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의 곽한나의 시] 하루일과 / 지금 이대로 / 습관
[당사자의 곽한나의 시] 하루일과 / 지금 이대로 / 습관
  • 마인드포스트 편집부
  • 승인 2020.02.05 18: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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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포스트'는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창작활동을 증진하고자 당사자의 시선이 담긴 문학작품(시, 소설, 수필)을 있는 그대로 싣습니다. 가끔 문법에 맞지 않는 표현이 나올 수도 있지만 있는 그대로의 당사자의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 가감없이 내용을 싣습니다. 이를 통해 독자들이 당사자의 세계를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하루일과 (c) debt.org
하루일과 (c) debt.org

하루일과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아무 일 없는 것 같은데

어쩐지 불편하다

 

매일 듣는 음악소리

멀리 산속 나무숲에서 떨어지는 이슬방울 소리

촉각을 곤두세우고

오늘도 또 머리 쥐어짜며

 

더우면 선풍기 틀고

추우면 창문 꼬옥 닫고

그것보다

배고파도 굶고

졸리면 이불 뒤집어

쓰고 자는

그것도 아닌

시간 되기 전에 일어나 정리정돈 하고

더러워지기 전에 깨끗이 씻고

돈 없으면 벌 궁리하는 것이

차라리

나한테 어울리지 않을까

 

달력 날짜에 동그라미 메모하고

시계의 분, 초에 잘 길들여진

나의 목표는

같은 하루하루를 계속 평행하게

유지하기

항구함을 잃지 않는 삶이다

Robert Suermondt, Moon, 2016. 35x35cm. oil on canvas. (c) Robert Suermondt
Robert Suermondt, Moon, 2016. 35x35cm. oil on canvas. (c) Robert Suermondt

지금 이대로

 

눈 감고도 그릇 깨뜨리지 않기

밤길 넘어지지 않기

점자책 한눈에 들어오기

또 너의 진실한 마음 훔쳐볼 줄 알기

 

오늘 바로 지금

왜 무엇 때문에

좋아도 쉿! 해야 하고

싫으면 잠깐! 살펴봐야 하고

옮게 깊게 넓게

살아야 하는지 알기

 

나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것도

한 번 두드려보고 돌아보기

당신을 위해서도 배려할 줄 알기

 

잠 욕심, 밥 욕심, 돈 욕심 모두

내어주기

어려운 것들 내어줄 줄 알기

쉽게 내려놓을 수 있도록

잘 익숙해지도록

나 자신을 적당히 다스릴 줄 알기

그렇다고 마음 아파하지 말기

 

그리고 후회하지 말기

마지막으로 감사할 줄 알기

Daniel Arsham, Telephone (Future Relic FR-05), 2016. Plaster and broken glass. (c) Daniel Arsham
Daniel Arsham, Telephone (Future Relic FR-05), 2016. Plaster and broken glass. (c) Daniel Arsham

습관

 

전화속 너의 속삭임은

두 눈을 감을 수 없다

긴 밤이

기다림이었구나

뒤척거리는 이불의 사각거림에

날밤 새던 이유가

널 향한 그리움이었구나

 

너와 헤어지고 나서

자꾸 기다림, 그리움이

한밤중마다

습관으로 젖어들고

 

너의 목소리에 이젠

밤에 못잤던 피곤도 가시고

 

명절 후의 인사에서

건강히 잘 지낸다는 너의

안부를 듣고

전화기를 내려놓으며

 

네가 옛날처럼

곁에 있듯 행복을 느끼며

네가 떠날 수 밖에 없던

그 이유들, 그 수수께끼가

너의 전화 속 목소리에 쉽게 풀린다

 

 

곽한나 님은...

정신요양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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