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에 씌어진 ‘정신질환자 출입금지’...인권을 사유하다
목욕탕에 씌어진 ‘정신질환자 출입금지’...인권을 사유하다
  • 허은태
  • 승인 2020.03.01 19:0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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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오랜만에 오는, 그리고 오래전 학창시절에 아버지와 함께 왔던 그 목욕탕에 오랜만에 왔다.

그 빌딩. 그 목욕탕은 내부만 새 단장을 한 채 그대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1만2000원입니다.”

“카드 받았습니다.”

손님을 대하는 익숙한 말투 사이로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완전히 분리되어있던 여탕과 남탕은 입구는 똑같지만 계단으로 층이 분리되어 있었다. 4~5년 전에 보았던 서울의 조그마한 목욕탕과 디자인과 느낌이 거의 비슷하게 고쳐져 있었다.

그리고 내 시선에 걸리는 초록색 박스안의 조그맣지만 선명한 문구.

‘정신질환자 출입금지’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내 머릿속을 스친다.

업체에서 일부러 주문받아 붙이기에는 너무 작고 주변과 어울리는 색은 아니다. 그러면 생활용품점? 하지만 그곳에서도 당연히 판매할 리가 없는 문구다.

이건 과연 어디서 구했을까? 확실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리모델링하면서 붙인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래. 처음부터 붙일 생각이었다면 옆의 큰 알림판과 조화되게 붙이거나 다른 문구와 박스를 같이 넣었겠지.’

업주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아마 뉴스에서 정신질환과 관련된 이슈가 터졌을 때, 예를 들어 임세원 교수님 사건이 일어났을 때 업주가 뉴스를 보고서 욱해서 붙였을 것 같다. 중간에 붙였다면 트리거는 이게 확실하다.

씁쓸하다. 아니, 오히려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어린 시절 이사 온 이 동네의 아이들은 부유하고 교육도 잘 받았지만 태도가 거칠고 욕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런데 나는 어린 시절 양심에 걸리지 않고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한 내 소신대로 행동했다. 소위 ‘노는’ 애들이 시비를 걸거나 공부를 방해하면 맞서거나 선생님의 도움을 받았다.

그래서 굳이 노는 애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되도록 그들과 멀리하고 무시했다.

항상 내 노트가 필기가 정확히 되어 있는 것 같지 않아서 가장 공부 잘 하는 급우의 것을 매번 빌려서 필기를 했다. 이 정도의 나의 행동도 견디지 못하고 그 동네 아이들은 내 학교생활을 힘들게 했다.

세상에 나가면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들 귀가 닳도록 들었건만 아직까지 내 소신과 마음을 가장 짓밟힌 건 학창시절이 유일하다. 튀면 안 된다는 것. 고등학교 졸업할 때 쯤 나를 진짜 걱정해줬던 몇 안 되는 애들에게 직접 듣고 알게 된 학교 안에서 지켜야 할 규칙이다.

이 정도도 인정해 주지 못하고 괴롭히고 따돌림을 받았다.

그렇게 다양성이 메마르고 따돌림이 당연하면 현재 인권(人權)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차별이 당연하게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내가 자란 이 동네를 욕하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 잘해주던 사람도 있었다. 단지 이웃에 대한 배려와 기본적인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정신장애인의 인권도 보장받지 못한다는 것을 이야기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세상의 가장 아래에 있는 약자라고도 할 수도 있는 정신장애인에 대한 배려를 바란다면 사막에서 진주를 찾기를 바라는 것과 다르지 않을까?

나는 여유 없는 이 시선이 전염되지 않기를 바란다. 다들 잘 모르기 때문에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알고 보면 세상 어느 누구도 자신이 하는 행동이 나쁜 행동이라고 생각하고 저지르지 않는다.

“그래. 그동안 손 놓고 방치하여 살아온 결과가 이것이라면 이제는 행동할 때다. 다양성, 그리고 인권을 위해서 말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병과의 경험과 동료지원 양성교육으로 만들어진 동료지원가로서의 신념으로 무장하고 올해를 보내고자 한다. 그리고 내후년 이후에 만약 사회복지사로 일하게 된다면 당사자 사회복지사로서의 긍지와 자긍심을 가지고 일할 생각이다.

선배, 동기 동료지원가 분들, 그리고 내년에 교육을 받을 동료지원가 분들께.

어차피 우리 병은 개인이 잘한다고 해서 좋아진다고 할 수 없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꾸준히 약물을 복용하는 것을 전제로 하여, 10년간의 투병생활 동안 내가 지금까지 가장 좋은 약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운이다.

가장 잘 맞는 의사를 만난 운, 가장 잘 맞는 약을 빨리 처방받은 운, 급성으로 병이 심하게 왔지만 약이 기가 막히게 잘 들어서 복지카드 받자마자 비장애인정도로 회복이 된 운 등등.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손 놓고 운에 맡길 수는 없다. 운도 준비된 사람에게 오는 것이다.

우리에게 가장 확실한 노후 대책과 생존 대책은 우리에 대한 인식개선을 하는 것이다. 물론 금방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조금씩 조금씩 인식개선을 해보며 버텨보자. 이기는 것이 아니라 버티는 것이다. 이기려고 하면 지친다. 쉬면서 우리는 버텨나가 균열을 조금씩 내야 한다. 금이 간 균열 사이로 빛이 조금씩 들어올 거다. 이기려고 힘을 쓴다면 그때 써야 할 거다. 그런데 우선은 당신이 필요하다. 동료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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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호연 2020-01-28 23:20:45
난 이렇게 생각한다.
누구나 완전한 사람은 없고 누구나 정신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보장 못한다고...
세상 동물들 중 인간은 누구나 앓고 있는 병이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