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당사자 스스로 낙인 찍힌 자기 모멸 용어를 버려야
[기자수첩] 당사자 스스로 낙인 찍힌 자기 모멸 용어를 버려야
  • 임형빈
  • 승인 2018.06.12 15:1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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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병 당사자는 마음이 여리고 사회 규범을 잘 지키는 도덕적 존재
당사자를 ‘정신병자’로 호명해 사회 생활에 용기 잃게 만들어

조현병 양상이 경미한 당사자가 스스로를 중한 정신질환자로 여겨 사회 적응에 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신질환 경력이 있으면 사회는 이를 정신병자, 또라이 등으로 호명해 당사자들이 사회생활을 하는 데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게 만들고 사회의 변방을 들락거리게 만든다.

이 부정적 호명은 당사자 자신을 부정적 인간으로 여겨 정상적 생활을 하는데 용기를 잃게 한다.

“내가 정신질환자?”, “내가 미친 놈”이라고 명명하면 스스로를 정상인들과 상대가 못될 정도로 여겨 부정적 인식이 개입된다. “내가 정신질환자인데 사고 한번 쳐봐?”, 혹은 “내가 사회 부적격자인데 그럼 그들의 편견대로 한번 놀아주고 뒤끝을 맺어봐”란 엉뚱한 생각이 들게 만든다.

조현병이라는 용어는 기존의 정신분열증이라는 어감이 주는 부정적 편견을 낮추기 위해 언어 순화 차원에서 2010년 개정됐다.

조현병은 뇌를 현악기로 간주해 현을 고르게 켠다고 해서 조현이라 쓴다. 조현병 용어는 언어 순화 차원에서 긍정적으로 여겨져 학계와 환자들에게 환영 받았다.

조현병 당사자로 호명되면 마음에 병이 있는 자, 정신에 큰 짐을 든 자로 생각해 주위에서도 불쌍히 여겨 그들의 문제를 풀어주기 위해 관심을 갖고 심지어 그들의 짐을 함께 져 동행해주기도 한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50만여 명이 조현병 당사자로 분류된다. 전체 인구의 1%다. 가족을 4명씩 계산해도 200만 명 이상이 조현병 관계로 고통받고 있다.

조현병이 무슨 천형인가? 4명 중 한 명 꼴로 스쳐지나가는 감기로 치부될 정도로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질병이다. 우울증이 그렇다.

조현병 당사자들은 스스로를 심각한 정신질환자로 매도해 자신들의 설 자리를 더 좁게 만든다.

어떤 당사자는 스스로를 사이코패스로 분류해 조현병 본질을 매도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이코패스는 반사회적인격장애이며, 조현병 당사자들은 인격장애자가 아니다. 이들은 마음의 상처를 입은 심신장애자다. 죄의식과 양심의 가책을 가진 순수한 인격체다. 사이코패스들은 책임감이 없고 사회규범을 쉽게 위반하고 망상이나 비합리적 사고 등이 거의 나타나지 않아 조현병 당사자와 분명히 구분된다.

조현병 당사자들은 극단적인 정신질환자, 사이코패스가 아니라 마음이 약하고 양심이 여리며 규범도 잘 지키는 어쩌면 정상인보다 더 도덕적인 존재다. 스스로를 사회의 한 켠에서 사회적 의무를 다하고 이웃들과 사랑을 나누는 평범한 사람으로 여길 수는 없을까.

조현병 당사자들도 우울증을 옆에 두고 있고 망상과 피해의식이 옆에 있으니 하루쯤은 다 내려놓는다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전문의와 대화를 자주 가지고 부모 또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는 것이 조현병의 침식에 대항하는 좋은 방편일 것이다.

당사자들은 심리적·환경적 요인들에 휘말리면서 조현병이 발병한다. 당사자들의 약한 이성에 이 요인들이 영향을 끼쳐 양성반응까지 발전해 당사자들을 낙담시키기도 한다.

조현병 당사자들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정신병자, 사이코패스 등 낙인찍힌 용어를 버릴 때가 됐다. 우리의 뇌를 조현시키는 조현병 당사자란 언어를 쓰고, 또 당사자들끼리 새로운 정의를 내려, 예컨대 '마음앓이 당사자'로 불릴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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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혜경 2018-06-13 07:42:19
좋은 글 감사합니다. 참 잘쓰셨어요.
사회심리적 약자에게 배려하는 성숙한 사회, 성숙한 시민이 되도록 노력해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