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은 걸 토해내야 사는 사람들...'폭식증'의 실체
먹은 걸 토해내야 사는 사람들...'폭식증'의 실체
  • 배주희 기자
  • 승인 2020.01.30 18: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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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갈 수 있는 소리없는 공포 '폭식증'
폭식증은 다이어트가 아닌 통제할 수 없는 폭식과 구토를 반복하는 정신질환
대중매체의 영향을 많이 받는 10대 후반에 발병
비정상적으로 저체중인 연예인들 동경하며 폭식증 발병
청소년기의 불안장애를 잘 인지하고 적절한 치료 받아야 예방할 수 있어
약물치료는 그다지 효과가 없고 인지행동치료와 가족의 도움이 필요
폭식증의 어두운 실체(c)slideplayer
폭식증의 어두운 실체 (c)slideplayer

미국 오레곤 주에 사는 23살 제시(Jessie) 씨는 겉으로 보았을 때는 소아과 의사가 되기를 원하는 평범한 대학생처럼 보인다. 외모도 출중하고 두뇌도 명석하여 어릴 때부터 영재로 불리곤 했고 학교에서도 인기가 많은 학생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웃는 얼굴 뒤에는 폭식증(Bulimia Nervosa)으로 인해 모든 걸 잃어버린 삶이 숨어 있었다.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는 폭식증 당사자 제시(21)씨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는 폭식증 당사자 제시(23)씨(c)Intervention TV 프로그램 화면 갈무리

'폭식증'이라는 일종의 식이장애인 병명을 떠올렸을 때 사람들은 매우 비만인 상태의 당사자들을 연상할 것이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신경성 폭식증은 밖으로 드러난 증상이 거의 없다. 환자들은 은밀히 폭식과 그에 따른 제거 행동(구토)을 하며, 보통 정상 체중을 보이기 때문이다.

신경성 식욕부진증(거식증)과는 달리 부모와 친구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그러므로 치료도 환자 자신이 문제를 느끼지 않는 한 여러 해 동안 지연된다. 환자는 대개 자신의 식습관을 통제할 수 없다고 느끼면 병원을 찾는다. 하지만 그 단계까지 가면 이미 몸이 망가질 대로 망가진 상태가 되어 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폭식증 환자는 폭식으로 급성위확장, 천공 및 위파열을 유발할 수 있고 반복적인 자발성 구토는 치아의 부식, 식도염 및 식도 파열을 일으킬 수 있다. 이뇨제, 또는 설사를 유발하는 약물 사용 등은 체내 전해질 불균형, 저칼륨혈증(hypokalemia)을 초래할 수 있다

제시 씨 역시 아무도 모르게 수년 간을 가족과 친구에게 폭식증을 감추고 살아왔다. 하지만 그녀의 방에서 부모님이 30파운드(약 14kg)의 구토물 봉투를 발견하면서 병을 들키게 됐다. 그 전까지는 그녀가 왜 기숙사에서 강제퇴거를 당했고 결국 대학으로부터 퇴학을 당하게 되었는지 의문만을 가지고 있던 상황이었다.

"제가 폭식을 하게 된 건 고등학교 3학년 때 할로윈 파티 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제가 받은 사탕뿐만 아니라 친구들 것도 모조리 먹어치웠죠. 엄마가 만드신 스파게티를 한 없이 먹었고 브라우니도 보이는 족족 다 먹었으니까요. '너무 많이 먹고 있는 게 아닌가?' 라고 스스로 인지했지만 멈출 수가 없었어요."

폭식을 당연시 여기게 하는 먹방(c)유투버 쯔앙의 영상 갈무리
폭식을 당연시 여기게 하는 먹방 (c)유투버 쯔앙의 영상 화면 갈무리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 오레곤 대학교에 입학한 제시 씨는 기숙사에 들어간 지 한 달만에 70명이 6주에 걸쳐서 먹을 음식을 다 먹고야 말았다. 하지만 이때는 처음 폭식만 했던 경우와는 달랐다. 자신만의 방법을 터득한 것이다.

한없이 먹고 또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방법, 먹고 토하기(binging and purging) 속임수를 써왔다. 기숙사의 냉장고 안이 텅텅 비자 학교는 CCTV로 제시 씨가 음식을 가지고 방으로 가는 것을 확인했고 그 길로 기숙사에서 퇴거 명령을 내렸다. 또 부모님은 2개월 과정의 식이장애 전문 재활시설의 프로그램도 참가하게 했다.

시설에 있는 동안에는 규칙을 잘 지켜서 상태가 호전되는 듯 보였으나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더 큰 식욕을 느끼고 이전보다 더 많은 양의 음식을 먹고 토하기를 반복했다. 가족들의 음식까지 다 먹는 그녀의 식탐을 감당하지 못하던 부모님은 고민 끝에 집에서 내쫓을 수밖에 없었다. 가슴 아픈 결정이었지만 너무나 많은 돈이 들어서 가정이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제시 씨는 학교에서도 퇴학을 당한 상태로 지금은 친구의 집 차고에 얹혀사는 신세가 됐다. 매일 자신의 왕성한 식욕 때문에 물건을 훔치기도 하고 가족들의 귀중품을 몰래 팔아 그 돈으로 먹을 것을 사서 폭식과 구토를 무제한으로 반복하고 있다. 단순한 다이어트로 치부하기에는 폭식증은 너무나 큰 결과를 초래하는 심각한 정신질환임이 분명하다.

통제가 안되는 식욕을 가지고 사는 폭식증 환자 제시(c)Intervention TV 프로그램 화면 갈무리
통제가 안되는 식욕을 가지고 사는 폭식증 환자 제시 씨 (c)Intervention TV 프로그램 화면 갈무리

여기서 언급되는 식이장애로서의 '폭식'이란 아주 빠른 속도로, 충동적이고 통제할 수 없이 많은 양의 음식을 한꺼번에 1~2시간 동안 먹는 것을 말한다. 폭식 후에는 죄책감, 후회, 자기 멸시감이 느껴지며 이어서 제거 행동으로 나타난다. 통제할 수 없는 감정을 해결하기 위해 심한 다이어트에 돌입하고, 이런 다이어트는 다시 폭식으로 이어진다.

폭식증은 최근 몇 년간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으며 거식증보다 더 빈번하게 발생하고 주로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일 가능성이 90% 이상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10〜20대 여성의 0.7〜0.8%가 폭식증을 앓고 있으며 10% 정도가 폭식증에 걸릴 수 있는 고위험군인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폭식증은 거식증보다 발병률이 높으며 일상적으로 다이어트를 하는 경우 발생할 수 있다. 정상인의 62.4%가 폭식 경험을 보고 하였으며 여고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3.7%가 중증 폭식증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우리나라의 여학생들은 어릴 때부터 TV에 나오는 날씬한 여자 연예인들을 동경하면서 폭식증에 걸리는 경우가 매우 많다. 외모지상주의 시대의 인기 연예인들은 키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저체중인 경우가 대다수여서 청소년기의 학생들에게 부정적인 자극이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또다른 트리거(trigger, 발병 요인)를 살펴보자면 앞서 언급한 제시 씨의 경우, 청소년기에 학업 스트레스 등 심한 불안장애를 겪어왔으며 항상 체중에 대한 걱정을 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부모님은 그녀의 불안장애를 그저 '사춘기'여서 누구나 겪는 과정이라 생각하면서 치료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제시 씨는 어린 시절 매일 밤 악몽을 꾸고 얼굴에는 틱장애가 오고 죽을 것만 같은 공황 상태를 여러 번 반복했다. 하지만 부모님은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증상 또한 나이가 들수록 잦아들었기 때문에 정신과의 문을 두드릴 생각도 못하고 모두 방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훗날 식이장애로 발전해 그녀의 인생을 송두리째 앗아갈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이렇듯 폭식증은 전조 증상을 치료해 예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이미 폭식증이 발병한 환자라면 다른 정신질환들처럼 병식을 키워나가며 치료에 전념해야 한다.

폭식증은 병원등 전문 기관에서 체계적인 치료를 받아야 하는 정신 질환이다(c)eatingdisorder.la
폭식증은 병원등 전문 기관에서 체계적인 치료를 받아야 하는 정신질환이다. (c)eatingdisorder.la

폭식증의 치료에서 약물 투여의 효과를 보고한 임상 보고는 많지 않다. 폭식증 환자에게 선택적 세로토닌재흡수억제제제(SSRI)와 '트라이시클릭' 항우울제가 효과적이었다는 일부의 보고는 있었으나 인지행동치료가 더 효과적이라는 주장이 많다.

인지행동치료는 체중과 자기가치에 관한 잘못된 인지를 수정하는 데 초점을 두며, 섭식일기, 심리교육 및 과제를 통해 폭식증을 치료한다. 폭식증을 유발하는 상황,감정, 사람 혹은 사건을 구체화하며 자신의 신체상, 체중 및 영양에 대한 비합리적 신념을 인지적으로 재구조화하고 환자가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때 건설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규칙적인 식사시간을 정하고 부적절한 섭식행동의 대체 행동을 마련해야 한다. 폭식증 환자가 식사 직후 예전의 병적인 습관으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도울 수 있도록 환자의 가족들 역시 교육을 한다.

폭식증은 환자와 거의 매일 같이 식사를 하는 가족들의 도움이 절실한 병이다(c)eatingdisorderfamily.com
폭식증은 환자와 거의 매일 같이 식사를 하는 가족들의 도움이 절실한 병이다. (c)eatingdisorderfamily.com

구체적으로 인지행동치료에서는 '환자가 스스로 뚱뚱하다고 느끼게 하고 토할 필요가 있다고 느끼게 하는 원인'을 적어 본 후, 뚱뚱함에 대한 환자 및 타인의 정의가 무엇인지 토론하며 청소년기에 체중이 증가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점을 주지시켜야 된다. 이때 구토에 대한 환자의 잘못된 생각을 토론을 통해 수정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비만치료 전문 정신과 의사 유은정 원장은 "폭식증은 의지가 약해서 생기는 병이 아닌 일종의 정신질환으로, 폭식증 치료의 궁극적 목표는 '자존감을 완성시키는 것'"이라며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폭식증은 다시 찾아올 수 있으니 전문가와의 체계적인 치료를 통해 폭식증을 극복해나가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심각한 폭식증으로 시달려온 제시 씨의 영상들이다. (영상은 3파트로 나뉘어져 있다.)

이 TV프로그램은 중독자(마약, 술, 음식 등)들을 돕는 미국의 장수 프로그램인 'Intervention'이라는 리얼리티 방송이다. 리얼리티 영상인 만큼 실제 상황이 가감없이 연출이 돼 시청할 때 다소 불편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수 있으니 비위가 약하신 분들에게는 부분적인 시청을 권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마인드포스트>에서 한글 자막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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