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 박정자 시] 나의 기도
[당사자 박정자 시] 나의 기도
  • 박정자
  • 승인 2019.12.23 19: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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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들은 정신장애인 당사자 박정자(57·여) 씨가 창작했습니다. 박정자 씨는 현재 인천시 남동구정신건강복지센터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Graham Dean, entitled Prayer, 1981. (c) Graham Dean
Graham Dean, entitled Prayer, 1981. (c) Graham Dean

나의 기도(祈禱)

너무 미워하거나 너무 좋아하지 않게 하소서

너무 넘치거나 너무 모자라지 않게 하소서

너무 기대하거나 너무 실의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너무 얼음처럼 시리거나 너무 태양처럼 뜨겁게 달아 오르지 않게 하소서

사랑의 쓰라림과 미움의 아픔에 중심이 되게 하소서

달콤한 부귀영화와 쓰디 쓴 빈곤의 악순환이 되지 않게 하소서

고집스러운 집요함과 나약한 기다림이 치우치게 하지 마소서

따뜻한 용서 속에 자비로운 관용으로

서글픈 눈물을 연분홍빛 미소로

힘없는 시름에 활발한 원동력으로

좁은 소견을 원만한 대인관계로 발전하게 하소서

이 세상 모든 것이 다르다고 할지라도

한 마음 한 뜻으로

선(善)을 향해 달려가는 마음이 되게 하소서

겨울엔 따스한 햇살을 살포시 껴안고

여름엔 시원한 소낙비를 온몸으로 적시고

도연히 눈을 지그시 감고 두 손 모아서

편안한 안식을 주시길 기도드립니다.

 

 

대지 위에 생명의 새싹은 움트고

우리의 마음속엔 파스텔 모양 같은 사랑이 싹 트인다

노란 병아리들은 알에서 깨어나 삐약거리고 싶은데

이내 마음은 아지랑이처럼 아롱거리는 님의 설레는 마음이다

부드럽게 속삭이는 종달새 지저귐

잎이 필새라 먼저 꽃피는 빵긋 웃는 개나리

울긋불긋 산을 불태우고 싶은 분홍빛 진달래

꽃샘바람에 아직도 차가운 봄이라고 옷깃을 여미는데

그래도 봄이라고 화사한 사람들의 옷 색깔

사랑도 하고 싶고 만남의 시작도 하고 싶은데

사랑의 끝이 이별이라고 해도

사랑하리라 영원히

사랑하리라...!

 

무제(無題)

바람아 살랑살랑 불어라

콱 막힌 내 가슴을 살살 풀게

바람아 솔솔솔 불어와다오

미물을 사랑할 수 있게

바람아 그치지 말아다오

분노의 눈을 지그시 감고 명상에 잠기게

사랑도 미움도 존재하지 않는 영혼을

달래고저 다시 한 번 가슴에

멍을 지우고저

분노는 사랑을 낳고

사랑은 그리움을 낳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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