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문 “좋은 삶을 살면 그게 행복이죠…행복은 느끼는 거지 추구하는 게 아니에요”
이영문 “좋은 삶을 살면 그게 행복이죠…행복은 느끼는 거지 추구하는 게 아니에요”
  • 박종언 기자
  • 승인 2019.12.03 22:5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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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문 국립정신건강센터장 인터뷰
정신장애 인권 불모지이던 시절 정신보건연구회 만들어 공부
수용시설에서 지역사회로 모토, 꾸준히 견지해와
참된 정신건강은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의 해방과 자유
정신건강 전문가는 자기 잘못을 수용할 수 있어야
정신질환은 기질이 아니라 상태…사회적 환경 따라 상태는 변해
정신건강의 사회통합과 사회방위 요건이 같이 가야
사법입원제 악용될 수 있지만 제3자의 사법이 입원 판단해야
입원 기간 제한하고 국가가 병상 관리해야
의료급여와 건강보험은 일원화해야 정신과적 문제 풀려
여전히 의심스럽지만 그래도 ‘사람이 희망’이라 생각해
행복은 느끼는 것이지 추구하는 것이 아니야
삶의 아주심기는 자신의 숲을 만들었을 때 가능해
기본소득제는 한국사회가 가야 할 방향성 맞아
윤리적 폭력에의 반성으로 김근태기념치유센터 설립위원 맡아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영등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당시 내무부 공무원이었다. 1962년 출생하고 얼마 후 아버지는 결핵에 걸렸다. 당시에는 폐병이라고 불렀다. 아버지는 자신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내무부를 떠나 한직을 돌았다.

그는 아버지를 따라 경북 영주로, 전라도 익산으로, 경남 울산으로, 대구로 떠돌았다. 초등학교를 네 군데나 옮겼다. 떠남과 정착은 그의 삶의 모형이 돼 버렸다. 법이자 이데올로기였던 아버지는 그렇게 허약한 존재였다. 한 군데 뿌리박지 못하고 자신의 유년을 떠돌게 만들었던 존재. 삶에서 부재(不在)를 실존으로 받아들이게 했던 아버지. 그러나 아버지를 그는 사랑했다.

중학교 시절 그는 몸이 아팠다. 일 년을 집에서 쉬면서 그의 손에는 문학책이 들려있었다. 문학을 통해 그는 세상이라는 거대한 물체를 바라봤고 이따금 그 막막함과 고독에 한숨을 짓고는 했다. 문학은 그에게 생의 호명이었을까.

고등학교 때 문학반에 들어갔다. 문둥이 시인이라고 불렸던 한센병 시인 한하운의 시들이 좋았다. 그는 한하운에게서 삶의 ‘소외(疏外)’를 보았다. 너무 일찍 체험하고 만 삶의 비루성. 그리고 정신적 고통과 육체적 고통 앞에서 글을 썼던 작가들에 대한 내면의 존중심이 그의 문학적 천착에는 뒤섞여 있었다.

그 시절, 당시 문필을 날리던 작가 이건영의 소설 ‘회전목마’를 읽었다. 정신이 아득했다. 그곳에서는 정신장애인들의 이야기가 나왔고 그는 다시 한 번 병든 자들의 ‘소외’를 처절하게 마주하게 된다.

30년도 지난 훗날 그는 이건영 작가를 자신의 행사에 초빙했다. 그리고 말했다. “선생님, 고등학교 때 선생님 소설을 읽고 정신과 의사가 됐습니다. 선생님은 한하운 시인만큼 저에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건영 작가는 문학을 접고 기술직 공무원이 돼 이후 건설부 차관까지 했지만 어린 그에게 그는 영원한 소설가였다. 그의 말을 듣고 이건영 작가는 깜짝 놀랐다. 운명은 이렇게 얽혀있다.

소외에 대한 사유. 인간이 난마처럼 얽혀 있는 지난한 인연의 그물망 안에서 그는 병과 정신의 질병으로 인해 스스로 삶 바깥으로 유형을 떠나야 했던 인간 실존의 문제에 몸을 떨고는 했다. 그것은 인간이 가지는 최후의 슬픔인 천형(天刑)이었다. 하늘의 운명을 거스르지 말 것. 그러나 그것은 얼마나 아프고 어려운 일인가.

부재한다는 건 슬픈 일이다. 어린 시절, 아팠던 아버지의 현존하는 부재처럼.

연세대 의대 시절에도 그는 문학과 사회현실에 대해 고민하며 1980년대를 관통해왔다. 1991년 2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딴 그는 당시에는 전무했던 ‘탈시설화’와 ‘탈수용화’를 외치는 몇 안 되는 정신과 의사였다.

정신장애인들이 인간의 존엄을 갖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그는 꿈꿨다. 그와 뜻을 같이 하는 이들이 모였다. 함께 공부했고 사회에 목소리를 냈다. 32살의 젊은 나이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된 그의 삶은 순탄했다. 그러나 그는 생에 의문을 품었다. 이 세계가 이 자체로 정의로운 것인가.

그는 아주대의대 교수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좀 더 인간적인 정신진료와 새로운 정신장애 담론을 만들고 싶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운명은 그를 황야에 서 있게 하지 않았다. 이후 국립공주병원장을 거쳐 지난달 26일 국가 정신건강 컨트롤타워인 국립정신건강센터 센터장으로 부임해 취임식을 가졌다.

이영문(57) 센터장을 만난 건 겨울 초입의 바람이 불어오는 2일 국립건강센터 센터장실에서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가 반갑게 인사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영문 국립정신건강센터장 (c)마인드포스트.
이영문 국립정신건강센터장 (c)마인드포스트.

-1980년대에 ‘정신보건연구회’ 공부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연세대학교 의대의 모임이었습니까.

“1980년대가 아니고 1992년이에요. 제가 전문의를 딴 게 1991년 2월. 1980년대 말에 정신보건법 논쟁이 있었어요. 그 당시에 정신장애인은 위험하다는 사회방위적 목적으로 법을 만들려고 했죠. 당시 보건사회부(보사부)가 추진을 했는데 뜻있는 분들과 정신과 학회에서 정신장애인 인권이 보장 안 된다면서 거부해서 폐지를 시켰죠.

이후 우리가 정신보건법을 만들어보자 해서 연세대 정신과 선배였던 김병후 선생과 배기영 선생님, 몇 분이 주동이 돼서 시작이 됐죠. 그때 그 양반들 30대 후반, 저는 갓 전문의 따서 새파란 나이였고. 겁 없이 탈수용화 이야기를 할 때였죠. 정신과 연구를 하자고 해서 다섯 명의 정신과 의사들이 모여서 시작을 하는데 이 모임에 사람들이 한 명씩 들어와요.

황태연 선생(현 국립정신건강센터 정신건강사업부장)도 레지던트 신분으로 참여했고 중독 분야의 기선완 선생(현 국제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또 트라우마 연구로 알려진 김중기 원장(마음과마음 원장)도 들어오고 정신보건 1세대 간호사들과 교수님들도 들어왔어요.

사회복지학 쪽에서는 문용훈 태화샘솟는집 관장, 지금 자활기관 기관장으로 있는 이봉원 선생(전 태화샘솟는집 관장), 사회복지사 그룹에서도 오고 김통원 교수(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오고 사회복지연구회에 다 모인 거죠.”

-그 모임을 이끈 핵심 그룹이 연세대 의대 팀입니까.

“연세대 출신의 김병원 선생이 처음에 이끌고 그 다음 배기영 선생, 제가 3대 회장으로 일했죠. 1992년부터 해서 정신사회재활협회를 만들 때까지 3년간 매주 월요일마다 오후 7시에 모여서 공부했죠.

다른 나라 정신보건법도 공부하고 외국에서 공부하고 오신 분은 초빙도 하고요. 그렇게 하면서 정신보건에 하나하나 눈을 떠갔던 게 정신보건연구회입니다.”

-그 연구 모임이 주축이 돼서 정신보건법 제정 운동을 하게 된 겁니까.

“했죠. 그때 두 가지를 만들었어요. 하나는 100 페이지 정도의 정신보건 백서를 만들었어요. 그건 어디서 연구비를 받아서 한 게 아니고 우리끼리 회비 내어서 만든 거죠. 다른 하나는 정신보건법 초안을 만들어서 당시 보건복지부 질병관리과와 계속 논의를 했죠.

일개 임의단체에 당시 보건복지부가 도움을 줄 수 있었던 건 다 개개인의 역량 때문이었어요. 드래프트(초안)를 낼 때 우리 의견을 보건복지부가 받아들인 건 참신했기 때문이거든.”

-그럼 보사부가 1980년대에 만든 정신보건법 틀에 대해 완전히 거부하신 거네요.

“완전히 거부했죠. 그때는 법제 체계가 재활도 없었고요. 정신보건 사업비라는 내용도 없었고. 오로지 수용만 있는 아주 허접한 거였어요. 당시에는 당사자 단체도 없었고요.

정신보건법이 통과된 배경을 보면 당시 국립서울병원(국립정신건강센터 전신)에 국회의원이 와서 ‘정신보건법을 통과시켜줄 테니 국립서울병원을 이전하라’고 농간질을 부리던 시절이에요. 여(與)든 야(野)든 (국립서울병원이 있는) 광진구에서 국회의원이 되려면 무조건 이런 요구를 했어요.

어쨌든 정신보건연구회가 1992년 4월에 창설돼서 3년 반 활동하고 1995년 2월에 정신사회재활협회가 사단법인으로 새롭게 출발해요. 그해 말에 정신보건연구회를 발전적으로 해체했죠. 그리고 정신사회재활협회로 힘을 모으자고 해서 이부영 선생이 초대 회장을 하고 다음 회장을 제 은사이신 이호영 선생이 역임했죠. (해체된) 정신보건연구회는 최근 40대 젊은 정신과 의사들이 이 이름을 부활시켰어요. 그 모임이 우리 후신이죠.”

-정신보건법 제정 운동을 하면서 아쉬웠던 점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때 너무 몰랐죠. 좀 더 진보적인 법을 만들었어야 했는데. 당시 여의도 질주사건이 있었고 대구 노래방 방화사건이 있으면서 정신질환자의 위험성을 계속 부각하는 언론 프레임이 굉장히 많았어요. 그때 좀 더 진보적인 법을 못 만들었을까 그게 좀 아쉬워요.

이만큼 진보한 걸 만들어도 현실에서는 이만큼 내려온다는 걸 그땐 몰랐던 거죠. 당시 민변(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에서 정신과 의사의 진단과 보호자에 의한 입원이 불법이라고 주장했지만 그런 것까지 컨트롤하기가 어려웠어요. 그건 보건복지부에서 받아주지 않았으니까.

사회환경적으로 낙후된 점도 있었고 시대 상황 역시 군부독재가 끝나는 ‘87년 체제’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됐으니까요. 노동조합 운동도 막 시작 단계였고 그러다보니 1990년 시작되고도 외국 문헌을 얻는 것이 굉장히 소중한 시기였던 거 같아요.”

-1990년대 ‘수용시설에서 지역사회로’를 모토로 운동을 했습니다. 너무 시대를 앞서간 건 아닐까요. 당시에는 외면받았을 거 같습니다.

“많이 외면당했죠. 더 앞서가도 됐는데 결국은(웃음). 정신보건센터를 만들었잖아요. 그 센터를 처음 만들 때는 외국 이름을 따온 거예요. 그래서 (중요한) 기능을 다 넣자고 했어요. 센터에 외래 기능도 넣고 그랬는데 정신과 학회 회원들의 반대에 부딪혔죠.

개원 의사 중심의 모임들이 성명서를 내고 정신보건센터 설치되면 자신들의 무엇을 위협한다는 식으로 반대 성명을 냈어요.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일이죠. 기세등등하게 반대가 들어오니까 그럼 외래는 안 하겠다, 특별한 경우를 빼고는 외래를 하지 않겠다, 나머지 사업만 하겠다고 했죠. 이렇게 센터가 시작됐어요. 그게 너무 아쉬워요.

지금 생각으로는 ‘원 스톱 서비스’로 센터에서 이뤄지면 굳이 입원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많을 건데요). 그래서 외국에 비해 반쪽짜리 센터가 된 거죠.”

이영문 국립정신건강센터장 (c)마인드포스트.

-인터뷰 준비하면서 선생님은 정신과 의사 이전에 진리를 찾는 구도자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도를 닦고 있는 겁니까.

“(웃음) 그건 아니고요. 진실하고 진리는 다르잖아요. 정신건강의 참된 것은 무엇일까라는 건 계속 고민하고 있죠. 그건 당연히 정신건강을 앓는 당사자들의 해방이고 자유인 게 맞죠. 그게 궁극적인 목표죠. 그 과정에서 전문가들과 컨슈머(소비자) 그룹이 대립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갖고 있는 거죠.

그럴 경우 어떤 길을 가야 될 것이냐. 당연히 컨슈머 쪽으로 가야죠. 저의 이런 생각은 동료를 배반하는 결과가 되잖아요. 질병 없는 사회가 되면 굶어죽는 직업이 의사예요. 전문직들도 그래요. 모두가 죄를 짓지 않으면 법이 필요 없으니까 판검사나 변호사들 굶어 죽죠. 다들 진실되게 살면 목사나 신부들도 못 살고 종교가 없어지겠죠. 그러나 자기 정화(淨化)하면서 가야 한다는 마음은 변함이 없습니다.”

-2016년 국가인권위원회 정신보건법 토론회에서 강제입원 피해를 겪은 정신장애인에게 ‘대신 사과하면 안 되겠나’라고 말했습니다. 가해자는 따로 있는데 왜 선생님이 그런 말을 하게 된 겁니까.

“이정하 정신장애와인권 파도손 대표가 그러더라고요. 제가 처음으로 사과를 한 정신과 의사라고요. 글쎄, 나라도 사과해야 하지 않겠나 싶었어요(웃음). 제가 생각하는 전문가의 자격은 자기 잘못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해요. 그리고 모르는 걸 모른다고 자기 잘못을 수용해야죠.

문학적 표현으로 네거티브 케이퍼빌리티(negative capability·소극적 수용력)이죠. 포지티브 케이퍼빌러티(positive capability·적극적 수용력)는 칭찬을 들으면 쉽게 반응하는데 네거티브 케이퍼빌리티는 자기비판과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부분을 감내하는 능력이거든요. 이게 원래 시인들이 쓰는 용어에요.

영국 시인 키츠가 시(詩)는 네거티브 케이퍼빌리티를 갖고 살아야한다고 얘기하잖아요. 궁핍을 이기고 결핍을 이기고 부정적인 걸 이기는 거죠. 그게 자연을 대하는 태도라고 얘기했죠.”

-안정적이던 아주대 의대 교수직을 그만두고 이후 ‘치료 공동체 소통과 담론’이라는 사회단체를 만들어 활동했습니다. 경제적 이익이 없는 단체를 만들고 교수직을 버리면서까지 이 일을 했어야 했던 이유가 있었습니까.

“2006년에 아주대 정신과 교수직을 사직했죠. 왜냐하면 그때 오전에는 수원시정신건강복지센터에 있고 오후에는 아주대 병원의 전문의로 앉아 있었잖아요. 지역사회 정신보건사업을 할 때였으니까 지역에서는 이분들이 환자가 아니고 동료잖아요. 같이 밥 먹고 담배도 피우고 하다가 오후에 진료시간이 돼서 병원으로 돌아오면 아까 같이 밥 먹었던 우리 센터 회원이 외래를 오는 거야.

그때도 저는 의사 가운을 입지 않고 진료를 봤지만 이 환우들이 와서 접수비 1만8000원을 내요. 그게 웃기는 상황이잖아요. 밖에서는 이렇게 친구처럼 만났는데 오후가 되면 다시 외래를 보는 것이 말이죠. 이쪽은 공공보건의 세계고 저쪽은 그냥 민간 영역이죠. 이런 것에 대한 밸런스 맞추기가 힘들었어요.

또 정신과도 그렇고 한국 의학에 대한 불신감이 컸어요. 그래서 그냥 차라리 커뮤니티(지역사회)로 나가자. 그때는 다큐멘터리를 찍을 생각도 했어요. 논문 백 편보다 다큐멘터리 한 편이 낫겠다 생각했죠. 그때가 45살 때였어요. 저는 32살 때 일찍 의사가 됐고 (기복 없이) 바로 이렇게 왔죠. 그런 생각을 하고 사직서를 냈는데 학교에서 반려가 됐어요.

당시 경기도지사가 김문수 씨였어요. 어느 날 경기도정신보건사업 행사에 그가 왔어요. 저는 자유로워지기 위해 떠나겠다고 얘기를 했는데 김 지사가 그걸 보고 감동을 받았대요. 그러면서 경기도 정신보건사업을 좀 키우겠다. 아주대학이라는 학교가 아니라 이영문 선생이라는 한 분에게 투자를 하겠다고 한 거예요.

그러면서 학교가 나를 눌러 앉으라 했죠. 학교로서는 나를 이용해서 경기도의 이익을 좀 보고 싶었겠죠. 사직을 학교에서 반려를 시켜서 그러면 정신과만 하지 말고 내가 의대생들에게 가르치던 의료인문학으로 발령을 해 달라 해서 2007년 2월까지 정신과 진료를 하고 3월 1일자로 인문사회과학 의료인문학 교수만 하게 됐죠. 두 번째 그만둘 때는 학교에서는 그러려니 하더라고(웃음).”

-조현병은 상태(state)일뿐 기질(trait)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무슨 의미인가요.

“기질(trait) 개념으로 하게 되면 그게 그 사람의 특성이 돼 버려요. 그러니까 그 사람의 얼굴 생김새, 지능 등은 부모로부터 받은 기질이죠. 정신질환이라고 하는 건 내 본성의 부분이 아니라 상태의 변화일 뿐이에요.

예를 들면 정신분열의 증상은 상태(state)가 반영되기 때문에 다 다양해요. 개인의 백그라운드가 다 반영된 증상이란 말이지. 환청도 종류가 다 다양하고. 그러니까 자기의 백그라운드가 반영된 것이기 때문에 다 다양해요. 개인의 백그라운드가 다 반영된 증상들이란 말이죠. 환청도 종류가 다양하니까 그건 일시적 상태로 나타나는 거라 보는 거죠. 사회적 발현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특성을 잃지 않고 오직 상태일 뿐이다. 상태는 변화한다. 사회적 환경이 어떠냐에 따라 상태는 바뀐다. 이 기질(trait)를 압박하는 상태가 되면, 예를 들어 지적장애인이 빨리 성장을 안 하면 이 사람은 부러지겠죠. 사회적으로 평화나 안정감이 있는 사회에서는 그 발현이 느리거나 경미하게 나타나요.

자연 상태에서 성장했던 과거의 환경에서 발현이 돼도 이 사람이 정신질환 상태로 가겠느냐는 거죠. 그래서 사회적 질병이라고 하는 거죠. 이건 정신과 의사들이 반대합니다. 그렇게 이 선생처럼 순진하게 봐서는 안 된다고요. 저는 동의가 잘 안 돼요.”

이영문 국립정신건강센터장 (c)마인드포스트.

-정신건강복지법은 어떤 방향으로 바뀌어야 합니까.

“지금 사회적 합의나 정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쪽에서 선언적 인권에 대한 문제가 마구 쏟아지고 있어요. 그런데 누군가는 급성기나 악성 변형이 돼 있는 상태에 있을 수도 있단 말이죠. 이때는 이 상태를 처리하고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사회방위적인 거죠.

사회방위적 요소와 사회통합적 요소가 같이 가야 하는데 균형이 안 맞죠. 사회통합적이라는 머리는 앞서 가는데 사회방위적 장치가 무너져 있으면 이게 이뤄지지 않는 거예요. 준비되지 않은 탈수용화나 사회가 받아주지 않는 탈시설화는 (무리다).

특히 한국사회처럼 지나치게 자본화돼 있는 사회에서 사회방위적 부분을 좀 챙겨야 하지 않나 생각해요. 그렇게 따지면 사회통합적 방향으로 어느 세월에 갈 거냐라는 반론도 생기죠. 급성기에 대한 처우 개선 문제나 병원 응급시스템 구축도 나오는데 여기에 대해 충분히 보완이 안 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다보니 입원하는 인풋(input)에 대해서만 조절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추가진단,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 등이 있는데 (활용 비율이) 굉장히 낮잖아요. 추가진단 같은 경우는 별 의미가 없는데 그걸 보완하기 위해서는 과감하게 제3자로 일원화해야 해요.”

-사법입원제가 필요하다는 말씀입니까.

“당연하죠. 사법입원제가 우리나라 여건에서 어렵다면 제3의 기구에 의한 평가가 있어야 돼요. 100퍼센트 사법 입원이 위험한 이유는 악용이 될 수 있어요. 당사자의 위험도가 괜찮고 가족들도 지역사회 생활을 원하는데 사법입원제가 강하게 되면 상식적인 우리의 평가가 묵인돼 버린다는 거죠.”

-의료 분야의 평가와 판단이 사법에서는 왜곡될 수 있다?

“우리나라 법적인 제도가 3심 제도이지만 위험한 경우에 대해서만 법이 판단을 하잖아요. 정치인들은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하는데 다 지금 법으로 가 있고. 지나치게 법적 기구에 의존하면 상당히 위험해요.

그렇지만 사법입원이나 준사법기구가 판결을 하면 그 사법기구의 결정을 존중해야죠. 그것에 대해 당사자 컨슈머들이 치열하게 논의를 해야 되는 거고요. 그리고 입원 기간을 제한해야 해요. 지방자치단체를 포함해서 국가에서 운용하는 베드(병상)에만 입원할 수 있게 해야죠.”

-기간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우리나라 여건이라면 브리프(brief) 입원, 단기입원을 규정하는 게 보통 한 달이거든요. 외국 문헌에도 그렇고요. 흔히들 외국의 입원기간이 2주다 일주일이다 얘기하는데 그건 그 나라의 보험제도 때문에 그렇다는 걸 몰라서 하는 거예요.

미국의 경우는 입원비가 비싸니까 입원 기간이 일주일도 안 돼요. 미국 주립병원 한 달 입원료가 500만 원에서 800만 원입니다. 민간 대학병원의 한 달 입원료는 2000만 원을 육박해요. 그러니까 거기는 무조건 빨리 퇴원을 시켜야 된다는 거죠.

단기라는 말은 영어로 숏텀(short term)이 돼야 하는데 이건 잘못된 용어예요. 브리프(brief)라는 용어를 써야죠. 간결입원. 브리프 입원이냐 아니면 익스텐디드 하스피털라이제이션(extended hospitalization·연장입원)이죠. 그 둘 다 목적이 있는 입원이에요. 흔히 숏텀과 롱텀(long term)으로 구분하잖아요. 이건 입원 기간을 두고 구분하는 거죠.

그게 아니라 목표가 있는 입원을 브리프 하스피털라이제이션이라고 할 때 이게 한 달이에요. 나머지 30일 이상은 무조건 하스피털라이제이션이죠. 어떤 경우는 1년8개월도 있고 2년도 있어요. 예를 들어 경계선인격장애는 먹고 자고 숙식할 수 있는 곳이 다양합니다. 그래서 입원기간을 한 달 이내로 하고 강제입원 심사를 제3자가 하는 것이 중요해요.

제3자에 의한 심사기구를 두려면 돈이 많이 들어요. 국가가 돈을 더 써야죠. 막연히 보호자가 없다는 이유로 익스텐디드(연장)가 아니에요. 그건 사회적 입원이죠. 사회적 입원은 익스텐디드가 아니에요. 그걸 명확하게 하면 돼요. 보호자가 없어서 병원을 못 나가는 경우에는 공공후견제도가 정말 면밀하게 들어가야죠.

또 보호자가 있어도 보호자 사정 때문에 못 나가는 경우도 명백하게 기간을 정해서 사회적 입원으로 치료해야 되는 거고요. 특히 재활이 필요한 경우에는 재활훈련을 할 수 있는 목표가 있는 익스텐디드 하스피털라이제이션을 하면 돼죠.”

-10년 전 어떤 행사에서 치유의 과정을 말하던 당사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회복이 됐다고 했고 그 회복 팁을 우리들에게 말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자살했습니다. 완전한 치유라는 게 있는 걸까 회의가 들더군요.

“제가 자살예방센터장도 했고 자살예방 1세대인데 지금 자살에 대한 문제를 보건과 복지의 틀에 맞춰서 바라보는 시각은 문제가 있어요. 저는 자살에 대해서는 인문학적 가치를 가지고 철학적 문제로 봐야 한다는 쪽이거든요.

자살예방이라고 하는 단어가 사실 안 맞는 거예요. 질병 예방은 맞아요. 그러나 자살은 예방을 할 수 있는 게 아니죠. 내가 질병 상태도 아니고 인생에서 자기 존재에 대해 충분한 성찰을 한 이후에 내가 자살을 해요. 할 수 있다고 봐요 인간은. 그것을 문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이게 자살예방센터장으로서 굉장히 부적절한 말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자살을 하려는 분은 그만큼 자신과 주변에 대해 충분히 생각을 하신 분이라는 거죠. 그래서 그 분을 우리는 최대한 자살을 막을려고는 하죠. 그런데 치유가 되지 않고 행복해지지 않을 거 같아서 선택하는 분들도 있어요. 그리고 나의 젊음을 기억하지 못해서 기억을 잃어가며 죽는 것은 존엄하지 않다고 해서 존엄한 죽음을 선택하신 분들이 많거든요. 암 환자들 중에서도 그래요. 그것도 다 수동적인 자살이거든요. 그런 문제라고 봐요.

그 분이 만약에 그 순간 환청과 망상에 의한 자살이 아니라면 충분히 치유가 되고 잘 살다가 자기의 죽음에 대한 권리를 자기가 주장했다고 저는 봐요. 단순히 현실도피적 이유만으로 그 자살이 설명되지는 않아요. 많은 학자들 중에도 자살한 이들이 많아요. 인문 쪽의 사람들을 만나서 얘기를 해 보면 자살한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요. 그분들을 비난하지 말아야죠.

그리고 지나치게 의료적으로 자살 문제를 컨트롤할 수 있다고 하는 자체는 안 된다고 봐요. 자살이 무슨 질병입니까. 자살예방 클리닉을 쓰게? 우울증 클리닉은 질환이니까 돼요. 같은 이유로 학습부진 클리닉이란 말을 쓰면 안 돼요. 학습 부진이 무슨 병입니까. 게으름도 병이 아니에요. 이걸 다 질병화시킨 거죠.”

-퇴원환자의 개인 정보를 경찰과 정신건강복지센터에 알리는 행위가 왜 위법합니까. 다른 시각으로 보면 사회 안전의 확보를 위해 통지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안 됩니다. 그게 사회방위적 요소가 강하기 때문이죠. 개인이 동의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자기 정보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사람이죠. 그럼 그 사람의 동의를 받아서 제출을 해야죠.

정신질환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동의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보는 거예요. 아주 심한 지적장애 아동은 판단능력이 없다고 보잖아요. 그것하고 똑같이 보는 거죠. 아니면 무시하거나. 그게 범죄하고 연관이 돼 있다면 그건 가능해요.

범죄는 당연히 우리가 협조를 해야죠. 그러나 명백한 사유가 없는데도 정보를 달라는 것은 위법이죠. 경찰의 지나친 해석이란 말이죠. 그건 검찰도 똑같은 짓을 하지 않습니까. 검찰은 신념만 가지고도 수사를 해요. 이게 특수부예요.”

이영문 국립정신건강센터장 (c)마인드포스트.

-행정입원의 중요성을 역설하셨습니다. 안인득 사건 이후 응급입원과 행정입원이 모두 늘어났습니다.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할까요. (안인득 사건은 지난 4월 경남 진주의 아파트에서 안인득이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르고 불길을 피해 대피하던 주민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5명이 숨지고 17명의 부상자가 난 사건을 말한다-편집주)

“만약에 시장·군수가 제대로 이해를 하고서 행정입원을 지시했다면 그건 사회방위적 측면에서 맞는 거고요. 이런 것도 행정입원 처리가 되는데요. 보호자가 있고 주변에서 항의가 들어왔어요. 여기에 명백한 급성 증상의 위험이 있다는 판단을 전문가가 했어요. 그렇지만 당사자는 설득해도 입원을 안 하려고 해요. 이 경우에는 행정입원으로 받아줘야 한다는 거죠. 행정입원 절차가 있으니까 그 기간 안에 평가해서 다른 입원 유형으로 넘어가야죠. 우리나라는 너무 안 해서 문제죠.”

-어차피 행정입원도 강제입원 아닙니까.

“강제입원이라 하더라도 기간이 정해져 있으니까요. 그 기간 동안 평가를 해야죠.”

-강제입원보다 행정입원이 훨씬 낫다?

“강제입원보다는 그렇죠. 그게 그나마 공권력의 보장을 받잖아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조현병은 90%가 정신병원 입원비에 지원되고 있습니다. 정신병원으로 들어가는 국가 예산을 어떻게 지역사회로 돌려야 할까요.

“그게 예전부터 숙제인데요. 의료급여와 건강보험으로 나눠지잖아요. 의료급여의 경우 단일수가로 묶여 있는 걸 풀어야죠. 그런데 풀기 전에 의료급여에 대한 예산은 건강보험 예산에서 다뤄지지 않거든요. 완전히 다른 거죠. 의료급여는 사회복지로 돼 있는 돈이고 건강보험은 보험료에서 내는 거니까 이게 일원화가 돼야 해요. 우리나라의 보험제도 문제인데요.

정신과는 의료급여 환자가 더 많이 입원하니까 일단은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이 가난해졌기 때문에 나중에 수급권자가 되기 때문에 의료급여에서 다루는 거죠. 그런데 의료급여 예산이 입원에 드는 비용이 어마어마하잖아요. 치매 다음으로 많아요. 그걸 지역사회로 전환 시키려면 서울 같은 경우는 한 번 해볼 만해요. 매칭 포인트가 50대 50이니까.

그런데 서울이 아닌 곳은 8대 2예요. 중앙이 8, 지방이 2. 수원의 경우 중앙이 800이고 수원이 200이에요. 경기도는 그냥 패스죠. 그러니까 수원시는 적극적으로 의료급여 환자를 퇴원시키려고 하지 않아요. 200만 내면 한 사람을 입원시킨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냐면 너희(수원시)가 부담해라 하는 거죠. 수원시가 1000을 다 부담해서 입원을 시켜라. 이렇게 지자체로 넘겨버리면 시도 재정을 아끼려고 노력을 많이 할 겁니다. 그런데 그 비용을 감당을 못하죠.”

-어쨌든 빨리 퇴원시키려고 하겠네요.

“그렇죠. 미국의 정신보건사업의 역사가 그렇거든요. (입원비용을)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의 역할로 내려버렸잖아요. 지역사회 정신보건센터는 연방정부에서 주정부를 패싱(passing)하고 인건비부터 시작해서 모든 걸 카운티 정부(한국의 군에 해당)에 다 주는 구조예요. 그래서 정신보건센터는 늘어났는데 입원비용은 주정부보고 내라고 하니까 주정부는 입원환자들을 퇴원시켜버리는 거죠.

그래서 미국의 지역사회 정신보건이 1960년대에 엉망이 돼 버렸어요. 지역사회가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정신보건 시스템이 실패한 이유가 그래요. 돈의 흐름을 잘 (파악)해야 해요. 예를 들면 정신과에서 많이 예산이 드는 건 사회적 돌봄이잖아요. 이 돌봄 지원을 해야만 거기 동료지원가가 가정방문을 하면 수가가 나오고 집에서는 어머니가 돌본단 말이에요. 그렇게 집에서 돌보는 게 케어(care·돌봄)잖아요.

정신장애뿐만 아니에요. 치매 할머니를 돌보는 가족이 있으면 소셜 케어(사회적 돌봄) 비용을 집으로 줄 수도 있죠. 이런 것을 건강보험에서 같이 노력을 해 보면 낫지 않을까 싶어요.”

-세월호 사건은 국민을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로 빠지게 했다고 분석했습니다. 우리 국민이 큰 국가적 충격에 빠졌을 때 그 충격을 대하는 태도는 어땠다고 보십니까.

“저는 지역사회 대처는 훌륭했다고 봐요. 다만 정부가 잘못했죠. 정부 차원의 컨트롤은 취약했지만 정신건강복지센터들이 경기도를 중심으로 일찍 심리지원을 했어요. 당시 저는 국립공주병원장이었는데 지역 단위로 해서 팽목항을 가고 한쪽은 안산을 가고요.

저는 팽목항에서 24구의 사체를 찾지 못한 분들이 있어서 12월까지 끝까지 있었죠. 시신을 찾을 때까지 가족을 돌봐야죠. 팽목항에는 사체를 못 찾으니까 매일 아우성이었죠.

사체 하나가 인양되면 우루루 몰려가서 다 울죠. (사체를) 찾으신 분도 울고. 일주일에 한 구 정도 사체가 올라와요. 그 과정들을 12월까지 있으면서 봤어요. 한 명 한 명 찾게 되고 최종적으로 (미수습 사체) 9구가 남았을 때까지 우리 공주병원 직원들이 있었어요.”

이영문 국립정신건강센터장 (c)마인드포스트.

-위로하신 겁니까.

“뭐 위로가 되겠어요. 그냥 같이 있어주는 거죠. 배를 인양하고도 끝내 못 찾은 게 4구예요. 그 중에 2명이 학생이었어요. 지금도 그 두 가족들을 제가 만나고 있습니다만 그분들은 어디 가서 자기 얘기를 하기도 어려울 정도죠. 그 안에서 사체라도 찾아서 가신 분들과 그것조차 못하신 분들이 누가 더 불행하냐를 거기서 따지는 건 참 그랬던 기억이 나요. 국민들은 훌륭했다고 봅니다.”

-왜 그렇습니까 .

“많이 그래도 동의를 했어요. 세월호를 통해서 성금도 많이 보내줬고. 무엇보다 가장 큰 희생을 당한 게 학생들이었기 때문에 학부모의 심정으로 남의 일 같이 느껴지지 않았던 거죠.”

-연장선에서 여쭤볼게요. 최근 포털에 보니까 세월호 팽목항에 아직까지 철수하지 않고 계시는 가족들이 있더라고요. 그 기사 댓글에는 이를 부정적으로 표현하는 게 많더군요.

“그건 진짜 그 사람들의 심정을 몰라서 하는 말이에요. 그분들은 다른 걸 바라는 게 아니고 그냥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기가 어렵기 때문이에요. 의미가 없으니까요. 물론 거기에서 올라오신 분도 있죠.

아직 사체를 못 찾았는데 두 분은 올라와 계시고 그 중에 한 가족이 남아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분들은 그냥 거기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을 하는 거죠. 그분들의 자유예요. 저도 몇 번 그만 올라가자고 했어요. 이걸 비난하면 안 돼요. 댓글 비난은 우리 사회의 성숙하지 못한 태도죠.”

-국립공주병원장 시절부터 ‘사람이 희망’이라는 말을 자주 하더군요. 이 안에 어떤 의미가 담긴 겁니까.

“어려운 질문이에요(웃음). 제 명함을 보시면 제 아이디가 ‘humanishope’(사람이 희망이다)이죠. 사람이 희망을 가지지만 사람에게 절망을 주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긴 세월로 보면 그 절망을 이길 수 있는 힘도 사람이더라고요.

예전에는 (사람이) 굉장히 큰 희망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떨 때는 희망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희망일까 이런 생각도 했어요. 제 패스워드가 희망일까, 희망이야로 많이 바뀌었어요(웃음). 여전히 의심스럽지만 그래도 사람이 희망이라고 생각해요. 나이가 들수록 좀 더 명확해지네요.”

-한국인은 ‘행복 결핍’이라는 사회적 질병을 앓고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왜 행복하지 못할까요.

“행복은 추구한다고 되는 게 아닌데 지나치게 강박적으로 추구해요. 행복 또한 제 강의에 테마기도 해서 공부도 하죠. 그리스 시대로 올라가면 행복에 대한 정의를 저는 거꾸로 아리스토텔레스부터 해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유다이모니아(Eudimonia)’는 말 그대로 좋은 삶이에요. 유(Eu)가 좋은 삶(good life)란 뜻이죠. 좋은 삶을 살면 그게 행복인 거지. 그런데 우리는 행복을 어떤 목적의식적으로 이렇게 하면 아파트를 사고 내가 돈을 이만큼 벌고 학벌을 이만큼 하면 행복해진다고 착각하는 거죠.

행복은 느끼는 거지 추구하는 게 아니다. 그래서 오늘 행복을 느끼지 못하면 내일도 행복을 못 느낄 것이다라고 얘기해요.”

-그리스 철학에서는 행복하기 위해서는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것이 행복한 게 아니라 어떤 삶이 좋은 삶인지를 먼저 확인하고 그렇게 살라고 하더군요.

“소크라테스는 지행합일(知行合一)을 강조해요. 내가 좋은 삶을 살면 행복을 느끼는 건 당연한 거야라는 거죠.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용(中庸)을 여기에 끼워 넣어요. 중용을 넣어서 하루하루 좋은 삶을 사는 것에 대한 기준을 아리스토텔레스가 좀 더 명확하게 가르쳐준 거지.

스승의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이야기하는 지행합일은 너무 어렵다 이거죠. 소크라테스는 알면 저절로 행한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렇게 해서는 민중과 교류가 안 된다 한 거죠. 그래서 아는 거하고 행하는 거하고 분리해서 알고 난 후에 행하라고 말하죠.”

-수원시에서 영화와 정신장애라는 주제의 토론을 많이 했습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영화가 있습니까.

“일 년에 많이 할 때는 4번, 적게 할 때는 2번 정도 했어요. 우리 당사자들이 같이 봤으면 싶은 영화는 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예요. 임 감독은 제가 좋아하는데 무엇이 행복인가를 느끼게 해 주는 영화였어요.

그 대화에 ‘아주심기’라는 단어가 있어요. 마늘을 아주심기를 한다네. 한 번만에 아주심기가 안 된대요. 내용이 뭐냐면 고향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왔다가 다시 떠났다가 다시 오거든요.

두 번을 떠났는데 극중의 김태리가 두 번째 올 때는 ‘아주심기를 하기 위해서 온다’라는 대화가 나와요. 아주심기는 한 번에 이뤄지는 게 아니고 자기만의 숲을 찾았을 때 아주심기가 된다라는 얘기죠. 자기만의 작은 숲을 가져라 그런 의미가 있죠.”

-건강권 확립은 건강형평성에 달렸으며 건강형평성 보장을 위해 유급휴가를 쓰지 못하는 노동자와 영세자영업자들에게 기본 소득을 주는 유급병가제도를 제시했습니다. 지금도 같은 생각이십니까.

“서울시에서 공공보건의료재단에서 연구하고 지금 시행하고 있는 제도인데요. 처음 시행해 보는 거거든요. 일반 직장 같으면 병가제도가 있어서 할 수 있는데 그냥 자영업을 하면 그게 불가능하죠. 예를 들면 택배하는 분들은 그날그날 벌지 않으면 수술을 못 받잖아요.

그런 분이 허리수술이 일주일 필요하다면 서울시가 생활임금 기준으로 해서 열흘치의 생활임금과 진단비를 드리는 거예요. 그러면 일주일 동안 일을 쉬고 수술을 받아도 그 돈을 서울시가 100퍼센트 주는 거죠. 그걸 포퓰리즘이라고 비난도 하는데 영세하면서 의료급여는 아닌 건강보험의 말(末)쪽에 있는 분들이라면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아닌가 해서 유급병가를 실시했어요.”

-기본소득제가 한국 사회에서 실현될 수 있을까요.

“논란은 많겠지만 가지 않겠나 생각이 들어요. 원래 기본소득은 보수정권에서 나온 겁니다. 이 기본소득제는 복지 중심의 국가를 건설하자는 사람들도 반대를 해요. 왜냐하면 기본소득 안에 ‘퉁쳐서’ 복지를 소홀히 한다는 거죠. 어쨌든 핀란드에서도 실험을 했고 우리나라에도 한 번 실험을 해 볼 가치가 있다.

청년들을 중심으로 한 기본소득제도를 도입해서 신청자를 받아서 해 보는 것도 괜찮다고 보고요. 성남시나 경기도에서 지금 하고 있는 게 24세 생일을 맞는 모든 청년들에게 100만 원 정도를 온라인 상품권으로 줘요. 격려비죠. 일 년에 100만 원. 그러면 지역화폐로 풀어지니까 지역경제가 활성화되고요. 세금은 다시 각 지자체로 돌아오게 돼 있거든요.

핀란드가 한 150만 원을 주더라고요. 핀란드 경제 수준이 우리나라보다 약간 더 높죠. 그래도 그 소득이 높다고 하는 이유는 오로지 일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기의 새로운 삶을 창조하기 위해서 그 돈을 쓰거든요. 근로소득이 아닌 상태이기 때문에 그렇게 낮지 않다고 보는 거죠. 그래서 핀란드 수준으로 하자면 150만 원, 우리나라 수준으로 보자면 월 100만 원 정도라도 시험을 해 본다면 글 쓰고 싶은 사람은 글을 쓰고 얼마든지 그렇게 (자아를 실현하면서) 살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김근태기념치유센터 설립추진위원입니다. 국가폭력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까.

“국가로부터 정신장애인들이 강제입원 당한 자체가 폭력을 당했던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요양원에서 20년을 보낸 건 거꾸로 폭력을 당한 거잖아요. 저는 치료와 재활에 관심을 두다가 인권은 2005년 이후에 시야에 들어왔어요.

보니까 치료재활하고 인권은 처음부터 길이 다르더라고요. 쉽게 말해 저도 치료자로서 폭력 유발자가 된 거죠. 그렇죠? 내가 이 사람을 치료하기 위해서 폭력을 행했을 수도 있다라는 윤리적 폭력 문제에 들어가게 되더라고요. 윤리적 폭력은 국가가 가장 많이 했죠. 외국도 국가가 저지른 폭력이 엄청나게 많고요. 전쟁 일으키는 건 다 국가폭력이죠.

우리나라에서도 진실과화해위원회,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있는데 당시 국군에 의해 죽은 사람도 있고 북한군에 의해 죽은 사람들도 있고 민간학살이 수없이 많았죠. 다 국가폭력이죠. 그런 문제를 큰 틀에서 트라우마로 다루는 걸 외국에서 보게 된 거죠. 그래서 조금이나마 인권운동하시는 분들과 함께 하려고 했죠. 그 중에 대표적인 분이 김근태 (전 의원).”

이영문 국립정신건강센터장과 박종언 편집국장 (c)마인드포스트.

-박정희 시대는 급진적 산업사회 시기였지만 동시에 정신건강은 돌봄받지 못했던 영역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정신과 의사로서 그의 시대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궁금합니다.

“매우 속도전으로 빨리 했을지는 몰라도 야만과 폭력의 시대였죠. 정신건강을 아주 해롭게 했다고 생각해요. 민주주의라는 건 골치 아프고 말도 많고 하나 결정하는 데 굉장히 까다롭고 힘들지만은 정신적으로 그게 건강해요. 왜냐하면 다 담론을 쏟아내니까요.

제가 잘 쓰는 말이 담론(談論)인데요, 담론은 디스코스(discourse)잖아요. 코스(course)가 아니라는 뜻이잖아요. 이렇게 가는 게 아니고 구불구불하게 가다가 이쪽 길이 아니다 싶으면 다른 길로 가는 게 담론이거든요. 이런 과정을 거쳐서 가는 게 정신적으로 그 나라가 건강하다는 거죠.

독재는 쉬워요. 쉬운데 독재를 하게 되면 (국민의) 스트레스 지수가 다 올라가죠. 우리 한국사회의 많은 문제들을 꼭 박정희만을 탓할 수는 없지만 여전히 군사문화, 검찰문화 등이 남아 있잖아요. 권력으로 통제하려고 하는 시스템이 지금까지도 연결돼 있는 거죠. 부정적입니다.”

-박정희는 굉장히 부정적인 인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 아프리카에서 새마을 운동을 공부하기 위해서 온단 말이에요. 이 충돌되는 모순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새마을운동 자체를 하는 건 뭐라고 그럴 수는 없죠. 그 자체에 대해서 하는 건 문제가 없는데 새마을운동을 만든 근거가 어디에 있냐는 생각해봐야 해요. (서구에서) 근대국가를 만들 때 가장 많이 썼던 게 사람을 근면(勤勉)하게 만든다는 거였죠. 사람을 근면으로 만들면서 이성이 아니면 다 죽이죠. 그것이 인간들을 더 퇴화시키는 요인이 된 거죠.”

-정신과 의사로서 생애에 꼭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뭘까요.

“그런 건 생각 없이 살아왔는데(웃음). 아까 박 기자가 나한테 얘기해 준 거 하고 비슷해요. 뭐 진리를 찾는 구도자와 같다고 얘기했는데 구도(求道)라는 걸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제가 종교가 없으니까.

다만 정신건강 자체가 이 세상을 바꾼다. 제가 아는 다큐 작가들은 다큐 한 편이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해요. 글을 쓰는 분은 자신의 글 하나가 세상을 바꾼다라고 말하죠. 이런 식이거든요. 마찬가지로 저는 정신질환의 가치가 세상과 우리 한국사회를 바꿀 것이다. 정신질환은 위험하다는 천박한 생각들이 아니라 정신건강에 대한 올바른 가치가 공동체를 바꾼다고 생각합니다.”

기자는 인터뷰가 끝날 무렵 그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더 했다. 몇 년 전 국립정신건강센터가 갓 개원됐을 무렵 센터를 찾았는데 역시 센터를 찾은 정신장애인들이 기자를 알아보고 이렇게 말했다. “정신장애인들은 담배도 많이 피우고 커피도 많이 마신다. 그런데 센터에는 커피자판기도 없다. 대신 센터 구내의 비싼 커피숍을 이용하라고 한다. 가난한 우리가 어떻게 매일 비싼 커피를 마실 수 있냐고.” 그 이야기를 이 센터장에게 넌지시 던졌다. 이 센터장은 인터뷰 자리를 지키던 김민아 대외협력팀장에게 말했다. “그래요. 그건 우리가 챙겨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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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랑제수민 2019-12-13 01:13:07
토론회에 질문 자리에서 이센터장에게 "25년 전이나 지금이나 정복법 나아진게 없고, 당사자들 25년이나 괴롭힌 의사 전문가들 반성해야쟎은가?" 질책했던 나의 경솔함을 센터장께 정중히 사과하고 철회한다. 속좁은 맘에 이센터장의 깊은 철학적 사유를 이해하지 못했고 당사자활동에 대해 지식이 모자란 내 탓이다.

이젠 당사자도 병식갖고 자기행복을 느끼고 누리면서 살아야 한다. 전문가들도 네거티브 케이퍼빌러티 비판수용능력을 갖고 당사자를 좀더 사랑해야 한다. 아주심기를 하자 거듭나야 천국에 가듯이 옮겨심겨 뿌리줄기 튼튼해져 삶을 살아내야한다ㅡ

합이 맞아야한다. 보건의료가 양보하고 지역사회 복지가 돌봄케어로 확장되야 한다. 약도 먹으면서 일도하고 기본소득도 받는다면 핀란드보다 나은 나라된다. 문케어 이뤄보자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