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이영문 국립정신건강센터장 취임사 “사람이 사람을 위로하는 건 희망의 증거”
[전문] 이영문 국립정신건강센터장 취임사 “사람이 사람을 위로하는 건 희망의 증거”
  • 박종언 기자
  • 승인 2019.12.02 2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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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국립정신건강센터에서 이영문(57) 신임 센터장의 취임식이 열렸다. 이 센터장은 1990년대 아무도 탈원화를 외치지 않던 시절, 정신과 전문의로서 세계에 정신장애인의 탈수용화를 외쳤던 인물이다.

 

그는 아주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와 국립공주병원장 등을 거치면서 민주적 정신보건시스템에 대한 치열한 고민도 함께해 왔다.

 

<마인드포스트>는 이 센터장의 취임사를 확보해 이를 헤드라인에 싣기로 했다. 국가 정신보건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는 이 센터장의 취임 의지에 대해 정신장애인과 가족들은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고 판단해서다.

 

이 센터장은 취임사에서 정신건강, 정신질환, 그리고 정신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태도는 동시대의 철학을 반영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 나라의 정신건강 문제는 사회경제적 차원의 문제이며 국민들에 대한 건강투자의 개념을 넘어 인권, 사람이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인간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 센터장은 이상적인 조직은 3분의 1은 열심히 일하고 3분의 1은 매사 성실하고 3분의 1은 열심히 노는 조직이라며 무엇보다 열심히 일하는 3분의 1이 방해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학습하는 조직, 공부하는 조직이 생명력을 이어간다사람이 사람을 위로할 수 있는 것은 또 다른 희망의 증거라고 역설했다.

 

다음은 취임사 전문.

 

오늘 전국 각지에서 오신 많은 분들을 모시고 취임 인사를 드립니다.

축사를 해주신 친구 송영길 국회의원,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위원장이며 광진구 갑의 전혜숙 의원님, 광진구 김선갑 구청장님, 국립춘천병원의 최종혁 원장님, 당사자와 가족을 대표하신 파도손의 이정하 대표님, 시 낭송해주신 루치아의 뜰, 석미경 사장님.

그리고 참석하신 내빈 여러분들과 오시지 못하셨지만 축하를 해주신 모든 분들. 또한 전임 하규섭, 이철 센터장님을 비롯한 국립정신건강센터의 전·현직 임직원 여러분들에게 감사 인사드립니다.

무엇보다 국민 정신건강을 실현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공공기관인 국립정신건강센터의 3대 센터장으로 취임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지난 8월 5일부터 삼 개월 간 긴 여정을 통해 보건복지부와 청와대의 인사검증을 받았습니다.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많았음에도 센터장으로 임용되는 과정에 많은 분들의 지지와 응원이 있었습니다. 신경정신의학회, 정신건강사회복지학회, 정신간호사회, 임상심리학회, 대한정신가족협회, 동료지원가, 회복강사, 파도손 등의 당사자 모임의 지지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박원순 시장님을 비롯한 서울시 공공보건의료재단 직원들과 이사들에게 죄송한 마음입니다.

특별히 국립공주병원 직원들은 자신들의 병원장 임용이 아님에도 진심으로 기뻐해주셨습니다. 아마도 2015년 12월, 3일만에 너무 갑자기 병원을 떠나야 했던 아픔이 이번에 조금이나마 회복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저도 기쁩니다.

당시 제가 했던 퇴임사를 돌이켜 보니 ‘병원장을 못하게 할 수는 있지만, 정신보건에 대한 저의 영혼과 생각을 그만두게 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그만큼 정신건강에 대한 가치는 무한한 것입니다.

정신건강, 정신질환 그리고 정신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태도는 동시대의 철학을 반영합니다. 일찍이 미셸 푸코는 ‘광기의 역사’를 통해 고전시대의 광기를 동시대의 문화와 권력구조의 담론으로 설명한 바 있습니다.

국립정신건강센터의 전 조직인 국립서울병원은 1962년 최초의 공공기관으로 출발하였습니다. 당시의 경제 상황과 사회적 분위기를 감안한다면, 거리의 정신장애인을 수용해 클로르프로마진이라는 당대 최고의 의약품과 따뜻한 숙식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획기적인 치료기관의 자리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1960년대에 이미 미국과 유럽의 정신보건 체계는 수용을 넘어선 탈수용화의 거대한 물결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정확히 60년이라는 두 세대 이상의 정신건강 시스템의 작동 원리가 뒤쳐져 있는 현실을 우리는 이제 받아들여야 합니다.

정신건강의 담론은 보건복지의 영역에 결코 속하지 않습니다.

모든 나라의 역사에서 알 수 있듯이 한 나라의 정신건강 문제는 사회경제적 차원의 문제이며 국민들에 대한 건강 투자의 개념을 넘어 인권, 사람이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인간의 문제입니다.

국가는 국민들의 정신건강을 반드시 지켜내야 할 의무가 있으며 전문가들은 공공성에 입각한 실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국가기관에서 일하는 우리 모두는 국민이면서 국가입니다.

인공지능의 시대에 접어든 2019년 대한민국. 과연 2019년 대한민국이라는 우리 사회의 정신건강에 대한 태도는 어떠한가를 냉정하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정신건강의 가치보다는 여전히 정신질환의 위험성, 정신질환에 대한 혐오로 덮여 있습니다.

국립정신건강센터는 크게 세 가지의 기능이 복합적으로 구성된 공공기관입니다.

첫째, 정신과 24시간 응급서비스를 포함한 치료와 재활 전문병원이며 둘째, 정신건강에 관한 최고의 연구를 해나가야 할 연구기관이며, 마지막으로는 국가 정신건강 정책을 개발하고 지원하고 실천해야 할 정책 수행 기관입니다. 또한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 이후는 국가트라우마사업부가 신설되었습니다. 병상은 900병상에서 150병상으로 줄었으며, 예산은 450억 원, 인력은 공무직 포함 500명에 이르는 거대 조직이 되었습니다.

저에게 주어진 시간은 삼 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합니다. 하여야 하는 일,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의 구분이 필요하며 삼 년을 삼일처럼 생각해야만 합니다. 센터가 출범한 이후 지난 삼 년 간의 노력에 대해 대내외적 평가를 다시 보고 듣겠습니다.

공공성과 정신질환을 앓는 당사자들을 위한 행정이 이루어졌는지 점검하겠습니다. 내부적인 조직 효율성을 위한 기획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변화된 조직에 맞는 인력 양성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담론이 필요합니다. 하나는 정치이며, 또 다른 하나는 학습입니다. 상반되어 보이는 두 가지는 긴밀한 관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먼저, 정치란 사람이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가장 최적화된 위치에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포괄적 정책의 기획과 모니터링 ▲연공서열에 기반하지 않는 인사 체계의 새로운 구축 ▲예산 수립과 집행 과정의 효율화 등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며 이를 위한 정치가 존재해야 합니다.

실물 정치로는 청와대부터 시작해서, 행정안전부, 기획재정부, 보건복지부, 유관 조직의 전문가 모두 필요하며 당사자, 가족의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조직은 1/3 열심히 일하고, 1/3 매사 성실하고, 1/3은 열심히 노는 조직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열심히 일하는 1/3이 방해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지요. 이것은 뛰어난 조직의 다양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다양한 구성원이 모여 사람의 가치를 향상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간은 끝없이 욕망하는 존재입니다. 권력을 추구합니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의미를 찾아간다는 것입니다.

학습하는 조직, 공부하는 조직이 생명력을 이어갑니다. 대학이 강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입니다. 불과 몇 명의 교수와 소수의 전공의만으로도 생명력을 이어가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학습에 대한 강렬한 동기가 작동하는 곳이지요.

휴먼 밸류. 인간의 가치. 실사구시(實事求是). 사람을 이롭게 하는 것이 공부입니다. 이 모든 것은 제가 일했던 곳의 흔적들입니다. 힘들지만 우리는 학습, 공부를 일과 함께 병행해야 합니다. 학습된 조직이 미래를 조직화할 수 있습니다.

내부 임직원들의 동기강화를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가능한 외부적 지원을 내부로 가져와 학습과 정치의 공론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마지막으로는 국립정신건강센터의 포지셔닝입니다. 국내적으로는 5대 국립정신병원과 9개 국립병원 전체의 발전을 도모하며 국내 정신건강 정책 실현의 중심이 되도록 일하겠습니다.

또한 국외적으로는 세계보건기구(WHO)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와 함께 교류하고 아시아 정신건강 기관들과 연대하는 허브로 일하겠습니다. 외부의 동력이 필요하며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내부의 역량을 키워가겠습니다.

칸트 철학의 물음들로 취임사를 마치겠습니다.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순수이성비판에 대한 것입니다. 나는 무엇을 행하여야만 하는가? 실천이성비판에 대한 것입니다. 나는 무엇을 희망해도 좋은가? 판단력 비판에 대한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위 세 가지 담론은 모두 ‘실용적 관점에서의 인간’에 대한 담론입니다.

제게 늘 큰 힘을 주시는 국민시인 나태주 선생님의 풀꽃입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사람이 사람을 위로할 수 있는 것은 또 다른 희망의 증거입니다. 국민들의 정신건강을 위해 헌신하는 조직의 대표가 되도록 여러분과 함께 노력하고 공부해 나가겠습니다.

오늘 이 자리를 위해 기꺼이 바쁜 시간 내어주신 모든 분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2019년 11월 26일

국립정신건강센터장 이영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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