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희망에 의해 구원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길을 찾아낼 것이다”
“우리는 희망에 의해 구원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길을 찾아낼 것이다”
  • 권혜경 기자
  • 승인 2020.01.13 1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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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혜경 기자, 임세원 교수 추모식서 추모사 낭독
이 기사는 지난 11일 강북삼성병원에서 진행된 고 임세원 교수 1주기 추모식에서 <마인드포스트> 권혜경 기자가 임 교수를 추모하며 낭독한 추모사입니다. 어떤 이들은 말합니다. 정신장애인들의 죽음은 한 번도 뉴스에 나온 적이 없다고. 그래요, 맞습니다. 우리 사회는 정신장애인들의 죽음에 너무 무관심했습니다. 이제는 그 무관심의 강을 건너려고 합니다. 임 교수님의 죽음처럼 정신장애인의 삶과 죽음 역시 주목받는 계기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 환자를 사랑했던 임 교수님의 영면을 빕니다.

저는 조울병 당사자로 임세원 교수님의 소식을 들었을 때 너무나 충격이 컸습니다. 또 임세원 교수님의 가족들께서 얼마나 상심하실까를 생각하니 가슴이 너무 아팠습니다.

함께 온 패밀리링크 가족 분들도, 환우를 둔 가족 분들도 충격과 비통함으로 힘들어하셨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더 이상 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유가족 분들께서 보여주신 태도는 더 놀라움을 안겨주었습니다.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고인의 뜻에 따라 "치료진의 안전한 진료 환경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낙인과 편견과 차별 없이 쉽게 도움을 받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는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저 역시 사회적 낙인과 편견에 가득한 분위기에서 10여 년 간 저의 정신적 어려움을 인정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오랜 방황의 시기를 겪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임세원 교수님과 유가족 분들이 보여주신 모습에 너무나 감사하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용서와 회복을 온몸으로 보여주신 임세원 교수님과 가족 분들의 메시지를 전해 들으면서 저도 조금씩 증상과 어둠에서 벗어나 가느다란 희망이라는 것을 붙잡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동료지원가로서 저와 같은 정신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임세원 교수님께서는 평소 환자들이 “선생님은 이 병 몰라요”라는 말씀을 듣기 싫으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극심한 허리 통증을 겪고 본인이 심한 우울증에 걸리고 나서야 환자분들의 그 말을 이해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이 병 몰라요”라고 할 때 “아뇨 저도 이젠 이 병 알아요”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이 에피소드를 듣고 마음이 열려서 임 교수님의 책을 단숨에 읽었습니다. 책을 통해서 느낀 것은 임세원 교수님께서 매우 이성적이시지만 따뜻한 가슴을 가진 분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책에서 감동을 받은 구절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자살은 결코 나 혼자의 죽음이 아니다. 그것은 가족 모두에게 결코 지울 수 없는 영향을 주게 된다.

답이 없다고 절망할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견뎌야 한다. 그것이 바로 답이다.

가족을 웃게 하라. 너와 함께 웃게 될 것이다. 가족을 울게 하라. 결국 너 혼자 남게 될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희망을 만들 수 있다. 희망의 근거가 우리 자신의 존재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스로의 희망에 의해 구원될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삶은 자신의 길을 찾아낼 것이다.

건조한 지식의 말이 아닌 고통의 경험이 담긴 공감의 말이기에 임 교수님의 이런 말씀이 저와 많은 분들에게 큰 용기를 주었습니다. 또 우리의 마음속에서 의사자(義死者)로 남으셨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제 우리는 임세원 교수님의 의로운 행동을 ‘보고’ 유가족 분들의 숭고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말할’ 차례입니다.

더 나은 세상이 가능하다고. 치료공동체로서 치료진과 당사자와 가족이 함께하면 할 수 있다고. 떨어지는 벚꽃 잎을 잡으며 아드님이 아빠가 병 낫기를 소원을 바라던 아름다운 모습을 기억합니다.

살아가다보면 벚꽃만 있는 것이 아니라 벚낙엽도 있음을 알고 괴로울 때도 있지만 임 교수님에게 배운 우리의 용기와 실천이 나무의 밑거름이 되어 더 많은 벚꽃 잎으로 떨어진다는 것을 믿고 싶습니다.

그 믿음이 바로 희망의 근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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