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운 “정신장애인 동료지원가가 승진해서 팀장도 되고 기관장도 되었으면 좋겠어요”
김종운 “정신장애인 동료지원가가 승진해서 팀장도 되고 기관장도 되었으면 좋겠어요”
  • 박종언 기자
  • 승인 2019.12.15 21:5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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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경험 전무하면 눈높이 낮추고 작은 일부터 찾아야
본인인 번 돈을 본인이 쓰면 상당한 자존감 올라가
약 없이 버틸 수 없다면 약을 꼬박꼬박 먹어야 해
정신장애인 가족은 센터나 재활시설 가족모임에 참여해야
환청 망상 있어도 일상생활 잘 유지하면 회복될 수 있어
선진국은 가볍게 정신과 찾지만 우리는 진입 장벽 높아
유럽처럼 위기개입하면서 쉴 수 있는 쉼터 만들어야
정신장애인 딸 수 있는 자격증 제한돼…다양한 자격증 딸 수 있어야
퇴원 정보 경찰에 알리는 건 관리 개념…프라이버시 침해
약물 중심보다 활동할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 절실
탈원화와 당사자 중심으로 정신건강복지법 개정돼야
당사자 참여하는 전문가주의에는 찬성…당사자 관점 들어가야
사법입원제는 정부의 편의적 관점…폐지되는 게 옳아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아버지는 철도 기관사였다. 어린 시절, 그는 부모님 곁을 떠나 경북 김천 조부모 집안에서 자랐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부모님이 계신 서울로 왔고 이후 초·중·고와 대학·대학원을 모두 서울에서 보냈다. 1988년 대학에 입학해 언어를 전공했고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대학원 시절 부모님이 잇따라 암에 걸렸다. 어머니가 폐암 판정 받은 3개월 후 이제는 아버지가 간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부모님은 보름을 간격으로 돌아가셨다. 대학원생이던 당시 그는 부모님 간병을 위해 대학원을 일 년 쉬었다. 그리고 복학. 대학원 동기들은 그때 졸업을 하고 좋은 직장들로 하나둘 들어갔다.

동기들보다 일 년 늦은 그는 1997년 논문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IMF가 터졌다. 외환위기는 염두에 둔 회사 입사도 못할 정도로 당시 청춘들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그도 그랬다. 취업문은 좁았고 공무원 시험은 나이 제한에 걸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선택한 건 동네 보습학원 수학 강사였다. ‘운 좋게’ 일 년 먼저 입사한 대학원 동기들에게 열등감 역시 커졌다.

그 무렵, 그에게 환청이 들여오기 시작했다. 2004년 11월, 나이 36살 때였다. 환청의 목소리는 조직폭력배의 협박이었다. 그를 향해 죽으라는 목소리가 종일 들렸다. 그렇지 않으면 형제들을, 그의 친구들을 죽이겠다는 조폭의 협박이었다.

혼자 살면서 밥도 제대로 차려먹지 못하던 그는 그 환청과 망상을 피해 전국을 떠돌았다. 기차를 타거나 버스를 타고 그는 환청이 없는 곳을 찾아 헤맸다. 그러나 환청을 벗어날 수 있는 공간은 세계에 부재했다. 극단적 선택을 결정했다. 서울의 한 도로에서 막 시동을 걸고 다가오던 차에 몸을 던졌다. 차는 멈췄고 그는 파출소로 끌려갔다. 혼잣말을 하는 그를 보며 경찰은 가족에게 연락을 했고 작은형이 와서 그날 바로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혹자는 말한다. 조현병은 십대 말, 이십대 초반에 걸린다고. 그는 그러한 모델과 달리 36살에 조현병 판정을 받는다. 의사는 발병이 늦을수록 예후가 좋다고 했다. 그 역시 예후는 좋았다. 발병 3년 후, 그는 정신건강복지센터 등에서 보조일로 일을 시작했다.

2007년 다니던 센터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아내 역시 정신장애인이었다. 사랑이란, 모든 것을 덮어버린다. 아픔도 슬픔도 고통도 외로움도 두려움도 회한도 모두, 덮어버린다. 사랑이 모든 것을 해 줄 수는 없지만 일정 정도의 세계의 낯선 공포와 슬픔을 잠재워준다. 그는 그녀와 결혼했다. 지금은 결혼 10주년째다.

그리고 그는 사이버대학에서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을 땄고 정신재활시설과 정신건강복지센터 등을 거쳐 현재 양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서울시 정신장애인 자립생활 지원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생이 휘청이지 않았다면, 무언가 어느 정도는 아프지 않게 다가왔다면 그는 영국에서 경제학 공부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의 말이다. 그렇지만 생의 광풍은 그를 영국이 아닌 정신병원으로 떠나보냈다. 극단의 좌절감. 그러나 그는 그 부정적 삶의 자리에서 긍정을 깨달았다. 작은 일이라도 감사하면서 살아가기. 그는 삶과 고통의 의미를 그렇게 정의했다.

인터뷰 이전에 그가 건넸던 명함에는 양천장애립자립생활센터 활동가로 적혀 있었다. 김종운(51) 씨를 만난 건 지난 11일 양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다. 다음은 일문일답.

김종운 활동가 (c)마인드포스트.

-몇 번 입원하신 겁니까.

“길게 입원한 거는 그때가 3개월로 처음이었죠. 그 다음에는 일주일씩 한 세 번 정도 입원했어요. 자의입원으로.”

-정확한 병명이?

“조현병요. 편집성 조현병.”

-강제입원 당하신 겁니까.

“그런 셈이죠. 어쨌든 끌려갔으니까요. 그런데 강제입원에 대한 트라우마는 없어요. 그때 입원했던 시립은평병원 의사가 여기 입원하면 뭐할 거냐 해서 나가서 자살시도 계속하겠다고 하니까 입원을 시키더라고요.”

-아침에 보통 몇 시에 일어나서 저녁에 몇 시 정도에 주무십니까.

“요즘은 잠이 좀 줄어서 한 오전 여섯 시, 빠르면 다섯 시에 일어나요. 잠은 보통 밤 11시 정도에 자요.”

-직장인으로서 하루를 어떻게 지내십니까.

“제가 처음 한울에서 사회복지사 활동을 시작했거든요. 그때 주거시설 사회복지 일을 했는데 처음에는 아무것도 몰랐어요. 일 년 간은 업무를 배운다기보다는 출퇴근하는 게 우선이었죠. 그것만 잘해도 관장님이 만족해하는 것 같았어요.

일 년 뒤부터 본격적으로 사회복지 일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서류나 회계를 몰라서 그때는 그냥 그대로 쳐갖고 가서 결제 받고 잘못 작성하면 시설장이 연필로 수정해서 첨삭하듯이 써주더라고요. 그럼 그걸 갖고 가서 다시 쳐갖고 다시 결제 받고 했죠. 그렇게 일 년을 보냈어요. 2007년에 한울 주거시설 새로돋는집에 입사하고 사이버대학에서 사회복지 공부를 했어요. 일 년 간 사회복지 공부하고 사회복지사 2급을 딴 거죠.”

-2004년에 발병하고 2007년에 사회복지사 했으면 발병과 회복의 주기가 굉장히 짧네요.

“주기가 짧죠. 회복이 빨리 된 거예요. 2004년 11월에 시립은평병원에 입원해서 이듬해 1월 말에 퇴원했거든요. 그리고 관악구의 주거시설 새로돋는집 회원으로 들어갔어요. 거기서 2005년에 낮에는 사회복귀시설인 한울정신건강복지센터 다녔거든요. 거기 한 3개월 다니다가 취업을 했어요. 그때는 장애인 카드가 없을 때죠. 청년 일자리라고 고용노동부에서 할 때였어요.

그걸 신청했는데 양천장애인복지관에 청년일자리로 면접을 보게 됐어요. 계약직으로 한 달에 60만 원 받고, 4대 보험 되는 일을 했어요. 그 무렵에 아내를 만났거든요. 2005년 1월 말에 한울정신건강복지센터 가서 (아내와) 3월부터 사귀었죠. 진행 과정이 빨랐어요. 결혼까지는 5년 걸렸어요. 연애 한 5년 했고 중간에 1년 정도 헤어졌다가.”

-약물로 인해 늦게까지 자야하는 정신장애인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습니까.

“저는 약을 많이 드시는 분들도 약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면 보통 한 여덟 시에는 일어나라고 권하고 싶어요. 사실 정신장애인들이 주간재활시설로 아침에 출근하는 것만 해도 대단한 거거든요.

아침에 약 먹고 오후 되면 약기운이 올라와서 졸리고 그 부작용으로 혀가 굳거나 본인도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눈이 돌아가거나 피부가 안 좋아지기도 하는 부작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간재활시설에 출근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 생각이 들어요. 약물 적응은 본인에게 맞는 걸 찾아가는 거잖아요. 정신과 의사도 계속 찾아주고. 그 약에 적응이 될 때까지는 일단 힘들겠죠.

현실적으로 약을 무시할 수는 없어요. 저는 요즘은 약을 자주 먹지는 않아요. 증상이 많이 올라왔을 때나 스트레스 많을 때 약을 먹는데 그거 외에는 잘 안 먹으려고 해요. 왜냐하면 저는 약을 안 먹어도 버틸 수 있으니까요. 동료 정신장애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약을 안 먹을 경우 버티지 못하고 일상생활 못하면 약을 먹어야 해요. 약물은 꼬박꼬박 먹어야죠.”

김종운 활동가 (c)마인드포스트.

-이렇게 일하는 정신장애인 당사자는 많지 않습니다. 일자리를 구하는 이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습니까.

“처음부터 150~200만 원 받겠다, 그런 일자리를 찾지 말고 계약직이나 파트타임이라도 먼저 시작했으면 좋겠어요. 파트타임 하루 4시간 하는 데 익숙해지면 시간을 늘리고 그러다보면 전일제 근무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자기가 일을 하면서 월급을 받으면 자존감이 올라가잖아요. 여자 친구 사귀는 분들은 데이트 비용에 쓸 수도 있고. 선물도 하고 맛있는 음식을 사줄 수도 있고요. 본인이 번 돈을 본인이 쓰는 건 상당히 자존감이 올라가요. 직장 경험이 전무한데 처음부터 눈높이를 높이지 말고 낮춰야 해요. 정신재활시설 취업부 선생님들과 상담을 해서 파트타임으로 시작했으면 좋겠어요. 본인의 능력을 감안해서 처음에 일자리를 너무 높이 잡지 말고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기를 바라요.”

-지금 혼자 살고 계십니까.

“아니요. 결혼해서 같이 살아요. 제 아내도 정신장애인이라서 애기를 낳기가 쉽지 않네요.”

-가족 내 정신장애인의 마찰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정신질환에 대해 관심이 있는 가족은 정신건강복지센터나 정신재활시설에서 하는 가족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면 해요. 가족은 생업에 쫓겨서 정신장애에 대해 지식이 많이 없어요. 그러다보니 자녀와 동생, 형이 증상이 올라왔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모르시는 거죠.

저는 가족이 어려운 책보다 우선 쉬운 책으로 공부를 좀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가족교육에 참여해야죠. 그러면 가족 중의 정신장애인의 증상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나 요령이 생길 수 있어요. 가족 간 마찰이 생기는 건 서로 모르기 때문에 그래요. 정신장애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더 당황스러워하고 대처하는 방법을 모르니 마찰이 생기는 거죠.”

-굿 등 미신으로 치료하려 했던 적도 있습니까.

“저는 개신교입니다. 부모님은 불교였는데 저는 중학교 때부터 교회를 다녔어요. 부모님 돌아가실 때까지 교회를 못 다니다가 아내 만나면서 다시 교회 다니기 시작했어요.”

-회복의 개념을 어떻게 정의하십니까.

“약을 먹고 있고 환청과 망상이 좀 있어도 자기 일을 하고 일상생활 잘하면 회복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주간재활시설 다니는 당사자들은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정신장애인들보다 많이 회복이 됐다고 봐요. 회복은 어려운 게 아니라 내가 지금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일 수 있다면 그게 회복이라고 생각해요. 회복은 과정이에요.”

-완결된 회복은 없다?

“정신장애인들의 꿈이 완치인데 그 완치가 참 어렵죠. 왜냐하면 일상생활 잘하다가도 어느 순간 스트레스에 취약해지면 갑자기 증상이 올라갈 수 있거든요. 본의 아니게 응급입원도 하게 되고 자의입원이나 행정입원을 할 수 있게 돼서 정신장애인에게 정신질환 발병의 예측은 불가능한 거 같아요. 상황에 따라 변화가 심하니까요. 저는 회복 개념을 나선형처럼 좋아졌다가 나빠졌다가를 반복하면서 점점 더 좋아지는 방향으로 나가는 거라 생각해요.”

-정신과에 대한 편견으로 정신적 고통이 있어도 정신과를 찾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미국이나 유럽은 정신과에 대해 보험 적용도 받으면서 자유롭게 가거든요. 그런 문화잖아요. 우리나라는 정신과에 가는 것에 대해 상당이 꺼리는 문화예요. 뭔가 제정신이 아닌 사람으로 보잖아요.

지금 신자유주의 시대로 넘어와서 (부의 불균등이) 심해지면서 사람들이 신경증 등을 많이 앓고 있어요. 그걸 숨기고 있는 것뿐이죠. 정신건강복지센터나 정신재활시설에서 비정신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정신건강에 대해 홍보를 하고 또 지하철역에서 캠페인을 할 필요가 있어요. 지금의 신자유주의 경쟁 체제 아래에서 충분히 정신질환에 걸릴 수 있다고요.

공황장애나 우울증은 요즘 보편화됐잖아요. 그럼 누구나 다 정신질환에 걸릴 수 있고 회복도 될 수 있다는 걸 알려야죠.”

-정신병원 입원 기간이 여전히 줄지 않고 있습니다. 입원 기간을 줄이기 위해 국가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입원 기간을 줄여야 하는데 아직 우리나라는 지역사회 인프라가 부족해요. 위기 개입할 수 있는 시설들도 많지가 않아요. 위기 개입을 해도 그냥 상담하거나 병원에 연결해서 단기입원 시키는 게 다거든요. 뉴질랜드나 유럽처럼 위기 개입을 하면서 이삼 일에서 일주일 정도 쉴 수 있는 쉼터를 만들어야 해요. 비상근 정신과 전문의나 정신건강 간호사가 쉼터를 왔다갔다하면서 약 조절하고 봐주면 일주일 안에는 충분히 증상이 가라앉을 수 있죠.”

-정신건강복지법은 어떤 방향으로 개정돼야 할까요.

“중요한 건 탈원화 가치가 중요해요. 그리고 정신장애인 당사자 관점에서 정신건강복지법이 개정됐으면 합니다. 정신과 의사나 전문요원들의 관점이 아니라 당사자의 관점에서 만들어져야 해요. 정신건강복지법의 주요 내용들을 장애인복지법에 실어서 정신장애인들이 복지서비스를 받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저는 장애인복지법 15조는 폐지돼야 한다고 생각해요.(장애인복지법 15조는 정신장애인이 장애인 복지서비스를 받을 수 없도록 규제하고 있다-편집주) 미국의 다니엘 피셔 박사도 정신장애인이지만 정신과 의사 하잖아요. 우리나라는 정신장애에 대한 편견이 너무 심해 정신장애인들이 자격증을 딸 수가 없는 구조예요. 자격증 취득의 걸림돌이 없어야 정신장애인들이 전문직으로 진출할 수 있는 꿈이라도 꿀 수 있죠.”

김종운 활동가 (c)마인드포스트.

-정신건강복지법의 복지 부분이 장애인복지법으로 넘어가야 된다는 말씀입니까.

“정신건강복지법에 있는 것 중에 장애인복지법하고 겹치는 부분이 있을 거 아니에요. 그 부분을 정신건강복지법에도 넣고 장애인복지법에도 같이 넣는 거죠. 정신장애인들이 장애인복지법의 적용을 받고 서비스를 받게 되면 좋겠어요.”

-정신병원 퇴원 환자의 개인정보를 경찰서와 보건소에 알리는 건 왜 불법일까요.

“이건 불법이에요.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서 정신과 병원에 입원했다는 걸 본인들이 숨기고 싶어 하잖아요. 퇴원 통보는 국가가 관리 차원에서 한 거 같아요. 정신장애인들 관리 차원에서 명단을 넘기는 거 같은데 정신장애인 입장에서 프라이버시 침해죠.”

-안인득 사건 이후에 응급입원이 늘어났습니다. 이는 긍정적 현상일까요. (지난 4월 경남 진주의 한 아파트에서 안인득이 자신의 아파트에 불을 지르고 대피하던 주민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20여 명이 사상한 사건-편집주)

“저는 이것도 정부의 관리 차원이라고 봐요. 가장 손쉬운 관리 방법 중 하나가 행정입원이나 응급입원이죠. 사회적 인프라가 없는 상황에서 정부가 할 수 있는 건 응급입원 행정입원밖에 없어요. 그 기저에는 관리한다는 개념이 있고 격리한다는 개념도 포함돼 있는 거죠.”

-국가인권위원회 전수조사에 따르면 정신장애인의 57%가 무직입니다.

“정신장애인이 가질 수 있는 자격증이 드물고 취업을 하려고 해도 갈 수 있는 곳이 몇 군데 안 되잖아요. 미용사도 못 되고 간호보조사도 간호사도 못 되고 요리사도 못 되고요. 갈 수 있는 곳은 바리스타나 몇 군데밖에 안 돼요.

이건 정부의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봐요. 또 다른 측면은 저도 그렇지만 정신장애인들이 스트레스에 취약하다보니까 그런 부분도 작용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신장애인 중에는 대인관계 잘 하는 분도 있지만 대체로 관계를 힘들어하는 분들이 많아서 그렇지 않나 싶어요.”

-정신병원 입원에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응답한 비율은 11%에 불과했습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약으로 모든 걸 고칠 수는 없잖아요. 그리고 3개월, 6개월 입원했다고 해서 그 사람이 회복되지 않잖아요. 강제입원에 대한 트라우마도 있어요. 이 11%라는 의미는 정신과 약을 먹어도, 입원을 해도, 퇴원해서 나와도 회복이 되지 않는다는 걸 의미하잖아요.

정말 치료가 되려면 정신장애인들이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이 넓어져야죠. 약에만 의존해서 약물로 증상을 누르려고 하지 말고 정신장애인들이 회복될 수 있는 시설이나 인프라를 많이 깔아줘야죠. 이 같은 배려는 정부와 지자체가 해줘야 하는데 그 부분이 좀 소홀하죠.”

-현재의 돌봄이 가족에게 떠맡겨져 있습니다. 이를 어떻게 바꿔나가야 할까요.

“저는 PAS(Peer Assistance Service·동료지원서비스) 제도를 손봐야 된다고 봐요. 장애등급이 변경이 됐잖아요. 거기 보면 정신장애인들은 팔다리가 성하니까 PAS 서비스를 받지를 못하는 거예요. 식사를 제대로 하지, 이동할 수 있지, 세수도 맘대로 하고 옷도 갈아입을 수 있지 하니까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을 점수가 낮아요.

그런데 발달장애인이나 신체장애인들, 예를 들어 휠체어 타고 다니는 척수장애인들은 이런 데서 점수가 높아요. 정신장애인은 PAS 부분에서 불리해요. PAS에는 정신장애와 관련된 26개의 복지서비스 분류가 됐잖아요. 그걸 정신장애인들에게 세밀하게 봐줬으면 좋겠어요. 그게 안 돼 있어요. 너무 단순하게 돼 있어서 정신장애인들이 PAS를 받을 수가 없어요.”

-정신건강복지센터에 동료상담가를 두자는 논의도 있습니다.

“저는 찬성합니다. 당사자들에게 일자리를 주는 의미거든요. 동료상담가를 두는 건 좋지만 이들이 동료지원가에만 머무르지 말고 승진해서 대리도 되고 팀장도 되고 국장도 되고 소장도 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또 시설장까지도 되면 좋겠죠. 동료지원가가 다른 사회복지사나 자립생활센터 간사들 밑에 있는 게 아니라 처음에는 밑이더라도 자꾸 승진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줘야죠.”

-사법입원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정부의 편의주의적 관점이라고 봐요. 관리 차원이거든요. 2차 진단을 해서 사법입원 시키는 건 판사 마음이에요. 예를 들어 정신장애인들이 세상을 너무 힘들게 하고 있다, 그러면 다 사회로부터 격리해서 강제입원시키겠다는 의미거든요. 사법입원은 국가가 정신장애인을 강제입원시키는 거죠.”

-대안은 있습니까.

“사법입원제는 폐지돼야 해요. 이건 정부의 편의적 관점이에요. 대안으로 저는 위기관리 쉼터를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시설, 센터들이 많이 만들어져야죠. 사법입원제를 폐지하는 대신 사회적 인프라를 많이 깔아줘야죠. 이건 돈도 적게 드는 작업이에요. 어렵지 않거든요. 정부가 예산을 이런 데 투입해서 정신장애인들과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분들에게 세밀하게 위기대응할 수 있는 구조로 저는 쉼터를 만들어야 한다고 봐요.”

김종운 활동가 (c)마인드포스트.

-사법이 아닌 제3의 기구인 준사법기구가 판단하는 것에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것보다는 우선 쉼터를 많이 만들어주고 정신과 의사와 임상심리사, 사회복지사가 공동으로 당사자의 증상을 지켜본 후에 입원 여부를 결정하는 게 낫지 않나 싶어요.”

-지켜본다는 건 일주일 동안 지켜본다는 말입니까.

“증상이 좋아질지 가라앉을지를 봐야죠. 일단 쉼터를 보내서 위기 증상이 가라앉는지 보고 증상이 가라앉지 않으면 일주일 정도 봤다가 그때 병원으로 연계시켜야죠.”

-현재의 2차 진단과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는 왜 만들었는지 이해가 안 돼요. 의미가 없어요. 이 위원회는 이 사람이 입원을 하는 게 맞는지 아닌지를 따지는 거잖아요. 이 위원회에 정신장애인 당사자가 들어갑니까? 안 들어가요. 다 전문가 집단이잖아요. 이건 전문가 집단의 편의주의적 관점이에요.

어떻게 보면 정신장애인들의 강제입원을 막기 위해서 하는 거 같은데 악용이 될 수 있어요. 왜냐하면 위원회는 다 전문가 집단인까 편의적으로 입원시켜야겠다 생각하면 그 다음은 정신병원이니까요. 저는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는 없어지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정신장애인 인권이 훼손되지 않을까요.

“저는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보다 2차 진단이 더 나은 거 같아요. 차라리 정신과 의사와 정신건강간호사와 정신장애인 당사자를 지켜보고 난 다음에 (입원 여부를 결정하도록요).”

-2차 진단에 대해서 불필요하다고 의료계에서는 얘기를 하거든요.

“저도 불필요하다고 생각해요. 2차 진단을 왜 하는지 모르겠어요. 1차 진단만 하면 되지 않나요. 2차 진단 한다는 건 뭘 의미하는 거죠? 1차 진단만 한다고 인권이 무시되는 건 아니잖아요. 강제입원도, 행정입원도 2차 진단한다고 해서 인권이 보장된다고 볼 수 없잖아요. 이게 악용될 수 있거든요.

전문가들이 봤을 때 시대 상황이 ‘정신장애인을 격리시켜야 한다’ 그러면 2차 진단했을 때 입원을 바로 결정할 수 있거든요. 더 큰 세력과 권력에 의해서 조종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돼요. 독일의 나치가 그랬잖아요. 우생학 얘기하면서 의사들 불러놓고 장애인들이나 정신장애인들을 가스실에 보내서 죽이라고요. 그렇게 악용될 수 있다는 거죠. 지금 인권을 보장한다고 얘기하지만 정권이 바뀌면 이 법이 악용될 수 있어요.”

-정신장애는 특수성이 있어서 자립을 위해서는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인식이 있습니다. 전문가주의는 왜 문제가 되는 걸까요.

“전문가 집단인 사회복지학과 교수들, 정신과 의사들, 정신건강임상심리사든 간호사든 제가 정말 묻고 싶어요. 왜 이 전문가 집단에 당사자들은 참여할 수 없나요. 전문가끼리만 얘기하니까 당사자들 관점은 빠져 있잖아요.

쉽게 말해 자기들 눈으로만 정신장애인을 보니까 관리 차원 아니면 환자 개념으로 보는 거죠. 당사자가 처한 상황이나 질환에 대한 세세한 부분을 모르잖아요. 당사자 자신이 전문가예요. 당사자들이 참여를 해야 저는 전문가주의에 찬성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약물은 가끔씩 드시는 겁니까. 최소 약물주의자입니까.

“네. 최소 약물주의자입니다. 약을 많이 먹으면 좋은 게 아니라고 생각하니까요. 부작용도 심하고 일상생활도 약 기운 때문에 힘들고요. 가능하면 약은 많이 먹으면 안 되겠다 싶어요. 왜냐하면 정신과 약을 주면 거기에 대한 부작용 방지 약을 또 줘요. 그러다보니까 약 수가 늘어나거든요. 정신과 약이 뇌신경 호르몬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정신과 의사들이 과연 얼마나 정확히 알고 있는지 묻고 싶어요.”

-양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처럼 정신장애인까지 포함된 자립생활센터는 흔하지 않은 것 같은데요.

“2016년부터 정신장애 사업을 시작했다고 하더라고요.”

-어떤 과정으로 여기에 들어오게 되신 겁니까.

“제가 사회복지사 2급 따고 난 후에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한울정신건강복지센터로 내부 발령이 나서 거기 주간재활시설에서 1년 3개월 일했어요. 그쪽에서 일하다가 너무 힘들고 증상도 올라오고 해서 2년 반 쉬었어요. 그리고 양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로 왔죠.

처음에는 파트타임으로 장애인 복지 일자리를 여기서 시작했거든요. 그런데 여기 정신사업 담당하는 팀장님이 서울시 정신사업 담당 같이 하자고 해서 4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죠.”

-이 센터에서 정신장애인의 활동이 어떤 의미를 가집니까.

“기존의 자립생활센터에서 정신사업은 안 하고 신체장애나 발달장애, 척추장애 쪽으로 사업을 했어요. 정신장애 쪽 사업을 하게 된 이유는 (이상호) 양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님이 ‘장애 운동의 마지막은 정신장애 운동’이라고 말을 했어요. 소장님의 뜻이 더 컸던 거 같아요.

그래서 정신 사업을 시작했고 다른 장애인자립생활센터들에서도 양천이나 금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따라서 정신 사업을 하려고 한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정신장애는 다른 장애에 비해 소수 장애잖아요. 양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정신 사업을 하는 게 파급 효과가 클 거 같아요. 장애운동 쪽에서도 정신장애를 신체장애와 연대해서 같이 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종운 활동가 (c)마인드포스트.

-정신장애인 당사자 운동에서 핵심 이념은 뭐가 돼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차별 철폐인 거 같아요. 타 장애에 비해 정신장애인들은 차별을 많이 받아요. 예를 들어 거주 시설의 경우 신체장애나 다른 장애 유형은 십 년 혹은 평생 있을 수 있거든요. 그런데 정신장애인만 3년으로 묶어놨어요. 이건 차별이거든요.

정신장애인에 대해 지자체에서 차별을 두는 조례가 많아요. 차별을 철폐하고 이걸 통해 인식 개선과 권익옹호가 이어져야죠. 중요한 건 차별 철폐를 통해 정신장애인들이 자격증도 따고 여러 가지 일을 할 수가 있어야죠. 인식개선이 되면 정신장애인들의 인권도 많이 향상이 될 거라고 봅니다.”

-당사자의 자립생활 역량 강화를 위해서 국가의 어떤 지원이 필요할까요.

“정신장애인들이 주체가 되는 자립생활센터를 만드는 게 중요해요. 지금 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하나밖에 없는데 전국적으로 확장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당사자가 소장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규정도 넣어줬으면 좋겠고요. 또 정신장애인들이 일할 수 있게 동료지원가 정책을 확대하고 당사자 관점에서 일자리 교육 커리큘럼도 만들었으면 합니다.”

-선생님은 회복됐다고 생각하십니까. 어떤 근거로 회복됐음을 선포할 수 있을까요.

“저는 많이 회복됐다고 생각해요. 일단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증상이 좀 있어도 일상 생활하는데 불편을 좀 덜 느끼죠. 규칙적으로 일하고 출퇴근하고 결혼 생활도 하고 있어서 많이 회복됐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제가 제 주장을 할 수 있으니까요. 직장생활에서 자기주장을 할 수 있고 대인관계에서도 내 주장을 펼 수 있어요. 또 상대방에 대한 배려심도 생겨서 이런 것들을 생각해 보면 많이 회복됐다고 생각합니다.”

-결혼을 할 때 정신장애인임을 밝혀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건 상황에 따라 다른데요. 저는 아내가 정신장애인이고 나도 정신장애인이니까 다 밝히고 해서 편했는데요. 비장애인과 결혼을 할 때는 많이 고민이 될 거라 생각해요. 그 부분은 저도 어떻게 말씀을 못 드리겠어요. 그런 케이스 바이 케이스예요. 상황에 따라 달라요.”

-선생님이 정신장애인 아니었으면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요.

“그게 참(웃음). 저는 아마 외국에서 살았을 거예요. 영국에 가서 경제학 공부를 했을 거 같아요. 내 꿈이 그거였거든요. 그래서 유엔 산하 기구에 들어가서 일하고 싶었어요. 제가 대학원 들어가서 경제학 공부할 때 생각했던 게 빈곤층을 많이 없애고 소득을 좀 제대로 분배해 보자였어요.

소수의 부자들만 부를 독점하지 말고 일반 서민들도 제대로 소득의 파이를 가져가자. 또 선진국에서 부를 독점하지 말고 중진국이나 후진국에서도 혜택 받을 수 있도록 소득 재분배를 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김종운 활동가 (c)마인드포스트.

-시장경제주의자이십니까.

“저는 케인지안(Keynesian)이에요. 아담 스미스는 아니고요. 케인즈 이론은 국가가 개입하는 거예요. 나라가 개입을 해서 왜곡된 분배 구조를 바꾸고 소득 재분배를 통해 서민들이 제대로 소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거죠.

아담 스미스는 시장에 모든 걸 맡기는 주의죠.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하죠. 그걸 통해 경제가 작동해서 가격과 수요를 결정해라. 제가 볼 때 그건 아담 스미스의 망상인 거 같아요. 왜냐하면 인간은 좋은 사람도 있지만 안 좋은 사람들이 있어서 그걸 또 악용하거든요.”

-정신적으로 힘들고 스트레스가 쌓일 때 어떻게 해소하십니까.

“저는 주로 많이 걸어요. 특히 출퇴근 할 때. 시간으로 따지면 하루에 한 시간 이상은 걸어요. 집 근처 역에서 저희 집까지 걸어가요. 그럼 한 40분 걸리거든요. 일부러 걸어다녀요. 걸으면서 생각도 정리하고 그날 있었던 일도 정리하고. 그리고 걸으면 폐활량도 좋아지고 해서 걷는 걸로 스트레스를 풉니다.”

-정신장애인으로 살아오면서 아쉬웠던 점은 뭐가 있습니까.

“제일 아쉬운 건 너무 차별이 심하다는 거죠. 자격증을 따고 싶어도 딸 수 없는 규제가 너무 많아요. 그게 가장 아쉽고 또 하나는 같은 동료 정신장애인들에게 생각보다 도움을 많이 주지 못했어요. 제가 지식이 짧아서 그런지 생각보다 도움을 많이 주지 못했던 게 아쉬워요.”

-당사자로서 국가에 요구하고 싶은 게 무엇이 있습니까.

“자격증 좀 많이 취득할 수 있게 정신장애인들에게는 독소 조항인 조례와 법률을 많이 완화시켜줬으면 좋겠습니다.”

-정신장애인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현재 자신의 위치에서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회복될 수 있다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환청, 환각, 망상이 있어서 힘들어도 자기 자신을 포기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불교든, 천주교든, 개신교든 신앙생활을 하면서 힘이 될 수 있는 신앙 서적도 읽어 보길 권해요. 또 무언가를 시도할 때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했으면 좋겠어요. 실패를 통해 깨닫는 것도 많고 얻는 것도 많거든요. 도전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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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랑제수민 2019-12-17 16:01:46
국가가 개입해서 경제를 운용하며 물가 변동을 잡아야죠. 보이지않는손은 너무 자주 바뀌고 펑펑 튀어올라서 부정적이지요. 어느정도 개입해 통제 질서 잡아야합니다. 풀건 풀고 규제할 건 정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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