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정 "정신장애인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어요...자신을 궁지에 몰아넣지 않는다면요"
조은정 "정신장애인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어요...자신을 궁지에 몰아넣지 않는다면요"
  • 배주희 기자
  • 승인 2019.11.1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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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특수교육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조은정 씨 인터뷰
학업 스트레스로 고등학교 때 조울증 발병
학업이 어려워도 휴학보다는 성적 욕심 버리고 학교 다녀야
조울증은 아는 만큼 보이는 병...초기 대처가 가장 중요
재발 방지 및 교육을 병원이나 정신장애인 단체에서 지원해줘야
정작 자기 자신이 스스로를 코너에 몰아넣지 말아야
아픔을 가진 이들 롤모델 되려는 마음으로 극단적 선택 충동에서 벗어나
정신장애인의 삶이 그늘지고 비극적이어야 한다는 편견 버려야

그녀의 유년 시절은 찬란했다. 어릴 적부터 ‘영재’ 소리를 들었다. 무엇에든 특출났고 또래에 비해 조숙하다는 이유로, 속 깊은 아이라며 부모님과 어른들에게 칭찬을 많이 받았다.

그런 인정과 사랑이 그 무엇보다 좋았다. 중학교에 진학 후에도 전교 1등을 따라잡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학생이 잠을 5시간 이상 자는 건 나태하다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옆에서 걱정을 하실 정도로 공부에 집착했다. 그렇게 살아온 것을 보상이라도 받듯이 목표했던 과학고에 진학했다. 꽃길이 열린 걸까.

그렇지만 과학고 1학년이던 2007년, 기숙사에서 갑작스레 조울증이 찾아왔다. 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집에 새벽 3시에 전화를 해서 이곳에 더 이상 있지 못하겠다고 호소했다. 처음으로 통제가 안 되는 자신을 마주한 순간이었다.

친구들과의 다툼도 잦아졌고 친구들은 그런 그녀를 왕따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모든 게 견딜 수 없었다. 병이 깊어질 데로 깊어져 불안감으로 사시나무 떨 듯 온 몸을 떨고 있던 그녀를 부모님은 집으로 데려왔다. 그리곤 우선 잠을 재웠다. 병원을 통해 양극성정동장애 제1형을 진단받았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 후로 지금까지 10년 넘게 치료를 받으며 약을 먹으며 살아야 한다는 걸.

결국 인문계 고등학교로 전학을 가게 됐다. 하지만 항상 궁금했다. 나의 병은 어디서 온 것이고 유전적인 기질 탓인지 아니면 나의 성격 탓인지 알고 싶었다.

나와 같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도, 어떻게 하면 평범한 일반인(비정신장애인)들처럼 살 수 있는지도 알아내고 싶었다.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공부’를 통해서 말 그대로, 조울증을 배우고 싶었다. 그것이 씨앗이 돼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했고 대학원 역시 아픔을 가진 아이들을 돕고자 특수교육과에 진학했다.

서울대학교 특수교육학과 대학원생인 조은정씨(c)마인드포스트
서울대학교 특수교육학과 대학원생인 조은정씨 (c)마인드포스트

조은정(28) 씨는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를 졸업했다. 조울증으로 많은 것을 잃었다고 했지만 병은 그녀 특유의 밝음과 긍정적인 에너지를 빼앗아가지는 못했다. 기자가 직접 만난 그녀는 발랄한 웃음과 꽃무늬 블라우스가 잘 어울리는 예쁜 20대 평범한 여대생 같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발병 시기는 언제였나요? 그리고 어떤 증상이 있으셨는지요.

"고1 때였고 우울증이 먼저 찾아왔어요. 그리고는 조증으로 넘어간 것 같아요. 어느 순간 부터 친구들과 엄청 심하게 싸웠죠. 갑자기 돈도 많이 소비했어요. 용돈을 받는 데로 다 써버렸으니까요.

그렇게 자신 있었던 공부조차도 잘 되지 않았어요. 초기에는 많은 조울증 당사자들처럼 단극성 우울증으로 진단 받았지만 다른 병원에 가서 조증 삽화에 대해 발견하게 됐고 조울증으로 최종진단을 받아서 그때부터 다닌 병원을 지금껏 12년째 다니고 있어요."

정신장애인이은 얼굴에 그늘이 있을 것이라는 편견을 깨주는 밝은 모습의 은정씨(c)마인드포스트
정신장애인은 얼굴에 그늘이 있을 것이라는 편견을 깨주는 밝은 모습의 은정씨 (c)마인드포스트

-서울대학교를 진학할 정도로 공부를 잘 하신 비결이 있나요?

"솔직히 머리는 남들보다 크게 비상하다고 생각이 들지는 않아요. 저희 엄마가 말씀하시길 '저렇게까지 공부해도 되는 건가?'라고 걱정하실 정도로 제가 열심히 했다고 하셨어요. 잠을 줄여가면서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고 거의 집착을 하는 수준이었어요.

제 생각에는 이 때부터 조울증의 전조 증상이었던 것 같아요. 잠을 많이 자지 않아도 끄떡없었으니까요. 당연히 좋은 결과가 나왔고 주변의 부러움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그것을 점점 즐기게 됐던 것 같아요. 그래서 또 공부에 더 매진했고 또 인정을 받고 하면서 하나의 싸이클이 되어버린 셈이죠."

-많은 조울증 당사자들이 감정 기복 등으로 인해 학업에 실패합니다. 선생님은 예외였던 이유가 있을까요?

"공부는 저에게 필수적인 생존 수단이었던 것 같아요. 처음 중학교에 들어갔을 때 같은 반에 전교 1등하는 친구가 있었어요. 저도 반에서 2등을 했고 전교에서 5등 안에 들었던 우수한 학생이었지만 그 친구를 따라잡고 싶었어요.

그 친구를 따라잡지 못 하면 죄책감이 들고 제가 받고 있던 사랑을 잃어버릴 것만 같아서 전전긍긍하며 공부를 더 열심히 했죠."

-학업을 포기하려고 고민하고 있는 당사자들에게는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으신가요?

"일단 ‘욕심을 많이 내려놓으라’고 하고 싶어요. 학업을 중단하려는 학생은 어떤 계기나 사건이 있어서잖아요. 그렇게 힘들 때 오히려 저는 휴학을 권하지 않는 편이에요.

저도 휴학을 해 봤지만 차라리 꼴등을 하면서도 학업을 이어가는 것이 덜 고통스럽고 타격도 적었던 것 같아요. 휴학했던 한 학기가 가장 견디기 힘들었어요. 차라리 성적을 포기하면서도 학교를 다녔던 시간들이 조금 더 수월했던 것 같아요.

조울증 당사자들이 대체적으로 공부 쪽으로 욕심이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학업을 놓지 못하고 성적에 집착하는 것 같은데 힘들 때는 '아, 내가 힘들구나. 너무 힘들 때는 길을 돌아가자'라는 마인드를 가져야 할 것 같아요. 휴학처럼 아예 포기해버리는 것보다 ‘덜 완벽한 자신’을 인정해주는 게 중요한 거죠. 그러면 후회가 적더라구요."

나와 같은 아픔을 가진 아이들을 돕고 싶어서 특수교육을 전공하게 되었다는 은정씨(c)마인드포스트
"나와 같은 아픔을 가진 아이들을 돕고 싶어서 특수교육을 전공하게 되었다"는 은정씨 (c)마인드포스트

-병원에 입원해보신 적은 있나요?

"아직은요. 비결이라고까진 할 수 없지만 저는 조울증이 ‘예방’이 제일 중요한 병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예방은 평소에 병에 대한 관심과 지식을 쌓는 것부터 시작하구요.

저는 재발 증상이 아주 작은 증상이더라도 그냥 흘려보내거나 무시하지 않고 심각한 삽화로 넘어 가지 않도록 부모님께 바로 말씀드려요. 그리고 즉시 병원을 찾고 약을 조정하거나 잠을 더 늘이는 등 제 나름의 노력을 해 왔어요."

-그렇다면 병식이 중요하다는 말씀이시죠?

"네. 무엇보다도요. 그래서 그 병식을 키우기 위해선 정신장애인들에게 ‘교육’이 가장 절실한 것 같아요. 아는 만큼 본인의 병에 대해 잘 대처할 수 있고 병을 인정하게 되면 스스로 관리를 할 수 있으니 병원이나 정신장애인 관련 단체에서 많은 정보들을 주었으면 좋겠어요."

-자해나 극단적인 선택에 대한 생각은 해보셨는지요.

"저는 그런 충동이 들 때마다 생각했어요. '나는 나처럼 아픈 아이들에게 롤 모델이 되어주어야 해'라고 되뇌며 저 자신을 다잡았어요. 저 같은 아픔을 가진 아이들을 돕는 것이 제가 사는 이유이자 목표이기에 저 자신이 잘 견디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요즘에 병에 대해 밝히는 ‘병밍아웃(병+커밍아웃)’이라는 말이 많이 있는데 정신장애에 대해 주변에 알리신 적이 있는지요.

"네. 가까운 사람들은 많이들 알고 계세요. 제 전공이 그쪽이라 터놓고 말하기 쉬웠던 것 같아요. 하지만 조울증을 털어 놓을 때엔 적어도 그 사람과의 인연이 1년 정도는 지나고 털어 놓는 것이 좋은 것 같아요.

처음부터 이야기했을 때 색안경 쓰고 보는 사람들도 있고 ‘저’라는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쟤 조울증이래'라면서 수근수근 뒷담화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처음 병을 밝히는 건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친한 사람들이 제 병을 잘 받아들여주고 편견 없이 대해 줄 때 가장 편한 것 같아요."

-지금 이 순간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정신장애인들에게 해 주고 싶은 조언이나 당부의 말이 있으신가요.

"아직 정확한 진단을 받지 못한 분이라면 병원을 주저하지 말고 가라고 하고 싶어요. 병원으로 가는 문턱이 너무 높아서 망설이고 있는 분들이 많은 것 같거든요.

그리고 진단을 받은 후에는 아이러니하게도 '포기하는 법을 배우라'고 하고 싶어요. 저는 99점을 맞았을 때도 만족하지 못하고 실망하던 아이였어요.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 보면 그렇게 해서는 행복해질 수가 없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저를 가장 괴롭히는 건 병이 아니라 저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은 거죠.

조울증을 비롯해 많은 정신장애인 분들이 자기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잘 안 될 수도 있지만 그럴수록 더더욱 의식적으로 자신이 꽉 쥐고 있는 '욕심을 놓아줬으면' 좋겠어요. 스스로에게 '꼴찌를 해도 세상이 무너지지 않아'라고 말이죠. 정말 세상이 무너지지 않더라구요. (웃음)

그런 식으로 마인드 컨트롤을 하면서 '100점 받지 못해도 괜찮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할 수 있어', '병이 있지만 그것이 나의 인생의 전부는 아니야'라고 셀프 토크도 해보며 바보같이 웃으면서 살아가면 좋겠어요.

저는 정신질환을 어둡게만 보지 않았으면 해요. 관리를 잘 해나가면 저처럼 소소한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평범한 삶이 반드시 있을 거니까요. 학업도 완벽함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모든 걸 내려놓은 상태에서 다가가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에요.

2017년이 되었을 때의 기쁨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어요. 제 병과 싸우며 10년을 버텨낸 제가 너무나 자랑스러웠어요. 지금의 삶도 감사하게도 좋은 일도 많이 일어나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제 삶은 더없이 행복하답니다."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준 용기있는 은정씨(c)마인드포스트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준 용기있는 은정씨(c)마인드포스트

인터뷰를 마치면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있는 그녀의 미래의 제자들이 살짝 부러웠다. 은정씨의 ‘따뜻하고도 밝은 마음’이 아픔을 가지고 있는 그들에게 ‘소중한 안식처와 등대’가 되어 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행복’이란 과목을 가르쳐줄 미래의 은정씨를 열렬히 응원한다.

그녀가 우리에게 해주고픈 메세지가 아닐까.(c)jihyangdream
그녀가 우리에게 해주고픈 메세지가 아닐까.(c)jihyang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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