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드프라이드]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매드 프라이드 서울 자원활동가 후기
[매드프라이드]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매드 프라이드 서울 자원활동가 후기
  • 임대륜 기자
  • 승인 2019.10.31 17:1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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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매드프라이드 (c) 임대륜
제1회 매드프라이드 (c)임대륜

구빈원에서 광인 수용소로, 광인 수용소에서 정신병원으로 정신질환자를 관리하는 시스템은 차츰 현대화되어갔다. 정신질환자들에게 감금과 폭행 등의 비인간적 대우를 하던 시기도 있었지만, 정신질환자의 인권 역시 존중되어야 마땅하다는 주장이 조명받으며 과거의 비인간적 대우는 차츰 사라진다. 그리고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의 당사자로서의 목소리도 차츰 커져갔다.

대한민국에서도 정신장애인 당사자 운동은 꾸준히 이어져왔다. 정신장애 관련 행사에서 목소리 내기, 국회 앞에서 집회를 하거나 국회에 의견서 제출하기, 국가인권위원회와 소통하기, 정신보건법에 대해 헌법 소원하기, 정신장애인 인권 선언 등의 운동이 있었다.

정신장애인 자조 모임 및 재능 개발 모임을 하는 한편, 정신장애인 당사자 포럼이나 정신장애인을 주제로 한 강연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다양한 활동과 맥락을 공유하며 새롭게 등장한 것이 바로 ‘매드 프라이드’다. ‘매드 프라이드 서울’은 지난 26일 세종로 광장과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행사다. 1993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이래 전 세계로 확산돼온 매드 프라이드는 이번에 2019년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열린 행사다.

매드 프라이드는 정신장애 당사자, 정신의료 생존자, 정신건강 서비스 이용자, 그리고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미친’ 혹은 ‘광기 어린’ 정체성에 자부심을 느껴야 한다는 대중 운동(mass movement)을 말한다. 원래 명칭은 ‘정신질환 생존자 자부심의 날(psychiatric survivor pride day)’이라고 한다.

행사의 취지가 의미 있게 여겨졌고, 현 시점에 대한민국에서 매드 프라이드 서울이 등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겨졌기에 매드 프라이드 서울에 일반 참가자로 부담없이 방문해볼까 했다. 하지만 자원활동가 모집 공고를 보고 마음을 바꿔 활동을 하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제1회 매드 프라이드 서울의 자원 활동가 ‘빛나누미’가 되었다.

매드 프라이드 서울 행사 당일, 아침 일찍 세종로 광장에 모였다. 오전에는 빛나누미(자원활동가)로서의 소양을 쌓기 위한 교육이 진행됐다.

정신과 의사 장창현 님이 정신장애인 당사자 이해와 의료 지원에 대해 강연했다. 뒤이어 공감 변호사 조미연 님이 인권 교육을 했다. 도착한 짐을 잠시 나르고 비건과 논비건 중 메뉴를 골라 점심식사를 하고, 잠시 후 본격적인 매드 프라이드 행사가 시작됐다.

​​제1회 매드프라이드 (c) 임대륜
​​제1회 매드프라이드 (c) 임대륜
​​​제1회 매드프라이드 (c) 임대륜​​
​​​제1회 매드프라이드 (c) 임대륜​​

빛나누미로서의 활동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식음료팀으로 배정을 받은 나는 먹을거리, 마실거리 부스를 오가며 매드 프라이드 참가자들에게 도시락과 차를 나눠줬다. 점심 도시락을 한참 나눠줄 땐 바빴지만 도시락이 모두 소진되고 나자 한가해졌다.

마실거리로 티마스터가 특별 준비한 ‘매드 프라이드 서울’ 차에 대해서만 안내를 하면 됐기 때문이다. 식음료팀 팀원은 모두 5명이었다. 번갈아가며 화장실에 다녀오거나 부스를 둘러보거나 공연을 관람할 수 있었다.

​제1회 매드프라이드 (c) 임대륜
​제1회 매드프라이드 (c) 임대륜

물론 부스에서 빛나누미로 활동하느라 나는 나비 플래시몹에 참가하지는 못했다. 모두가 각자의 개성을 안고 비슷한 동작을 하며 연대감과 해방감을 확인하는 시간이었으리라 짐작한다. 플래시몹 연습 과정에 동참해 본 소감으로는 그렇다.

'거리를 나온 하얀 방' 연극 공연도 주목할 만했다. 나는 지난 9월 서울 혁신파크 미래청 다목적홀에서 이미 이 공연을 보았기 때문에 매드 프라이드 서울 행사 당일에는 보러 가지 않고 빛나누미 활동에 집중했다.  '거리를 나온 하얀 방'은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경험과 욕구가 담긴 당사자에 의한 연극이어서 애정을 느꼈다.

​​제1회 매드프라이드 (c) 임대륜
​​제1회 매드프라이드 (c) 임대륜

식음료팀으로 배정 받아 활동을 하기로 했지만 매드 퍼레이드가 있을 때는 팀원 한 명만 자리를 지키고 나머지 네 명은 매드 퍼레이드에 동참했다.

나는 ‘우리는 지금 여기 있다’라고 쓰여진 거울 오브제를 밀며 행진을 했다. 병원에서나 보던 환자 침대가 도심으로 등장했다. 일상에서 보이지 않는 곳으로 격리되어 오던 존재들이 존재감을 드러냈다.

정신장애인과 조력자들이 직접 적극적으로 침대를 밀었다. 더 이상 수동적으로 휘둘리는 존재가 아니었다. 이탈리아 정신 보건 개혁의 상징물로 통하는 푸른 목마 마르코 까발로(Marco Cavallo)도 위용을 드러냈다.

예술적인 장식을 들거나 피켓을 들은 사람들, 주최 측, 빛나누미, 정신장애 당사자, 조력자, 연대하러 온 사람들 모두가 행진을 했다. 앞서 말했듯 ‘우리는 지금 여기 있다’고 쓰여진 거울 오브제도 행진을 함께 했다.

​​제1회 매드프라이드 마르코 까발로 (c) 임대륜​
​​제1회 매드프라이드 마르코 까발로 (c) 임대륜​

매드 퍼레이드 후에는 매드 스테이지가 펼쳐졌다. 팝핀, 힙합 싸이퍼, POP, 재즈 연주까지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준비했다고 한다. 힙합 싸이퍼, 박천혜웅, 강상수, 트루베르의 무대 중 나는 시각장애인 재즈 피아니스트 강상수 님의 공연만 기회를 얻어 들어볼 수 있었다. 친숙한 영화 OST부터 클래식까지 다채로운 곡을 연주했다. 선율이 아름답고 감동적이었다.

다시 부스로 돌아와 빛나누미 활동을 이어갔다. 공연을 했던 강상수 님도 마실거리 부스로 찾아와 짧지만 반가운 인사를 나눴다.

마실거리, 먹을거리 외에 안티카, 빛나누미 쉼터, 프레스, 의료지원, 법률 상담, 안내로 이루어진 도움 부스가 참여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도움부스 말고도 창작 부스가 있는데, 동광임파워먼트센터, 정신장애동료지원센터, 한마음의 집, 마인드포스트, 부산경남울산 정신재활시설협회, 소화누리 틈새미술관, 천둥과번개 문학회, 브솔시냇가가 그것들이다.

작품 전시를 하기도 했고 단체의 활동을 대화를 통해 소개하기도 했으며 가벼운 간식이나 선물을 나눠주기도 했다. 정신 보건 관련 서명도 받고 있었다.

​​​제1회 매드프라이드 (c) 임대륜​​
​​​제1회 매드프라이드 (c) 임대륜​​

그 외 부스로는 참여 부스, 인권 부스로 아노스예술교육사회적협동조합, 청주 정신건강센터, 퀴어 굿즈 라온, 서울인권영화제에서 왔다고 한다. 서울인권영화제 부스 앞에 있던 무지개 깃발이 인상적이었다. 퀴어 굿즈 라온을 보니 성소수자 정신 장애인이라는 교집합 정체성을 가진 존재들이 생각났다. 혹은 성소수자들도 소수자로서의 감수성을 가지고 정신장애인들과 연대하려 한다는 느낌을 받아 기뻤다.

매드 프라이드 서울 참가자들 덕택에 축제의 장은 활기를 띠었다. 간혹 세종로 광장까지 들어온 근처 다른 광화문 집회 참가자들이 있었는데 다행히 별다른 충돌은 없었던 것으로 안다.

어둠이 내리자 부스는 철수하고 매드 나이트가 시작되었다. 비건, 논비건 중에 선택을 한 도시락을 함께 먹었다. ‘미친 플레이리스트’에 오른 음악을 들었다. 몇몇 곡들은 들어봤기에 익숙했다.

적당히 쌀쌀한 광화문의 가을 날씨에 음악이 주는 감성이 더해지니 운치가 있었다. 낮에 자원 활동으로 바빴던 빛나누미들이 서로를 좀 더 소개하기도 하고 참여 동기를 듣기도 했다. 빈 백에도 앉아보고 세로토닌 존에서 여유를 즐겼다. 그러다 다시 짐을 나르고 해산했다.

매드 프라이드 서울 조직 위원회에서 빛나누미들을 넉넉하게 선발해 중간중간 휴식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었다. 제2회 매드 프라이드 서울 빛나누미로 참가할 것을 고려 중인 사람들은 이 증언을 참고했으면 좋겠다.

낮에 매드 프라이드 서울을 취재하러 온 언론사 카메라를 보고 대단히 기뻤다. 비장애인들에 비해 정신장애인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비율이 훨씬 낮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정신장애 병력을 가진 이들이 범죄를 저지르기만 하면 자극적으로 보도되는 현실이 대단히 부당하게 여겨졌다.

이러던 와중에 정신장애인들이 범죄가 아닌 일로 이슈화되다니! 당사자로서 내는 목소리가 주목 받게 되다니! 대단히 기뻤다. 범죄 이외의 정신 장애인의 다양한 사람의 모습들이 더 많이 가시화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제1회 매드프라이드 (c) 임대륜​
​​​제1회 매드프라이드 (c) 임대륜​

제1회 매드 프라이드 서울 빛나누미로서 자원 활동을 한 나는 조현병을 앓는 정신장애인 당사자다. 지난 2017년 4월 정신병원 입원 치료 과정에서 조현병 진단을 받았다. 1년 후 중증 정신장애인이라는 등록 장애인이 됐다. 차츰 정신장애인으로서 경험을 되돌아보게 됐고 새로운 욕망을 갖게 됐으며 정신장애인으로서의 정체성 의식과 연대 의식을 갖게 됐다.

암이나 백혈병, 당뇨병 등을 앓는 것은 슬프고, 아프고, 힘든 일이지 그것이 어찌 자긍심의 원천이 되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정신질환은 병일 뿐인데 그것이 어찌 자긍심의 원천이 되겠느냐고 되물을 수도 있다.

병을 수용하고 자신을 긍정하고 이런 나라도 괜찮다고 받아들이는 데서 자부심은 온다. 정신장애인에 대한 얼토당토 않은 사회적 낙인을 거부하며 때로는 무섭기도 하고 때로는 재미있기도 했던 환각이라는 독특한 경험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며 ‘미친’ 혹은 ‘광기 어린’ 정체성에 자부심을 갖게 됐다.

​​​제1회 매드프라이드 (c) 임대륜​​
​​​제1회 매드프라이드 (c) 임대륜​​

조현병이라는 평생 관리가 필요한 만성질환을 가졌기에 정신장애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더욱 분명해진 당사자 개인의 맥락에서 하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조현병에 걸리기 전 우울감을 호소하며 힘들어 하면서도 경제적인 사정 등으로 정신과 문턱을 넘지 못하던 십대 후반, 이십대 초반 시절의 나도 정신장애를 주제로 하는 다양한 정보를 얻고 문화 예술적인 감상을 할 수 있는 축제, 곧 매드 프라이드를 좋아했으리라 여겨진다.

평생동안 우리 국민 4명 중 1명은 정신질환을 경험한다. 나 혹은 가족, 친구, 직장 동료, 이웃 주민 중 누군가는 정신장애 경험자다. 이들을 몰이해하며 ‘예비 범죄자’로 몰아가는 처사는 너무도 부당하다.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목소리가 세상에 오롯이 닿을 필요가 있고, 이런 환경 속에서 매드 프라이드라는 축제의 장은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목소리를 들을 더없이 좋은 기회라고 본다. 정신장애인을 더 잘 이해하고 포용하는 세상을 꿈꾸며, 이런 사회를 만들어 가는데 도움이 된다고 믿는 매드 프라이드 서울 내년 2020년 개최를 기다린다.

제1회 매드프라이드 (c) 임대륜
제1회 매드프라이드 (c) 임대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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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유빈 2019-11-01 12:57:40
매드 프라이드 행사 못다녀왔는데 글로 접하게 되어 좋네요! 이런 움직임들로나마 당사자의 목소리가 전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