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 류원용의 일기장] 앗, 내게 천지개벽이 일어났다(6)
[당사자 류원용의 일기장] 앗, 내게 천지개벽이 일어났다(6)
  • 류원용
  • 승인 2020.01.27 19: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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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병원에 첫 번째 입원했을 때 주치의 선생님은 내가 너무 중한 조현병 증세로 찾아온 걸로 오해했다면, 두 번째 입원 때는 주치의 선생님이 생각하기에 내가 너무 거친 사람인 줄 오해했었나 보다.

이번에는 주치의 선생님이 교도소에서 정신감정 받으러 오는 사람들이 입원하는 병실에 나를 입원시킨 것이다. 당연히 그 사람들을 감시하기 위해 24시간 경찰들 서너 명이 상주하는 곳이었다.

병동에 들어서자마자 주간 근무를 책임지는 주사가 나를 보호실에 감금했다.

나는 ‘곧 나가게 해주겠지’라고 생각하고 보호실에 들어갔다. 삼십 분이 지나가고 한 시간여가 되도록 직원들은 내게 신경도 안 썼다. 누구 하나 “잠시만 앉아 계세요. 곧 꺼내드릴게요”라고 말하는 사람도 없었다.

나는 첫 번째 입원했을 때 직원들의 폭력성과 권위주의를 체험했다.

또한 정신병원 직원들은 간호사든 주사든 우리 정신질환 환우들을 사람 취급하지 않는다는 것 또한 익히 느꼈고 알고 있었기에 나 또한 직원들을 사람 대우해주고 싶지 않았다.

나는 상식적으로 생각하기에 ‘이제 꺼내 줄 때가 됐다. 내가 이곳 보호실에 있을 이유가 없다’라고 생각했기에 입을 열었다. 그러나 짐승에게 존댓말 해주기는 싫었다.

나는 보호실 창살 사이로 밖을 내다보고 “야! 문 열어”라고 말했다. 보호실 밖에 있던 한 주사가 나를 쳐다봤다. 자세히 보니 다리를 저는 주사였다. 나중에 소문으로 듣기엔 어려서 소아마비 걸려서 다리를 저는 사람이라고 했다.

어디서 분필이 났는지 그 주사는 나한테 분필을 던졌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또 말했다. “야! 문 열어. 안 열면 이 문 부셔버린다.”

그 주사는 씨익 비웃고는 절뚝거리며 저쪽으로 가버렸다. “셋 셀 때까지 이 문 열어. 안 열면 이 문 부셔버린다.”

내게 보이는 시선 안으로 주사들은 아무도 없었고, 입원해 있던 환우들도 아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는 숫자를 셌다. “하나!” “둘!” “셋!”

그 다음은 내 딴에는 주먹으로 때려서 보호실 쇠문을 부술 수 있을 줄 알고 문을 때리기 시작했다. 그 쇠문이 주먹질에 부서질 리 없지만 말이다. “쾅.쾅. 쾅.”

다섯 대쯤 때렸을까? “철컹”하고 밖에서 문을 열었다.

‘이것들이 생사람 가두고 꺼내주지도 않더니, 문이 부셔질 것 같으니까 무서워서 문을 여는구나’ 라고 속으로 비웃으며 나가려고 걸음을 떼는데 웬 키가 190센티미터, 체중이 130킬로그램쯤 돼 보이는 프로 레슬링 선수 같은 사람이 들어오더니 주먹으로 내 가슴을 가격했다.

엉겁결에 ‘선빵’을 맞은 나는 나가떨어졌다. 나가떨어지면서 나는 생각했다. ‘아. 이 자식이 나와 마사지(’맞짱‘의 전라도 사투리) 뜨자고 들어왔구나.’

벌떡 일어나서 나는 마사지를 뜰 포즈를 잡았다.

완벽하게 착각은 자유였다. 주사들은 처음부터 나를 결박시키기 위해 보호실에 가뒀고, 아무 잘못 없는 나를 결박할 수는 없으니까 결박할 거리를 만드느라 계속해서 보호실에 가둬둔 채 나를 자극한 것이었다.

내가 막 포즈를 잡고 있는데 예닐곱 명의 주사들이 우르르 보호실로 들어오더니 다 같이 나를 번쩍 들어 침대에 눕히고 결박했다. 마지막으로 처음 내게 분필을 던졌던 주사가 절뚝거리며 들어오더니 내 뺨을 때리고 절뚝거리며 나갔다. “철컹”하고 보호실 문은 다시 잠겼다.

그러나 나의 저항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나는 이미 결박으로 몇날 며칠을 묶어놔도 끄떡 않을 만큼 결박에 대한 내공이 쌓여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끈질긴 결박 앞에는 매 이기는 장사 없는 법이었다.

잠시 후 들어온 간호사가 약을 먹으라고 가져왔다. 나는 간호사에게 “야 이 씨벌 X아! 너 같으면 지금 상황에 약 쳐 묵고 있겠냐? 이 개 같은 X아!” 욕을 하며 약을 거부했다. 간호사가 그냥 나갔다. ‘나는 어디 한번 묶으려면 얼마든지 묶어 봐라’라고 생각하며 자신 있게 있는 힘껏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한참 힘차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기억이 끊겼다. 아마 주치의가 주사를 처방했었나 보다. 나는 그때는 한 일주일여를 묶인 것으로 기억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논리적으로 그렇게까지 오래 묶이지는 않았을 것 같다.

너무 힘들어 죽을 것 같은 느낌에 정신을 차렸다. 내가 왜 그 말을 했는지 기억이 안 나는데, 나는 “잘못했어요. 이제 다시는 안 그럴게요” 라고 결박당한 채 빌고 있었다. 그 말이 떨어진 지 3초도 지나지 않아 또 “철컹” 하고 문이 열리더니 주사가 성급히 결박을 풀어줬다. 이럴 때 지체했다가는 잘못하면 사람이 죽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희미한 기억으로 떠오르기에는 그동안 내가 결박을 풀어주면 그 놈 데려오라고 ‘마사지 뜨자’고 하고 그러면 또 결박하고, 풀려나면 또 그 놈 데려오라고 하고 또 결박하고 그랬던 기억이 꿈속에 있었던 듯 스친다.

알고 보니 ‘그 놈’ 즉 키가 190센티미터에 체중이 130킬로그램 정도 나가는 놈은 ‘남 주사(?)’라고 했다. 성이 남씨인가 뭔가? 이 자는 국립XX병원의 해결사 깡패(?)였는데 소문에는 국립XX병원을 다녀간 환자들 중에 거친 환자들은 그 놈한테 야물게 맞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라고 했다. 세월에도 장사 없으니 그 사람도 몇 년 전에 퇴직했다.

나는 한 번 뱉은 말은 지키려 노력하는 성격이라 그 뒤로 주사들과 간호사들에게 정중히 존댓말을 썼다. 주사들은 나를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사람’이라고 지칭하며 내게 잘해줬다. 간호사들도 원용님은 ‘화병’ 걸린 사람이라며 이해해주고 나를 남동생 대하듯 예뻐해줬다.

그리고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붕 떴던 기분이 가라앉고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첫 번째 입원했을 때 나는 약 때문에 죽을 뻔한 고생을 했었다. 하지만 이번에 먹은 약은 먹고 나면 매번 머릿속이 푹 가라앉으며 진정되는 체험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정신병원에서는 이런 말이 회자된다. ‘명의는 인격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약 잘 지어주는 의사가 명의다.’

국립XX병원에 두 번을 입원하자 나는 약의 효능을 체험했고, 그에 따라 ‘아, 나는 약을 먹는 게 나의 건강에 더 좋구나’라는 것을 배웠다. 이렇게 나는 아둔한 머리로 맨땅에 헤딩해가며 나의 ‘가시(병)’에 대해 조금씩 시나브로 알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입원한 지 두 달 후, 나는 건강해졌고 주치의 선생님은 나를 퇴원시켰다. 기뻤다. 그리고 ‘약을 잘 먹어야겠다’라고 생각했다.

첫 번째 입원 후 퇴원했을 때는 나는 부끄러웠고 좌절했고 어찌 살아야 할지 막막한 심정으로 마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아무 이유 없이 마음속에 희망이 솟고, 기분은 유쾌하고,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자신감이 넘쳤다.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익어가는 나를 체험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 이러했던 이유는 마음껏 고함치고 노래 부르고 하고 싶은 말들을 뱉으면서 억눌려져 짓이겨져 있던 나의 내면을 있는 힘껏 해방시켜 봤던 행복감에 기인한 것은 아닐까? 나는 조심스럽게 해석해 보는 것이다.

선무당 사람 잡는 게 주특기인 아버지는 나를 두 번 더 국립XX 병원에 강제입원시켰는데, 이것은 내가 재발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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