저장한 사례가 있었다.

주목해야 할 점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생각으로 언젠가는 쓸모가 있을 것이라고 단정 지으면서 물건을 저장하고, 저장을 통해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준비되어있다고 안심하면서 잘못된 패턴에 빠지기 쉽다는 점이다. 이러한 안일한 생각이 저장강박증의 출발선이 되기도 한다.

정돈을 못하고 '어지르는 사람'의 심리를 분석한 책.(c)잡동사니 증후군
정돈을 못하고 '어지르는 사람'의 심리를 분석한 책.

실제로 세계 인구통계의 2~5%가 저장장애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저장강박 증상 사례를 연구한 마이크 넬슨에 따르면 설문응답자 879명 중 51%가 자신의 강박증에 대해 위험성을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넬슨은 "그에 맞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마이크 넬슨의 『잡동사니 증후군』, 큰나무, 2011, p.13 참고).

중요한 점은 강박증을 앓고 있는 실제 환자들이 모으는 것이 무용하고 저급한 점을 제외하면 일반적인 특정 물건을 모으는 우리의 평상 모습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즉 어느 누구나 저장강박증에 쉽게 도달할 수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위기의식을 가지고 원인과 치료법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저장을 하면서 안도감을 느끼는 호더 증후군(c)slideshare.com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저장을 하면서 안도감을 느끼는 호더 증후군.(c)slideshare.com

저장강박증의 치료의 핵심적인 부분은 바로 '환자가 문제에 대해 인식하고 의지를 갖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다른 강박장애보다 치료가 쉽지만은 않은데 그러한 부분에서 약물치료보다는 '심리적으로 접근하는 상담치료'가 더 효과적이다.

특히 정보처리 능력 부족이나 잘못된 집착은 과거의 심리적인 요인이나 트라우마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인지 행동치료'가 효과가 높다.

저장강박증 즉 호더스 증후군은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이므로 사회와 대중의 관심이 절실하다. 또 호더들이 자신들의 심각성과 인간관계에서 안정을 찾고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끔 지지해 마음을 다스리도록 도와줘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는 저장강박 당사자들이 단순히 '정리에 게으른 사람들'이 아니고 '심각한 정신질환'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물건들을 '안 버리는 것'이 아니라 '못 버리는' 심리도 인정해 줘야 한다.

그래서 그들의 '금방 놓아지지 않는 것들'에 대해 '그것이 그 순간 전부라고 느껴서 붙들고 있는 감정'을 충분히 이해해 주고 갈등이 없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모색해야 할 것이다.

다음은 저장강박증 당사자들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호더스'에 관한 영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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