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형 기자의 변론] 불면증, 불면의 시간에 시를 썼던 나
[이관형 기자의 변론] 불면증, 불면의 시간에 시를 썼던 나
  • 이관형 기자
  • 승인 2020.01.14 18: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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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nri Matisse, Portrait of Margurite sleeping, oil on canvas, 1920 (c) Henri Matisse
Henri Matisse, Portrait of Margurite sleeping, oil on canvas, 1920 (c) Henri Matisse

2019년 1월, 새해 소원을 빌었습니다. 올해는 하루도 빠짐없이 밤마다 잠을 잘 수 있게 해달라고 말이죠.

그리고 2019년 12월 31일, 한해의 마지막 날 밤. 너무나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일 년 간 단 하루도 밤을 뜬 눈으로 지새운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전 2019년 새해의 소원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사실, 날마다 밤에 잠을 자는 게 뭔 대수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제게는 15년 넘게 꿈꿔왔던 일이고 기적 같은 소원이었습니다.

저 역시도 학창 시절 시험 기간이면 잠과의 전쟁을 해왔습니다. 지금의 바람과는 반대로 최대한 잠을 자지 않고 공부하는게 목표였죠. 중학교 때부터 시험을 앞둔 전날이면 자정을 넘어서까지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곤 했습니다.

그러다 새벽 2시가 지나가며 눈이 자꾸 감기곤 했어요. 정신을 차리고 나면 어느덧 아침은 밝았고 제 몸은 책상에 엎드려 있거나 침대에 기대어 있었습니다.

고 3때는 3.3 작전을 펼쳤어요. 새벽 세 시까지 공부하고, 잠든 지 세 시간만에 잠에서 깨는 생활을 반복하는 작전이었죠. 그렇게 고등학교 전교 10등 안에 들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더 이상은 등수가 오르지 않더군요. 수능일이 다가올수록 마음이 초조해지고 불안해졌습니다.

Egon Schiele, Sleeping Girl, 1911 (c) Egon Schiele
Egon Schiele, Sleeping Girl, 1911 (c) Egon Schiele

그러다 우연히 티비에서 인간극장 같은 다큐멘터리를 보게 됩니다. 한 대학생이 나오는데 낮에는 공부를 하고 밤에는 알바를 하고 벽에는 운동이나 취미생활을 하는 겁니다.

잠은 전혀 자지 않았습니다. 매일 밤마다, 단 하루도 잠을 자지 않고 심지어 졸지도 않았습니다.

그 대학생 형을 바라보며, "나도 저렇게 해야지!"라고 마음 먹지요. (사실 그 대학생은 의학적으로 신체가 특이해서 눈을 깜빡이는 동안 수면 효과를 갖는 그런 사람이었죠..)

저도 그 형처럼 낮에는 학교에서 밤에는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새벽에는 학교 근처 공원에서 공부했어요. 가로등 아래에서 밤을 지새워 책을 읽다보니 아침이 밝아오더라구요. 다시 학교를 가고 밤에 독서실에 가고 새벽에는 공원에 돌아왔습니다.

공원에서 공부를 하다 잠들 것 같아서 공원 근처를 돌아다니며 잠을 쫓아냈습니다. 3일째, 4일째 되어서도 새벽마다 공원에 왔습니다. 제대로 된 식사도 하지 않고 3캔의 커피로 밥을 대신했죠.

밤을 지새운 지 5일째 되는 아침, 120시간을 잠을 자지 않은 채로 학교를 향해 걸어갔습니다. 공원에서 15분 거리의 학교를 가는데 평소보다 두 배인 30분이 걸리더군요. 왜냐하면 걷다가 멈춰서서 졸고, 걷다가 멈춰서서 졸기를 반복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날 집에 돌아가서 17시간을 계속 잠만 잤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부터 제 불면증이 시작되었던것 같습니다.

Natalia Zagorska-Thomas, Insomnia, mixed media with pillow, 2011. (c) Natalia Zagorska-Thomas
Natalia Zagorska-Thomas, Insomnia, mixed media with pillow, 2011. (c) Natalia Zagorska-Thomas

재수 생활 끝에 수능을 치르고 대학교 합격 여부를 기다리며 불면증의 고통이 심해졌습니다. 불면증이 단순히 잠만 못 자는 증상이 아니더군요. 밤 12시가 가까워지면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해 졌습니다.

침대에 누워 있으면 과거의 아픔과 상처들이 계속 떠오르는 거에요. 그렇게 새벽 2시, 3시, 4시까지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과거의 사건들이 떠오를 때마다 분노하기도 하고, 우울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죠.

겨우겨우 새벽에 잠들면 꿈에서조차 그때의 사람들과 그때의 사건들이 나타납니다. 전 비명을 지르며 잠옷이 땀에 젖은 채 깨어났어요. 깨어나 보면 잠든 지 겨우 2~3시간밖에 지나지 않았고, 더 이상 잠들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침대에서 일어나 뭘 할 수 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머릿속이 그런 생각들로 꽉 차있다보니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책을 읽을 수도, 자고 있을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 수도 없었죠. 그나마 게임에라도 빠져 잊어보려 했지만 게임을 하는 동안에도 그 생각들로 늘 불안하고 초조했습니다.

거의 매일매일을 새벽마다 뜬 눈으로 침대 위에 시체처럼 누워 있는 날이 많았어요. 어쩔 수 없이 수면제 약의 성분을 높였습니다. 매일 먹는 약도 많게는 12알로 늘어났고요.

약에 취해 머리가 아픈 채로 억지로 잠에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어날 때도 약의 기운에 머리가 멍하고 아팠던 기억이 납니다.

Lucian Freud, Annabel Sleeping, 1988. (c) Lucian Freud
Lucian Freud, Annabel Sleeping, 1988. (c) Lucian Freud

그뒤로 오랜 시간을 걸쳐 전 차츰 건강을 되찾아 갔습니다. 물론, 여전히 밤을 뜬 눈으로 지새우는 날이 많았지만요.

스무살때 조현병이 발병되고 나서 10년이 지난 서른 살 때까지 일주일에 하루이틀은 잠을 이루지 못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날 누군가와 사소한 다툼이 있거나 상처를 받으면 전 잠을 자지 못했어요.

그만큼 밤마다 신경과 감정이 예민해졌던것 같습니다. 심지어 다음날 아침 약속이 있으면 그 약속이 신경쓰여서 밤새 잠을 자지 못할 정도였죠.

서른살 이후로는 한 달에 3~4일 정도만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건강해졌어요. 지난 2019년에는 365일 동안 하루도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지 않았습니다. 물론, 앞으로도 밤을 지새우는 날이 없을 것 같고요.

아! 잠을 이루지 못하는 새벽 시간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시를 쓰는 것이었습니다.마음과 감정이 괴롭고 예민하고 불안하고 초조 할때 전 눈물을 흘리면서 시를 썼어요.

오랜 시간 시를 쓰다보면 마음도 안정되고 아침도 일찍 찾아 왔거든요. 그러면 "오늘 밤도 시를 쓰며 무사히 넘겼구나!"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이 시들을 제 자서전 바울의 가시에 넣었고 부족하게나마 시를 통해 사람들에게 마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는 더 이상 그런 시들을 쓸 수 없어 아쉽습니다. 건강해지고 불면의 밤이 끝나면서 제 시도 더이상 써지지 않게 되었거든요. 그나마 남아 있는 시라도 이렇게 소개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

다들 오늘도 평안한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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