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조울러의 비밀이야기 제3탄] 정신장애인의 결혼생활 들여다보기(1)
[프로조울러의 비밀이야기 제3탄] 정신장애인의 결혼생활 들여다보기(1)
  • 앨리슨 기자
  • 승인 2020.02.10 19:1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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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는 어떤 성격이에요?"

"저는 군 생활을 오래해서 웬만한 거엔 놀라지 않아요. 차분하고 침착한 성격이죠."

이상하게 들릴 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의 이 한마디에 내 마음을 이미 모두 빼앗겨버린 느낌이었다.

그 당시에는 지금보다 더 모든 일에 호들갑 떨고 까탈스러우며 예민하고 작은 일에도 놀라는, 소위 유리 멘탈인 나에게 남자친구의 성격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차분하고 묵직한 성격의 이 사람 옆에서는, 혹은 이 사람의 품 안에서라면 굴곡 많던 내 인생도 '평탄'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기다리던 나의 인연이 아닐까하고 무척이나 설레었다.

그간 너무나 안정되지 않았던 삶을 살아온 나에게는 이 사람과의 미래가 따뜻하게만 느껴졌다. 그 무렵 나는 내 삶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했던 나의 감정 기복에 지쳐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와 같은 유학생들과 이민자들은 공감하시겠지만 미국이나 호주 등 외국에서 살다보면, 거긴 한국보다 병원도 많지 않고 메디케어 보험이 있어도 너무나 비싸다. 또 내가 아무리 난다 긴다한 영어 전공자라 해도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심리상담이 잘 될 리가 있을까.

심각한 한인 유학생들의 정신질환(c)뉴욕차일드센터
우울증이 심각한 한인 유학생들의 정신질환 (c)뉴욕차일드센터

특히 조울증 환우인 나에게 죽음은 항상 내 주위를 맴도는 가까운 존재였기에 '자살이나 사고사로 타지에서 죽으면 어쩌나'하는 두려움에 떨면서 살아왔다.

거기선 시신으로 한국에 돌아올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 현지에 연고 없는 사람은 그저 화장 당해서 한국땅으로 돌아오게 된다.

미국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가장 많이 하는 민족 한인들(c)한국일보애틀란타
미국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가장 많이 하는 민족 한인들 (c)한국일보애틀란타

그래서인지 인천행 비행기에서 "저희 비행기는 약 40분 뒤에 인천국제공항에 착륙하겠습니다"라는 멘트가 나오고 비행기가 한국 영공에 들어오면 착륙하기 전이라도 가슴을 쓸어 내리며 "휴, 살아서 돌아왔다. 살아서 엄마를 만날 수 있겠구나. 하느님 감사합니다"라는 감사기도가 절로 나오게 되는 순간들이 있었다.

무탈하게 한국땅을 밟게 되는 것도 참 행운으로 느껴졌다(c)Koreanairpics
무탈하게 한국땅을 밟게 되는 것도 참 행운으로 느껴졌다. (c)Koreanair

그렇다. 그러니 이제 더 이상 '치열하게' 살고 싶지 않았다. 조울증과의 싸움도 내가 주도권을 잡고 싶었고 그 당시로 치면 10년의 병력이니 이제는 좀 조용히 내 병 다스리면서 남들 하는 대로 살면서 사람 구실하며 평범하게 살고 싶은 게 소원이었다.

(c)글맛그림캘리그레피
더 이상 치열하지 않아도 괜찮은 인생을 원했다. (c)글맛그림캘리그레피

바로 그 때, 이 사람을 만났던 것이다. 나의 20대의 끝자락에 만났다.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강사 일을 하고 있을 때 우연한 기회로 이 사람과 인연이 닿았다.

요즘 사람과는 드물게 스킨십도 조심스럽게 하고 나를 배려하는 많은 행동들에서 나는 조금씩 마음을 열어갔다. 조금씩이라는 표현은 사실 그리 적절치는 않은 것 같다. 아무것도 안 보일 정도로 푹 빠졌기 때문이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조증이나 울증도 아닌 나는 목표도 뚜렷하고 열정적이며 뭐 하나에 빠지면 끝장을 봐야 하는 성격이었다.

하지만 그와의 사이가 가까워질수록 나의 두려움도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불안감에도 몹시 시달려야 했다. '언젠가, 언젠가 해야지'하며 미뤄왔던 아주 큰 산을 하나 넘어야 했다. 바로 '내 병'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줘야 했다.

나는 억울했다. 나는 분명 좋은 사람이고 착하게 살아왔는데 조울증을 가지고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모든 걸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이 원망스러웠다.

나를 떠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감당할 수 없을 거라고도 생각했다. 그래서 떠날 거라면 서로가 더욱더 상처받기 전에 나에게서 아주 멀리 멀리 도망가라고 말하려 했다. 더욱더 매정하게 굴어서 나에게서, 이 끔찍한 병에게서 멀어지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만난 지 백일 정도 되었을 때 정말 어렵게 이야기를 꺼냈다. 커밍아웃하는 건 언제나 힘들다. 그 상대가 친구든 사랑하는 사람이든 간에.

"나는 조울증 환우이고 그 중에서 우울증이 많은 제2형이고 약물 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또한 "TV에서 나오는 자해도 겪었으며 정신과에서 죽을 때까지 관리를 받으며 살아가야 한다"고도 말했다. "정신장애인에 대해 편견이 있다면 더 사이가 깊어지기 전에 말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매일 취침 전 갖가지 정신과 약을 복용해야 하는 중증 조울증 당사자인 나에 대해 고백해야 하는 일은 힘겨웠다. 사진=기자의 실제 처방전 사진
매일 취침 전 갖가지 정신과 약을 복용해야 하는 중증 조울증 당사자인 나에 대해 고백해야 하는 일은 힘겨웠다. 사진=기자의 실제 처방전 사진

 

그 당시 남편은 조울증에 대한 정보나 병식이 전혀 없었다. 그저 단순히 감정 기복이 심한 우울증의 한 종류 정도라 생각했다. 남편은 "내가 더 사랑해주면 낫겠지" 하면서 나의 힘겨운 고백을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것이 훗날 칼날처럼 날카로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거라곤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나는 가장 큰 산을 넘었다고 생각했고 결혼 전에 모든 걸 이야기했다는 사실에 홀가분하게 그와의 미래를 약속했다.

많은 당사자 분들이 병에 대해 털어놓는 것을 겁내고 심지어는 끝까지 감추려고 하는 것을 줄곧 봐 왔다. 같은 당사자로서 그 마음이 충분히 공감이 간다. 하지만 그냥 가볍게 만나는 남녀 친구 사이라면 상관 없을 테지만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는 진지한 관계라면, 상대가 그 병에 대해 고찰해 보고 당사자 자신과의 만남에 대해 선택할 수 있는 시간과 옵션을 줘야 한다.

이것은 비단 정신과적 질환만이 아니다. 당뇨나 암, 고지혈증과도 같은 질병 또한 결혼 전에 고지를 해주는 것이 상대에게 예의이지 않는가.

그 후 나는 그에게 더욱 마음을 열었다. 나이가 결혼 적령기여서가 아니라, 우리가 서로 사랑하기에 결혼을 결심했고, 평범한 연애 기간을 거쳐서 아주 가까운 가족, 친지, 친구만 참석한 작은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작지만 예쁜 성당에서 결혼을 했던 우리 부부(c)기자 실제웨딩사진
작지만 예쁜 성당에서 결혼을 했던 우리 부부. 사진=기자 실제웨딩사진

그리곤 2~3년 신혼생활을 겪으며 나도 남들하는 거 평범히 하고 살아왔다. 사람들 만나는 거 극도로 힘들어하는 나지만 사람 구실해보겠다고 시댁에도 도리를 다하려 노력했다. 또 내 아이 구김없는 성격 만들어주려고 육아에 전념하기도 했다. 푼수처럼 옆집 애엄마들하고 어울려 수다도 떨고 말이다.

하지만... 결혼한 지 3년째, '악몽'처럼 재발을 했다. 그 '트리거(trigger)'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복잡한 이유들이 많이 있어서 하나를 콕 집어서 말할 수는 없어도 '외로움'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가뜩이나 스트레스에 취약한 내게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나를 엄청나게 괴롭혔다.

남편은 한 달에 보름을 외국에서 지내는 일을 하고 있다.

그는 일반적인 회사원과는 차원이 다른 스케줄을 소화해야 하고 시차가 이틀 간격으로 바뀔 때도 있다. 24시간, 36시간 이상을 깨어있어야 할 때도, 잠이 오지 않아도 다음 출장을 위해 일부러 억지로 자야할 때도 있다. 하루종일 며칠을 연속으로 쉴 때도 있고 7박8일, 14박15일을 출장을 나갈 때도 있다.

신혼 초에는 다들 깨가 쏟아진다는 데 우리는 여러 가지 이유로 신혼이 그리 신혼답지 않았다. 결혼하자마자 바로 아이가 생겨서 기쁨도 있었지만 갓난아기를 어찌할 줄 몰랐던 서툰 엄마였던 나는 남편의 잦은 부재 때문에 더 힘들기도 했다.

그러면서 나의 조울증 사이클과 겹쳐지면서 재발을 했던 것이다. 조울증은 배우자를 무척이나 힘들게 만드는 악명 높은 병이다. 바로 조증의 증상들 때문이다. 일단 씀씀이가 커지면서 가정에 금전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리고 일명 '쌈닭'이 되어서 사소한 일에도 신경질내고 다투기가 일쑤기 때문이다.

아이가 같이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부부싸움을 했던 조증삽화의 나 (c)vectorstock
아이가 같이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부부싸움을 했던 조증삽화의 나 (c)vectorstock

나는 친정 엄마와도 갈등이 생겼고 그리 필요하지도 않는 물건들을 왕창 사들였다. 또 남편이 하는 모든 것들이 나에 대한 비난으로 느껴졌다.

그러니 당연히 부부싸움을 심하게 했고 그런 현실이 답답하고 벗어나고 싶어서 밤중에 정처없이 방황하기도 했다. 그러면 위험하다는 사실도 나를 막지 못했다. 

딸아이에겐 아직도 정말 미안하지만 당시엔 자식도 눈에 보이지 않았다. 그저 내 감정에 취해서 밖으로 돌아다니려고만 했고 내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이 세상을 구해야만 할 것 같았고 내게 그런 능력이 실제로 있다고 확신했다. 자식을 돌보는 것보다 더 큰 뜻이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말도 안 되는 망상에 빠져있었던 것이다.

많은 조증 환자들이 조증 때는 극도의 행복감과 희열(euphoria)을 느낀다고 한다지만 나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심장이 빨리 뛰고 호흡도 가빠졌다. 최악인 것은 견딜 수 없는 극도의 예민함이었다.

예민한 사람들은 툭 치기만 해도 화를 감추지 못한다. 그러니 항상 조급했다. 카페에 가서 커피 한 잔을 시킬 때도 그곳의 종업원을 닦달했다. 빨리 좀 만들라고 하면서 말이다. 재발하기 전의 평소의 나라면 예의 바르고 민폐 끼치지 않으려 노력했건만 조증은 한 사람의 성격을 완전히 바꿔 놓는다. 

나는 지금도 조증이 극도로 두렵다. 조증이 주는 가짜 행복감 따위는 느끼고 싶지 않다. 조증은 나를 괴물로 만든다.

내가 방황하는 동안 그 무렵 남편은 지쳐가고 있었고 '우리의 결혼 생활'이라는 책의 마지막 장을 쓰려하고 있었다. 나는 딸아이와 남편까지 모든 걸 잃게 될 위기에 놓이고야 말았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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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혜경 2020-02-11 08:46:08
잘 읽었어요. 도움이 많이 되요.
저도 조울증이 있고 남편과 세 아이가 있어요.
다음편을 얼른 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