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수“‘오픈 다이얼로그’는 수평적 의사소통 행위…집단 참여를 통한 열린 치료기법”
김현수“‘오픈 다이얼로그’는 수평적 의사소통 행위…집단 참여를 통한 열린 치료기법”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0.01.19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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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정신건강연구회 정기 세미나, 오픈 다이얼로그와 대화주의의 접속
바흐친 대화주의 “진리에 도달 위해서 대화와 대면이 필요”
독재(獨裁)는 대화가 성립되지 않는 독백의 사회
다양한 사람의 목소리 듣는 ‘다성주의’는 집단대화 치료
성급한 진단과 개입은 역효과…경청하고 대화하고 기다려야

“수직적 위계에서는 대화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대화가 없으면 거기에는 의미 있는 타인이 없고 명령만 있을 뿐이다. 대화가 변화를 초래한다.”

18일 서울 관악구 성장학교별에서 열린 시민정신건강연구회 3차 동계 정기 세미나. 발표에 나선 김현수 명지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러시아 문학이론가 미하일 바흐친의 담론을 이야기했다.

이번 세미나는 핀란드와 유럽에서 주목받고 있는 치료담론인 오픈 다이얼로그(Open Dialogue)에 대한 정의, 한국적 실천과 적용의 문제를 다뤘다. 이 담론에서 미하일 바흐친의 ‘대화주의’가 어떤 방식으로 오픈 다이얼로그에 접속됐는지를 모색하는 자리였다.

미하일 바흐친은 1895년 출생했다. 구 소련 스탈린 정권에서 유배를 당했고 복권 이후 문예이론과 윤리학, 언어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 글을 남겼다. 바흐친은 스탈린 독재를 ‘대화가 성립되지 않는 독백의 사회’로 규정했다.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인간과 인간의 대면과 대화가 필요하지만 이 같은 관계가 훼손되면 우리는 진리보다 독재에서 살아갈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김현수 명지대학병원 교수가 강의를 하고 있다 (c)마인드포스트.
김현수 명지대학병원 교수가 강의를 하고 있다 (c)마인드포스트.

바흐친에게 독백과 대화는 그 결을 달리한다.

김 교수는 “독백주의는 타자를 완성되고 완결될 것으로 본다”며 “반면 대화주의는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서만 존재하는 열려 있는 미완성의 의식”이라고 말했다.

이어 “바흐친은 인간의 본성은 타인과의 대화를 통해 형성된다”며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어떤 특성을 갖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교육이라는 대화를 통해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바흐친 이론에서 중요한 부분은 ‘카니발 이론’이다.

카니발은 고대 유럽에서 내려오는 축제다. 사람들은 이 축제 기간에 신분과 계급을 잊고 자유롭게 자신을 표출했다. 카니발의 대표적 속성은 ‘일상성’과 ‘엄격한’ 위계구조의 해체다.

김 교수는 “카니발 축제 내에서는 고하를 따지는 ‘꼰대’들은 찾아볼 수 없다”며 “그들이 성공적으로 일탈을 범할 수 있게 해 주는 수단이 바로 ‘대화’”라고 분석했다.

대화는 개별 주체들간의 수평적 의사소통 행위이며 수직적 ‘명령’은 카니발 시즌에 완벽하게 사장된다. 대화만이 카니발을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로 작동한다.

김 교수는 왜 정신증 치료에서 오픈 다이얼로그가 치료(therapy)가 아닌 대화(dialogue)인지를 분석했다.

1980년대 세계 학계는 바흐친의 연구를 재발견하게 된다. 바흐친의 대화주의는 정신의학에서 실천적 모델로 접목되게 된다. 핀란드 정신의학계는 자신이 만나는 환자집단, 정신증 집단과의 상호작용에 대해 사유하기 시작했고 1980년대 핀란드 라플랑드에서 연구가 임상적용이 시작된다. 이 이론은 2000년 영국으로 전파된 후 이후 세계적 주목을 받게 된다.

오픈 다이얼로그에서 제기되는 집단적 문제의식은 뜨거웠다. 좋은 대화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부터 편견과 낙인을 줄이면서 대화를 할 수 있는 방법, 대화주의적 접근이 정신증 환자와 가족에게 어떤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까 등의 의문들이 제기됐다.

이때 오픈 다이얼로그의 지배적 이데올로기인 ‘다성주의’(Polyphony)가 제안된다. 다성주의는 하나의 목소리만 들리는 단성주의(monophony)에 맞서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걸 의미한다.

미하일 바흐친(1895~1975)
미하일 바흐친(1895~1975)

김 교수는 “오픈 다이얼로그에서 다양한 직종의 사람이 참여하도록 되어 있는 것은 바흐친의 다성주의를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예컨대 누군가 정신증이 발생했을 때 가족과 병원 관계자들, 친구, 동료 등 다양한 집단이 참여해 증신증을 겪고 있는 이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 과정에서 치료가 이뤄지기도 하고 그렇지 않고 심하게 악화됐을 경우 병원을 이용하도록 하고 있다. 다성주의는 이 같은 개별자들의 집단적 참여를 통한 대화적 치료기법이다.

김 교수는 “오픈 다이얼로그는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대화에 참여하는 걸 허용한다”며 “중요한 규칙은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견해를 밝힐 권리를 가진다”고 말했다.

또 “의사 등 전문가들의 의견은 진행 중인 대화에 방해가 돼서는 안 된다”며 “다양한 전문가들의 견해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럴 때 오픈 다이얼로그는 옳고 그름의 방향보다는 모든 이들에게 발언권을 줘 듣고 교류하는 것을 도모한다”고 전했다.

오픈 다이얼로그의 효과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핀란드 라플란드 지방에서 발생한 정신증 환자를 2년 간 추적 조사한 결과, 오픈 다이얼로그 집단은 통상적(약물 포함) 치료 집단에 비해 입원 기간과 항정신병 약물 복용, 재발률, 취업 등에서 긍정적 결과를 보였다.

이는 어떤 관점에 의하든 오픈 다이얼로그는 위기 상황에 있는 정신장애인 당사자를 대상화하지 않고 치료과정의 주체로 위치시킨다. 또 정신장애인의 사회관계망을 치료 과정에 참여시키면서 치유의 질적인 효과를 가져왔다는 연구 논문도 있다.

이 ‘오픈 다이얼로그’라는 명칭은 1996년 가족 및 당사자의 사회적 관계망 중심의 치료법을 설명하기 위해 처음 사용됐다. 최초 욕구맞춤치료로부터 파생됐지만 이후 바흐친의 대화주의와 ‘불확실성의 관용’과 같은 실천적 원리들이 추가되면서 당사자뿐만 아니라 가족, 사회적 관계자, 전문가들이 다 같이 참여하는 방향으로 적용되기 시작했다.

김 교수는 오픈 다이얼로그의 실천적 원리들을 네 가지로 규정됐다.

우선 즉각적 지원으로 위기 상황 초기의 중요성을 의미한다. 정신과적으로 응급상황에 있는 환자의 상태를 ‘창문이 며칠 동안만 열려 있는 상태’로 표현한다. 이 경우 즉각적 대응을 통해 환자가 제기하는 주제를 경청함으로써 충분히 안정을 취할 수 있다면 예후를 개선할 수 있다.

오픈 다이얼로그는 '다성주의' 철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
오픈 다이얼로그는 '다성주의' 철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

중요한 점은 즉각적 반응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증상이 가장 심할 때가 오히려 좋은 기회라는 사고의 전환이 수반돼야 한다는 점이다.

이어 ‘왜 다 모이는가’에 대한 설명이다.

김 교수는 “오픈 다이얼로그가 바라보는 문제는 환자의 언어뿐만 아니라 환자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언어로 정의된 후에야 문제가 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사회적 관계망이 회의에 참여해야 하는 이유는 이 문제를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더 이상 문제로 정의하지 않을 때 해결되기 때문”이라며 “결국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가족과 사회적 관계자들이 필수적으로 참여해야 함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이어 ‘불확실성의 관용’이다. 이는 모든 것을 빠르게 확신하지 않으면 섣부르게 답을 내리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위기상황의 경우 실제적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아무도 알지 못한다. 따라서 오픈 다이얼로그는 ‘무엇을 해야 한다’가 아니라 회의를 통해 지속적으로 열린 상태로 유지된다.

김 교수는 “즉각적인 조언이나 급한 결론과 같은 전통적 개입은 정신증적 위기의 진정한 해결책 모색을 저해한다”며 “가설은 자제돼야 하는데 이는 위기를 완화시킬 자연스러운 방법을 찾을 가능성을 차단하고 방해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대화주의. 오픈 다이얼로그의 초점은 대화를 촉진하고 가족의 언어로 참여자들 간에 새로운 이해를 구축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바흐친의 이 대화는 독백과는 달리 관계적, 역동적이며 세계에 새로운 설명을 만들어내고 의미를 생성할 수 있는 과정으로 간주된다.

대화주의는 가족과 환자, 전문가들이 문제에 대해 토론함으로써 자신의 삶에서 행위주체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또 전문가의 경우 대화는 환자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새로운 측면을 도출하게 된다.

김 교수는 “대화는 현실이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의사소통 과정이며 문제는 모든 대화에서 재형성된 것으로 간주된다”며 “대화는 한 개인의 욕구를 타인에게 드러낼 수 있는 주요한 수단”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오픈 다이얼로그를 어떻게 실천에 옮길 것인가. 김 교수는 우선 “전문가 훈련의 재구성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그는 “전문가는 치료과정을 지배하기보다 사람의 말을 듣는 방법, 대화를 생성하는 방법, 오픈 다이얼로그에 관점에 대한 철학 등이 교육 과정에 반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핀란드에는 정신건강서비스 관련 전문가들은 가족치료와 오픈 다이얼로그와 관련해 최소 3년의 학원 과정을 거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비판도 있다. 영국은 오픈 다이얼로그를 시범 운영하고 있는데 일주일에 몇 번씩 열리는 90분간의 회의는 예산이 부족하며 정신건강서비스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기 때문에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오픈 다이얼로그 전문가인 피포 교수의 말을 인용해 “오픈 다이얼로그 서비스를 이용한 환자의 가족들은 자신들의 삶의 위기를 다룰 수 있는 더 많은 자원을 가지게 돼 치료의 필요성이 감소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더욱 경제적”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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