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개선] "우리는 무섭거나 불쌍한 존재가 아닙니다"(영상)
[인식개선] "우리는 무섭거나 불쌍한 존재가 아닙니다"(영상)
  • 김근영 기자
  • 승인 2019.12.30 17:54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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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식개선교육 전문강사들의 특별한 공감대화!! 제9화 이관형 (c) 복지TV
장애인식개선교육 전문강사들의 특별한 공감대화!! 제9화 이관형 (c) 복지TV

본지 기자 겸 장애인식개선교육 전문강사 이관형 씨가 '조현병 바로 알기'를 위해 발벗고 나섰다.  

해당 프로그램 '특별한 공감 대화'는 이관형 기자를 마음의 장애를 숨기기보다는 솔직하게 고백하고 당당히 맞서 싸우는 인물로 소개했다.

이관형 기자는 언론과 사회가 조현병 이미지를 '흉악한 범죄자' '괴물' 등으로 보이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어린 시절 발병경험을 들려주며 홀로서기 위한 뼈아픈 과정을 담담하게 고백했다.

그는 운전면허증을 취득하는 과정에서 '정신과 치료 경험'을 묻는 서류에 당황했다면서, 이것이 스스로의 병을 밝히지 않겠다고 다짐한 계기였다고 지적하고 사회적 관심을 촉구했다.

인생의 시야를 넓히기 위해 케냐로 봉사활동을 떠났을 때, 그는 막 걸음마를 뗀 아기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보고 그 아기를 살포시 안아줬다. 그는 이를 "마치 어릴 적 아버지에게, 반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제 자신을 살포시 안아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그는 장애학과 대학원 박사과정으로 수학하고 있으며, 1인 출판사 대표로 장애 관련 책을 펴낼 꿈을 갖고 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는 말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아마도 여러분들이 조현병 환자분들을 만나는 것이 힘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조현병은 나 자신을 비롯해서 우리 가족들이 걸릴 수도 있는 흔한 병입니다. 꼭 조현병이 아니더라도 우울증, 불면증, 조울증 같은 많은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으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들은 무섭거나 불쌍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저 편하고 반가운 이웃처럼 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하 전문:

안녕하세요, 책과 강연으로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이관형입니다.

여러분은 조현병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십니까?

아마도 뉴스에 나오는 흉악한 범죄 사건들이 떠오를 것입니다.

조현병 환자는 대한민국 인구의 1%, 약 50만 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중 흉악한 범죄자는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언론은 우리 모두를 괴물로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조현병 환자는 아픈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 상처는 트라우마가 되고, 그 트라우마는 병이 되었죠.

저 역시도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 씻을 때, 밥먹을 때, 그 상처들은 계속해서 머릿속에서 떠오릅니다.

어릴 적 아버지는 무섭고 엄격한 분이셨습니다.

거친 공사장에서 일하셔서 그런지 성격도 거칠었습니다.

작은 잘못에도 “넌 맞아야 말을 들어”라며 폭력을 휘둘렀습니다.

전 학교에서도 겁이 많은 아이였습니다.

아이들의 괴롭힘을 당하고도 가만히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제 국그릇에 쓰레기를 넣고 분필가루를 모아다 얼굴에 쏟았습니다.

그래도 저는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공하고 싶었습니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얻어서 힘을 기르고 싶었습니다.

중학교 평균 60점이던 제 성적을 고등학교 때 전교 10등까지 올릴 수 있었습니다.

칼과 컴파스로 허벅지를 찔러가며 하루 3시간만 자고 공부했습니다.

그러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우울증과 불면증이 찾아왔습니다.

공부를 할 수 없었습니다.

시험지 문제조차 읽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제 정신은 피폐해져 갔습니다.

여름방학 때 모든 걸 포기했습니다.

집도 학교도 싫었습니다.

그래서 공원에서 노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밤마다 벤치에 누워 신문지를 덮고 잤습니다.

비가 오면 공원 화장실에 들어가서 잠을 잤습니다.

그러다 잠이 안와서 120시간 동안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며 밤을 지새운 적도 있습니다.

그렇게 제 정신은 더 피폐해져 갔습니다.

그래도 재수를 위해서 스파르타 기숙학원에 들어갔고 대학에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합격의 기쁨도 잠시.

전 밤마다 과거의 상처들이 계속 떠올라서 너무 괴로웠습니다.

새벽 2시쯤 겨우 잠들면 꿈에 다시 그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괴성을 지르며 깨어나면 아직 새벽 4시였습니다.

그렇게 매일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었습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누군가와 저를 쳐다보면 아버지의 눈빛이 떠올랐습니다.

누군가를 만나도 뒤에서 내 욕을 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결국 대형병원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정신분열 장애라는 진단명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제 병을 공개해야 되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운전면허증을 취득하기 위해 운전면허시험장에서 서류를 작성해야 했습니다.

이름, 나이, 주민등록번호를 적어 내려가다가 전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맨 마지막 칸에 정신과 치료 경험이 있는지 묻는 질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허위사실을 적을 경우 법적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문구도 적혀 있었습니다.

결국 저는 ‘정신분열장애’라는 단어를 적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서류를 받은 직원은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봤습니다.

마치 범죄자나 전염병 환자를 보는 듯한 눈빛이었습니다.

그리고 운전을 할 수 있는지 의사소견서를 가지고 오라고 했습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전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내 병을 사람들에게 밝히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취업도 대학원 진학도 모두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졸업하고 놀고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평생교육원 사회복지사 과정에 등록합니다.

방학이 되어 저는 실습생으로 장애인 보호작업장에서 일을 하게 됩니다.

그곳에는 지체장애, 지적장애, 다운증후군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일하는 곳이었습니다.

머리핀 조립, 상자 접기, 양말 포장 같은 단순한 작업을 하는 그들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전 그들에게 비결을 물었습니다.

그들은 “열심히 일하는 것, 친구들과 잘 지내는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전 깨달았습니다.

너무나 당연해서 지키지 못했던 것

열심히 일하고 사이좋게 지내면 나도 행복해질 수 있겠구나.

이후 전 인생의 시야를 넓히기 위해 케냐로 봉사활동을 떠납니다.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길거리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을 돌보는 일이었습니다.

제가 속한 시설에서 아이들에게 먹을 것과 잠잘 곳을 제공했습니다.

한번은 잔디밭에 앉아 있는데 막 걸음마를 뗀 아기가 제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해맑게 제 얼굴을 바라봤습니다.

그리고 제 무릎 위에 앉았습니다.

아마도 부모의 품이 그리웠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전 그 아기를 나도 모르게 살포시 감싸 안아줬습니다.

그것은 마치 어릴 적 아버지에게, 반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제 자신을 살포시 안아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서서히, 아주 천천히 전 병으로부터 회복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서른 살 때부터 아침 일찍 일어날 정도로 건강해졌습니다.

10년 동안 보지 못했던 아침의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이후 기자와 관련된 교육과정을 수료했습니다.

매번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대학원 출판학과에 국비지원 장학생으로 입학할 수 있었고 석사학위도 취득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제 이야기를 조현병 학회의 수필 공모전에 냈습니다.

그리고 대상을 수상합니다.

그래서 전 결심합니다.

‘내 이야기를 자서전으로 출판하자.’

작년에 1인 출판사를 창업하고 자서전을 전자책으로 냈습니다.

조현병을 겪으면서 받았던 고통과 회복되어가는 과정

그리고 밤마다 잠 못 이룰 때 썼던 시들

그렇게 저의 어릴 때부터 최근까지의 이야기를 책으로 엮었습니다.

제목 ‘바울의 가시’, 부제목 ‘나는 조현병 환자다’

이 책은 전자책 분야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올해는 제 자서전을 종이책으로 출판하는 목표를 정했습니다.

판매 수익금은 장애 관련 책들을 계속 출판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지난달 1500권의 제 자서전을 인쇄했습니다.

그리고 판매를 3일 앞둔 어느 날

책을 위탁 보관했던 창고에 화재가 발생합니다.

제 책을 비롯한 50만여 권의 모든 책들이 불타서 잿더미가 된 것입니다.

하지만 제 꿈과 목표마저 불에 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전 전자책으로 자서전을 내고 난 뒤

대학교와 요양원 병원에서 강연활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보건복지부 장애인개발원의 우수강사로도 선정되었습니다.

지금도 정신장애 관련 언론사에서 기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며칠 전에는 장애학과 대학원에 박사과정으로 입학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장애 관련 학과를 다니는 학생으로서 열심히 공부하고

1인 출판사 대표로서 장애 관련된 책을 낼 것이며

장애인식개선 전문 강사로서 강연활동을 이어나갈 것입니다.

저는 조현병 환자입니다.

지금도 약을 먹고 주기적으로 상담을 받고 있습니다.

언론과 사회는 말합니다.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알고 보니 조현병 환자더라”

“그러니 조현병 환자들은 조심해야 하고 입원시켜 격리해야 한다”

“사회에 나와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하고 불쌍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병을 숨기고

죄인 아닌 죄인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전 책과 강연을 통해 말하고 싶었습니다.

나의 모든 상처와 아픔마저 드러내며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결코 연약하거나 의지가 약해서 병에 걸린 것이 아닙니다.

작은 것에서 소중함을 깨닫고 병에서 조금씩 회복되어가며

자신의 꿈과 목표를 위해 조금씩 전진해나가는 사람들입니다.

지금까지 책과 강연으로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이관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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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랑제수민 2020-01-02 06:52:27
전국 정신장애인 페스티벌에서 님의 책 한권을 받아들고 오긴 했는데 부끄럽네요. 돈한푼 안내고 덜렁 받아와 몇장 들추다 접어 뒀던 내가 밉습니다.

종이책 저장창고가 화재로 50만권이나 소실되었건만 난 한푼 안주고 책을 받았으니까요. 고맙고 감사합니다. 님을 보면 장00 강00님들이 생각나요. 너무 재주 좋고 능력있는 분들인데 어찌하여 조현에 시달려 꿈을 펴지 못할까 안타깝지요. 나도 늙어 우울 디스오더의 늪에서 흔들리지만 주님 사랑으로 신학교 다니며 당사자마인드 지키려 애씁니다.

이젠 젊은 조현리더가 뭉쳐야 할 때. 전국 빅텐트가 만들어 질 때. 개인명성보다 16개 장애 최하집단 조현장애를 묶어내야 할 때입니다. 당당리더가 많아져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1기 어려운시절 조현리더들은 삶에 병에 사랑에 지쳐

권혜경 2019-12-30 19:44:24
감동입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