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은 다른 사람과 마음과 마음으로 연결되는 것…자신에게 무엇이 최선인지 사유해야”
“회복은 다른 사람과 마음과 마음으로 연결되는 것…자신에게 무엇이 최선인지 사유해야”
  • 박종언 기자
  • 승인 2019.11.08 0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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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 중심 정신건강서비스 개혁 전국대회 열려
회복은 ‘관계’에서 출발…이성보다 마음으로 다가가야
치유를 위해서는 고통의 과정 거쳐야
영혼이 잘못된 삶의 방향을 멈추라고 하면 귀기울여야
자신을 위해 무엇이 가장 최선인지 마음을 통해서 결정해야
eCPR은 마음의 심폐소생술…감정의 심장 다시 뛰게 하는 것
한국, 빠른 산업화 이뤘지만 트라우마 역시 급격히 상승
정신질환이라는 꿈에서 나오기 위해 누군가에게 손을 뻗어야
동료의 어려움을 극복해주는 건 동료지원가의 고유한 영역

정신장애인의 회복은 이성보다 마음에 있으며 특히 인간적 관계의 소통에 의해 진행된다는 주장이 나왔다. 또 상대가 심리적 고통을 느낄 때 동료지원가는 일방적 조언보다 옆에서 그의 고통을 함께 느끼며 감정을 표출할 수 있도록 지원해 줘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7일 서울 방화동 국제청소년회관에서 열린 ‘당사자 중심의 정신건강 서비스 개혁과 대안을 위한 전국대회’에서 미국의 정신장애인 당사자이자 정신과 의사인 대니얼 피셔 박사는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발표를 진행했다.

피셔 박사에 따르면 미국의 동료지원가는 1945년 뉴욕시 정신병원에서 갓 퇴원한 4명의 정신장애인들이 뉴욕 국립도서관에 모여서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we are not alone)’라는 그룹 결성에서 시작됐다. 병원에서 나온 당사자에게 경험을 함께 공유하면서 희망을 부여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피셔 박사는 “삶을 살고 세계 안에서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희망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중증 정신질환자의 경우 감정적 어려움을 겪으면서 희망을 상실하게 된다.

그는 “이때 동료지원가로서 동료에게 해 줄 수 있는 희망을 버킷(바구니)을 만들어서 함께 공유하고 당사자 스스로 희망의 버킷을 만들 수 있을 때까지 도와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피셔 박사는 “회복은 인간관계에 달려 있다”며 “머리에 있는 이성보다는 마음이나 감정과 더 관련돼 있다. 회복은 다른 사람과 마음과 마음으로 연결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누구를 보면 서로 인지하게 되고 한 사람이 미소를 지으면 다른 사람도 미소를 짓는다”며 “다시 말해 마음과 마음이 대화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생물화학자로 일하던 20대 때 개인적으로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 아내와 이혼했고 그는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그는 “치유를 위해서는 고통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정신질환의 경우 치유의 시도가 치유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며 “우리 안에는 깊은 자아가 존재하는데 많은 경우 그 존재 자체를 인식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영원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는 이것을 볼 수도 없고 측정할 수도 없다”며 “하지만 우리 안에 존재하는 중요한 생의 단면”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그 영원이라는 하는 생의 단면이 사라지면 우리의 얼굴은 표정이 없어진다. 눈의 초점 또한 사라지게 된다. 그 느낌은 내가 내 삶을 사는 게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삶을 사는 느낌이다. 그럴 때 영혼은 직접적으로 ‘반항’을 하게 된다.

그는 “내 몸 안에 있는 영혼이 당장 멈추라고 급제동을 시킨다. 움직이는 것도 중단하라고 말한다”며 “나는 내 삶을 교수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살고 있었는데 그때 과연 나는 누구였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피셔 박사는 “정신건강 상의 문제가 있다는 건 항상 지시하는대로 안 할래라는 지적이 개입된다”며 “이혼하지 말고 계속 살아, 혹은 직장 그냥 다녀라고 지시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가장 중요하게 내릴 수 있는 결정은 감정과 마음을 다해서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무엇이 가장 최선인지 마음을 통해서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가 사는 데 중요한 것은 잠시 한숨을 돌리고 생각해 보는 것”이라며 “내가 하고 있는 게 나를 위한 최선인가, 아니면 내가 남을 위해 하는가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에 따르면 감정이나 느낌은 개개인마다 고유하다. 이 감정은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많은 것들을 알려준다. 그렇지만 그 감정의 소리에 귀기울이지 않을 때 인간은 고통을 느끼고 트라우마에 빠지게 된다.

그는 이 고통과 트라우마의 치유를 위해 ‘eCPR(emotional-cpr)’ 훈련을 조언했다. 감정의 심폐소생술(cpr)이다. c는 연결(connect)을, p는 권한부여(empower)를, r은 회복(revitalize)을 의미한다.

피셔 박사는 “cpr의 목적은 정서적 위기를 겪는 사람을 도울 수 있고 그 잠재력을 발견해 전 세계 사람들의 관계를 개선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심장 박동이 안 되면 심폐소생술(cpr)을 한다”며 “이는 사람의 감정이라는 심장이 더 이상 뛰지 않을 때 다시 뛰게 하는 개념”이라고 말했다.

피셔 박사는 트라우마를 겪거나 정서적 고통을 당하는 이들을 ‘정서적 카나리아 새’에 비유했다. 광부들은 광산에 들어갈 때 카나리아 새를 데리고 간다. 광산 안에 독성가스가 있으면 카나리아가 가장 먼저 반응해 죽는다. 광부들이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죽음의 ‘전령사’인 셈이다.

그에 따르면 한국은 서구가 200년에 걸쳐 이뤘던 경제사회문화적 결과물을 40년만에 압축적으로 이뤄냈다.

그는 “한국의 기술 발전과 속도에 발맞춰서 정신건강 시스템도 함께 발전해왔는지는 의문”이라며 “문명 발전과 동반되는 트라우마는 한국이 경제발전과 마찬가지로 급격하게 겪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간이 다른 인간과 연결되거나 소통되지 않으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피셔 박사는 “다른 사람과 연결돼 있지 않으면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들고 그 자체가 망상이 될 수 있다”며 “우리는 적극적으로 외부 세계와 연결되기 위해 손을 뻗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런데 정신질환은 일종의 ‘꿈의 세계’에 살고 있는 현상과 비슷하다. 하지만 이 꿈에서 우리 스스로 깨어날 수 없다. 그 ‘깨어남’을 위해서는 다른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의 마음이 연결돼서 그 도움으로 내 마음이 현실과 연결돼야 한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그는 “자기만의 꿈의 세계에 있는 사람에게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다가갈 경우 마음을 서로 연결할 수 없다”며 “마음의 논리고 그 세계에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피셔 박사는 자신의 삶을 사례로 들어 어느 순간 마음의 감정이 자신에게 지금 하는 일을 그만하라고 말해줬다고 했다. 감정과 마음이 자신의 삶이 무언가 좋지 않다는 걸 알려주었다. 그렇지만 그의 머릿속은 왜 일을 그만둬야 하는지 몰라 혼란스러웠다.

그는 “내 머릿속의 이성은 내 마음 속의 이성을 이해하지 못했다”며 “이성은 그 종류가 한 개 이상이며 cpr은 바로 감정적 이성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다른 사람이 힘을 줄 수 있을까. 그는 ‘아니(no)’라고 단언했다.

피셔 박사는 “하지만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힘을 줄 수는 없지만 스스로 그 자기 안에서 힘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며 “타인과의 관계에서 그런 힘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권한(empower)을 서로 주는 건 동등한 관계에서 시작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렇지만 관계적 개방성이 서양에 비해 낮은 수준인 동양에서 이 동등성은 조금 훼손된다.

그는 “동양문화에서 동료 개념이 조금 더 다가가기 어렵다”며 “왜냐하면 이 동료라는 의미 안에는 평등과 동등이라는 의미가 포함돼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진정성을 갖고 인간적 측면을 표현해주면 그 순간 서로 동등한 관계가 성립한다”며 “고통당하는 상대에게 자신의 감정을 얘기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너무 똑똑하게 다가가려고 하지 말라. 당사자 스스로 답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스스로 깨닫게 되고 말을 하게 되면 그것 자체가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피셔 박사에 따르면 우리가 타인의 고통에 개입해서 조언을 하거나 충고를 하는 것은 스스로의 마음이 편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라고 설명했다. 조언을 해줘야만 우리 존재 자체가 불안을 덜 느끼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

그는 “상대에게 표현할 때 ‘함께’ 그 문제를 탐색해보자고 말할 수 있다”며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려줘야 되고 우리가 그들 옆에 함께 있다는 느낌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이끌어준다는 느낌이 아니라 지금 그 상대가 느끼고 있는 고통을 ‘함께’ 극복할 수 있는 부분과 관련해서 ‘함께’ 옆에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진 한국의 동료지원활동 소개에 발표자로 나선 부산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 절차보조팀 황길용 씨는 “당사자들이 진정한 회복을 생각하고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 병원의 치료 과정에는 빠져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동료지원활동을 넓게 해석한다면 우리들의 행동은 분명 동료지원가의 활동과 맞닿이 있다”며 “당사자의 연대와 돌봄은 서로 연결돼 있다는 느낌을 갖고 회복으로 한 걸음 다가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동료지원가는 다른 전문가들이 갖고 있지 않은 정신질환으로 고통받았던 경험을 갖고 있다”며 “같은 정신질환을 갖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서로 동료의식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같은 기관의 지미루 씨(‘침묵의 소리’ 회장)는 “동료지원가로서 느끼는 건 당사자가 자신이 왜 입원했는지, 어떤 입원 유형인지, 입원적합성심사는 무엇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자신의 선호와 기호에 대해 주치의, 보호자 그 누구에게도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도주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동료지원도 밀폐된 공간에서 이뤄지는 건 과거의 치료 행태와 다를 바가 없다”며 “동료에 대한 지지도 자유로울 때 더 잘 이뤄진다”고 말했다.

그는 “하루 빨리 동료지원가의 자격 요건이 마련돼 실제 실행에 들어갈 수 있도록 조치됐으면 한다”며 “동료가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힘이 되어 주는 건 오직 동료지원가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강조했다.

이어서 ‘정신건강 개혁과 대안 네트워크’ 출범 선언문이 발표됐다. 이들은 ▲정신장애인 당사자 네트워크를 결성해 현재의 정신건강 서비스를 개혁하기 위해 노력한다 ▲전국 네트워크를 통해 당사자의 자기결정권 존중에 기반한 다양한 대안적 정신건강서비스가 제공되도록 노력한다 ▲정신건강서비스의 개혁과 대안은 당사자중심의 가치를 통해 실현한다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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