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조울러의 비밀이야기 제1탄] "뭐? 우울증이 아니라 조울증이라고?!"
[프로조울러의 비밀이야기 제1탄] "뭐? 우울증이 아니라 조울증이라고?!"
  • 앨리슨 기자
  • 승인 2019.12.04 19:29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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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주 가까운 지인에게 “내게 우울증이 있다. 그래서 우울증약과 수면유도제를 같이 먹고 있다”고 털어놨다. 당시 그녀의 반응은 이랬다. “아, 그랬구나. 얼마나 힘들었겠어… 네 여린 마음에…” 그러면서 측은한 눈길로 나를 바라봐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또 그녀에게 "내 친구가 조울증에 걸려서 힘들어 한다"고 스치듯 이야기했었다. 그랬더니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그거 무서운 병이잖아!"라고 말했다. 나는 그녀의 반응을 보고,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조울증'이라는 단어에 아연실색하며 놀란 목소리로 "네 친구 어떡하니? 큰일이다... 그거 엄청 위험한 병이라던데!"라며 기겁하던 모습을 보며, 나는 속으로 다짐했다. 내 병을 더 꽁꽁 숨겨야겠다고.

(c)bipolarsickpc

나는 소위 ‘커밍아웃’을 아직 하지 못한 17년차 조울증 당사자다. 하지만 이렇게 늦게나마 고백을 하는 것은 재발하지 않은 기간이 비교적 길고, 그래서 감히 다른 환자들에게 본보기가 되고 싶었다. 무엇보다 이 병을 끝판까지 직접 겪어본 경험을 토대로 환자와 환자의 보호자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서였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나에게는 오직 인생의 가장 큰 비밀이었던 이야기들을 하나씩 꺼내어 많은 분들께 나눠드리고 싶어 글을 쓸 용기를 내었다.

내가 처음 진단을 받았을 때, 나는 물론이고 가족까지 병식이 없었다. 가족은 도대체 어찌해야 하는지 정말 난감해 했다. 그나마 환자인 나는 병원을 다니고 케어를 받았지만, 특히 부모님과 남동생은 보호자로서 나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또 이 병을 대해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래서 조울증에 대해, 환자는 물론이고 환자의 보호자들을 위해 그간 내가 견뎌 온 세월과 나의 지식을 바탕으로 글을 써내가려 한다. 그리고 부족하지만 나에게 종종 어려움을 호소하시고 도움을 청하셨던 사연들도 소개 하면서 아픔과 회복에 대해 함께 깊이 공유하고 싶다.

나는 자칭, 타칭 모두 인정하는 모범 환자다. 병식도 매우 깊고 병원에도 꾸준히 나가며 내가 힘들 때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병원에 예약을 하고 제 발로 걸어가서 적절한 치료를 받는다. 주치의 선생님은 항상 이렇게 말씀하신다. “앨리슨씨는 제가 알고 있는 조울증 환자 중에 1등으로 잘 관리하고 있습니다" 라고. 또한 이 병을 가지고도 사회생활을 해내며 동시에 나의 역할(엄마로서, 아내로서, 딸로서, 며느리로서)을 충실히 해내고, 내 병이 그들의 삶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조울증을 이겨내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이 병의 밑바닥을 본 사람으로서 조울증에 있어서는 프로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용기내어 글을 쓰고 있다. 지금 막 진단받은 아마추어 조울러(!)들의 이해를 돕고 천천히 병의 극복을 위한 노하우들을 나누고 싶다.

처음에 언급했듯이 나는 조울증 진단을 받은 지 오래됐다. 내가 처음 진단을 받은 것이 고3(19살) 때였다. 평소 심리학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엄마를 설득해 병원에 갔지만 단극성 우울증(unipolar depression)이라는 오진이 나왔다. 그 결과 나에게는 독이 될 수 있는 항우울제를 처방 받았다. 이로 인해 조증 에피소드가 발병해 수능을 앞둔 아주 중요한 시기에 학교를 1달정도 등교하지 못했다. 고3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c) chosun.com

하지만 나도 그리고 가족도 이 일을 그렇게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저 수험생이 겪는 스트레스라고 생각하며 그 시기를 아무렇지 않게 넘기고 말았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 의사 선생님 말고도 병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현재의) 나 같은 병식 깊은 프로조울러(!)가 곁에서 조언을 해주고 길을 터주었다면, (그때의) 내 삶은 많이 바뀌었을 것이란 확신에 커밍하웃하며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살면서 지금까지 5번 정도 재발했고 자살시도도 자해도 겪어왔다. 재발을 할 때는, 그때마다 일이 커졌다. 돈 문제를 비롯해 인간관계, 학업, 직장 등 모든 것이 박살이 났다. 내 마음도 산산조각나고 몸도 너덜너덜 만신창이가 됐다. 그럼에도 삶은 살아졌고 시간은 많은 것을 다독여주었으며 칠전팔기의 기적으로 지금의 모습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고 내가 ‘완치가 됐다’는 건 아니다. 조울증은 ‘완치’라는 개념이 없다. 한번 발병한 이상 평생동안 관리해야 하고 다시 도래하는 사이클에 긴장해야 한다. 나는 처음 이 병을 대할 때, 내가 저주를 받은 것으로 생각하며 조울증을 원망하곤 했다. 나의 인생에서의 실패한 경험을 모두 이 병 때문으로 돌렸다. 한 마디로 조울증을 탓하기만 하면서 병 뒤에 숨었던 것이다.

조울증은 주로 일정한 패턴이 있다. 이것을 알아내어 사이클(cycle)에 맞추어 살아가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조울증은 주로 일정한 패턴이 있다. 이것을 알아내 사이클에 맞춰 살아가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c)mindful.com

하지만, 모든 것에는 양면이 있으며 장단점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나서는 조울증을 인격화하기 시작했다. 조울증을 따돌리거나 미워하기보다 ‘내가 죽기 전까지 평생 데리고 다녀야 하는 친구 혹은 반려자’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면서 조울증을 길들이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고약한 녀석이지만 친해지려고 노력도 했다. 그래서 오늘은 그 ‘관점 바꾸기’에 대한 설명을 하고 이 글을 마치려 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이들, 희망을 잃은 환자들, 낙심하고 있는 당사자의 보호자들께 드리는 말씀이다.

“우린 아직 가진 게 많지 않는가?”라는 의문을 던지고 싶다. 바로 ‘관점’만 다르게 보면 말이다. 일전에, 테이블의 와인잔을 엎은 적이 있었다. 그때 나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가 무엇이었을까? 욕을 했을까?

아니다. 오히려 "휴 다행이다"라고 했다.

"잔이 깨지지 않았으니 말이다."

(c) Thomas Pfeller
(c) Thomas Pfeller

와인이야 물 휴지로 얼마든지 닦으면 되는데, 잔이 깨지면 복잡해지지 않는가. 다칠 수도 있고 말이다. 우리, 그렇게 생각해보자. '아직 잔은 깨지지 않았을 수' 있다. ‘모든 걸 잃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환자들 가운데는 아직 나이가 젊은 사람이 있을 수 있고, 약을 해독할 수 있도록 아직 망가지지 않은 간을 갖고 있을 수도 있으며 자살 신호를 주변에 알리면 한걸음에 달려올 수 있는 지인이 있고, 손만 뻗으면 기댈 수 있는 가족이나 친구들이 살아있으니 말이다. 아픔이 있는 당사자지만 삶에서 한가지씩은 잘지켜내고 있는 소중한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당사자의 가족에게는 이렇게 묻고 싶다. ”우리 당사자가 아직 살아있지 않습니까?”

"일반인의 15배의 자살률을 가지고 있는 내 환우가 지금 내 앞에서 숨을 쉬고 있지 않습니까?"

우울증이라도, 비록 잠을 많이 자긴 하지만, 가끔은 살아서 먹기도 하지 않는가. 조증이라도, 자기 옷은 갈아입고 바삐 살아가려고 노력하지 않는가. 우울증일때는 생각과 말이 느려지지만 그렇기에 더욱더 그 외로움과 고독을 이용해 자기 자신을 치유하려고 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조증일때도 복잡한 생각과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서 빨리빨리 바쁘게 살아가며 나름 그것도 치유하려는 본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니, 당사자 여러분, 그리고 가족(보호자) 여러분, "우린 아직 가진 게 많지 않습니까?" "'관점'만 다르게 본다면 말입니다." 가장 행복한 이는 주어진 것에 감사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혹여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 자살 충동이 심한 환자도, 병 간호에 점점 지쳐가는 보호자도, 이 병을 이기려면 '악착같이 뛰어야만 한다는 강박'과 '환자에 대한 걱정'에서 잠시나마 벗어나보자.

조금씩 멈추기도 하고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쉬었다가 가면서, 이 병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하나씩 터득해 보는 것도 좋은 태도다. 그래서 이 길이 극심한 고통의 길이 아니라 그럭저럭 ‘견딜만한 길’이 된다면, 조울증을 데리고 사는 삶이 좀더 수월해지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하며 내가 좋아하는 글을 끝으로 나의 첫 연재글을 마치려 한다.

<뒤집어 보면 고마운 일들>

가족 때문에 화나는 일이 있다면

그건 그래도 내 편이 되어줄

가족이 있다는 뜻이고

 

쓸고 닦아도 금방 지저분해지는

방 때문에 한숨이 나오면 그건

내게 쉴만한 집이 있다는 뜻이고

 

가스요금이 너무 많이 나왔다면

그건 내가 지난 겨울을

따뜻하게 살았다는 뜻이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누군가

떠드는 소리가 자꾸 거슬린다면

그건 내게 들을 수 있는

귀가 있다는 뜻이고

 

주차한 곳을 못찾아 빙글빙글

돌면서 짜증이 밀려온다면

그건 내가 걸을 수 있는 데다가

차까지 갖고 있다는 뜻이다

 

온몸이 뻐근하고 피곤하다면

그건 내가 열심히 일했다는 뜻이고

 

이른 아침 시끄러운

자명종 소리에 깼다면

그건 내가 살아있다는 뜻이다

책 '열정을 말하다' 

인생은 사건 중심이 아니라 '해석' 중심이어야 한다. 긍정적인 관점에서 인생을 해석하다 보면, 어느새 희망이 곁에 와 있을 것이다.

힘든 삶이지만, 감히 '희망'이라는 걸 품을 수 있는 '용기'를 한번 내보는 것은 어떨까. (c)gmchalli
힘든 삶의 여정이지만, 마음속에 '희망'이라는 걸 따뜻하게 품을 수 있는 '용기'를 내보는 것은 어떨까. (c)글맛그림켈리그라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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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혜경 2019-12-05 06:15:47
잔이 깨지지 않았다....

참 위로가 되는 말씀입니다. 계속해서 글을 보고 싶어요

김율리아나 2019-12-04 23:51:21
조울증환우 입니다. 큰 도움받고 갑니다

커뮤니티에서 이곳을 알게되었어요 맨날 눈팅만헀구요^^

두달전에 제1형 진단받았습니다.
근데 쉽지가 않네요...

병의 선배님으로서 잘지내는모습이 보기조아요
저는 아직 20대인데 앞날이 깜깜해요
저도 아기도낳고 싶고..언젠간 기자님처럼 순탄하게 살수있을까요?

병원에서 나와서 간신히 조에서 내려온 상태에요ㅠㅠ
병식이 중요하다고 하시는데
정말어렵네요 에효
아직도 인정하고 싶지가 않아요. 전 건강한 사람이었는데....
우울이나 조현은 의외로 기사가 많은데 조울은 별로없어서
더 위축되었는데 이런 기사 넘 반갑네요ㅠ

용기주셔서 고맙습니다 또 이런글 올려주세요.마인드포스트 자주올게요
희망주셔서 넘 감사해여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