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형 기자의 변론] 관계망상, 저 사람이 날 싫어하나?
[이관형 기자의 변론] 관계망상, 저 사람이 날 싫어하나?
  • 이관형 기자
  • 승인 2020.01.09 19: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랬구나, 힘들었겠구나"라는 따뜻한 말이 치유의 출발
관계망상 (c) The Outline
관계망상 (c) The Outline

제가 잘 알지는 못하지만, 조현병은 크게 양성과 음성이 있다고 합니다. 쉽게 말해 양성은 눈에 뭔가가 보이는 환시, 귀에 뭔가가 들리는 환청이 대표적인 증상입니다.

간혹 길거리에서 노숙자 아저씨가 술에 취해 혼자 주절주절 거리는 모습을 볼 수 있죠. 아마도 옆에 누군가가 보여서 대화를 하는 조현병 증상일 겁니다.

다행일 수도 있고 불행일 수도 있지만, 저는 양성 환자는 아닙니다. 조현병 음성증상을 갖고 있어요. 소위 양성은 병에 대한 반응이 있는 거고, 음성은 병에 대한 반응이 없는 거니 병이 아닌 걸로 생각하기 쉬운데, 조현병에서의 음성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증상들이 있다고 보시면 될 겁니다.

발병 초기 제 조현병 진단서에는 불안, 우울, 피해망상, 경도의 관계망상 등이 적혀 있었습니다. 물론, 진단명에 나오지 않는 크고 작은 증상들, 혹은 남들도 쉽게 겪는 흔한 증상들도 갖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관계망상의 증상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이것이 진짜 관계망상의 증상인지 아닌지 저도 확실히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의사도 아니고 심리학을 공부한 적도 없으니까요. 다만 당사자로서 이와 유사한 경험을 찬찬히 설명하고자 해요.

인터넷에 나오는 관계망상의 정의는 '근거(根據) 없는 일을 자기(自己)에게 관계(關係) 지으려는 망상(妄想)'이라고 합니다.

저는 누군가와 눈이 마주칠 때 이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눈빛을 보니 저 사람이 나를 싫어하는구나? 아마도 뒤에서 누군가에게 나에 대한 나쁜 이야기를 들었나보다"

"저 사람이 왜 화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지? 혹시 예전에 그 일 때문인가?"

그래서 전 늘 의구심을 품고 살았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싫어할 거라고요. 심지어 저를 대하는 사람들의 사소한 표정과 말투, 음정, 심지어 카톡 속 문자의 느낌에 따라서도 저는 착각합니다.

"저 사람이 나를 싫어하나? 왜지? 아마도... 그 때 그 일 때문에?"

부끄럽지만, 아주 쉬운 예를 들어 볼께요. 아마도 이 글이 <마인드포스트>에 실리고 페이스북을 통해서도 공유될 것입니다. 그런데 제 글에 늘 댓글을 다시던 분이, 어느날부턴가 더 이상 제 글에 댓글을 달지 않습니다.

그러면 저는 생각합니다.

"혹시 나에게 어떤 일로 화가 나셨나? 그래서 더 이상 내 글에 댓글도 좋아요도 누르지 않는 것일까?"

물론 이런 생각은 거의 사실이 아닐 확률이 큽니다. 그러나 제 머릿속에서는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굳이 사건과 사람을 연결시켜서 기정사실화하게 되겠죠. 정말 피곤한 일이지만요.

관계망상 (c) Cali Sales
관계망상 (c) Cali Sales

심지어 교회에 가서 제 또래의 많은 청년들과 인사할 때도, 누군가 제 인사를 받아 주지 않으면 전 또 상상의 날개를 펴게 됩니다.

"혹시 지난 번 내가 실수되는 말을 했나? 아니면 예전에 어떤 사건 때문에 나에게 삐진 건가?"

물론 이 역시도, 상대는 그냥 멀리서 저를 발견하지 못하고 지난 간 것에 불과하죠.

15여년 전 증상이 심할 때도 그랬습니다. 부산 기숙 스파르타 학원에서 재수생활을 할 때였습니다. 자율학습 시간에 공부를 하던 중 뒤에서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냥 자기들끼리 조용히 떠드는 것이었죠.

그런데 전 그 소리가 저에 대해 욕하는 소리로 느껴졌습니다. 다들 공부를 하는 그 고요함 속에서 저는 책상을 치면서 화를 냈죠. 다음날 전 창피하고 미안해서 그 학원을 떠나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어요.

자존감이 낮아서일까요? 아니면 소심해서일까요? 그도 아니면 진짜 관계망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걸까요?

사실 이런 증상들에 대해 글로 쓰고 알리는 것 자체가 매우 창피하고 망설여지는 일입니다. 한편으로는 담대하고 거리낌 없이 솔직하게 이 글을 쓰는 건 자존감이 높고 대범해야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굳이 조현병을 밝혀가면서 제 이야기를 책으로 쓸 수 있었겠죠. 이런 이중적인 저의 모습과 마음을 봤을 때, 저도 저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저의 드러나는 증상으로 저를 함부로 판단하거나 단정짓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드러내지 않을 뿐이지, 자신의 아픔과 상처, 해결되지 못한 약점을 안고 살아가니까요. 다만, 그것들을 드러내느냐? 감추느냐? 의 차이일 뿐 모든 인간은 누구나 완벽할 수 없습니다.

다만 누군가 용기 내어 약점과 단점을 말했을 때, 섣불리 진단하거나 해결 방법을 제시하는 것은 아닌 거 같습니다.

저 역시도 누군가의 아픔과 단점을 들었을 때, 진단명을 붙여가면서 함부로 판단하고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실수를 했었습니다. 아무리 돕는다는 마음으로 한 말이지만, 결국 그 사람에겐 상처가 되더군요.

그 사람은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바랐던 것인데 말이지요.

저 역시도, 이런 증상에 대한 얘기를 할 때, 누군가는 '미움 받을 용기'라는 책을 추천해 주곤 했습니다. 물론 도와주려는 마음은 알고 있지만, 15년 넘게 겪은 증상이 책 한 권으로 사라지지는 않더군요.

제가 바랐던건 한 번에 문제가 사라지는 해결책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제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고 공감해주는 것. "그랬구나, 힘들었겠다"라는 따뜻한 말 한마디뿐입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