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 류원용의 일기장] 앗, 내게 천지개벽이 일어났다(2)
[당사자 류원용의 일기장] 앗, 내게 천지개벽이 일어났다(2)
  • 류원용
  • 승인 2019.12.19 20: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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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정신장애인 당사자이자 마인드포스트 시민기자인 류원용 씨의 치유 과정을 담은 회복기입니다. 마인드포스트는 정신장애인 창작 진흥 차원에서 당사자 원고를 검토해 기사로 싣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독자들의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 약 2주 간의 신경정신과에서의 생활은 1990년대 후반에 상영됐던 헐리우드 영화 ‘트루먼 쇼’와 비슷했던 것 같다.

나중에 “왜 강제입원 시켰나?”, 또는 “왜 강제로 약을 먹였나?”라는 분쟁을 없애기 위해 “이런 XX 낳고 얼마나 고생이 많으십니까”라는 말을 하는 역할을 담당한 배우가 있었고, 그 말에 흥분해 돌진한 내가 있었고 그들은 “남에게 위해를 가하려 하기에 강제입원과 강제투약을 시술했다”라는 핑곗거리를 만들었던 것이다.

잠을 자고 정신을 차린 내가 병원에 강제로 감금돼 있는 나를 확인하고 “이 개XX들아, 왜 나를 여기에 가뒀어?”라며 고함치며 점프를 해 형광등을 박살내 버리고 난동을 부리면 우루루 달려들어 나를 제압하고 원장이 와서 주사를 놓는다.

내가 주사를 맞고 너무 두려워 ‘주여’를 찾으면 원장은 “이 XX가 틀림없이 X(성기)에 구슬 박고 이상한 짓 한 놈이야. 바지 벗겨서 확인해”라고 사람들한테 명령하면 사람들은 바지와 팬티를 벗겨서 확인했다. 나는 이때 받은 정신적 충격으로 아직까지 포경수술도 안 했다. (확인해 보라)

내가 주사 맞고 약 먹고 푹 잠을 자고서 정신이 돌아와 퇴원을 요구하면 조현병 환우의 아킬레스건인 ‘흥분하여 화내기’를 유도해 다시 증상에 사로잡힌 환자로 만들었다. ‘흥분하여 화내기’는 충분히 증상을 회복하기 전의 조현병 환우가 흥분해 화를 내면 다시 증상에 사로잡히는 패턴을 말한다.

정확한 정신분석학적 용어는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급성환자인 것 같다. 처음 아팠을 때는 갑자기 일주일여 만에 조현병의 거의 모든 증상이 나를 덮쳤고 약을 먹은 지 2주 정도 만에 모든 증상이 사라졌다. 지금은 약을 몇 번 안 먹어도 증상이 나를 덮치고 한 번만 먹어도 증상이 사라진다.

실은 나는 일주일이 채 못 돼 정신이 돌아왔다. 계속 잠을 자고 안정을 취한 효과였다.

마침 아버지가 면회를 왔다. 나는 아버지에게 “아버지, 이제 정신이 돌아온 것 같습니다. 퇴원해서 학교에 다니면서 약을 먹겠습니다”라고 간절히 말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그래라, 지금 집이 비었다. 내가 말해 놓을 테니 이따 일곱 시쯤에 집에 와라”라고 말했다.

일곱 시쯤 나는 직원에게 집에 보내달라고 했고 직원은 문을 안 열어 줄 것처럼 미적미적 시간을 끌었다. 그는 내가 흥분하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이윽고 내가 잔뜩 화를 내자 열쇠를 꺼내 문을 열어줬다.

‘트루먼 쇼’에 내가 또 당했다. 문을 나서자마자 나는 관계망상에 사로잡혔고 너무나 기분이 이상했던 나는 잠을 못자고 밤새 담배를 피우며 온 동네를 쏘다녔다.

다음날 아침 뜬눈으로 밤을 새운 내가 학교를 가려는데 아버지는 “신경외과에 들러 약을 타고 가라”고 말했다. 나는 약을 타기 위해 신경외과 벨을 눌렀고 신경외과를 들어가자마자 나는 다시 감금됐다.

아버지가 손 안 대고 코를 푼 것이었다.

잠시 후 아버지는 신경외과로 들어왔고 또 잠시 후 원장이 출근했다. 나는 학교에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고 원장은 “뜀뭅시다”(‘물건 따위를 들어나르다’의 전라도 사투리)라고 말했다. 밤새 뜬눈으로 피를 말렸던, 격분한 나는 원장에게 박치기를 날렸고 원장, 직원, 아버지 이렇게 세 명과 나와의 육박전이 벌어졌다.

‘원장파’는 승리했고 세 사람은 서로 상부상조하며 나를 번쩍 들어서 입원실로 옮겼다. 나는 아버지에 대한 믿음감을 상실했고 아버지와 나와의 애증관계는 이때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나는 이 사건의 트라우마에서 쉽게 헤어나지 못했다. 아무리 직원들이 약을 먹여도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고 귀에서는 환청이 들리고 텔레비전에서는 내 말을 하고 있었다.

며칠 후 원장이 나를 원장실로 불렀다. 그리고 이미 알고 있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너, 어느 대학 다녀?” 나는 뭣도 모르고 “예, 조선대학교 전자공학과 다닙니다”라고 말했다. 원장은 비웃는 듯한 눈빛만 보내고서 아무 말도 하지 않더니 “나가 봐”라고 말했다.

나는 속으로 ‘저 사람 뭐야?’라고 물으며 병실로 돌아갔다. (지금 곰곰이 생각해 보면 원장 말의 속뜻은 “나 전남대학교 의대 나왔어. 너 왜 내 앞에서 눈빛에 광촉 달고 있냐” 아니었을까 싶다)

비슷한 이유로 초면인 내게 반말하고 이유 없이 내 뺨을 때린 적도 있는 직원이 있었다. 그 직원은 어느 날 밤 근무할 차례가 되자 환자들을 다 모아놓고 내가 듣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야, 오늘 밤 류원용을 죽여버리자. 너희들 의견 말해 봐”라고 회의를 하는 것이었다.

딱 한 사람만 빼고 모두 침묵했다. 그 한 사람의 의견은 “하룻밤만 더 기다려 봅시다”였다.

사람이 너무 황당하면 사고 기능을 상실하게 되는 것 같다. 나는 속으로 ‘저 사람 뭐하는 거지? 지금 저 사람 말이 지금 완전 범죄로 나를 죽이겠다는 말일까. 아니면 집단 구타해서 어디 몇 군데 골절시키겠다는 말일까’ 생각했다. 정신이 멍해졌다.

어찌됐던 한 사람의 반대로 그날 밤 내게는 아무 일도 없었고 다음날 아침 아버지는 나를 퇴원시켜서 국립병원에 강제입원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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