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 연구'는 제가 세상으로 나올 수 있도록 중간 다리가 돼주었어요”
“'당사자 연구'는 제가 세상으로 나올 수 있도록 중간 다리가 돼주었어요”
  • 박종언 기자
  • 승인 2019.11.28 20:4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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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을 누가 대신 해주는 게 아니라 삶의 부분으로 받아들여야
당사자 연구는 내가 주체가 돼 증상을 선포하는 것
회복은 사회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걸 행하는 것
내 이야기를 듣고 나를 어떻게 이해할까 두려워 말 못 해
당사자 연구의 전국 네트워크 만들어 외연 넓혀야
증상에 이름 붙이고 대처방법 찾는 게 당사자 연구

정신장애인의 회복 촉진 요인들은 힘들고 어려운 세상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자기 책임감과 동료지지 연대 등과 깊이 관련돼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27일 청주의 청주에듀피아 영상관에서 열린 2019년 나눔과꿈 지원사업 성과보고회 및 당사자연구 세미나에서 주제강연을 한 김경희 꽃동네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회복은 어떨 질환이나 고통이 있더라도 그 안에서 만족하며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라며 “어려움이 내 삶을 압도하는 게 아니라 내가 가진 한 부분으로 생각하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희 교수 (c)마인드포스트

김 교수는 이어 “자기책임감이란 내가 힘드니까 안 할래가 아니라 내가 그것들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책임을 지는 것”이라며 “특히 당신 그렇구나 하며 나를 알아주는 것과 나 자신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도 회복”이라고 분석했다.

삶이란 꽃길만 걸을 수는 없다. 어려움이 없었으면 좋겠고 피했으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삶이란 그럴까.

김 교수는 “살면서 좋은 일만 있는 이는 없다. 관계에서 좌절도 겪고 실패도 겪는다”며 “그걸 통해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고 성숙해질 수 있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리스 신화의 영웅들을 예로 들었다. 이 신화 속 영웅들의 공통점은 죽을 고비를 많이 겪을 만큼 고생을 많이 하는 존재들이다. 그렇지만 죽지 않고 어려움을 극복해낸다. 그 모습이 인간에게 감동을 준다.

그는 “영웅들은 고생을 많이 하는데 죽지 않고 잘 살아간다”며 “포기하지 않고 힘들어도 견디는 그 모습을 보며 우리는 감동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고생을 누가 대신해 주는 것이 아니라 힘들고 어려움을 그리스 신화 영웅들처럼 내 삶의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게 영웅”이라고 강조했다. 당사자연구는 이 같은 시선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에 따르면 당사자 연구는 마주하기 싫은 상황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보고 자기를 연구하고 동료와 공유해 새로운 삶을 모색해나가는 긴 여정이다. 당사자 연구는 일본 홋카이도 우라카와 마을의 정신장애인 공동체 ‘베델의집’에서 처음 시작됐다.

 

당사자 연구 전시 (c)마인드포스트

지난 2017년 김 교수는 7월에 일본 베델의집 회원들을 대상으로 당사자 연구를 통한 회복경험 연구를 진행한 바 있다. 당시 회원들의 공통적 회복 개념은 ‘마음이 편한 것, 스트레스를 덜 받는 것, 진짜 나답게 사는 것, 긍정적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특히 ‘사회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행하는 것’도 회복의 중요한 가치로 제시됐다.

당사자 연구의 긍정적 가치는 “내 얘기를 할 뿐만 아니라 내 얘기를 들어주는 것”이라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김 교수는 “내 얘기를 하지 않는 이유는 두렵기 때문”이라며 “사람들이 나의 얘기를 듣고 나를 어떻게 이해할까라는 두려움을 갖는다. 이 자체를 털어내고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이 당사자연구의 의미”라고 밝혔다.

그는 “자기 얘기를 하면 제3자의 눈으로 나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며 “동료의 충고나 조언, 내가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들어주는 것, 또 내 얘기를 누군가 들어주는 것, 이를 통해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진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이 같은 당사자 연구가 특정 기관 안에서의 ‘우리들 모임’을 넘어 전국적 네트워크가 형성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는 당사자 연구를 통한 ‘연대’의 힘을 넓혀나가자는 의미다.

그는 “(연구 결과) 당사자 연구 이전에는 나를 돌아보는 게 어려웠는데 그 부분을 수용하고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며 “우리는 과거를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과거를 다르게 바라볼 수 있고 그걸 통해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당사자 연구는 내가 주체가 돼서 증상에 대해 내가 선포하는 것”이라며 “수동적인 게 아니라 나의 증상과 상황에 이름을 붙이고 대처방법도 찾는 연구가 회복의 중요한 의미”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당사자 연구에 대해 의심스런 눈길을 보내는 이들이 있다. 참여를 머뭇거리는 상황이다. 김 교수는 “일본의 당사자 연구에 참여한 분은 사람마다 다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그 분이 참여할 때까지 기다려줘야 한다고 말했다”며 “문제를 빨리 해결하고 달라져야 한다는 것에 매달리지 말고 회복을 방향성으로 잡고 그 과정에서 더 넓은 시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광주 정신장애인요양시설 ‘소화누리’에서 온 유미희 팀장은 당사자 연구의 성과를 설명했다.

소화누리의 당사자 연구는 2016년 시작됐다. 당시 매일 모여서 기분과 일상생활을 나누고 증상을 얘기하는 가벼운 자리였다. 2017년 소화누리는 조금 다양한 시도를 한다. 수다방 프로그램을 만들어 편안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당시 당사자 연구 준비도 직원이 주도하기보다는 당사자들과 함께 매일 회의를 열고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 방향성에 대한 논의를 깊게 했다고 한다.

유 팀장에 따르면 2018년에 당시 회원들의 ‘말이 터져나오는 시간’이었다.

그는 “당시 고민은 말하는 건 잘 되는데 나의 삶에 대한 변화는 잘 모르겠다는 거였다”며 “당사자 연구 노트를 나눠주면서 말을 기록해보고 이를 점검하는 등 좀 더 깊이 있는 연구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참여자들 (c)마인드포스트

소화누리는 광주 지역의 정신장애 시설들과 연계해 ‘우당탕탕 정신고생준비위원회’를 구성해 집단적인 대회를 열기도 했다.

유 팀장은 소화누리 회원들의 당사자 연구 성과를 설명했다. 그는 당사자의 환시·환청의 문제가 반드시 없애고 제거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못한다는 입장이다. 그에 따르면 환시와 환청을 가진 여성 당사자는 이 증상이 자신의 남편이고 아이들이고 백구였는데 약을 먹으면서 사흘 간 환시와 환청이 사라져서 불안해했다고 한다.

유 팀장은 “환청과 환시가 이분의 남편이고 자식이고 백구고 가족인데 이게 없어지니까 거기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다”며 “환시·환청이 우리 생각처럼 반드시 없애는 게 답은 아니”라고 분석했다.

또 다른 당사자는 과거의 힘들었던 시간을 떠올리면 자존감이 낮아진다고 했다. 그의 일상적 용어는 “나는 바뀔 수 없어”였다. 그렇지만 당사자 연구 이후 그는 소감문에 ‘나도 조금 회복되지 않을까’라고 적었다. 유 팀장의 말대로 그건 ‘희망’의 발견이었다.

유 팀장은 “저희가 고생자랑대회를 올해 두 번 진행했는데 당사자들과 직원들이 고생을 이야기했다”며 “그러면서 제일 먼저 나오는 말이 ‘사람 사는 게 다 똑같네’였다”라고 말했다.

그는 “누구나 고생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며 “우리가 약함을 연대한다고 하는데 고생을 표현함으로써 다른 사람의 고생을 들어보면서 살아가는 모습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느끼게 됐다”고 전했다.

이어 “살면서 걱정은 다 있는 거야라고 위로받는 기분이었다”며 “똑같은 고생을 남들이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됐고 병이 아닌 고생으로 보니까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생기고 측은한 마음이 생겼다고 당사자들이 말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동료들의 조언을 듣고 고생에 대한 대처방안을 실천해보려는 모습이 발견됐다”며 “베델의집에서 얘기하는 전문가에 맡겨진 고생을 되찾아오는 게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당사자 연구를 통해 해결과 답을 주려는 자세를 내려놓게 됐다는 게 유 팀장의 분석이다. 당사자의 회복의 힘을 믿어주게 되고 답을 주는 대신 질문을 하게 되는 것으로 바뀌는 게 당사자 연구의 힘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증상이 아니라 고생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형성됐다”며 “사람과 문제를 분리하는 시각이 생긴 거 같고 고생을 가진 사람과 사람으로 바라보는 관계로 만들어졌다는 게 가장 큰 변화”라고 강조했다.

서울 관악구 한울정신건강복지센터 회원 김덕수(47) 씨는 당사자 연구에 직접 참여한 과정과 자신의 고생 경험을 풀어놓았다.

덕수 씨는 19살에 처음 정신병원에 입원한 후 열 번이나 입·퇴원을 경험하게 된다. 그는 “청춘을 정신병원에서 보냈는데 돌이켜보면 정말 억울하고 분통 터지는 일”이라며 “그렇지만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으니 이제 와서 누구를 원망하겠는가”라고 말했다.

덕수 씨의 고생은 ‘불안 초조, 느낌병’이다. 그는 “불안 초조는 보통 사람들이 느끼는 정도의 5배 정도 높다”며 “느낌병은 내가 이상야릇한 느낌을 남에게 주어서 그 느낌을 받은 사람이 내게 ‘변태다, 이상한 놈이다’라고 생각하게 하는 병”이라고 고생을 소개했다.

그는 그 ‘느낌’이 자신이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이 느낌의 흐름을 결정할 수 없는 게 어렵다고 토로했다.

김덕수 씨 (c)마인드포스트

한울정신건강복지센터는 2016년 당사자 연구를 시작했다. 덕수 씨는 창립 멤버다.

그는 “가지고 있는 증상은 말을 꺼내기가 껄끄럽고 부끄러운 증상이라 생각했는데 당사자 연구는 비밀 보장이 돼 맘 놓고 이야기할 수 있어 너무 좋았다”며 “다른 사람의 증상을 듣다 보면 ‘아, 내 증상이 제일 심한 게 아니구나, 다른 당사자들의 증상도 나처럼 힘들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동질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시작하기 전에 아무 준비를 하지 않아서 좋고 부담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것이 편했다”며 “제가 그런 태도로 참여했다고 해서 저를 나무랄 사람도 없으니까 그게 너무 좋았다”고 전했다.

또 “당사자 연구 시간에 제 이야기를 하고 나면 저의 속은 뻥 뚫린 것 같이 후련해진다”며 “평소 다른 사람들에게 저의 이야기를 안 하던 제가 당사자 연구 안에서는 그 누구보다 많은 말을 한다. 이는 비밀보장이 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참여자들과 발표자들 (c)마인드포스트

덕수 씨에게 당사자 연구는 ‘새가 알을 품는 것’과 같다. 새는 알을 품고 그 안의 새는 알을 가고 넓고 큰 바깥 세상으로 나온다. 덕수 씨는 “저에게 당사자 연구 시간은 제가 세상으로 나올 수 있도록 하는 중간 다리가 되어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의 증상을 아마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게 되면 저를 미쳤다고 손가락질할 수도 있다”며 “그러나 당사자 연구에서만큼은 제 이야기에 대해 함께 한 모두가 보듬어주고 배려해줘 너무 좋다”고 심경을 밝혔다.

이번 세미나는 청주정신건강센터가 주관하고 나무, 소화누리, 송광정신재활시설, 송국클럽하우스, 아미정신건강센터, 요한빌리지, 충주어울림센터, 한울지역정신건강센터가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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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혜경 2019-11-29 13:59:51
베델의집《렛츠! 당사자연구》하는 책에서 처음으로 당사자연구를 정했어요. 나의 병명을 내가 붙이고 나의 고생은 주인이 되는 모습에 감동이었어요. 이런 세미나가 전국에 더 많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