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수 “청소년 자해문화는 자기 고통을 함께 해 줄 사람이 없다는 걸 의미해요”
김현수 “청소년 자해문화는 자기 고통을 함께 해 줄 사람이 없다는 걸 의미해요”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0.02.05 1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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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 성장학교별 교장 겸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인터뷰
소년원생들 상담하면서 ‘빈곤이 죄를 만든다’고 깨달아
부모와의 분리보다 지나친 밀착이 아이를 병들게 해
부모가 자식에게 ‘너 때문에 산다’는 말은 폭력적
부모가 아이를 통해 자신의 꿈을 이루려는 욕망이 불행 만들어
정서적으로 차갑고 체면 중시하는 부모가 ‘헛똑똑이 부모증후군’
부모 요구로 성공해도 자식은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하게 돼
문제 행동 일으키는 아이의 속마음은 ‘도와달라’는 요청 담겨 있어
내 방식만 고집하는 게 ‘꼰대’...아랫세대와 협력하고 대화해야
능력주의와 일등주의에 매몰되면 인간의 존엄성 훼손당해
성장학교별은 학생의 민주적 참여와 협력을 기반으로 작동
자기결정권은 자기가 주체임을 인정해주는 권리
프레네 교육철학의 핵심은 ‘자유’와 ‘자발성’...한국서도 실천하고 싶어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아버지는 사업가였지만 성공보다는 실패를 더 많이 했다. 아버지 사업의 흥망(興亡)에 따라 초등학교때부터 대학까지 가족은 스무 차례 이상의 이사를 다녀야 했다. 너무 일찍 알아버린 생의 비루함.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그는 가족과 떨어져 자취생활을 하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가 다시 집을 나갔다. 집은 그에게 생존과 악다구니의 영토였다. 반복된 떠남과 돌아옴 역시 그에게 상처가 됐다.

중앙대 의대에 들어간 후 그는 총학생회 기획부장을 하며 학생운동에 깊이 빠졌다. 사회적 빈곤이 만들어내는 모순의 한 풍경을 그는 학생운동을 통해 깨닫게 된다. 이후 대학 졸업 때까지 전공 선택을 고민하다가 인문학적인 사유와 밀접하다고 생각되는 정신과를 택했다.

1992년 공중보건의로 처음 부임한 곳은 경북 김천소년교도소였다. 아이들에게 정신과적 상담을 하면서 문제가 된 그 아이들 중 유복한 집안의 아이는 한 명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이들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먹을 것 없는 청소년기를 방황했고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자신의 삶을 하찮게 생각하고 있었다. 자기 존중감이 없는 아이들이 어른이 된 이후에도 자신을 학대하리라는 건 너무나 쉽게 추정할 수 있었다.

그는 생각했다. 가난이 죄를 만든다고. 그 사유는 대학시절 사회적 불평등의 구조적 모순을 깨달았던 세계와 너무 흡사하게 닮아 있었다. 가난은 다시 가난을 만든다. 이 악순환의 고리가 끊기지 않는 이상 가진 자와 없는 자의 전선은 더 강화된다고. 그것은 더 나아가 사회를 불안하게 만드는 핵심 기제가 된다는 것을. 그 고리를 끊는 것은 교육에서 시작돼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래서 정규 교육시스템에서 배제된 청소년들을 모아 함께하는 교육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2002년 성장학교별(구 치유학교별)을 처음 개교했다. 당시 학생은 4명에 불과했다. 이후 학생수는 급격히 늘어났다. 그렇지만 공식적 학력이 인정되지 않는 한계가 있었다. 이 아이들에게 학력 인정을 부여하고 싶었다.

교장 이름으로 된 건물이 있거나 법인으로 건물이 있으면 학력을 인정해준다는 조건이 있었다. 그는 2004년 봉천동 인근에 반지하 포함한 3층짜리 건물을 샀다. 하지만 지역주민들은 문제아들로 구성된 학교로 오해받는 대안학교의 개교를 반대했다. 은행 대출까지 받으면서 만든 학교였다.

하지만 주민들의 반대는 심했고 그는 일 년 후 그곳을 정리한다. 빚만 5억 원이었다. 이후 원래의 성장학교별(봉천역 위치)로 돌아왔고 학생 수가 늘어나면서 지금은 6층짜리 그 건물의 1층을 제외한 나머지 층을 모두 학교로 만들었다.

14세에서 19세 아이들이 교육받는 이 성장학교별은 학생들과 선생님이 협력해서 교육 커리큘럼을 만든다. 학생은 시간표와 과목을 선택할 수 있으며 물론 담임선생님까지 선택할 수 있다.

이 선택의 기저에 흐르는 철학은 자기결정권이다. 이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가 자신의 삶은 온전하게 존중받고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철학적 담론이다. 자기결정을 해 본 이들은 어떤 문제에 부딪히면 피하지 않고 결정을 한다. 그것은 비주체이거나 타자의 소외가 아니라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삶의 주인 의식과 맥락을 같이 한다.

이 성장학교별을 만든 김현수(55)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이 학교의 교장선생님이다. 그는 프랑스 교육철학자 피레네의 철학을 ‘자유’와 ‘자발성’으로 규정했다. 그의 교육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교육자가 바로 피레네였다.

그는 한국에서 이 교육철학을 완성해보고 싶었다. 그 과정에서 학교의 민주주의적 변화와 작동이야말로 대안적 교육의 핵심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 그리고 그 길을 쭉 걸어왔다. 한때 5억 원에 달했던 대출금 빚도 1억5천만 원으로 조금씩 줄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삶이란 그렇게 조금씩 흔들리면서 걸어가는 먼 길이다.

김 교수는 무엇보다 학생들에게 민주주의를 가르치고 싶었다. 민주주의만 제대로 작동해도 정규 학교가 안고 있는 학교폭력의 문제, 집단따돌림 등 부정적 현상들을 줄일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현재 김 교수가 서울시자살예방센터장으로 일하고 있는 대림동 센터를 찾은 날은 4일 오후. 센터 건물로 들어설 때 하늘에서는 눈발이 떨어지고 있었다.

김현수 성장학교별 교장선생님 (c)마인드포스트.

-의사로서 첫 근무지가 김천소년교도원이었습니다. 이곳으로 간 이유가 뭘까요.

“그때 청년의사 편집국장이어서 서울에서 활동을 해야 했어요. (일을 병행해야 해서) 교통이 편한 곳을 정했는데 그때 경상북도에서 제가 갈 수 있는 도시가 김천 거기밖에 없었어요.

거기 지원해서 갔는데 소년교도소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그때 알게 됐죠. 제가 총학생회 기획부장으로 학생운동을 하면서 한 해를 쉬었거든요. 졸업하자마자 김천으로 갔어요.”

-그때 그곳에서 깨달은 게 ‘빈곤이 죄를 만든다’였습니다. 그 소년원생들은 가난하고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아이들이었습니다. 가난이 가지는 사회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사회변혁도 필요하다고 깨달은 겁니까.

“빈곤이 삶에 미치는 심리적이고 사회적 영향은 굉장히 크다고 생각했죠. 그때 빈곤에 관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강하게 갖고 있었어요.

(소년교도소의) 저에게 개인진료를 받으러 오는 아이의 개인기록을 참고해보면 전부라고는 할 수는 없지만 부잣집이라고 할 만한 아이는 한 명도 없었어요. 굉장히 어려운 과정 속에 있는 아이들이었어요. 빈곤이 죄를 더 무겁게 한다는 생각도 들고 동시에 빈곤 자체가 사람에게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을 강력하게 했죠.”

-정신분석가 마이클 아이건은 ‘아이는 부모의 종교가 되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부모는 아이를 숭배하고 아이는 기적을 만들어야 합니다. 어떻게 기적을 만듭니까. 숨이 턱 막힙니다.

“(웃음) 우리나라는 부모가 아이를 분리시키기보다 (부모와 자녀가) 밀착돼서 자기가 이루지 못한 인생의 꿈을 자녀를 통해서 이루고자 하는 욕망이 너무나 크죠. 그래서 아이를 잘 모시고 숭배해서 자기가 못 이뤘던 꿈을 이룰 수 있는 존재로 키우게 되죠. 그러다보니 아이가 마치 자신의 종교처럼 되고 과도하게 밀착해요. 심리적·정신적으로 투자를 하는 거죠.”

-아이는 어떤 기적을 만들어야 합니까.

“부모를 기쁘게 하는 기적을 만들어야죠.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는 게 아니라 부모가 원하는 것을 이루는 그런 기적을 만들어야 하죠.”

-선생님 유튜브 강의 ‘우리 아이의 진짜 고민을 알고 계신가요’를 들은 학부모가 댓글을 남겼어요. ‘너 때문에 산다...가히 폭력적이다’라고. 왜 이 소망이 그토록 문제가 되는 걸까요.

“부모들에게 왜 사냐고 물어보면 너(자식) 때문에 산다고 하죠. 그럼 아이는 자기 삶도 버거운데 부모의 삶까지 자신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하니까 힘들어 하는 거죠.

거꾸로 부모는 자기가 원하는 걸 스스로 이루는 게 아니라 자식을 통해서 이루려고 하는 모순이 발생해요. 아이들의 ‘나의 장래 희망은 재벌 2세’라고 하는데 이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아요. 내가 열심히 사는 게 아니라 아버지가 열심히 살아서 재벌이 돼야 내가 재벌 2세가 된다는 우스갯소리인 거죠.

부모들도 내가 행복해지려면 내가 열심히 살아서는 안 되고 자식인 네가 엄마 아빠를 기쁘게 해줘야 행복하다고 해요. 이는 부모와 자식이 너무 밀착돼서 분리가 일어나지 않을 경우 이렇게 돼요.

자신의 행복을 자기가 추구하는 게 아니라 자식을 통해서 추구하게 되니까 아이는 힘들고 부모는 (원하는 걸) 자식이 이룰 수 없을 때 원망이 커지는 거죠. 우리가 삶을 스스로 찾고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자꾸 자식이나 부모를 통해서 행복을 얻으려고 하니까 살기가 힘들어지는 거죠.”

-‘헛똑똑이 부모증후군’의 특징으로 정서적 차가움, 엄격한 도덕성, 지나친 체면의식을 꼽았습니다. 이는 부유하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부모의 자아상 같습니다.

“진료를 하다가 어떤 아이가 ‘우리 부모는 헛똑똑이다’라고 말하기도 해요. 부모도 애한테 한다고 했는데 아무 효과가 없었다고 말하는 걸 보면서 헛똑똑이라는 개념을 알게 됐어요. 그런 부모들의 공통점을 찾아보니까 그렇더라고요.

자녀와 부모가 안정된 관계를 맺어서 자녀를 도와주기 보다는 그냥 부모는 교회 가서 기도하고 본인이 요구하는 것만 애한테 강력히 주장해요. 아이와 안정적이고 정서적인 애착을 통해서 하는 게 아니라 아이와 동떨어져서 노력하는 그런 부모들 그룹이 있어서 정서적 차가움, 부모의 체면 등을 이야기했죠.”

김현수 성장학교별 교장선생님 (c)마인드포스트

-가난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부모보다 헛똑똑이 부모가 차라리 낫지 않을까요.

“둘 다 좋지는 않죠. 직접적인 학대를 하는 부모보다는 좀 낫겠지만 둘 다 힘들 것 같아요(웃음)”

-‘더 잘해봐’ 증후군 부모가 되기보다 ‘지금도 괜찮아’라고 말하는 부모가 되라고 조언했습니다. 자식이 더 잘 살고 행복해지기 위해 ‘더 잘하라’고 요청하는 게 왜 그렇게 잘못된 겁니까.

“더 잘해봐 증후군이 가지는 문제점은 세 가지인데 첫 번째는 역량을 뛰어넘어서 너무 기대가 커요. 자식에 대한 기대가 멈추지 않기 때문에 자녀가 힘들어하는 거죠. 두 번째는 그만할 줄 알고, 이 정도는 괜찮다고 만족해야 하는데 부모도 아이도 더 잘해야 된다는 생각에 시달리면 만족이나 긍정을 가질 수 없게 돼요.

부모 욕구로 성공했지만 그게 나중에 생각해보면 내가 스스로 원해서 한 게 아니라 부모의 욕망이 가장 큰 동기였다면 성취하고도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많이 갖는 거 같아요.”

-부모는 자식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명제가 무의미하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이 명제는 어떤 모순과 오류를 포함하는 걸까요.

“무조건적인 사랑을 의지로 선택해서 할 때 중요한 건 대가를 바라지 않는 거거든요. 나도 자유롭고 자식도 자유롭게 해줘야죠. 부모의 희생이 자녀에게 대가를 바라거나 조건을 바라면 부모와 자식은 볼모나 노예처럼 둘 다 옭아매는 거죠. 그건 자유가 아니죠.

전 희생보다는 헌신이 개념적으로 더 좋다고 생각해요. 나는 너를 위해 헌신했고 헌신하는 동안 기쁘고 행복했다. 그것으로 나는 충분하다고 느껴야죠. 희생이 지나치게 자식을 옭아매면 자식의 자유를 빼앗아 버려요. 자식의 자유를 보장하는 방식의 부모자녀 관계가 필요해요.”

-헌신은 어떤 대가를 바라는 게 아니다 그런 겁니까.

“헌신은 상대방에게 어떤 대가를 바라지 않고 주는 데에 초점을 맞추는 거죠.”

-아이의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부모도 자존감을 높여야 한다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자존감을 높일 수 있습니까. 어떤 부모는 재봉틀에서 옷 만들면서 자존감을 높인다고 하더군요.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자신에 대해 긍정하는 것이라고 봐요. 과대한 기대를 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걸 연습하면 자존감이 높아지겠죠. 세상이 정한 기준이나 시대의 유행, 남과 비교하는 문화로부터 자유로워지지 않으면 자존감을 얻기가 힘들어요.

부모도 자기 삶의 자랑스러움이나 삶에의 진정성으로 자존감을 만들어야지 자녀가 잘 되는 게 내 자존감이라고 말하면 안 되죠. 그렇게 말하니까 부모도 힘들고 자녀도 힘들어지는 거죠.”

-도벽(盜癖)을 저지른 아이에게 잘못을 지적하는 건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그 아이의 비관습적 세계를 이해해야 하면 역발상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역발상은 뭡니까.

“옳고 그런 걸 따져서 상을 주고 벌을 주는 것으로 사람이 고쳐지는 건 아니에요. 아이의 도벽도 여러 요인이 있어요. 양심이 발달되지 않아서 도벽을 하고 이를 개인적 이득을 위해 쓰는 사람도 있고 인기를 얻기 위해서 도벽을 한다는 아이도 있어요. 살기 위해서 도벽하는 아이도 있고요.

(고아원 같은) 시설에 사는 제가 아는 아이는 자기 소지품 안에 도벽한 물건들을 쓰지도 않고 다 모아두고 있었어요. 이유를 물으니까 자기가 여기서 쫓겨나서 다른 데로 가게 되면 그때 그 돈을 쓸 생각이었다고 말해요. 생존형의 도벽이구나 생각했죠.

아이가 규범을 어겼는데 처벌을 하지 말자고 하는 뜻은 아니에요. 다만 그 아이를 정말로 이해하고 도와주려면 왜 그렇게 했는지, 그 아이에게 어떤 일이 있었길래 그런 행동을 했는지를 알아보는 게 중요해요. 그래야 진정으로 도와줄 수 있어요. 아이가 그게 옳지 않은 행위임을 알고 있음에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사안이 뭐냐. 그건 트라우마와 관련이 많아요. 그 아이의 트라우마를 이해하고 고려해서 도움을 줄 때 도벽을 멈출 수 있어요.”

-그 상황을 이해하게 되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습니까.

“예를 들어서 그 아이가 다른 시설로 옮겨갈 경우 불안해서 도벽으로 돈을 비축하고 있다면 우선 안심을 시켜야죠. 딴 데로 가게 되더라도 이렇게 저렇게 할 테니까 네가 미리 계획해서 준비할 필요가 없다고 하면 도벽을 안 할 수 있죠.

어떤 아이는 시설에 사는데 인기를 얻으려고 돈을 훔쳐서 아이들에게 떡볶이를 사줬어요. 그럼 그 아이에게 다른 방법을 통해 인기를 얻는 법을 도와주면 아이가 도벽으로 떡볶이를 사 주지는 않겠죠. 우리가 현상에 치중해서 현상에 따른 단죄를 하거나 규칙을 적용하는 것만큼 아이를 이해하고 도움을 주는 것도 필요해요.”

김현수 성장학교별 교장선생님 (c)마인드포스트.

-학교폭력이 심해지는 게 아이들이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밑바탕에 있다고 했습니다. 이 인정욕구는 인간이라면 누구든 갖고 있지 않습니까. 부정적 인정과 긍정적 인정으로 나누고 싶은데요.

“아이들은 크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나 의지하는 사람에게 인정과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게 자연스러운 욕구인 거 같아요. 그런데 부모님도 바쁘고 확대가족도 해체되면서 자기에게 관심과 인정을 줄 어른들이 확실하게 줄어들었어요.

그러다보니 그 인정을 학교 가서 선생님에게 바라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그 과정에서 아이들의 갈등과 경쟁이 더 생기죠. 선생님에게 긍정적인 관심을 끌려고 하지만 안 되는 경우에는 부정적으로 관심을 끌려고 하죠. 그 부정적 행위도 속으로는 좀 도와달라는 메시지라는 걸 제가 많이 느꼈어요.

그러니까 부정적으로 관심을 끈다고 해서 그걸 혼내라는 게 아니라 지금 그 아이가 부정적인 방식이긴 하지만 할 말이 있고 도와달라는 뜻이구나 하고 어른들이 생각해 줘야죠.”

-나쁜 교사와 치료사는 바꿀 수 있지만 나쁜 부모는 바꿀 수 없다는 데 주목하자고 하셨는데요.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가 개과천선할 가능성이 없다면 아이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합니까.

“담임선생님은 일 년에 한 번 바뀌죠. 한 선생님에게 상처를 받았는데 다음 학기의 선생님은 좋은 선생님이 올 수도 있어요. 우리가 초·중·고 공교육 12년을 하면서 선생님이라는 군상을 다양하게 겪을 수 있지만 부모는 그렇지 않잖아요.

나쁜 부모가 상처를 줬을 때 아빠를 바꿀 수 없으니까 상처를 회복할 기회가 없어요. 나쁜 부모가 미치는 영향은 교사보다 훨씬 크죠. 또 새로운 경험을 할 기회가 적어지는 거니까 나쁜 부모가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는 걸 강조하려고 그렇게 말한 겁니다.”

-아이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합니까.

“너무 품위를 잃지 않고 상처를 갖고 사는 게 중요하다는 표현이 있는데 멋지게 표현해서 ‘비상품(비록 상처는 받았지만 품위는 잃지 말고 살자)’이라고 해요. 부모가 준 상처는 마음에 오래 남기도 하죠. 그렇지만 삶의 리질리언스(resilience·회복탄력성)가 있어요. 커가면서 좋은 어른을 만나고 영향을 받으면 부정적 상처들이 본인의 삶을 압도하지는 않겠죠.”

-청소년들의 자해문화를 우리 '꼰대'들은 어떻게 이해하고 접근해야 할까요.

“2018년에 굉장히 자해가 많이 늘어났는데 청소년들이 더 정서적으로 어려워진 거 같아요. 실제로 청소년들의 우울증이나 스트레스 경험 표를 보면 줄어들지 않고 계속 조금씩 늘어나는 편이에요. 정서적으로 힘들다는 거죠.

반면에 청소년들의 문제를 해결해주겠다는 어른이나 부모의 영향력이 커져야 하는데 커지지 못한 상태예요. 자해라는 건 자기에게 해를 입히는 거잖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렇게 생각해요. 자기 고통을 어떤 사람과 해결하기보다 스스로 처리한다고.

자해문화의 확산의 이면에서 우리가 알아야 될 현실은 청소년들하고 함께 해 주는 사람들이 지금 별로 없다는 거예요. 청소년들이 자기 문제를 어른과 무관하게 혼자 처리하겠다고 선언한 상태거든요. 어른들이 정신 차리고 청소년들과 함께 하려는 노력을 더 많이 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요즘 아이들이 달라진 이유는 가족 구조가 바뀌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모든 문제를 여기에만 집중시킬 경우 오류가 발생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죠. 사실은 가족도 바뀌고 동네도 바뀌고 단골이라는 개념이 없어졌죠. 음식점, 가게, 문방구 다 없어졌어요. 정부에서 마을을 살려야 된다고 하는데 이건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거든요. 아이들도 자기를 알고 있는 어른이 많아져야 사회가 안전하다고 느끼는데 전부 낯선 사람들의 틈에서 크니까 힘들잖아요.

가족도 문제지만 지역사회도 문제예요. 대기업과 상업적 프랜차이즈로 인해 동네에 구멍가게도 없어지고 마트도 없어지고 문방구도 없어지고 책방도 업어지고 과거에 아이들이 즐겨 다니던 곳이 다 없어졌죠. 제과점도 군소 제과점 다 망하고 파리바게트, 뚜레주르만 있어요.

이런 과정에서 아이를 품어줄 지역사회도 사라지고 있어요. 저는 지금 한국이 과도기 상태에 놓여있다고 봅니다. 가족과 지역사회가 사라지면 다른 나라는 사회적 경제나 마을활동을 통해 지역사회를 재건하거나 재상하는데 우리는 개인화되고 상업화되면서 지역사회 재건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거든요. 고향이나 마을이 사라지면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더 어려워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프랑스 교육운동가 프레네는 어른들이 항상 옳은 건 아니라고 했습니다. 어른이 일부 잘못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삶의 지혜와 지침을 알려주는 것 또한 어른의 몫이 아닐까요.

“그렇죠. 프레네가 말했던 어른은 항상 옳지 않다는 건 ‘항상’이 붙은 말이잖아요. 그 말은 어른들이 열린 마음으로 아이들의 의견을 들어야 된다는 뜻이죠. 또 어른이 되면서 현실을 빙자해서 진실하지 않은 행위를 할 수 있는데 아이들의 진실과 정직을 어른들이 들어야 된다.

예를 들면 세계기후가 위기라는 건 어른들 다 알잖아요. 하지만 그것을 위해 행동을 하자는 건 16살짜리 스웨덴 소녀 그레타 툰베리잖아요. 그런 것처럼 어른들이 알고 있지만 때로는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결정하지 못하거나 회피하는 문제에 대해 어린이들이 정직하고 진실하게 주장할 때가 있어요. 그걸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하죠.”

-영국 정신과 의사 도널드 위니캇은 ‘사랑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증오도 다룰 줄 알게 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고 치료자의 역할’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증오를 다룬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습니다.

“부모와 자녀 사이가 좋을 때도 있지만 자녀가 대들고 엄마는 나쁜 엄마라면서 싫어할 때가 있겠죠. 이때 엄마는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아이들이 보고 배운단 말이에요.

그럴 때 같이 미워할 거냐, 아니면 엄마도 클 때 너처럼 엄마가 정말 싫었을 때가 있다. 그때 엄마는 이렇게 해줬고 엄마가 싫어지는 감정을 잘 받아들이고 논쟁도 했다고 하면 아이도 배우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누군가가 싫어질 때 어떻게 하는 게 좋은지 부모가 가르쳐줄 필요가 있어요. 애들은 자녀가 말을 안 들을 때 어떻게 하는지 아빠의 모습을 보면서 배운다는 뜻이죠.”

김현수 성장학교별 교장선생님 (c)마인드포스트.

-선생님은 경향신문 칼럼에서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어른들이 10대를 향한 진정한 사과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도 힘든 우리 꼰대들이 왜 우리 삶과 관련 없는 청소년들에게 사과를 해야 합니까.

“어른들의 의무는 자녀세대나 후손이 더 잘 살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거죠. 그런데 자녀와 후세대가 더 불행한 일을 겪게 한 거에 관해서는 앞 세대와 어른의 책임이 있다고 봐요. 어른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청소년들에게 배려해주지 못한 것에 대해 어른들의 반성이 필요하다는 의미에서 사과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먹고 살기도 힘든 꼰대들이 무엇을 그렇게 잘못한 걸까요. 모든 것을 기성세대의 문제로만 접근하는 건 자칫 청소년기가 가지는 반항을 무조건 관용해야 한다는 논리로 빠질 수 있지 않습니까.

“꼰대라는 게 자기 경험을 강조하고 자기 경험이 옳다고 주장할 때 꼰대가 되는 거 같아요. 저는 어른이 가져야 할 책임 중의 하나가 아이들 돌보는 거라고 말하고 싶어요. 청소년들을 좋은 길로 안내하는 거죠. 그건 세월이 지나도 변치 않아요.

그런데 아이들에게 내가 걸었던 길만 좋은 길이라고 우기면 꼰대가 되는 거죠. 아이들이 이 시대에는 이런 길이 맞다고 하면 귀기울여 들어주고 너희들 시대는 우리 시대와 달라서 그런 길이 맞을 수도 있겠구나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어야죠. 그렇게 안 하고 내 방식대로만 해야 한다고 하면 애들이 따르지도 않을뿐더러 본인도 힘들고 애들도 힘들어지는 거죠.

어른들이 개방적 태도를 갖고 지금 시대에 맞춰 어떻게 하는 게 좋은가를 아랫세대와 함께 연구해야죠. 그게 구세대와 신세대가 조화를 이루고 통합될 수 있는 기회에요. 사실 어른이 되면 점차 변하기 힘드니까 자꾸 내 방식대로 하려고 해요.

내가 하자는 대로만 하자 이렇게 돼서 갈등이 더 커지는 거 같아요. 어린 세대의 주장을 잘 들어주고 거기에 지혜를 보태는 것. 그런 태도로 지내려고 애쓰면 꼰대가 안 될 수는 없지만 꼰대가 덜 될 수는 있죠(웃음).”

-지금 교육 현장에서 필요한 건 사회적 돌봄이라고 했습니다. 이 돌봄은 가르치는 것과 다릅니다. 돌봄의 정의를 뭔가요.

“성적을 올린다든가 공부를 더 잘하게 만들겠다라는 마음도 필요해요. 하지만 오늘 마음 상태가 어떤지, 공부할 수 있는 상태인지를 살피는 게 돌봄이거든요. 학교에서도 그렇고, 지역사회에서도 그렇고 청소년 시기에 열심히 배워야 하는 건 틀림없는 사실인데 열심히 배울 수 있는 상태인지 배우려는 마음은 편안한지 아이가 상처를 받은 것을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도 같이 봐 줘야 돼요. 이게 돌봄이죠.

지금 아동·청소년들의 정신건강에서 이슈가 뭐냐면 돌봄의 방임이나 학대예요. 방임과 학대로 인한 트라우마는 과거보다 아이들이 많이 경험하고 있는 시기이기 때문에 더 돌봄이 강조돼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나라의 학교폭력 해결은 가해자 처벌로 끝나고 피해자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은 무시되고 있다. 상처가 치유되지 못한 피해자는 후에 부정적 형태로 발현된다고 했는데 어떤 부정적 일들이 발생하게 됩니까.

“학교폭력이나 왕따(집단따돌림)를 행정적으로 처리한 이후에 마음의 상처도 싹 사라지면 좋겠는데 사실 그렇지 않거든요. 굉장히 오래 가요. 이 상처가 충분히 치유되지 않으면 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우울증이 생기고 나중에 성격장애와 같은 후유증이 남아요. 피해 학생이 부정적인 후유증에 시달리지 않도록 잘 돌보는 게 중요합니다.”

-기자는 청소년기에 공부도 못했고 친구도 없었습니다. 교수님은 공부도 잘 했고 친구도 많았겠지요. 10대 때 가지는 또래집단과의 우정은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칩니까.

“10대 또래 관계는 부모 다음, 부모만큼으로 중요하잖아요. 어떤 경우에는 부모보다 더 중요하죠. 친구는 정말 중요한 존재인데 연구도 그렇고 개개인의 삶을 봐도 많은 친구가 있다는 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요. 또 친구 사이에 인기가 좋다는 것도 중요한 변수는 아니더라고요.

제일 중요한 건 정말 친한 친구가 있었냐 하는 거예요. 내가 친구가 제일 많다라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정말로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한 명이 있냐, 그게 더 중요해요. 진실로 친한 친구가 있느냐, 그게 없으면 걱정이죠.”

김현수 성장학교별 교장선생님 (c)마인드포스트.

-이 시대의 아이들이 고생하는 건 경쟁사회, 능력사회 때문입니까. 그게 주원인입니까.

“그렇죠. 한국 아이들은 정말 불쌍한 게 너무 잘하냐 못하냐를 생애 초기부터 압박을 받는 거 같아요. 그냥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능력주의)라는 말은 능력이 있고 없고에 따라서 사람의 가치를 평가한다는 거죠.

그 반대는 존재에 대한 거거든요. 존재 자체를 평가해야 한다는 거죠. 또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쓸모의 어떤 순위를 정해요. 한국사회에서 혐오나 차별, 장애 문제에 대한 불편한 인식이 나오는 이유가 바로 능력주의나 쓸모에 대한 감정으로부터 많이 나와요.

그래서 아이들은 생애 초기부터 쓸모 있는 사람이 돼야 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압박을 받아요. 이 압박이 우리가 존재 그 자체로서 인정받고 존중받고 살아야 한다는 가치를 방해해요. 어렸을 때부터 잘해야 하고 그래야 살아남는다는 생각에 시달리니까 삶이 피곤하고 젊은이들이 빨리 무기력에 빠지는 거 같아요. 인정받지 못하면 다 쓸모없다. 능력주의가 결국 일등주의와 연결되는 거 같아요. 일등만 소용 있고 나머지 다 필요 없다는 거.”

-학교에서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실현돼 나가야 할까요.

“굳이 학교가 아니어도 모든 구성원들의 의견이 골고루 반영되고 참여의 기회가 주어지고 소통이 이뤄지고 결과로서 공유되는 민주주의 체계가 돼야죠. 지금은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게 너무 많고 또 배제되고 있잖아요.

학교라는 공간이 민주적으로만 운영돼도 나아질 부분이 굉장히 많아요. 학교를 구성하는 구성원들의 다양한 참여가 보장되고 의견을 제시할 수 있어야 되고 제시된 의견이 또 받아들여지는 절차가 필요하죠. 그런 절차적 참여가 존중만 돼도 (많은 부분이) 좋아져요.

저는 별학교(성장학교별)에서 그걸 많이 느꼈어요. 우리 학교는 따돌림을 당하거나 기존 학교시스템에서 배제된 경험을 한 아이들이 많이 오니까 배제가 아닌 참여를 최대한 많이 보장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별학교에서는 담임선생님도 선택할 수 있고 시간표도 자기가 선택할 수 있고 학교의 규칙도 자기가 제안할 수 있어요. 그렇게 자기가 참여를 통한 주체가 됐을 때 존중받고 삶이 나아지고 자기존중감이 높아지는 거 같아요.”

-비행청소년이든 장애를 가진 청소년이든 자기결정권에서 소외돼 있다고 합니다. 자기결정권이 왜 그토록 중요한 걸까요.

“사람은 자기 자신이 누군지 알아야 하고 자신이 뭘 원하는지 알아야 되고 원하는 것을 자기 책임으로 수행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과정에서 배제되면 자기가 없는 거죠. 주체냐, 주체가 아니냐의 문제인데 주체가 주체로 나서기 위해서는 자기결정권은 필연적인 거죠. 이건 논할 계제가 아니에요.

사실 신체의 자유부터 시작해서 자기결정권 문제가 항상 충돌하는 부분은 한 사람의 자기결정권이 타인의 삶을 침해하느냐 안 하느냐의 문제인 거 같아요. 별학교에서도 자유와 자율에 대한 논쟁이 오랫동안 있었거든요. 자율적으로 하는 것과 자유를 어디까지 보장해 줄 것인가의 문제죠.

어떤 사람들은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을 때까지다. 자율적으로 하는 것은 책임의 범위 안에서다. 자기가 책임지지 못하는 것까지 자기가 자율적으로 해야 된다는 건 아니다라고 얘기를 합니다. 그런 기준이 과도하냐 과도하지 않느냐부터 시작해서 타인들의 관용이 어느 정도냐까지 논란이 됩니다.

제가 프레네 교육을 하면서 프랑스에 갔을 때 놀랐던 건 거기에는 자기표현을 잘하도록 가르치는 선생님이 있대요. 과목이 그런 거예요. 아이들이 자기를 잘 표현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거. 우리는 자기표현을 안 가르칠 뿐만 아니라 너무 그렇게 하면 피곤해 하잖아요.

반면 프랑스는 아이들이 자기를 잘 이해하고 자기를 표현하도록 도움을 주는 과목이 있어요. 자기결정권은 그 사람이 주체라는 것을 인정해주는 중요한 권리라고 생각해요.”

-대안교육은 상처받은 영혼과의 전쟁이고 이 지난한 교육적 싸움은 바로 치료교육이라고 했습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기존 교육은 ‘교실 카스트’죠. 경쟁과 서열이 분명하고 아이들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획일적인 기준으로 상처를 주기 때문에 그 상처로부터 아이들이 치료되는 교육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양성을 존중받아야 되는 거죠.

인간이 갖고 있는 다양한 장점과 개성들이 존중돼야 하는데 우리는 너무 성적 공부로 획일화하고 있어요. 그래서 더 많이 상처받는 거 같아요. 이번에도 입시제도 바꾸면서 사회 전체가 들썩이며 싸웠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의 다양성과 개성을 존중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는 않아요.

획일적으로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과의 싸움은 굉장히 어렵죠. 치유적 교육이 돼야 한다는 뜻은 이미 획일화된 체제에서 상처 받은 우리가 치유받을 필요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선생님은 새로운 교육체계로 일제고사 폐지, 특목고 폐지, 대학 평준화를 요청했습니다. 잘 살고 공부 좀 하는 아이들의 부모는 당연히 반대할 요구사안입니다.

“(웃음) 대안교육을 한다고 할 때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 두 가지 대안이 있는데 하나는 표준화된 시험제도의 폐지였어요. 어떤 사람을 평가하고 또 어떤 기회를 얻을 때 표준화된 시험은 한 사람의 개성과 가치를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는 거죠.

그 다음에 학교의 민주적 운영이거든요. 학교가 중앙정부의 통제를 지나치게 받거나 참여가 보장되지 않으면 구성원의 다양한 의견을 받아들일 수 없어요. 이 두 가지가 대안교육의 기본적 전제예요. 그런 의미에서 한국은 아직도 굉장히 획일적인 사회라고 생각해요. 이 획일적이고 전문가 중심주의, 특정 소수 그룹이 중심이 되는 사회는 변화돼야죠. 그래야 개개인이 행복을 느끼고 존중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는 사회로 바뀔 수 있어요.”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바뀌어 질까요.

“그럼요. 이미 바뀌어진 역사가 있잖아요. 세월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저는 당연히 바뀔 거라고 생각해요.”

김현수 성장학교별 교장선생님(왼쪽)과 박종언 편집국장 (c)마인드포스트.

-성장학교별이 어떻게 발전해 나갔으면 합니까.

“성장학교별에서 가장 중요한 게 교육철학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배우고 공부해 온 프레네 교육철학에 기반해서 아이들이 자유로워졌으면 좋겠어요. 좀 더 나간 단계가 자주적 단계라고 하는데 저희가 바라보는 미래의 발전 모델은 베델의집이나 자주학교와 비슷해요. 그건 학생과 교사 참여자들에 의한 자치거든요.

인간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자유를 잘 활용하고 그 다음 자주적 단계에서 자기가 주인이 돼서 운영하는 학교를 만들고 싶어요. 저희는 프랑스 생나제르 자주고등학교를 모델로 하는데 그곳에는 학생과 교사가 한 팀이 돼서 운영을 해요. 운영 주체도 학생이에요.

그런 모델로 가기 위해서 성장학교별은 학생들에게 권한을 많이 주죠. 권한을 실제 얼마나 나누고 권한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갖고 있느냐, 이게 자유와 자주에 대한 중요한 기준이 되는 거거든요.”

-생나제르 자주고등학교 같은 경우는 프랑스에서도 좀 특이한 학교 형태입니까.

“프랑스에서 특이한 학교죠. 프레네 교육철학을 표방하는 학교는 그렇게 많지 않아요. 거의 없다시피 한데 그게 제일 어려움 문제에요. 아이들은 권한을 사용해 봐야 좋은 권한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된다고 생각해요.

자유를 경험해야 자유를 쓸 수 있고 그 다음은 자주적인 사람. 내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자기가 직접 자주적인 생활을 할 수 있어야죠. 그래서 권한을 나누는 일을 많이 하려고 시도하는데 아직 저부터 포함해서 권한을 나누는 일이 너무 힘들고 어색하고 불안하고 피해의식도 있는데 점차적으로 그런 방향으로 실험을 하려고 합니다.”

인터뷰가 끝났고 김 교수와 인사를 나누고 건물을 나섰다. 눈은 여전히 펄펄 날리고 있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며 왜 기자는 목이 말랐던 것일까. 어쩌면 저 논의의 기저에는 기자가 이루지 못한, 소망했지만 하지 못했던 어떤 젊은 날의 목표들, 아니면 스스로 외로웠다고 생각되는 청소년기를 도가니로 마주했기 때문이었을까. 문득 기자는 뜨겁고 진한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싶었다. 눈 한 점이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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