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조울러의 비밀이야기 제4탄] 정신장애인의 결혼생활 들여다보기(2)
[프로조울러의 비밀이야기 제4탄] 정신장애인의 결혼생활 들여다보기(2)
  • 앨리슨 기자
  • 승인 2020.02.13 20:50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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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에 이어서...

그 무렵 우리 사이는 살얼음판을 걷는 듯 위태로워 보였다. 남편은 나의 조증 삽화에서의 비정상적이고 비상식적인 행동들에 대해, "병 때문이라고 해도 이해가 가지 않고, 병이 아니라고 하면 더더욱 용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나는 그의 단호함에 힘겹게 마음을 접어야 했다. 양가 부모님들을 다 모시고 이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 할 것 같다며 이별을 선언했다.

우리 엄마에겐 내가 당신이 '살아가는 이유'이고 우리 시어머니껜 남편이 당신 '목숨과도 같은 자식'이라고 말씀하시곤 했던 분들이다. 그런 두 분 앞에서 이혼이라는 단어를 꺼낸 우리 둘은 부모님 가슴에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의 대못을 박는 일을 했던 것이다.  

이 일로 인해 그간 그저 마음이 여린 며느리라고 생각하셨던 시부모님 두 분 다 나의 병을 자세히 알게 되셨다.

하지만 두 분은 끝까지 내 편이 돼주셨다. 그간의 나의 착한 성정에 대해 보답을 해주시는 듯 계속해서 남편을 설득해 주셨다.

서로 시간을 가진 후 남편은 끊어질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이어져 있던 나와의 인연의 실을 결국 놓아버리지 않았다. 그는 한 번 더 나와 함께하는 삶에 용기를 냈고 나도 그에게 한 번 더 그가 가장 좋아하던 나의 김치볶음밥을 해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다.

그리고 우리는 시간과 돈과 노력을 다 바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시도해 봤다. 서로에게 바라는 것들과 싫어하는 것들을 종이에 정리해서 써서 잘 보이는 곳에 붙여놓는 작은 것부터 값비싼 부부심리상담도 받아 보았다.

또 성당에서 주최하는 부부클리닉(M.E, Marriage Encounter)에도 가서 며칠씩 교육과 훈련을 받았다. 그곳에서 서로에게 '유서'를 쓰는 시간을 가졌는데, 그 내용을 일부 공개하자면 이렇다.

오빠, 이 글을 읽고 있을 때 쯤이면 나는 좋은 곳으로 가서

오빠를 지켜주고 오빠가 가는 길을 밝혀주고 있을 것 같아.

 

있지...나는 어릴 때 부터 나이 먹는 게 좋았어.

사람들은 한 살이라도 나이 드는 걸 싫어하는데

나는 마음 속으로, 이 아픈 몸으론 살아가기 힘든 세상,

얼른 다 살아내고 하느님 곁으로 가고 싶었어.

그만큼 누구 못지 않게 힘들게 살아온 것 같아.

 

내가 없어도 외국 출장 다녀오면

우리 딸이랑 나가서라도

꼭 한식 챙겨먹고

잠은 예민해지지 않게

 꼭 많이 충분히 자고

힘든일 있으면 속으로 삭히지만 말고

믿을 만한 사람 붙잡고 하소연도 하고 살아...

내가 했던 것들 대신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다시 시작해서 남은 여생 외롭게 살지 말어.

 

그리고 나는 이제 안 아픈 곳으로 가는 거니까,

제 매일 약 안 먹어도 되는 곳으로 가는 거니까...

내 걱정말고.

쓸쓸한 일 있으면 가끔 내게 와서 커피 한잔 하고가.

먼저 가서 미안하고,

사연 많고 아픈 내게 와줘서,

그 모든 순간 함께여서 행복했어.

 당신 참 고마운 사람이야.

안녕.

모든 정신장애인 당사자분들이 희망을 가지고 소중한 가정을 지켜내시길 응원한다.(c)warmheart.net
조울증인 당사자와의 결혼생활을 지켜내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했던 남편. 사진=기자의 부부캠프 워크북

나는 그간 창피해만했던 내 병에 대해서 오픈 된 태도로 자연스레 이야기했다. 더이상 질환에 대해 부끄럽거나 감추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리고 내 병식을 이용해서 그에게 많은 정보를 주기도 했다.

남편 역시 그 후로 참 많이 달라졌다. '조울증'에 관한 책도 찾아서 보고 내가 다니는 병원에 가서 주치의 선생님에게도 상담을 받고 시간이 날 때마다 진료를 볼 때 같이 가주곤 했다.

그리고 내가 먹는 약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줬고 병원에 다녀오면 제일 먼저 하는 질문이 "오늘은 선생님이 뭐라고 하셨어?"라고 물어봐 준다. 진심이 아니면 어떠랴. 억지로 노력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나의 심리적 안정을 걱정해 주는 일은 언제나 따스하다.

지금도 나와 함께 보호자로서의 병식을 키워가는 남편이 '우리의 가정을 살렸다'고 나는 생각한다. 요즘 흔한 말로 '사람은 골라 쓰는 것이지, 고쳐쓰는 게 아니다' 라는 말도 믿지 않는다. 나는 그의 변화를 직접 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걸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나기 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의지가 있느냐'의 문제이며 우리의 가정을 지키려는 남편의 '의지'는 '사랑한다'는 감정을 뛰어넘는 강한 절박함이었던 것 같다.

조울증에서의 잠은 약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을 한다.(c)iamin4
조울증에서의 잠은 약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을 한다. (c)iamin4

조울증은 잠과의 싸움이다. 약을 일정한 시간에 먹는다 할지라도 잠이 드는 시간, 잠을 깨는 시간이 대중이 없다. 어떤 날은 아침 7시에도 일어났다가 어떤 날은 저녁 7시까지도 잔다.

남편이 집에 있는 날에는 되도록이면 일찍 깨어 있으려고 하는데 그마저도 마음대로 되지가 않는다. 그러면 남편은 내가 일찍 일어나면 일어나는 대로, 못 일어나면 그런대로 '그러려니' 하면서 눈감아 준다.

조울증 당사자인 내게 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알고 있는 남편.(c)zeenews
조울증 당사자인 내게 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알고 있는 남편. (c)zeenews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우리는 어느새 벌써 8년차 부부가 됐다. 한 번의 위기가 있었지만 우리 부부는 꿋꿋이 견뎌냈다. 그리고 5년 전의 일 같은 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려고 사력을 다하고 있다.

조금씩 감약을 해나가는 것이 목표이지만 나에게는 내게 쓸 수 있는 약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감사하다. 약이 아예 없는 희귀병도 있으니 말이다.

재발을 하지 않은 5년간에도 나는 크고 작은 자잘한 조증, 울증 삽화를 겪었고 그때마다 남편은 무심한 듯 하면서도 정성껏 나를 돌봐줬다.

누가 부모 자식 관계만 끊을 수 없는 인연이라 하던가. 당사자인 배우자도 당신 삶에서 너무나 크고 중요한 존재일 것이다. 배우자가 조울의 덫에 걸렸다고 바로 그 상황에서 매정하게 떠나버릴 수도 없는 것이 인지상정 아닌가.

서로 서로를 돌봐야하는 존재, 그래서 우리보다 더 연약한 우리 사이의 아이도 같이 잘 키워야 하는 그런 관계. 그게 우리 당사자 가족의 부부생활이 아닐까.

모든 정신장애인 당사자분들이 희망을 가지고 소중한 가정을 지켜내시길 응원한다.(c)warmheart.net
모든 정신장애인 당사자분들이 희망을 가지고 소중한 가정을 지켜내시길 응원한다. (c)warmheart.net

나는 이 글을 남편에게 보여줄 예정이다.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 해주고 싶다.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이 가정을 지켜내기 위해

내 병을 이겨내려  노력하고 있고,

 

이제는 당신을 내가 걱정할 정도로

많이 안정이 되어 이런 부탁도 한다고.

 

"당신도 힘들 때 내게 기대라고."

 

내 병이 당신을 힘들게 하면 주저 말고

이야기 해달라고.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나는 더 강하다고.

당신을 사랑하는 만큼 더 강해질거라고.

힘들게 얻은 이 가정,

꼭 지키면서.

 

지금은 잘 모르지만

언젠가 철이 들어 알게 될

'아픈 엄마', '아침에 못 일어나는 엄마'

의 말 못할 사정을 

우리 아이에게도

내가 사력을 다해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병이 있는 우리 엄마',

하지만 그 병과 끝까지 처절히 싸워 이기는

강한 엄마가 되겠노라고.

 

그걸, 그 모든 걸 위해서

 

나는 당신의 건강과 안녕이 필요하다고.

당신이  언제나처럼 내가 기댈 만한 

굳건한 큰 나무가 되기 위해서는,

 

당신도 때론 당신 자신을 위해 살아달라고.

그건 이기적인 게 아니라 현명한 거라고.

 

무엇보다,

나를 견뎌줘서,

나를 견디는 당신을 견뎌줘서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나 늙어도 당신과 살아보고 싶어. 은빛 머리 곱게 빗어 넘기고 헤이즐럿 보온병에 담아들고 낙엽 밟으러 가야지.(c)warmheart.net
나 늙어도 당신과 살아보고 싶어. 은빛 머리 곱게 빗어 넘기고 헤이즐럿 보온병에 담아들고 낙엽 밟으러 가야지. (c)warmhear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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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소연 2020-02-14 18:54:30
어쩜 이렇게 글을 잘 쓰세요ㅠㅠ
조울증 커뮤니티에 공유해서 읽었어요ㅠㅠ
주옥 같은 감동적인 글 감사드려요ㅠ
희망 주셔서 고맙습니다
5탄 기다릴게요!

최현민 2020-02-14 18:50:15
기자님 글 넘 기다렸던 당사자 독자 입니다.(메일드렸죠^^)
4년을 만난 여자친구가 있는데
여친은 결혼 적령기를 놓쳤는데도
결혼을 결심하기가 용기가 없나봅니다.
제가 재발을 하거나 아이가 유전되면 어떡하냐고
그런데 솔직히 저도 제가 재발을 할 수도 있으니까
딱히 괜찮다고 말을 못해줘요
기자님 글 읽고
용기내어 프로포즈 해보려구요
정신장애인의 결혼생활이 쉽지는 않으셨겠지만
사랑하는 마음으로 극복할수 있을것 같아
큰 희망을 얻고 갑니다
고개숙여 감사드립니다

영진 2020-02-14 18:38:41
드디어!! 4탄 눈빠지게 기다렸습니다ㅠ

김수희 2020-02-14 10:58:59
글을읽고 펑펑 울었어요. 감사합니다ㅠ

권혜경 2020-02-14 08:50:18
너무 감동적입니다.
참 감사합니다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