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홍글씨 같은 정신과 병명코드 'F'코드...인생도 'F'학점처럼 느껴져
주홍글씨 같은 정신과 병명코드 'F'코드...인생도 'F'학점처럼 느껴져
  • 배주희 기자
  • 승인 2019.11.21 18:59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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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질병 코드 'F코드'가 사회적 낙인 역할을 해
대안책으로 'Z코드'를 만들었지만 효과 미비해
'Z코드'는 약물처방도 되지 않고 초진에만 해당
정신장애인들을 격리키고 비난하기보다 포용해야
당사자들에게 '치료의 부담감' 덜어주는 게 사회의 몫

A씨(39)는 항공기 조종사다. 그는 미국, 유럽 등 먼 외국으로 자주 비행을 가는 바람에 시차 때문에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밤낮이 바뀌는 것은 물론이고 식사도 규칙적으로 할 수가 없는 힘든 상황이다. 그리고 간혹 자신을 힘들게 하는 우울감과 분노조절장애 때문에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누가 봐도 그의 상태가 좋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병원에 가보라고 조언을 한다. 이러한 증상들은 정신과 상담이나 약물치료를 받으면 괜찮아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지만 A씨는 병원에 가는 걸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 회사에서 1년에 한번씩 건강 검진을 받는데, 그곳에는 그가 갔던 모든 병원의 기록이 전산에 뜨게 되어 있다. 정말 사소한 문제로 피부과에 한 번 갔던 적이 있는데 그것도 모두 기록돼 있었다.

A씨의 조종사 직업은 국정원 요원, 청와대 주요 직원을 비롯해 질병코드에 F코드가 있으면 입사조차 할 수 없는 3대 특수 직업으로 분류돼 있다. 만약 A씨가 정신과 진료를 받게 되면 직업을 잃을 수 있는 것이다. 오랜 수련을 거쳐서 조종사의 꿈을 이룬 그에게 실직이라는 것은 최악의 악몽이다. 그래서 그는 소위 ‘멘탈붕괴’가 와도 정신과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A씨뿐만 아니라 조울증 당사자인 임산부 B씨(30) 또한 이 F코드의 불이익을 받고 있다. 다름아닌 ‘태아보험’ 때문이다. 태아보험이란 임신 중에 가입하는 상품으로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아기의 선천 이상, 저체중으로 인한 인큐베이터 비용뿐 아니라 출생 후에도 질병사고에 대해 보장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녀는 보험 가입을 위해 여러가지 보험들을 비교해보고 심사숙고해서 한 회사를 선택해 상품 소개까지 다 받았다. 이후 서류작성을 모두 끝내고 보험회사의 최종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보험설계사로부터 B씨의 '조울증 병력' 때문에 태아보험에 가입이 되지 않는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게 됐다. B씨의 의료기록에는 F코드가 찍혀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그 소식을 듣고 펑펑 울 수밖에 없었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기에게 미안한 마음과, 병 때문에 차별을 받아야 하는 자신의 삶이 잘못 살아온 것 같아 자신의 인생도 F학점을 받은 듯이 비참했다.

F00~F99까지를 정신 및 행동장애로 규정해 놓고 있다.(c)마인드포스트
F00~F99까지를 정신 및 행동장애로 규정해 놓고 있다. (c)마인드포스트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 중 정신보건 전문가가 ‘일상적인 사회활동이 어렵다’라고 인정하는 사람들을 법적인 제재를 받는 정신질환자로 한정한다. 모든 정신장애인이 다 사회활동이 어려운 정도가 아닌데도 F코드가 있으면 보험가입이 거부되는 경우가 많고 취직, 승진 등에서 불이익을 받을까봐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신과의 문도 두드리지 않는다. 이런 제도상의 문제점과 사회의 비뚤어진 시선 때문에 한국은 13년째 OECD 자살률 1위 국가다.

F코드란 정신과 상담을 받기만 해도 사회적으로 낙인을 찍히게 되는 질병코드다. 정부에서 이를 우려해 2012년 보건복지부가 '정신건강증진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정신과 진료를 기피하는 환자들을 배려하기 위해 정신질환 외래진료에 건강보험 청구코드인 ‘Z코드’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다. Z코드는 ‘F코드’와 달리 환자가 어떤 질병으로 진료받았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Z코드를 쓰면 약을 처방받을 수 없고 재진을 받을 수가 없다.

2013년 4월 부터는 정신과 외래상담에서 약물처방을 받지 않으면 F코드 대신 일반상담인 Z코드로 건강보험료를 청구하면 정신질환명이 기록에 남지 않는다. 이에 따라 Z코드 환자는 2012년 5만1691명에서 2014년 8만3606명, 2015년에는 9만482명으로 늘었으나 그 이후 정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태이다.

Z코드가 F코드로 인한 문제들을 해결해주지 못하고 있다. 사진=KBS 뉴스 화면 갈무리
Z코드가 F코드로 인한 문제들을 해결해주지 못하고 있다. 사진=KBS 뉴스 화면 갈무리

Z코드는 정말 F코드의 폐허를 만회하고 있는 것일까.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보험이사를 맡았던 한림대 이상규 교수는 Z코드의 시행에 대해 “학교 폭력을 당하고도 정신과 기록이 남을까봐 치료를 받지 않는 학생이 있을 정도로 정신과 치료에 대해 거부감이 큰 것이 문제”라며 “정신과 의사를 아예 만나지 않는 것과, 한 번이라도 만나는 것은 치료에 큰 차이를 만든다”고 말했다. 적기에 치료받을 수 있게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정부의 ‘Z코드’ 확대 방침은 사회의 부정적 시선이나 낙인 효과를 일부 해소해 가벼운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이 적기에 치료받을 수 있게 하자는 조치였다. 그런데 제도를 시행한지 일 년이 지나도록 정작 진료 현장에서는 유명무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도의 한 대학병원의 경우 최근 일 년 간 Z코드를 쓴 환자가 다섯 명에 불과했다.

게다가 정신과 상담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스트레스·불면증도 약물치료가 필요한 경우가 태반이다. 하지만 Z코드를 쓰면 약물을 처방할 수가 없어 결국 F코드를 넣어야 하는 게 현실이다. 일부 개원의는 "심리 검사나 일정 기간의 약물치료를 Z코드와 함께 가능하게 해야만 제도의 취지가 살아날 것"이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정신질환은 초기 대처가 아주 중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F코드’라는 주홍글씨로 인해 병의 증상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병원에 가지 못하게 되거나 일자리를 잃게 되고 보험가입에 부적격자가 되어버리게 된다. 그래서 질환을 더 곪게 만들어 개개인도, 궁극적으로는 우리 사회도 병들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정신장애인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것에 대한 비난은 잔인할 정도로 심각하지만 정작 현실은 그들의 병을 방치하도록 만들고 더 깊어지게 하고 있다.

사회적 편견을 감수해야만 다가갈 수 있는 정신건강의학과.(c)raporsian
사회적 편견을 감수해야만 다가갈 수 있는 정신건강의학과(c)raporsian

그나마 희망적인 소식은 앞서 언급한 보험, 승진, 취직, 군면제 및 '처방약이 서로 충돌'하는 등의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본인의 동의 없이는 F코드 진료기록은 쉽게 새 나갈 수 없다는 것이다. 홍정익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장은 "F코드로 분류되더라도 이런 기록이 유출될 수가 없다"고 말한다. 의료법·건강보험법·개인정보보호법 등에 엄격하게 보호하기 때문이다. 유출하면 불법으로 처벌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과에 대한 거부감을 크게 느끼지 말고 조금더 적극적으로 병원의 문을 두드려도 된다.

그러니 당사자들을 격리시키고 비난하기 전에 병원의 높은 문턱부터 낮추고 ‘치료의 지름길’로 안내하는 게 바로 사회의 몫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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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19-12-01 23:10:14
정신병포비아들이 여기 댓글창까지 몰려와 비추 테러를 박네요 지지 마시고 이런 양질의 기사 생산 부탁드립니다

최현민 2019-11-23 14:11:15
이 기사를 읽고 느끼는 점이 많아서 마인드포스트에 가입했습니다. 저도 사연을 말할 수 없지만 F코드 피해자 입니다.발병전에는 어디가도 F학점을 받은적없는데...참 비통했습니다...
당사자로써 Z코드는 당사자에게 정부가 장난치는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황보시현 2019-11-23 13:55:55
20년차 조현병 환자 임니다

F코드 유출도문제이지만 저도 그F그것때문에

직장도 그렇고 물론 제허락하에 의료기록을 열람한다해도

기분이나쁜건 어쩔수없었슴니다
안과에 갔더니 정신과 다니시나봐요 라고
들어서 식겁했씀니다

기자님은정보가 새나갈수없다고 하셨는데
저는 왜그랬을까요 기사님은아시나요?

권소연 2019-11-23 01:01:24
이런 기사는 정말 양질의 기사네요..이 기사를 읽고 제 처방전을 약국 제출하기전에 살펴보니 정말 F코드가 찍혀있네요ㅠㅠ 병을 잘 관리 한다고 생각했는데 몰랐던 것이 많네요..제 의지와 다르게 저도 모르는 사이에 사회적으로 차별 받고 있다는걸 인식했습니다ㅠ 감사합니다.앞으로도 좋은 기사 부탁드립니다. 배주희 기자님!

김영희 2019-11-22 04:21:04
기사의 다른 사례는 몰라도, 항공기 조종사가 '우울증과 분노조절장애'를 가지고있는데도 숨기고 정신과 진료를 안본다?

그런 항공기 조종사는 형사처벌감이라고 봅니다. 승객들의 안전에 아주 중대한 위험을 가지고 있는 폭탄을 알면서도 자신의 직업유지만을 위해서 감춘 것이니까요.

기자분은 조현병을 앓으면서 수시로 환청, 망상에 시달리고 있지만 그 사실을 숨기고 있는 외과의사로 부터 큰 수술을 받아도 상관이 없겠는지요? 기자분의 답변을 정중히 요청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