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형 기자의 변론] 살빼기, 단기간 목표가 아닌 장기간 운동 습관 길러야
[이관형 기자의 변론] 살빼기, 단기간 목표가 아닌 장기간 운동 습관 길러야
  • 이관형 기자
  • 승인 2020.01.10 19: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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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nny Saville, Trace, 1993. oil on canvas, 213.4x182.9cm. (c) Jenny Saville
Jenny Saville, Trace, 1993. oil on canvas, 213.4x182.9cm. (c) Jenny Saville

며칠 전 텔레비전을 통해 방영된 제 강연 영상을 보며 제일 먼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살빼야 하는데."

사실, 저는 제 모습을 영상으로 찍는 것도, 휴대폰으로 셀카를 찍는 것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영상이나 사진 속 제 모습이 너무 뚱뚱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물론 많이 먹고, 운동을 적게 해서 살이 찐 것이겠지만 이렇게 살이 찌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하면 조금은 슬프고 억울하게 느껴집니다.

만약 정신질환이나 다운증후군, 지적장애를 가진 분들을 마주치면, 많은 분들이 심한 비만을 가진 걸 볼 수 있을 겁니다. 저도 어릴 적에는 그분들이 식욕을 통제하지 못하고 많이 먹어서 살찐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제가 비만에 걸려가는 과정을 보니 꼭 식탐 때문은 아닐 거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는 어린 시절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늘 체중 미달로 살아왔습니다. 키 178cm에 몸무게는 60킬로그램 대를 유지해 왔습니다.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고 숨을 들이키면 가슴뼈 윤곽이 보일 정도였죠. 어머니에게 밥 좀 많이 먹고 살 좀 찌라며 핀잔을 듣기도 했어요. 학교에서 급식을 먹을 때도, 전 밥 한 공기를 완전히 비운 적이 없었습니다.그래서 늘 서너 숟가락씩 남긴 밥을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리곤 했죠.

그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조현병이 시작된 후, 저는 치료를 거부하고 부산에 있는 스파르타 기숙학원에서 재수생활을 시작합니다. 치료나 상담은 물론 약물의 도움도 거부한 채 맨정신으로 기숙사 생활을 버텨야 했습니다. 건물 안에 갇힌 채 아침 7시부터 저녁 12시까지 자리에 앉아 공부만 했죠.

물론 건물 앞마당에서 배드민턴을 치며 운동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공부하기 싫어서 밖에 나와 배드민턴 치며 노는 학생으로 보일까봐 식사시간에도 쉬는 시간에도 늘 앉아서 공부만 했어요.

그나마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방법은 먹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난 뒤 매점에 가서 또 라면을 사 먹었습니다. 식사시간이 정해져 있다보니, 전 걸신이 들린 듯 허겁지겁 먹었습니다.

먹는 속도가 빨라지니 들어가는 양도 많아지더군요. 그런데 재수 생활이 막바지로 갈수록 스트레스는 쌓이고 증상은 심해졌습니다. 수업 시간이건, 자율학습 시간이건 앉아만 있으면 과거의 상처가 떠올랐죠.

분노심과 괴로움을 잊기 위해 먹고 또 먹었습니다. 전 늘 책상 위에 과자나 음료수를 쌓아두었습니다. 그리고 증상에 시달릴 때마다 그것들을 입 안에 집어 넣었습니다. 식탐이나 맛을 음미하기 위함이 아닌, 살기 위한 발악에 가까웠습니다.

그래도 그때까지는 정상 체중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대학에 입학하고 약을 복용하면서부터 조금씩 살이 찌기 시작한 겁니다.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밥을 먹는 속도도 먹는 양도 점차 증가하게 됩니다.

문제는 새벽이었어요. 아직 다루지는 않았지만, 전 밤마다 불면증과 우울증, 공허함과 불안감이 찾아오곤 했습니다. 이 증상들은 일주일에 한두 번은 밤을 지새우게 만드는 고약한 증상들이었죠.

그런데 이런 증상들로부터 벗어나 잠을 잘 수 있는 방법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음식물을 배에 꾸역꾸역 넣어서 포만감에 억지로 잠드는 것이었죠.

그래서 전 새벽마다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억지로 배를 불려서 잠들 것이냐? 아니면 밤을 지새우며 증상들에 시달릴 것이냐?

겨울은 그럭저럭 괜찮은데 여름에는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아 새벽마다 무언가를 먹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러니 살이 안 찔 수가 없었죠.

물론, 운동을 안 한 것은 아닙니다. 그동안 헬스나 PT는 물론, 필라테스, 무에타이, 축구, 탁구, 배드민턴 등의 운동으로 살을 빼기도 했습니다. 적게는 한 달에 5킬로그램씩, 많게는 한달에 9킬로그램씩 체중을 감량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헬스 PT를 받으면서 다이어트 성공 사례로 '비포&에프터' 모델로 뽑히기도 했고요.

그러나 문제는 요요현상이었습니다. 단기간에 살을 뺀 이후 운동을 장기적으로 지속하지 못한 게 제 실패 원인이었죠. 물론 살을 빼고 난 뒤 안도감에 빠지거나 끈기력이 부족해서일 수도 있지만, 운동을 하던 중에도 우울증과 불면증이 찾아오면 침대에서 일어날 힘마저 사라지고 맙니다.

마음의 근육이 약해지다보니 운동을 할 육체의 근육도 약해지는 거죠. 그래서 하던 운동을 갑자기 중단한 적이 많았습니다.

어쩌면 약물의 부작용도 비만에 한몫한 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발병 초기 제 마음대로 단약을 했는데 살이 빠지기 시작했었거든요. 물론 병이 다시 재발돼 엄청난 고생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의사와의 상담 없이 내 마음대로 함부로 단약해서는 안 된다고 명심했죠. 하지만 저는 의사도 약사도 아니기에 약물의 부작용에 대해 섣불리 단정지을 수는 없습니다.

다만 약물의 부작용이 있건 없건 적절한 영양섭취와 꾸준한 운동이라면 이마저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결심했습니다. 한 달에 수 킬로그램을 감량하는 기적적인 몸의 변화보다, 아침에 바나나 한 개, 점심에 닭가슴살 샐러드, 저녁에 다이어트 도시락을 먹는 극단적이고 괴로운 다이어트 방법보다, 평생 동안 유지할 수 있는 적당한 운동과 다양한 영양분 섭취에 집중하겠다고.

저는 올해 들어 헬스장을 다니며 저녁마다 한 시간씩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40분은 걸으면서 유산소 운동을 하고 30분은 근력 운동을 하고 있죠. 과거에는 몸무게 감량에 사활을 걸고 단기간의 목적 달성을 위해 나아갔지만, 지금은 일주일에 네다섯 번은 헬스장에 가서 운동하고 오자는 생각으로 살아갑니다.

그리고 식사도 보통 만큼의 양을 먹되, 되도록 늦은 시간에는 피하는 방법으로 생활합니다. 물론, 그래 가지고 어느 세월에 살을 빼겠냐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그런데 제게 중요한 건 역시 '단기간의 기적'이 아닌 '장기간의 생활화'입니다.

일 년, 아니 이 년, 삼 년 동안 매일 같이 꾸준한 운동과 적당한 영양 섭취를 하다보면 십 년, 그리고 평생 동안을 습관처럼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생활하다보면 약을 먹고 있더라도, 증상이 가끔 나타나더라도, 어느 누구보다도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인생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는 오늘도 오후 6시가 되면 사무실을 나와 집에 가서 저녁을 먹고 집 근처 우이천에 나옵니다. 개천을 따라 불어오는 상쾌한 바람을 쐬고 물 위에 떠다니는 오리들을 구경하며 걷습니다. 20분 정도 걷다보면 어느새 헬스장에 도착하고 무료로 진행되는 단체 피티 수업을 30분 정도 받습니다.

그리고 다시 20분간 우이천을 걸어 집에 도착하면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합니다. 샤워를 마친 뒤 얼음물에 탄 홍초를 한 잔 마시면 온 몸의 갈증을 해소하고요. 그렇게 기분 좋은 피로와 허벅지에 약간의 근육통을 안은 채로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합니다.

그 어느 때 보다 깊고 쾌적한 수면에 빠지게 되죠. 그렇게 기분 좋고 건강하게 규칙적으로 생활하다보면 제 몸과 마음도 건강을 되찾을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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