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의 연극 리뷰] '인정투쟁; 예술가들'...신체장애 연극을 정신장애인이 보고 리뷰하다
[당사자의 연극 리뷰] '인정투쟁; 예술가들'...신체장애 연극을 정신장애인이 보고 리뷰하다
  • 임대륜
  • 승인 2019.11.06 1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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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임을 증명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배우들
인정투쟁을 통해 예술가로 인정받고 기쁨과 슬픔 표현
'인정'은 상호적인 것...동시대에는 '경쟁'으로 변질돼

※  '인정투쟁; 예술가 편'에 대한 스포일러(Spoiler)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를 피하고 연극을 먼저 관람하고 싶으신 분은 나중에 글을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16일까지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는 연극 '인정투쟁; 예술가 편'이 무대에 올랐다. 입장료는 3만5000원. 하지만 복지카드가 있는 장애인은 1만 원에 입장할 수 있다.

'인정투쟁; 예술가 편'은 2017년 제8회 두산연강예술상 공연부문 수상자 이연주의 신작이다. 이연주는 '이반검열', '장애, 제3의 언어로 말하다', '상품백화점', '전화벨이 울린다' 등의 작품을 연출한 바 있다.

막이 오르자 빈 무대 중앙으로 사람이 타지 않은 휠체어가 등장한다. 이어 '어떤 사람이 지나가고 다른 사람이 그것을 바라본다면 그것으로 연극은 시작되기에 충분하다'는 영국 영화감독이자 연출가 피터 브룩의 글귀가 화면에 등장하고, 휠체어는 다시 퇴장한다.

윤복희의 '여러분'이 배경 음악으로 깔리고 배우들이 한 명씩 등장한다. 배우들은 모두 신체장애인들이다. 강보람, 백우람, 어선미가 휠체어를 타지 않은 장애인이고, 강희철, 김원영, 김지수, 하지성은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다. 특히 김원영은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희망 대신 욕망'의 저자이기도 한 변호사다.

'인정투쟁; 예술가 편'은 에필로그이자 프롤로그, 1막 나, 2막 너, 3막 그, 에필로그이자 프롤로그 이렇게 5단위로 구성돼 있다. 특별한 이름 없이 1막에서 '나'로 등장하던 배우들은 2막에서 '너'가 되고 3막에서 '그'가 된다.

무대에 조명이 켜지고 얼마 안 가 '예술가임을 증명하시오'라는 글씨가 무대에 떠오른다. 그때부터 배우들은 예술가로 인정받기 위한 몸부림을 피력한다.

연출은 한국예술인복지재단과 국립극단의 실제 홈페이지 무대를 띄우며 이 연극이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배우들은 자신이 예술가라고 자처하지만 자료가 없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쉽사리 예술계에 진입해 인정받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 처한 배우 '나'들이 '너'가 되어 2막이 시작된다. 2막 시작 전에 김춘수의 시 '꽃'을 들려준다. 모습이 등장하지 않고 들리기만 하는 목소리를 배우들은 선생님이라 부르며 선생님이 하는 것처럼 예술을 해보려 하지만 들리는 목소리는 자꾸 "다시"를 외친다.

다시 김춘수의 '꽃'을 목소리가 읊고 3막이 시작된다. '나'에서 '너'가 되었던 배우들은 3막에선 '그'가 된다.

내내 배우가 일곱 명이었는데 한 명이 옷을 벗고 무대 밖으로 나가 버린다. 얼마 안 가 남아있던 배우들은 예술가로 인정받는다. 2막에서 들렸던 목소리가 사라지고, 배우들의 말이 화면에 문자로 입력된다. 화면의 문자는 그들을 예술가라 부른다.

연극 시작부터 내내 배우들의 대사와 행동이 쌓여왔다. 무의미하고 부조리한 이야기가 아니었고 대신 예술을 중심에 두고 대사와 행동을 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어느 순간 그들이 예술가로 인정받은 것이라 생각한다. 그들의 인정 투쟁은 수확을 거뒀다.

공연을 하고 경력을 쌓던 배우들이 카페에 모여 자신들의 이야기를 나눈다. 이 공연은 봤는지, 저 공연은 봤는지. 아까 무대 밖으로 나갔던 배우가 다시 돌아왔는데 다른 배우들이 그에게 나가라고 한다. 계속 예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배우들의 체위가 낮아진다. 배우들이 쓰러진다. 관객들은 모두가 죽어버린 무대를 본다. 무대 위에서 죽는 것이 꿈이라더니 그들의 소원은 모두 이뤄진 것일까.

아까 쫓겨났던 다른 한 명의 배우가 무대에 들어온다. 맨 처음 그랬던 것처럼 헨델의 라르고가 들려 온다. "비겁하게 숨지 마. 살아서 증명해"라는 대사를 한다. 그동안 인정 투쟁을 해 온 이의 말에서 나온 중요한 대사 같았다. 다시 모든 배우들이 움직인다. 삶, 죽음, 무대를 이야기하며 기쁨과 슬픔을 표현한다.

위안이 되었던 건 다른 배우들이 예술가로 인정받기 직전에 무대 밖으로 나갔던 흰 옷을 입은 배우, 백우람이 다른 배우들과 같이 인사했다는 점이다. 중도 장애를 입고 학교나 직장을 그만두었던 사람들이 다른 곳에서 삶을 이어가다 다시 만나기도 한다는 생각이 그 배우를 보며 떠올랐다. 다시 함께 할 수도 있구나.

김슬기 드라마터그가 말하길 "본디 서구 사상사에서 '인정'은 상호적인 것, 즉 서로가 서로를 환대하고 화해하는 관계를 전제로 작동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동시대 일상에서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인정투쟁이란 말은 자기를 내세우는 것,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 성과로 평가받는 것으로 축소 해석되기 일쑤"라며 "이로 인해 끊임없는 피로를 불러일으키면서도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경쟁 기제 정도로 인식된다"고 그는 지적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인정투쟁; 예술가 편'이 풍자하고 표현하는 예술가의 인정 투쟁은 그 언어와 행동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인정투쟁; 예술가 편'은 매우 현대적인 작품이다. 연극에 관한 지식을 사용하며 연극 자체에 대해 말한다. 서사에 대한 지적도 하고 작품의 결말이나 갈등을 풀기 위해 사건을 일으키는 플롯 장치인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가 언급되기도 한다.

김원영 배우는 이 작품의 "시대 인식이 좁다", "왜 자꾸 느끼한 시(김춘수의 '꽃')에 목매느냐"고 지적한다. 그런 메타 인지에서 많은 이들이 재미를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신체장애인들이 배우로 등장해 낯설게 생각한 관객도 많을텐데 2007년 창단한 극단 '애인'은 중증 장애인을 중심으로 구성돼 계속 공연 활동을 해 왔다고 한다. 이 극단은 안티카와 함께 정신장애인들과 지지자들이 주목할 만한 단체로 보인다. 참고로 안티카는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예술로 세상의 편견을 바꿔가는 단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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