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 류원용의 일기장] 앗, 내게 천지개벽이 일어났다(3)
[당사자 류원용의 일기장] 앗, 내게 천지개벽이 일어났다(3)
  • 마인드포스트
  • 승인 2019.12.22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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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神)의 존재를 믿는다. 만일 신이 없었다면 이 험한 세상에서 내가 지금까지 숨 잘 쉬고 밥 잘 먹으며 사지 멀쩡하게 살아있을리 없을 것이다.

또한 신이 없었다면 절체절명의 그 신경정신과에서의 마지막 밤을 맛있게 잠 잘 자고 모든 조현병적 증상이 깔끔하게 사라진 채 명랑한 기분으로 잠에서 깨지도 않았을 것이다.

신경정신과에서의 마지막 밤이 지나고 아침 일찍 아버지가 오셨다. 나는 아버지에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마음속으로는 “아버지! 저 다 나았어요. 학교에 보내주세요”라는 말이 맴돌았지만 이미 육박전까지 치룬 나는 차마 입 밖으로 그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무 말도 못하고 묵묵히 자가용을 타고 아버지가 데려가는 곳으로만 따라갔다. 아버지는 나를 국립○○병원으로 데려갔다. 주치의는 당시 정신과 레지던트(수련의)이던 젊고 화통한 ‘박모 선생님!’이었다.

이 선생님과의 면담이 나의 운명을 갈라놓았다. 나는 지난 2~3주 동안 내게 일어났던 사건을 대충 정리했다. 그리고 ‘아, 내가 정신건강에 빨간 불이 켜졌었구나’라는 것을 결론내릴 수 있었다.

그러나 내게 주어진 생각할 시간은 너무도 짧았다. 내게 법적으로 정식 정신질환자라는 딱지가 붙게 될 지도 모르는 이 중요한 순간에 ‘나는 뭐라고 말을 해야 정신질환자라는 딱지가 붙지 않고 다시 학교로 돌아갈 수 있는가?’에 관해 생각도 못했고 생각을 했더라도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지금의 나라면 조근조근한 목소리로 “선생님, 제가 학교에 다니면서 너무 무리하여 공부하는 바람에 최근 갑자기 이상한 증세들이 있었는데 신경정신과에서 약을 먹고 이제는 모든 증세가 호전됐습니다”라고. 혹은 “저는 공부를 해야 할 학생이니 이 곳에서 약을 타 먹으면서 학교에 다니게 도와주십시오”와 같은 취지의 말을 했을 것이다.

증세가 있었던 것은 맞는데 지금은 없다라는 취지로 말을 했어야 했다. 즉, 시점의 문제였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말했어야만 했단 말이다.

그러나 나는 또 엉뚱한 말을 했다. 그래도 그 당시에는 내 인지력이 거기까지 닿지 않았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어찌됐던 나는 병원 신세를 지지 않아도 될 두 번째 기회를 놓쳤음에는 틀림없다. 만일 내가 이 두 번째 기회라도 놓치지 않았으면 나는 오래 전 좋은 직장 취직하고 요조숙녀 여염집 낭자와 결혼하여 아들 딸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을 것이다.

실제 두 번째 면담은 대충 이러했다.

박XX: 안녕하세요. 저 국립○○병원 레지던트(수련의) 박OO입니다.

류원용: 예. 안녕하세요 선생님.

박XX: 무슨 일로 오셨는지요?

류원용: (많이 놀라고 무서웠기 때문에 격앙된 목소리로) 제가 미쳐부렀는갑습니다.

박XX: 예?

류원용: 제가 미쳐부렀습니다.

박XX: 무슨 일이 있으셨는데요?

류원용: (무서웠다는 모션을 취하며) 모든 사람이 나를 아는 것 같고, 환청이 들리고, 환후가 느껴지고, 텔레비전에서 제 말을 합니다.

박XX : 네에! 그럼 지금 입원수속을 밟고 약을 먹도록 합시다.

이렇게 나의 파란만장한 정식적인 정신질환 역사는 시작됐다. 꿈과 야망에 넘쳐 김치에 물 말아 먹으며 눈을 반짝반짝 뜨고서 하루 종일 공부와 운동만 하던 류원용의 기억은 하루하루 머나먼 옛 이야기로 멀어져만 갔다.

국립병원에 첫 번째 입원했을 때 가장 크게 내게 닥친 문제는 약이 너무 독했다는 것이다. 내 말에 깜짝 놀랐던 주치의는 내게 아주 심하게 조현병이 덮친 줄 알았던가 보다.

약을 먹은 지 이삼 일이 지나자 나는 마음이 몹시 불편해지기 시작했고, 안절부절하기 시작했으며 몸은 서서히 로봇처럼 굳어지기 시작했다.

몸과 마음이 다 불편하니 하루 종일 침대에만 누워 있었고, 침대에 누워있어도 불편하여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편한 자세를 찾아 해맸다. 잠을 잘 때는 ‘안절부절증’이 조금 가라앉는 자세를 찾아 뒤척이며 새우잠으로 발목을 이상한 각도로 맞춰 겨우 잠을 잤다.

잠을 자다가도 새벽이면 너무 자세가 불편해 꼭 잠을 깨고 그럴 때면 매일 수면제를 먹고 잤다.

육체와 마음이 다 힘들어 아무것도 신경 쓸 수 없었다. 머릿속으로는 하루 종일 ‘나의 인생은 이렇게 끝나는 구나’, ‘아! 내 인생 끝났다’, ‘아! 파토난 내 인생이여’ 이런 생각만 했다.

정신질환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던 나는 당시 내가 겪던 극심한 마음의 불편감, 안절부절증, 로봇처럼 몸이 굳어지는 현상이 약의 부작용이라는 것을 꿈에도 몰랐다. 그저 ‘이것이 내게 닥친 천형(天刑)이려니’라고 생각하며 나의 병인 줄만 알았다.

내 인생의 인상 지을 거대한 사건도 이때였다.

어느 날 아침이 되어 실습 의대생이 왔는데 내 고등학교 친구가 온 것이다. 정신병원에 입원한 환자이던 나는 당황했다. 실은 거기에 앞서 약과 싸우느라 나는 너무 힘들었다. 몸과 마음과 생각이 너무 힘들어 누구와 대화를 나누고 있을 여력조차 내게는 없었다.

그 친구는 실습이 끝나갈 즈음 내게 다가오더니 꼭 이 말을 나에게 해주고 싶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

“원용아! 사람이 팔이 부러지면 깁스를 하듯이 너도 마찬가지야. 너도 잠시 건강에 이상이 와서 병원에 있는 것일 뿐 아무것도 아니다. 너는 다시 병이 나아 이전의 너로 돌아갈 거야. 그러면 너는 내가 언제 아팠냐는 듯이 행복하게 살면 돼.”

그 친구가 너무 고마웠고, 나는 그 친구를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 친구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미안하다, 친구야. 나는 너를 피했던 것이 아니라 약과 싸우고 있었다”라고.

어찌됐든 나의 국립병원 첫 번째 입원은 그것의 정확한 진위 구별을 떠나 내가 환자라는 것을 처절하게 깨닫는 시간이었으며 나의 분노와 파괴의 본성이 깊이 잠이 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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