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수용화, 단기 효과 있었지만 장기적으로 법 시행 이전으로 되돌아가”
“탈수용화, 단기 효과 있었지만 장기적으로 법 시행 이전으로 되돌아가”
  • 박종언 기자
  • 승인 2019.12.27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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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입법조사처, 정신질환자 비자의입원제도 입법 영향 분석
탈시설 위해서 정신병원과 정신재활기관의 혁신 불가결
정신건강·비정신건강 기관들의 유기적 연계 ‘위기서비스체계’ 요구
정신건강복지 정책 생산 과정에 이해관계자들 참여해야
지역사회 거주문제 ‘중간집’ 모델로 만들어가야

2017년 5월 전면 시행에 들어간 정신건강복지법의 비자의입원이 애초 목표로 한 ‘탈수용화’ 효과가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오히려 법 시행 이전으로 회귀하는 현상을 보였다.

또 질적 분석의 경우 보호의무자의 범위를 확대하고 사법입원제도의 도입,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한 ‘중간집’ 형태의 시설들이 설치·운영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최근 발표한 ‘정신질환자 비자의 입원제도의 입법 영향 분석’ 자료에 따르면 탈수용화 현황에서 정신장애인이 같은 병원에 재입원하는 비율은 정신건강복지법 시행 이후 퇴원 후 7~30일 이내의 경우 유의미한 감소가 있었다. 그러나 90일 이내는 재입원율의 변화가 없었다.

입법조사처 측은 “법 시행 직후 비자의 입원제도의 ‘탈수용화’ 효과가 단기적으로 드러난 것으로 보이지만 결국 법 시행 이전으로 회귀하는 추세를 보여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퇴원 후 다른 병원 재입원율 역시 지속적 추이의 변화를 확인할 수 없었다. 제도의 정책적 효과가 미미하다는 지적이다.

외래방문율과 지속관리율은 지속적 추이의 변화는 나타나지 않았다. 지속관리율은 증가 추이가 2017년 이후 감소했다. 이는 비자의 입원제도가 탈수용화를 추동할 수 있는 지역사회 정신의료서비스가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초 입원율과 퇴원율 역시 법 시행 이후 유의미한 변화가 관찰되지 않았다.

조사처는 질적 분석을 위해 법 개정이 정신질환자의 인권 보호와 치료권 확보에 미친 영향, 법 개정의 부작용 등에 대해 의료진, 인권단체, 환자와 가족, 정책전문가 등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 법 개정이 비자의 입원의 절차적 정당성에 초점이 맞춰져 인권보호에는 긍정적이지만 급성기 입원치료를 지연시키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이는 정신질환자를 위한 돌봄 및 지역사회 인프라가 구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입원 요건을 강화해 치료 서비스 제공을 어렵게 했다는 지적이다.

이어 인권 프레임이 치료 서비스 제공을 방해하고 있다는 주장과 인권 보호를 위해 비자의 입원에 대한 안전장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대립되는 양상을 보였다.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 유형이 비자의입원의 대세를 이루면서 가족의 부양 부담이 커지고 있으며 응급입원·행정입원 시행의 절차적 어려움이 있다는 부작용 문제도 제기됐다.

또 지역사회 정신재활시설이나 주거시설 등 정신질환 관리시스템이 미비한 상태에서 ‘탈수용화’를 강행할 경우 노숙인이나 교도소 수감자의 증가로 이어진다는 ‘펜로즈 가설(penrose hypothesis)’을 우리의 상황에서 입증한 연구였다는 분석도 나왔다.

조사처는 양적·질적 분석해 기초해 비자의 입원제도를 개선하고 탈수용화를 추진하기 위한 개선방안을 제시했다.

우선 보호의무자의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행 보호의무자 자격 요건은 민법의 부양의무자 규정을 따르기 때문에 생계를 같이 하지 않으면 보호의무자로 인정되기 어려워 치료적 접근성이 제약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의 경우 39개 주에서 ‘관계있는 성인(relevant adult)’이 적용돼 입원 신청자를 친족에 국한하지 않고 넓게 규정하고 있다. 독일은 공법상 입원에 후견인, 가족, 경찰이 신청할 수 있다.

조사처는 “주요국의 비자의 입원 시 보호의무자의 범위가 우리보다 넓게 인정됐고 보호의무자 2인의 동의를 요구하는 경우를 찾아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법원이 정신질환자의 입원 여부를 판단하는 사법입원제도가 구축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조사처는 “정신질환자의 인권과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비자의 입원치료의 결정에 환자와 가족의 의견이 보장되는 공공 행정체계가 확보돼야 한다”며 “동시에 다양한 지역사회 재활 및 복지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사법입원제도가 도입될 경우 보호의무자에 의한 보호입원제도, 응급입원제도,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제도 등을 비롯한 기존 입원의 요건, 심사, 통제 관련 제도적 장치들이 조정되거나 폐지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조사처는 “사법입원제도 역시 ‘탈수용화’의 맥락에서 도입·실시돼야 하며 이를 위해 체계적인 입원감시 체계가 마련되고 지역사회 복지 프로그램이 제공돼야 한다”고 전했다.

응급입원제도 역시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 제도의 취지는 비자의 입원 절차를 진행할 시간적 여유가 없을 때 치료가 지연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 제도는 경찰관의 동의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활용되는 매우 낮은 편이다. 경찰관의 동의와 전문의 진단이 있으면 응급입원이 가능하지만 경찰관이 환자의 자·타해 위험에 대해 정확히 모르거나 좁게 이해할 경우 응급이송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조사처는 “응급환자는 보호자나 경찰이 함께 내원하지 않아도 의학적 진단에 따른 결정으로 입원 신청이 가능하도록 응급입원 절차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제기했다.

‘중간집’ 설치와 운영을 통해 지역사회 정신질환자의 주거를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조사처 분석에 따르면 정신병원 재입원율이 하락하지 않는 이유로 증상의 재발 등과는 무관하게 ‘퇴원 후 살 곳이 없기 때문’이라는 응답률이 매우 높았다. 탈수용화를 저해하는 핵심 장애 요소가 퇴원 후 정신질환자의 지역사회 자립을 위한 거주 문제라는 분석이다.

조사처는 “‘중간집’은 정신질환자가 정신의료기관에서 지역사회로 나오도록 자립지원을 통해 지역사회 정착을 유도하는 서비스”라며 “지역사회 정신건강 인프라, 보건과 복지가 통합된 정신건강서비스가 제공되는 전달체계의 시설 기반이자 토대”라고 밝혔다.

중간집 설치·운영을 위해서는 주거지 확보가 필수이고 환자의 중증도 및 일상생활기능에 따른 중간집 모형을 다양하게 제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조사처는 “정신질환자가 지역사회로 나오지만 가족이 방관할 경우 지역사회 정신건강 인프라가 부족하다”며 “복약 관리와 복지서비스가 집중적으로 필요하며 위기관리 차원에서 의료기관과 복지시설이 실질적으로 네트워킹하는 적절한 자원 동원 프로그램이 동반돼야 한다”고 분석했다.

이번 입법조사처 보고서 작성에 참여해온 카미(정신장애연대)의 오현성 미 애리조나주립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2019년 2월 임세원법이란 이름으로 등장했던 윤일규 의원의 개정안이나 안인득 살인 방화사건 이후 발표된 4월 19일 정신건강정책과의 정책 발표 당시 느꼈던 황망함을 더 이상 느끼지 않는다”며 “2018년 이후 정신건강 정책을 바라보는 공식화된 제도의 참여자들의 시각이 변화하고 있음을 느낀다”고 밝혔다.

오 교수는 “병원기반 사례관리 사업이 국민건강보험의 시범사업으로 시작됐는데 이런 시각 및 문화 변화가 밑바탕”이라며 “구체적인 정책을 소비자 단체들과 함께 지속적으로 제시해야 한다”고 전했다.

자료 다운로드 링크(클릭) "정신질환자 비자의 입원제도의 입법영향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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