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문 “부모들이여, 자식을 인정하라…인간은 인정받지 못하면 성장하지 못해”
이영문 “부모들이여, 자식을 인정하라…인간은 인정받지 못하면 성장하지 못해”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0.01.16 23: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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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이영문 국립정신건강센터장 특별 강연
부모는 자식이 혼자 살려는 의지를 적극 지원해야
완치보다는 병에 대한 ‘자기 인식’이 더 중요
일 안 하고 놀고먹을 수 있는 고민도 필요…그게 ‘본능’
부모 없이도 당사자가 잘 살아갈 수 있는 사회 만들어야
조현병 왜곡 보도 모니터링 해 지속적으로 언론에 항의해야
내가 잘못했을 때 ‘잘못했다’고 말하는 것도 인정의 범주
자유 억압하지 않으면 회복돼…억압을 푸는 게 치료의 과정
치료, 재활, 인권은 상호 연속성의 관계…인권이 가장 중요
당사자가 원하는 치료자를 선택하도록 배려해야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인간 유형이 좋은 치료자

“‘자유가 치료다’는 좋은 말인데 부모님 입장에서는 불편할 수 있어요. 진정한 부모님의 태도는 애들을 떠나보내야죠. 떠나보내려고 하는 의지가 있을 때 존중해 주는 것이 '자유가 치료'라는 거죠. 부모님의 품을 벗어나서 혼자 살려는 의지를 적극 지원해줘야 합니다.”

15일 서울 중곡동 국립정신건강센터 마음극장. 100여 명의 정신장애인을 둔 부모들의 시선이 한 군데로 쏠렸다. 이날 행사는 국립정신건강센터 사회사업실이 주관하는 가족교육 시간이었다. 이 교육의 특강으로 이영문 국립정신건강센터장이 ‘자유가 치료다’라는 제목으로 강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 센터장은 “‘자유가 치료다’라는 것은 자기가 건강하게 자신을 지킬 수 있을 힘이 있을 때 발휘되는 것”이라며 “당사자들은 자유롭게 자기 생각을 추구하고 작은 월급이라도 받으며 활동하고 싶어한다. 그것을 존중하는 것이 자유가 치료”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묻는다. 정신장애인은 정말 위험하지 않느냐고. 또 정신질환 치료가 가능한 이야기인지, 약물은 과연 안전한 건지. 이 센터장은 “이 같은 질문은 이미 부정성을 내포하고 있다”며 “사회가 이야기하는 건 '위험한 것 같다', 그걸 묻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므로 정신질환자는 위험한 것인가. 이 센터장은 “위험하지 않다. 정신질환을 가진 당사자들보다 더 위험한 이들이 수두룩하다. 범죄자도 30배나 높다”고 반박했다.

자유가 치료…당사자의 생각 존중해야

'정신질환의 치료는 가능한가라'는 세상의 질문들. 이 센터장의 답이다.

“치료가 가능하다. 그러나 완치의 개념과는 다르다. 치료는 완치가 있고 관리가 있는데 관리의 측면에서 치료가 가능하다. 정신과 약물은 안전한가? 모든 약물은 안전하지 않다. 정신과 약물은 3등급이다. 1등급이 항암제다. 정신과 약물은 부작용이 있지만 극복할 수 있고 안전하다.”

그는 정신병과 노이로제를 구분해야 한다는 세상의 의견에 대해 “노이로제는 정신병보다 나은 건 없다. 심각한 노이로제는 정신병보다 못하다”고 분석했다.

가족은 당연히 당사자의 완치를 원한다. 그렇지만 당사자와 함께 오랜 시간을 견디면서 완치의 개념을 바꾸게 된다. 이 센터장은 대신 병에 대한 ‘자기 인식’을 강조했다. 부분적이고 피상적이지만 자기 병에 대한 일반적 지식을 알고 있는 것이 치료의 한 축이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정신장애인은 사회 구성원으로 일을 할 수 있는가. 그는 “당연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사람이 직업을 가지려는 이유는 일을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직업을 갖고 싶지만 가질 수 없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하지만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일을 통념적 직업과 연결시키지 말라는 거다. 궁극적으로 일을 하는 것을 지향해라. 놀고먹는 것도 일 중의 하나다. 하루 일과를 잘 마쳐서 소일하고 돌아오는 것도 건강한 거다. 이걸 갖고 하루 종일 놀고먹느냐고 말하면 안 된다.”

객석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이 센터장은 “일을 좋아해서 많이 하는 건 나무랄 수가 없다. 괜찮다”라며 “그러나 어떻게 하면 일 안하고도 잘 놀고먹을 수가 있을까를 우리는 고민해야 한다. 그게 우리 본능”이라고 전했다.

가장 많은 정신장애인 당사자 가족들이 원하는 건 이런 질문이다. "내가 없는 세상에서 당사자들이 살아갈 수 있을까." 이 센터장은 “우리 애가 내가 죽기 하루 전날 (죽었으면) 이런 소리 많이 한다”며 “이것도 걱정하지 말고 먼저 잘 돌아가셔야 된다”고 말했다. 다시 웃음이 터져나왔다.

일과 직업을 연결하지 말아야…놀고먹는 것도 인간의 본능

이 센터장은 “부모님 없이도 당사자들이 잘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고 만들 수 있다”라며 “사회는 우리를 편안하게 길을 인도하지 않는다. 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경우 정신과를 비롯해 지역의 의료기관, 의료진들의 실적 등이 일 년에 한 번 공개된다. 책으로 만들어져 비싼 값이 팔린다. 이 센터장은 “컨슈머와 당사자 그룹이 정신의료기관과 시설을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의사와 간호사, 사회복지사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으면 다른 분들에게 가이드가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 센터장은 특히 정신장애인 당사자와 가족이 국가를 상대로 ‘부탁’이 아닌 ‘요구’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에 대해 국민들은 요구를 해야 한다. 국가를 대리하는 의료집단인 나에게 요구를 해야 한다. ‘센터장님, 우리에게 가족실을 내주세요. 부탁합니다’라고 할 필요 없다. 가족상담실 내달라고 요구해라. 국민이 명령하고 국가가 대답을 하는 거다.”

그렇다면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은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 이 센터장에 따르면 그들은 ‘불안으로부터의 해방’을 원한다. 정신질환을 앓았을 때 느꼈던 고립무원의 고립감. 당사자들은 망상과 환청 증상에 들어서기 전에 엄청난 불안을 겪는다. 이는 존재론적 불안이며 깊은 트라우마를 남긴다. 따라서 당사자들이 이 불안으로부터의 해방감을 찾기 위해서는 그 불안을 이해해줘야 한다.

공포로부터의 자유 역시 당사자들이 추구하는 자유의 한 형식이다. 이 센터장의 말이다.

“정신질환이라는 무거운 짐을 함께 짊어질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당사자들이 활동을 통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점점 나아진다. 회복되고 직장도 갖게 됐지만 정신질환이라는 짐을 갖고 있다. 하지만 예전보다는 그 짐의 무게가 무겁지 않도록 하자는 거다. 혼자 감당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확신해야 한다.”

따라서 사회적 편견을 이겨낼 수 있는 용기는 혼자의 힘으로는 나오지 않는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요구하고 앞으로 진행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해 4월 경남 진주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안인득(40대)이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르고 화재를 피해 대피하던 주민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5명이 숨지고 16명이 중상을 입은 사건이 발생했다. 언론은 안인득을 정신질환자로 일제히 보도했다. 정신장애인들은 스스로 숨었고 움츠러들었다.

이처럼 정신장애인에 의한 사건이 발생하면 정신장애인들은 2차적 충격으로 공포와 불안을 느끼게 된다. 한 지역에서 낮병원을 열심히 다니던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은 언론이 정신장애인 범죄를 강조하면서 집단적으로 증상이 나빠졌다. 이 센터장은 “(나빠질 이유가 없었는데) 그 사건 뉴스만으로도 증상이 올라왔다”며 “방송 등 미디어에 적극적으로 항의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신질환이라는 짐을 함께 짊어질 때 회복력 높아

“조현병에 대한 나쁜 기사들이 나올 때는 모니터링해서 기사 정정을 요구하고 계속 내보내야 한다. 정신증에 대한 보도지침을 만들어서 기자들을 언론중재위원회에 고소해야 한다. 또 정신장애인이 위험하고 범죄가 많다는 가짜 뉴스에 대해 항의해야 한다.”

인간은 성장하는 것일까. 성장을 한다면 어떤 방식을 통해 지혜로워지는 것인가. 이 센터장에 따르면 인간은 계속 발전해 나가는 존재다. 중요한 건 성장에 맞춰 성숙이 이뤄져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센터장은 “적절한 인정받음”이 핵심고리라고 말했다. 그는 “인정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성장하지 못한다”며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정이라는 것이 잘한 부분만 인정하는 게 아니고 잘못했을 때 잘못했다고 하는 것도 인정”이라고 강조했다.

청소년기에 일찍 발병한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은 살아오면서 한 번도 ‘네가 잘했다’는 인정을 받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청소년들이 비행을 저지르는 이유는 잘못을 저질렀을 때 관심을 받는 메커니즘 때문이다. 친구를 때렸을 때 비로소 부모가 관심을 갖게 됐을 때 그 부정적 폭력 행위를 더 하려고 하는 심리다. 이른바 ‘부정적 관심 갖기’다. 만약 부모들이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에게 ‘잘했다’는 말을 해 준다면 어떨까. 이 센터장의 설명이다.

“정신증을 앓든지, 앓지 않든지 간에 인간은 인정받기를 통해 성장한다. 집에 가면 ‘오늘 하루 수고했다, 잘 했다’라고 말해주라.”

인간의 성장은 인정 욕구 외에도 ‘따라하기’를 통해서도 진행된다. 이 센터장은 언젠가 정신장애인의 행복에 대한 강의를 요청받았다. 막막했다. 그는 내담 온 한 청년에게 ‘행복하냐’고 물었다. 내담자는 한참 생각 후 “자신을 두 번 부정해야 행복해진다”고 답했다.

“첫 번째 부정은 부정당함인데 정신질환 자체로부터 자기도 모르게 부정을 당하게 된다. 내가 아닌 다른 경험을 하는 거다. 그런데 그 부정당한 것에 대해 이게 아니고 내가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해서 정신질환이 있었던 것을 부정하게 된다. 이는 역설적이다.”

이 센터장은 “정신질환을 앓았다고 해서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건 편견”이라며 “따라하기를 통해서 그 사람은 성장한다”고 말했다.

인간은 인정받고 싶어하는 존재들

성장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적 사건들의 경험을 통해서 발전한다. 정신질환 자체가 우연히 찾아온 것인데 당사자는 자기 인생에서 필연적 경험이 된다. 아픈 경험이지만 그 경험을 통해 우리는 삶을 배워나가게 된다는 의미다. 이 필연적 경험이 사회학적 용어로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다.

“인간은 누군가가 자유를 억압하지 않으면 자생력으로 (원래의 상태로) 펴진다. 따라서 억압을 푸는 자체가 하나의 치료 과정이 돼야 한다. 처음 입원했을 때 강박을 당하면 평생 그 경험을 잊지 못한다. 나는 치료를 한다고 생각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의 자유를 억압한 것이다. 강제입원은 좋지 않다. 최대한 설득하고 최대한 강박을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치료와 재활, 인권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이 센터장은 “연속성”이라고 답했다.

“치료와 재활은 다르다. 치료가 안 돼도 재활은 이뤄진다. 치료가 됐다 해도 재활이 안 되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 인권도 마찬가지다. 치료가 안 돼도 인권은 살아있다. 재활이 안 돼도 인권은 살아있다. ‘어디를 선택할래’라고 하면 저는 당연히 인권이다. 치료가 조금 덜 되더라도 인권이 존중된다면 그쪽을 선택해야 한다.”

이 센터장은 이어 “치료의 목적은 증상을 최소화하는 것”이라며 “인격의 황폐함을 최소화하는 것을 인권이라고 나는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간다움을 보장받는 것이 인권인데 인간다움을 보장받지 못하는 것은 아무리 훌륭한 치료라 하더라도 치료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정신보건 현장 자체는 인권 존중이 바로 치료와 회복에 연결된다. 존중받는 것만으로도 치료의 효과가 일어나는 곳이 정신과 현장이다.”

이 센터장은 어떤 정신과 의사와 병원을 택해야 하는가에 대해 질문을 많이 받는다. 그는 이 같은 일화를 들었다. 2차 대전 이후 한 회사가 비행기를 만들려고 했다. 그래서 독일 비행기의 장점, 미국 비행기의 장점, 영국 비행기의 장점을 다 모아서 비행기를 만들었는데 결과는 비행기가 뜨지도 못하고 주저앉아 버렸다.

이 센터장은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기능의 조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며 “필요한 의사를 찾아가는 게 좋다”고 충고했다.

좋다는 기준은 사실 없다. 부모에게는 좋지만 당사자에게는 막상 싫은 의사가 있을 수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그걸 때 당사자가 원하는 치료자의 선택이 맞다는 게 이 센터장의 조언이다.

이어 충분히 면담할 수 있고 약을 최소화할 수 있는 의사다. 그리고 희망을 줄 수 있는 의사.

“희망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사람이 가면 길이 되고 안 가면 길이 없어진다. 의사는 희망이라는 가능성을 향해 같이 갈 수 있는 친구가 돼야 한다. 그 첫 번째 조건이 바로 ‘낙관론’이다. 낙관론을 갖고 스스로에게 긍정적인 사람이 좋은 치료자다. 그래서 미래를 함께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치료진을 찾아야 한다.”

낙관하는 긍정적 인간유형이 좋은 치료자

이 센터장은 따라서 ‘대형병원’에 가서 치료하는 걸 절대적으로 보지 말라고 지적했다. 대신 생산성을 따지지 않고 약을 최소화할 수 있는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의사를 찾으라고 조언했다. 그 경우 존중받으면서 치료될 수 있다. 그 의사가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카톡을 보낼 수 있는 관계라면 ‘금상첨화’다.

그때, 질문이 들어왔다. 정신장애인의 어머니로 자신을 소개한 그 여성은 “대학병원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했는데 대학병원을 가지 말라고 하니 화가 난다”고 했다. 웃음이 번졌다.

이 센터장은 “그 경우는 좋은 선생님을 만나서 그런 것”이라며 “대학병원 진료 시스템을 정신과에 한정하면 대학병원들이 (정신과를) 그렇게 원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어 “대학병원들은 생산성이 나지 않으니까 정신과를 다 없애고 싶어 한다”며 “대학병원은 비싸기도 하고 입원 시설도 대학병원 정신과가 장점이 별로 없다”고 덧붙였다.

이 센터장은 마지막으로 인간다운 삶의 기준을 설명했다. 무엇보다 우선은 살아 있어야 하는 것이다. 생물학적 생명이 있어야 하고 이어 잘 놀아야 한다. 감정을 잘 표현할 수 있어야 하고 생각하는 힘, 즉 ‘실천이성’이 필요하다. 또 삶에의 상상력을 갖기. 또 자신의 환경에 대한 통제할 수 있는 힘. 이는 약물에 대한 통제력을 의미한다. 그리고 자신과 관계하는 모든 관계에서의 협력.

이 센터장은 “대학병원을 예로 들면 백화점 물건이 다 좋은 것은 아니라는 원리와 마찬가지”라며 “껍데기에 매달리는 치료를 하지 말라. 화려해 보이는 정신과 선생에게 현혹되지 말라”고 조언했다.

강연이 끝났다. 어떤 이들은 이 센터장에게 다가가 자신의 처지와 정신과적 해결방법, 부모로서의 태도 등을 묻고 있었다. 그 중의 한 여성은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그녀의 눈 주변은 멍들어 있었고 손은 날카로운 물건에 베여 붕대를 감고 있었다. 정신장애인 아들이 그녀를 폭행한 것일까. 갑자기 가슴 한쪽이 쏴하게 아파왔다. 이 센터장도 그러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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