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과도한 의료화 피하고 개인의 사회적 권리기반 접근으로 자살 예방 정책 펼쳐야
[전문] 과도한 의료화 피하고 개인의 사회적 권리기반 접근으로 자살 예방 정책 펼쳐야
  • 송승연
  • 승인 2019.11.01 1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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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니우스 푸라스 유엔건강권특별보고관 성명서 발표
정신건강과 극단적 선택의 문제와 해결책 고민
시민사회와 정부 정책과의 협력이 자살률 낮춰
전인적이고 전체적 자원 지원 시 심리사회적 요인 해결돼
개인에게 문제와 해결책 맞추면 구조적 문제 해결 안 돼
자살의 80%가 저소득, 중산층 국가에서 발생
선별과 개입 접근법은 비효과적...문제 더 발생해
항우울제 처방 통한 자살예방정책은 늘 실패해와
구조적 폭력과 트라우마 해소하면 자살률 떨어져
정신건강은 보건영역이 아닌 커뮤니티케어 지원에 있어
© OHCHR 1996-2019
© OHCHR 1996-2019

2019년 세계 정신건강의 날

UN 도달 가능한 최고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누릴 권리에 대한 특별보고관의 공개 성명서 (2019.10.10.)

살기 좋은 삶을 위한 장벽 제거: 자살예방에 대한 권리기반 접근법

 

다이니우스 푸라스 박사(유엔 건강권 특별보고관)

번역: 송승연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박사 수료)

 

올해 '세계 정신건강의 날' 주제인 자살 예방에 대해 논평할 기회를 가지게 된 것에 환영을 표한다. 자살의 확산은 개개인뿐 아니라 전체 인구의 정신건강이 진지하게 다뤄져야 함을 의미한다. 즉 인권의 의무다.

한 사람의 자살은 개인, 가족, 지역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비극적인 상실이다. 누군가의 자살은 현저하게 어려운 상황에서 버텨온, 때로는 오랜 시간에 걸쳐 장렬하게 견뎌온 경이로운 삶을 대변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자살로 잃는 것은 엄청난 충격을 줄 수 있다.

때때로 많은 사람들은 자살을 유일한 탈출구로 보고 절망에 빠진 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하는 의문을 가진다. 각각의 자살은 복잡하고, 각각의 개별적인 행위에는 셀 수 없이 수많은 경로가 있지만 높은 자살률은 광범위한 관심을 필요로 하는 전 세계적 공중보건 문제다.

인구 수준 연구는 이용자 주도 조직을 포함하는 시민사회와 긴밀히 협력하는 정부 정책 및 사회 제도가 자살률을 현저히 낮출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권리기반 접근법(rights-based approach)은 현대 공중보건 접근법과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 정신건강 증진 및 자살 예방을 강화시킨다는 증거가 있다. 자살률의 전반적 감소는 극심한 빈곤의 축소, 양성 평등 확대, 대인 폭력의 감소, 아동 체벌 폐지 지향, 시민 공간과 대중의 신뢰 창출 등과 같은 세계적인 진전과 부합한다.

개인과 인구 전체, 특히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위해 전체론적(holistic) 지원을 제공하면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학대, 사회적 불평등, 차별과 같은 정신적 고통의 구조적이며 심리사회적인 결정 요인을 해결함으로써 건강권을 보장할 수 있다.

특정 개인에게서 문제와 해결책을 찾는 데 초점을 맞추면 삶을 살 수 없게 만드는 구조적 요인을 해결할 필요성이 모호해진다. 자살은 무엇보다 공중보건의 문제로서 전 세계적인 향정신성 약물의 처방 증대로는 해결될 수 없다.

자살률이 급격하게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개인의 뇌 속 화학물질을 목표로 하는 현존하는 접근법을 확대한다면 외로움과 무력감을 악화시키는 낙인과 사회적 배제의 악순환을 가속화시킬 위험이 있다. 우리는 건강하고 존중하며 신뢰하는 관계를 구축하고 지역사회의 연대를 강화하는 데 투자해 자살예방의 새로운 길을 추구해야 한다.

세계의 많은 국가에서 자살 생각, 자살 시도 또는 자살로 인해 사랑하는 누군가를 상실한 것 등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 포함되는가와 상관없이 자살에 대해 말하는 것은 여전히 낙인화된다. 이는 각 국가나 지역의 자살 건수를 정확하게 설명하기 어렵게 만든다.

가장 확실한 추정치에 따르면 매년 거의 백만 명의 사람들이 자살로 사망하며, 자살은 전 세계에서 사망원인의 15번째 위치를 차지하며 청소년들 사이에서 두 번째로 큰 사망의 원인이 되고 있다.

WHO(세계보건기구)의 최근 통계에 따르면 모든 자살의 약 80%가 저소득 및 중산층 국가에서 발생하고 있다. 이 국가들은 살충제에 의한 자가 음독으로 사망하는 자살 비중이 크다. 그러나 총기가 자살 시도에 더 많이 사용되는 고소득 국가의 인구 비율이 더 높기 때문에 평균 비율은 아니다.

과녁을 벗어난 선별검사 및 개인적 접근법의 규모 확대

고소득 국가들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자살로 사망한 사람들의 절반이 우울증 진단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우울증 외에 다른 정신질환을 진단받거나 마약, 알코올 중독, 트라우마 및 상실을 겪거나 직장이나 대인관계에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 사람들은 자살 위험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응해 일부에서는 정신적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식별하고 치료에 연결시키는 것을 증진하기 위해 광범위하고 의무적인 정신건강 스크리닝을 추진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선별검사가 자살 위험이 있는 사람들을 식별하고 그들이 자살하는 것을 예방할 수 있기에는 지원이 충분하지 않았다.

자살 시도의 상당수는 극심한 절망의 순간에 충동적으로 일어나며 계획되지 않는다. 전 인구를 대상으로 하는 정기적인 선별검사(screening)와 모니터링은 이러한 경우를 예방할 가능성이 낮다.

또한 '선별과 개입' 접근법은 현대 공중 보건 및 인권 원칙에 근거한 실천보다 비효과적인 실천(예를 들어 강제입원 및 과도한 항우울제의 사용)을 우선시하는 정책에 기여함으로써 또 다른 의원성(iatrogenic)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위험도 있다.

(자발적 폭력으로서 자살을 포함해) 폭력에 대한 개인의 성향을 확인하고 감시하고 예측하려는 노력은 식별된 사람들의 낙인화와 차별을 더욱 심화시킬 위험이 있다.

정신적 고통에 처한 사람들을 폭력의 잠재적 가해자로 묘사함으로써 해롭고 근거가 없는 믿음을 악화시키는 현상을 피하는 예방책을 강구해야 한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정서적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은 폭력의 피해자가 될 위험이 높으며 그들을 차별과 배제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 항우울제 처방이 자살을 예방하는 방법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비록 자살로 사망한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 진단을 받았고 항우울제도 많은 사람들이 중증 우울증을 극복하는데 도움을 주었지만, 지나친 의료화와 뇌를 타켓으로 하는 생의료적 개입에 대한 지나친 의존은 중요한 표적을 놓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울증과 자살이 화학적 불균형의 결과라는 잘못된 인식에 이끌려 추진되는 우울증 치료를 통한 자살예방의 최우선 정책은 증거기반 실천이 아니며 건강권을 준수하지도 않는다. 관련 연구에 의하면 개인의 우울증을 식별하고 생의료적 개입으로 약물 표적화(targeting)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면 자살 위험을 감소시키는 데에 실패한다고 알려졌다.

항우울제를 처방하고 자살 생각에 대한 질문과 같이 자주 사용되는 개인적 개입은 자살 위험을 감소시키지 않는다. 실제로 항우울제 처방, 자의 및 비자의 입원 등을 포함하는 특정 생의료적 개입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오히려 역효과를 초래하고 자살 위험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연구결과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

화학적 불균형(chemical imbalances)의 산물로서 우울증과 자살에 대응하는 것에서, 권력 불균형(power imbalances) 관점으로 정신적 고통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검토하는 방향으로의 긴급한 전환이 필요하다.

이것은 개입 목표를 개인과 개인의 뇌에서부터 관계와 건강, 웰빙(well being)의 결정요인으로 이동시키기 때문에 중요한 실천적 함의를 가진다.

여기에는 다양한 인구기반 접근법이 지원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총기 및 기타 살상 수단에 대한 접근 제한, 독성 살충제 가용성 규제, 공공장소에서의 안전 위험 관리, 전체 학교를 기반으로 하는 효율적인 개입으로 학교 내 괴롭힘에 대한 인식 증가 및 그에 대한 대처, 그리고 자살과 관련된 언론 보도 시 선정적인 보도를 피하는 것과 같은 방안들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인권을 보호하는 정책이 전체 인구의 정신건강과 웰빙을 실현하는 데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는 점이다.

권리기반 접근법을 향하여

자살과 정신적 고통은 지역 문화, 역사, 환경과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다. 예를 들어 원주민 집단의 자살률 증가를 분석한 한 연구는 식민지화 역사에서 비롯된 사회적 차별 및 건강 불균형이 자살률과 관련이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다양한 맥락과 문화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자살이 사회적 차원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경제적 박탈과 고립, 사회적 포용(social inclusion)의 부족, 보건의료 및 사회적 지원 서비스 접근을 막는 장벽(섹슈얼 및 생식건강 서비스에 대한 제한을 포함)은 자살률 증가와 관련이 있다.

가족 및 지역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시스템적인 문제들에서 발생하는 대인 폭력과 학대에 노출되어 있는 트라우마와 자살 사이에는 상당한 관계가 있다. 또한 정신건강에 대한 세계적 흐름에서 정신질환이 높은 '질병 부담(Burden of Disease)'을 가진다는 것은 아동 학대나 방임, 부정적인 어린 시절의 경험들이 포함되는 트라우마 및 고생들의 영향으로 인한 높은 부담으로도 설명될 수 있다.

정서적 고통을 의료화하지 않고 취약한 상황에 놓인 개인에게 권한을 주는(empower) 개입이 필요하다. 예방 전략은 고생에 대한 다양한 반응을 병리화해서 개인을 무력화(disempower)하고 사회적 배제와 낙인을 영속화 시키는 것보다는, 건강의 결정적 요인에 대한 대처와 사람의 생활 조건 개선을 우선시해야 한다.

구조적이며 대인적인 폭력(특히 성폭력 및 아동 학대와 방임)의 감소뿐만 아니라 이로 인해 야기되는 트라우마를 감소시키는 것은 자살의 본질적 원인을 해결하는 데 필수적이다.

자살에 대한 인권적 접근법은 정신건강에 대한 관심을 넘어 불평등, 주거 부재, 빈곤, 차별 등의 문제를 자살예방 전략의 핵심에 둔다. 평등, 아동권, 차별 철폐, 노동권, 환경권과 같은 인권을 강화하는 것에 투자하는 것은 건강권의 달성과 분리될 수 없다.

이러한 접근법에 따라 정부는 저소득층을 위한 주택 접근성, 아동 학대 예방 및 가족 지원, 양질의 신체적서비스와 정신건강서비스, 사회서비스 접근성을 강화하고 모든 사람의 건강을 막는 장벽의 부담을 줄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통치 체제의 구조와 정치적 담론 그 자체는 사회적 차원의 정신건강과 자살에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권위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이념과 정책은 개인과 지역사회, 국가 사이의 관계를 방해한다. 경직된 수직적 권력 구조 내에서 발생하는 신뢰의 침식과 권력의 남용은 사회의 정신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

이것은 관계의 질과 사회의 정서적 환경을 마비시키며 따라서 모든 환경(가족, 학교, 직장, 지역사회, 사회 전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자살을 포함한 다양한 형태의 폭력의 확산에 기여한다. 보다 더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사회이더라도 불평등이 증가하고 있는 곳에서는 이와 유사한 유해한 패턴을 볼 수 있다.

자살에 대한 권리기반 접근법의 핵심 요소로서 사회환경적 요소를 다루는 것이 중요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정신적 고통을 경험하며 자살은 정신적 고통에 대한 인간의 대응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이 계속해서 살아가기 위해서, 그리고 그들의 발전을 돕기 위한 필요한 기술을 구축하는데 필연적인 돌봄과 지원을 보장하기 위해서, 자살예방에 대한 권리기반 접근에서 자살에 대한 개인화된 대응은 필수적인 요소로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약물치료의 과도한 사용으로도 달성될 수 없으며 정신건강 시스템의 견고한 특징으로 여전히 존재하는 강제성 및 격리를 통해서도 달성될 수 없다. 그것은 지속적인 커뮤니티 케어(commnutity care)와 살고 일하고 배우고 놀고 있는 사람들에게 적절히 다가갈 수 있는 보다 튼튼한 지원 체계를 필요로 한다.

이러한 혁신의 대부분은 보건 영역에 존재하지 않고 우리가 살아가는 지역사회에 있다. 동료지원 단체, 동료위기 쉼터, 재향군인을 지원하는 이웃, 육아 지원, 교육 지원, 직업 훈련, 학교기반 통합 프로그램을 포함해 우리 주변부에 굉장히 많이 존재한다. 이러한 지역사회 지원의 즉각적인 확장이 필요하므로 이제는 주변부에서 벗어나 자살예방을 위한 권리기반 접근법의 중심에서 정당한 위치를 차지해야 한다.

보건 영역에서 개인의 자살을 다루는 것은 진단의 동질성이 아니라 그 사람의 복잡성으로 전환하고 거기에서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자살로 이어지는 트라우마와 축적된 절망을 예방하고 위기에 처한 사람들에게 깊은 영향을 끼치는 본질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보건 시스템 내에서의 대응은 너무 자주 당면한 위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그러한 절망의 복잡하고 장기적인 구축 과정이나 종종 요구되는 장기간의 회복에는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이것은 만병통치약의 허황된 추구에 인적, 재정적 자원을 낭비한 상상력의 체계적 실패다. 이는 불필요한 고통과 괴로움을 가했으며 수많은 생명을 희생시켰다. 비강제적이며 유연한 약물 처방, 대처 기술을 구축하는데 중점을 두면서 개인의 독특한 경험을 강조하는 개입은 훨씬 더 많은 가능성을 보여주며 우선시돼야 한다.

책무성(Accountability)은 자살에 대한 권리기반 접근법의 핵심 요소다. 수십 년 동안 자살 예방에 상당한 투자가 이루어졌지만 결과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우리는 이 실패에 대해 이해 관계자들에게 어떻게 책임을 묻고 있는가?

책무성은 미래의 투자와 정책이 과거의 실수로부터 교훈을 얻고 가장 지원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우리가 더 잘 할 수 있도록 명료하고 책임감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것을 요구한다. 책무성이 없다면 평소처럼 사업은 지속된다. 그러는 동안 지역사회에서의 서비스와 지원은 여전히 이루기 어렵다.

세계 정신건강의 날을 맞아 나는 국가가 과도한 의료화를 피하고 그 대신 현대 공중보건 원칙을 따르는 권리기반 접근법을 통해 자살을 예방하는 전략을 채택할 것을 권고한다.

이는 사회적 연결, 관용, 정의, 그리고 건강한 관계를 통해 자율성과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증진시키는 사회적 결정 요인을 다루는 데 초점을 맞춘다. 과거의 집단적 실패는 앞으로 나아가는 데 더 나은 역할을 하도록 우리의 촉매제가 되어야 한다.

 

다이니우스 푸라스 유엔 특별 보고관 (c) Narod.hr
다이니우스 푸라스 유엔 특별 보고관 (c) Narod.hr

저자 소개

다이니우스 푸라스(Dainius Pūras, 리투아니아) 박사는 정신건강 및 아동건강에 관하여 탁월한 전문지식을 갖춘 의사다. 2014년 8월 1일부터 UN 특별보고관 직책을 맡았다. 현재 리투아니아 빌뉴스대학의 인권모니터링연구소장이며, 공공정신건강 및 아동청소년 정신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출처(클릭): Removing obstacles to liveable lives: A rights-based approach to suicide preven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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