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승연의 서평] 장애학, 정신장애인의 다른 세계를 상상할 수 있게 하는 힘
[송승연의 서평] 장애학, 정신장애인의 다른 세계를 상상할 수 있게 하는 힘
  • 송승연
  • 승인 2020.01.31 18:4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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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학의 도전’(2019, 김도현, 오월의 봄)
김도현, 장애학의 도전, 오월의 봄, 2019
김도현, 장애학의 도전, 오월의 봄, 2019

최근 정신장애인 당사자운동 진영에서 새로운 이슈로 떠오르는 것은 ‘매드 스터디(Mad Studies, 광기학 혹은 매드학)’이다. 이 새로운 분야는 정신장애인에 대한 수많은 정책과 서비스가 구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억압과 차별을 경험하고 있음에 대한 당사자들의 문제제기에서 비롯됐다.

그리고 매드 스터디의 기저에는 명백하게 장애학(Disability Studies)이 존재한다. 가령 최초의 매드 스터디 코스가 장애학 관련 전공(라이어슨대학 장애학스쿨, 요크대학 비판적장애학대학원 등)에서 시작했다는 것에서 장애학과의 관련성이 증명된다.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활동가인 김도현은 지속적으로 현장에서 활동하며 2009년 ‘장애학 함께 읽기’를 출판하고 국내에서 선도적으로 장애학을 연구했다. 저자의 오랜 내공이 쌓인 ‘장애학의 도전’(2019)을 통해 정신장애인, 그리고 비장애인에게도 어떤 함의를 던져주는지 한번 살펴보기로 하자.

매드 스터디 (c) Mad Studies
매드 스터디 (c) Mad Studies

장애학과 사회적 모델, 그리고 정신장애인

장애학은 ‘장애’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에서부터 시작된다. ‘장애(disability)’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본래적 함의는 ‘무언가를 할 수 없음’이다. 저자는 여기에서 질문을 던진다. 그렇다면 무언가 할 수 없음으로서의 장애의 원인은 무엇인가?

가령 주류적 관점인 국제장애분류기준(ICIDH)은 무언가 할 수 없게 되는 ‘원인’을 해당 개인의 신체적 정신적 속성인 ‘손상’에 귀착시킨다(63쪽).

장애학의 첫 번째 도전은 여기서 비롯된다. 이를 위해 저자는 하나의 예를 제시한다. 가령 여전히 존재하는 ‘인종차별’의 경우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그 누구도 그 차별과 억압이 ‘피부색’에서 비롯된다고 말하긴 어려울 것이다.

이처럼 일정한 손상을 지닌 사람들이 무언가를 할 수 없게 되는 원인 또한 손상이 아니라 바로 ‘차별과 억압’이라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장애인은 “장애인이기 때문에 차별받는 것이 아니라, 차별받기 때문에 장애인(75쪽)”이 되며, 결국 장애학은 장애인이 무언가를 할 수 없도록 만드는 ‘사회’를 다루고, ‘사회적’ 존재로서의 장애인을 다룬다.

이것이 바로 ‘사회적’이라는 단어가 장애학의 키워드 중 하나인 이유라고 저자는 설명한다(34쪽).

김도현, 장애학의 도전, 오월의 봄, 2019
김도현, 장애학의 도전, 오월의 봄, 2019

이를 정신장애인 측면에서 보면 어떨까?

주류적 관점인 의료모델에서 보면 정신장애의 원인은 ‘정신질환(일종의 손상 개념)'에 있으며, 보다 구체적으로 그 손상은 뇌에 위치하고 있다고 간주될 수 있다. 이럴 때 정신장애인이 경험하는 다양한 제약, 차별, 억압 등은 ‘사회’가 아니라, 그 손상(질환)으로 인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해결책은 손상을 제거하기 위한 개입이 될 수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사회적 모델에서 정신장애인을 바라보면, 정신장애인의 억압과 차별은 개인의 신체적 혹은 생물학적 손상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장애인을 수용하지 못하는 ‘광범위한 사회적 장벽’으로 인해 야기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2006년 유엔 CRPD(장애인권리협약)에 의해 기존의 의료적 관점의 정신질환자가 아닌 사회적 모델 관점의 심리사회적 장애인(the Person with Psychosocial Disability)으로 정의된 후 정신장애인에게 있어서도 ‘손상’그리고 ‘장애’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 중에 있다.

장애학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정신적 손상 때문에 사회적 참여에서 제약을 경험하는 것인가? 아니면 당신의 손상 여부와 상관없이 당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에서 장애가 발생하는 것인가?

정신장애인 정체성과 장애학

“장애인들의 경우 서비스를 제공받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다른 집단과 다른 사회적 관계(285쪽)”를 형성하기 때문에 정체성,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진행되는 당사자운동은 더욱 중요하다 할 수 있다.

저자는 정체성 정치의 효용을 부정하지 않지만 과도한 정체성 정치에 대해선 우려를 표현한다. 가령 “공동의 실천을 위한 주체와 단위의 경계들을 ‘메시지’가 아닌 ‘메신저’에 의해 선험적으로 결정해버리는 우를 범한다. 또한 모든 인간은 다중적 정체성을 지니는데도, 어떤 인간을 장애인이라는 하나의 정체성으로 환원하는 것이 바로 장애인차별주의”(283쪽)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고민은 어쩌면 비장애인으로서 당사자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저자(본인 또한 마찬가지)의 입장이 반영된 것일 수도 있다.

이를 위해 김도현은 낸시 프레이저의 이론을 차용하여 장애운동에서의 정체성에 대한 대안을 모색한다. 예를 들어 낸시 프레이저의 ‘분배와 인정’이라는 프레임으로 바라보면, ‘분배’ 차원에서는 ‘일할 수 있는 몸’과 ‘일할 수 없는 몸’이 구별됨으로서 ‘장애인’이라는 범주가 발생했고 ‘인정’ 차원에서는 ‘정상성’과 ‘비장애중심주의(ableism)’와 같은 문화적 인정질서에서 ‘장애인’이 구분될 수 있다(212쪽).

따라서 저자는 “장애 정치에 요구되는 정의론 역시 당연히 사회적 생성주의 모델이 집중하는 경제적 분배와 사회적 구성주의 모델이 집중하는 문화적 인정 양자를 비환원론적인 방식으로 결합한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215쪽).

하지만 김도현은 동시에 프레이저의 정체성 물화 비판에 동의하면서 ‘비-정체성 중심적 정치’에도 주의를 가져야 한다고 제시한다. 가령 “정체성은 ‘해체’의 대상이 아니라 ‘횡단’의 장이 되어야 하며, 정체성 정치 역시 ‘배제’되기보다는 변증법적 의미에서 ‘지양’되어야 한다”(298쪽)는 것이다.

김도현, 장애학의 도전, 오월의 봄, 2019
김도현, 장애학의 도전, 오월의 봄, 2019

정신장애인 운동 또한 이러한 부분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가령 외국의 경우 당사자운동은 60년의 긴 시간 동안 많은 토론과 의견이 제시되면서 담론이 형성됐다. 예를 들어 반정신의학운동은 1960년대 시작되었으며, 당사자운동은 1970년대 본격화됐고, 매드 프라이드는 1993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최초로 개최된 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국내의 정신장애인 당사자운동은 불과 10년 사이 압축적으로 당사자운동(소비자/생존자/정신장애인 등)에서 매드 프라이드까지 나아갔다. ‘장애학의 도전’은 이 빠른 변화들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본질적 측면들에 대해 고민할 거리를 던져주며, 새로운 시도를 모색해볼 아이디어를 제공해준다.

​​제1회 매드프라이드 마르코 까발로 (c) 임대륜​
​​제1회 매드프라이드 마르코 까발로 (c) 임대륜​

가령 래든(Radden, 2012)은 낸시 프레이저의 두 가지 정의 패러다임인 분배와 인정을 활용하여, 정신장애인이 ‘분배’ 측면에서는 자원과 기회에서 배제되고, ‘인정’ 측면에서 억압되고 낙인화된 정체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이해관계에 놓여있다고 지적한다.

정신장애인은 특히 ‘인정’ 측면을 세심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신장애인 당사자활동가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지배적인 정신과적 주류 담론에 도전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재정의하고 재구성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왔다.

김도현이 앞서 지적한 ‘정상성’과 ‘비장애 중심주의(ableism)' -정신장애인 영역에서는 이를 차용한 Sanism(정상중심주의, 정신장애인차별주의) 개념이 있다-는 정신장애인에게 더욱 중요할 수 있으며, 이는 단순히 ‘정신질환자’에서 ‘매드 프라이드’ 혹은 ‘생존자’로 이름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어려움(혹은 광기)’이 해석되는 방식의 모든 측면을 재개념화하는 것인데 이는 필연적으로 우리 사회에 깊이 내재된 문화적 규범과 근본적인 가치관 등을 들여다보게 한다.

하나의 예로서 ‘정상이 되는 것은 무엇이고, 인간이 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우리의 기본적인 관점을 바꾸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 이처럼 낸시 프레이저의 사회정의 이론 등은 우리에게 이론적, 철학적으로 다양한 발판을 제공해줄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자기결정권, 자립, 그리고 장애학

커뮤니티케어가 진행되고, 탈원화(탈시설화)가 주요한 사회적 어젠다로 부상하면서, ‘자립’과 ‘자기결정권’은 익숙한 개념이 되었다. 특히 장애인의 경우 ‘의존적인 존재’라는 낙인과 억압을 받아왔기 때문에 ‘자립’은 더욱 중요한 가치로 대두되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자립’을 위해선 ‘의존’이라는 개념을 타파해야 한다는 인식이 기저에 깔려 있는 현상에 대해 지적하며, 자립/의존 이분법의 해체 필요성을 제기한다. 그리고 “이렇게 자립/의존이라는 이분법을 넘어설 때 드러나는 새로운 가치가 바로 ‘함께 어울려 섬’, 즉 연립(interdependence)”일 것이라 제안한다(329쪽).

이는 정신장애인에게도 많은 함의를 준다. 시설이나 병원에서 나온 후 지역사회에 ‘내던져진’ 상태로 사는 것은 ‘자립’이 아니라 어쩌면 또 다른 ‘배제’, 더 나아가 보이지 않는 ‘사회적 고립’일 수 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 '커뮤니티케어 추진방향'(2018.6.7) 붙임자료 갈무리
보건복지부 '커뮤니티케어 추진방향'(2018.6.7) 붙임자료 갈무리

또한 저자는 자기결정권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특히 발달장애인, 정신장애인과 같은 정신적 장애인의 경우 자기결정에 관한 ‘능력’은 첨예한 주제다. 가령 어떤 당사자가 자신이나 타자에게 해를 끼치는 경우, 자기결정 능력에 대해 논쟁은 가열될 수밖에 없다.

물론 자기결정 능력을 단순하게 정의하긴 어렵다. 가령 자해의 경우 진정한 자발적 선택일지, 아니면 자기의사표현의 대체물일지, 아니면 구조적 차별과 억압에 의한 사회적 타살일지 어떤 관점에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김도현은 발달장애인의 자기결정능력이 낮을 수 있다는 점까지 부정할 수는 없지만 “능력과 권리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며, 권리는 능력의 여부와 상관없이 ‘보장’될 때에만 온전히 권리일 수 있다(341쪽)”고 강조한다. 즉 우리는 어쩌면 자기결정‘권’을 자기결정‘능력’으로 오독하고 있을 수 있다.

저자는 ‘자기결정’을 행사하는데 있어 장애인/비장애인이든 어떤 ‘소통과 조율’의 과정은 자연스레 거쳐야하는 과정이며, ‘능력’이 부족하다는(혹은 결핍되어 있다는) 이유로, 이 과정이 ‘힘들다’는 이유로 당사자를 배제하게 되면 “해당 주체는 자기결정의 과정을 경험할 수 없게 되어 자기결정 능력도 점점 더 낮아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349쪽).

이를 위해 김도현은 ‘진술조력인제도’와 같은 지원 체계가 일상생활의 다양한 영역에서 사회서비스로 제공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를 정신장애인에게 비추어보면 어떨까? 가령 급성기의 경우 정신장애인의 자기결정‘능력’이 낮아질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권리의 일종인 ‘자기결정권’의 보장을 부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정신장애인 또한 일상생활(특히 입퇴원 등과 같은 치료에서의 결정 과정)에서 하나의 온전한 권리로서 자기결정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권익옹호서비스(절차보조인 혹은 동료지원가 등)의 구축이 필요할 수 있다.

장애학은 주체, 그리고 관점을 장애인 당사자에서부터 시작한다

장애학, 그리고 광기학과 같은 새로운 운동의 핵심은 단순할 수 있다. 당사자의 말을 듣고, 그들의 관점에서 장애(정신적 고통, 광기와 관련된 모든 현상 등)를 바라보는 것이다. 이처럼 장애학은 ‘객관성’을 거부한다.

저자는 객관성이라는 것은 ‘누구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으며, “우리 사회에서 객관적․중립적이라고 이야기되는 것 대부분이 실상은 권력을 가진 자들의 객관성․중립성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장애학은 그 객관성에 따르지 않고 편파적이고 당파적임을 당당히 선언하고 연구를 수행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한다(43쪽).

만약 당신이 나를 도우러 여기에 오셨다면, 당신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여기에 온 이유가 당신의 해방이 나의 해방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라면, 그렇다면 함께 일해 봅시다.

멕시코 치아파스의 어느 원주민 여성

장애학의 핵심이 담겨 있다고 생각되는 책에 실린 글귀이다. 가령 영화 ‘55 Steps’에서 강제입원 중이었던 당사자 엘레노어 리즈는 이렇게 외친다. "여기 있는 사람 모두 절 도와주려 하죠. 그래서 저는 도움이 필요해요!"

이처럼 어떤 ‘도움’을 위한 진지한 고민과 노력을 무시할 순 없지만, 동시에 도움을 주려는 행위는 누군가에게 ‘또 다른 억압’이 될 수도 있다. 저자 또한 “에바다 투쟁을 통해 장애인운동과 접속하기 전까지 장애인을 타자화해 바라보았고, 그들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마음으로 특수교육과에 진학했던 무지한 비장애인에 지나지 않았다(29쪽)”고 자신의 경험을 고백한다.

장애학은 어쩌면 그 틈에서 비롯됐을 수 있다. 도움이 아닌 억압에서의 ‘해방’을 향한 그 간절한 외침에서 말이다. 저자는 장애학은 텍스트를 생산하는 학문으로서뿐만 아니라, 장애라는 ‘현상’을 구조화하는 세계의 배치를 변화시킬 수 있는 실천지향적 성격이 본질이라고 강조한다(38쪽).

이처럼 ‘장애학의 도전’은 관점, 주체가 당사자에서부터 시작되는 ‘해방의 실천’에 동참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측면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송승연 활동가
송승연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박사
정신건강사회복지사로 현장에 있었으며, 비당사자 활동가로 근무
현재 정신장애인 권익옹호 관련 연구 및 강의를 하고 있으며, 정신장애인 당사자가 주체적 운동세력으로 확장되어야만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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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혜경 2020-02-04 21:58:47
서평 감사합니다
책을 꼭 한번 읽어봐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