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아닌 정신장애인 당사자가 치료와 삶의 주인 돼야”
“전문가 아닌 정신장애인 당사자가 치료와 삶의 주인 돼야”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0.02.14 19: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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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대·홋카이도 의료복지대 국제 세미나 개최
일본 히키코모리 집단 고령화…100만 명 넘어서
히키코모리 벗어나려면 일보다 우선 자신을 받아들여야
정신과 위기상황에서 당사자의 주체적 참여 보장돼야
장기적으로 비약물치료 집단이 기능과 회복률 더 높아
오픈 다이얼로그와 당사자연구는 수평적 ‘대화’에 초점

가톨릭대학교와 일본 홋카이도 의료복지대학교가 함께 하는 정신건강복지 국제 세미나가 13일 부천 가톨릭대 김수환관에서 열렸다. 이번 세미나의 주제는 ‘한일 정신건강복지의 쟁점과 대안 프로그램의 모색’이었다.

오쿠다 가오리 홋카이도 의료복지대학교 교수는 일본 히키코모리 현황과 관련해 “히키코모리 연령대가 고령화되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히키코모리에 대한 일본 사회의 정의가 기존에는 6개월 이상 집에만 있을 경우로 좁은 해석을 내렸지만 2006년 재정의가 내려진다.

오쿠다 교수는 “히키코모리의 정의가 6개월 이상 집을 안 나가는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간간히 취미생활을 하거나 편의점에 가는 이들도 준 히키코모로리로 정의하고 있다”며 “기존에는 정신질환의 요인을 배제했지만 지금은 정신질환으로 조금씩 포함해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경우 심리의학 잡지인 ‘사이콜로지 투데이’ 논문이 히키코모리 증상을 정신질환으로 보고 진단명을 내리고 있다.

현재 일본에는 히키코모리로 정의내려진 이들이 100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 또 최근 통계에 따르면 기존 15~30세가 주를 이뤘지만 지금은 40~60대 히키코모리가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80대의 부모가 50대의 히키코모리 자식을 돌봐야 하는 속칭 ‘8050 문제’도 커지고 있다.

오쿠다 교수는 50대 히키코모리가 증가하는 요인으로 “일을 하면서 직장 상사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면 마음의 병을 얻어 일하는 걸 두려워하게 된다”며 “그로 인해 집밖으로 안 나가는 것이 중장년 히키코모리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가족과 부모로부터 이해받지 못하는 부분도 문제다. 오쿠다 교수는 “가족들은 초조해하고 불안해하면서 당사자에게 일을 하라는 식으로 요구한다”며 “부모의 이해를 받지 못하고 더 집에 틀어박히면서 악순환이 계속된다”고 말했다.

오쿠다 교수는 히키코모리 치유의 방법으로 “일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 자기 자신을 받아들여야 한다”며 “자기 자신을 인정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일본의 히키코모리 대응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고용’의 문제다. 고용을 통해 히키코모리의 사회적 문제를 완화하겠다는 정부 정책이다. 그러나 청년층에는 고용 지원이 수월하지만 막상 중장년에게는 어려움이 큰 실정이다.

일본의 교육 역시 문제로 분석됐다. 오쿠다 교수는 “일본은 같이 단체생활하는 사람들과 똑같이 있어야지 튀면 ‘왕따’(집단괴롭힘)를 당하게 된다”며 “이런 가치관이 일본 교육에서 이어져와 학교 안 왕따가 사라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 개인의 개성을 인정하는 것이 왕따와 히키코모리를 없애는 교육의 하나”라고 강조했다.

김대환 청주정신건강센터 시설장은 “우리는 자의입원을 강조하지만 사회적으로는 위험한 이들을 계속 병원에 입원시켜야 하지 않느냐는 사회적 분위기가 여전하다”고 말했다.

김 시설장은 불과 10년 전만 해도 낙관적이었다고 한다. 그는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지역사회 정신보건 사업을 열심히 하면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던 이들이 지역사회로 많이 퇴원할 줄 알았다”며 “그런데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생길수록 오히려 입원 환자 수는 더 늘어났다”고 밝혔다. 왜 그랬을까?

김 시설장은 “이는 지역사회에 있던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이들을 발굴하는 영향도 있었을 것이고 정신건강복지센터를 병원에서 위탁운영하다보니 자기네들 병원에 환자를 유치하는 데 활용했을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일본 베델의집 치료철학을 알기 전까지는 정신장애인의 치료와 삶을 전문가가 이끌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후 베델의집을 접하면서 당사자가 치료와 삶의 주인이 돼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김 시설장은 “당사자 연구를 알기 전에는 당사자가 증상과 병을 이야기하면 약물로 조정하고 입원해서 쉬었다 오라고 했다”며 “이는 당사자의 병과 증상을 듣거나 이야기를 나누려는 자세가 부족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지금도 전문가와 당사자가 대화를 상실하고 있고 약만 잘 먹으면 된다고 생각한다”며 “당사자들은 한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생각할 수 없었다”고 전했다.

그는 지난해 당사자연구를 시작했다. 서울, 충북, 부산, 광주 등 아홉 개 시설 종사자들과 당사자연구를 함께 공부했다. 이후 참여했던 100여 명의 당사자들에게 당사자연구가 좋았던 점을 물었다.

김 시설장은 “당사자 본인이 자신의 병을 주체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한다”며 “자신의 고생을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됐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는 “저를 비롯한 사회복지사들이 당사자의 증상과 병이 그 전에는 무조건 없어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대화를 통한 치료가) 당사자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당사자의 삶을 이해하는 것도 높아졌다”고 말했다.

배진영 가톨릭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박사과정생은 정신건강 복지체계에서 생물학적 모델의 한계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증상을 소거하기 위해 복용한 약물로 인해 또 다른 고통을 받는다”며 “증상 경감 효과도 있지만 다양한 부작용으로 고생하거나 증상이 잔존해 사회복귀가 불가능한 이들도 많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이 같은 생물학적 의료모델은 그 부작용이 축소돼 있고 일부의 경험에 불과한 것으로 취급되고 있다. 반면 그 효과성은 과장돼 정신장애인들에게 강요되고 있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약물을 복용하는 집단과 약물을 중단한 집단을 일정 기간 비교한 추적조사 결과 모두 비약물 집단에서 재발률이 높게 나타났다. 그러나 이는 6개월에서 2년이라는 짧은 기간의 연구라는 한계를 가진다. 그렇다면 장기적인 추적조사는 어떨까.

배씨는 “20년이라는 긴 추적조사를 한 결과 비약물집단의 증상이 좋고 기능도 좋았다”며 “단기간 추적조사에서는 비약물 집단에서 높은 재발률을 보였지만 장기간 추적조사에서는 비약물 집단에서 더 긍정적 효과나 나타났다”고 말했다.

그는 “정신과 약물이 단기적 효과가 있어도 장기적으로는 치료를 방해할 수 있는 결과”라며 “약물 중심으로 이뤄지는 정신장애 치료를 재고하고 더 나은 비약물 치료를 사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배씨는 이 같은 비약물 치료의 대표적 사례로 핀란드 오픈 다이얼로그와 스위스 소테리아하우스, 일본 베델의집 치료 과정을 예로 들었다.

이들 치료모델은 증상에 대응해 무작정 약물로만 접근하는 치료방법에 근본적 문제를 제기하고 증상 발생 시 대화를 통한 비약물 치료에 관점을 두고 있는 치료법들이다. 실제 약물처방이 아닌 당사자가 주체적으로 자기 병을 해석하고 주변 지지 집단의 도움으로 받아 정신과적 위기상황을 넘어설 수 있는 대안적 모델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배씨는 “위기 상황에서 생의학적 모델은 약물이나 입원으로 통제하려 한다”며 “오픈 다이얼로그는 ‘창문이 열리는 시기’, 소테리아 하우스는 정신적 긴장감이 있는 상태로 바라본다”며 “생의학적 모델에서 치료 주체는 의료진에게만 집중되는 반면 대안적 프로그램에서는 당사자를 포함한 다양한 집단이 치료의 주체로 포함된다”고 강조했다.

무카이야치 이쿠요시 홋카이도 의료복지대학교 교수는 일본 베델의집 당사자연구를 통한 비약물 치료의 경험과 가능성에 대해 발표했다.

당사자연구는 대화를 통한 치료를 모색한다는 점에서 핀란드 오픈 다이얼로그 치료모델과 상당히 닮아 있다. 베델의집이 있는 홋카이도 우라카와 마을은 기존에 있던 정신병원을 모두 폐쇄했다.

그는 “이 배경에는 병원이나 전문가에게만 맡기지 않고 치료를 당사자와 동료가 함께 살 수 있다는 발상에서 시작된 것”이라며 “정신병을 가진 당사자의 회복에는 약물도 있지만 본인이 놓인 환경이나 전문가와 가족의 태도, 자신의 영감이 가장 큰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무카이야치 교수는 “핀란드 오픈 다이얼로그나 당사자연구는 대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전문가가 만드는 기준이 아니라 환자 당사자들이 함께 만드는 기준이 세계적 흐름”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당사자연구에서 중요한 것은 인간적으로 만날 수 있어야 하고, 진심이 담긴 말을 해야 하며, 함께 연구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이 발상은 일본 조현병협회나 정신재활협회에서 지지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이 더 좋은 치료를 함께 연구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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