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훈 “정신질환 언론보도 가이드라인 필요...기자들이 잘못된 인식 바로잡아야죠”
김동훈 “정신질환 언론보도 가이드라인 필요...기자들이 잘못된 인식 바로잡아야죠”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0.02.24 18: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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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훈 한국기자협회장 인터뷰
기자들 기사 작성 시 고민 못했던 부분들 교육해야
혐오표현 가이드라인 만들었지만 아직 부족...고민하고 검증해야
정신질환 편견, 언론 책임 커...칼럼·사설 통해 올바른 정보 제공 필요
검·경 브리핑 시 정신질환 적시하지 않는 방법 모색 필요
자살보도준칙 제정 후 자살 보도 조심스러워지고 기사 품질 높아져
바쁜 기자 직업 속성상 정신질환 교육 어려워..대안 찾아야
소수자와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전담취재반 구성 유의미해
기자 덕목은 성실과 진실...약자와 소수자 옹호해야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인간이 인간에 대해 갖는 혐오 의식은 위계서열적이다. 사람의 배설물이나 부패한 음식, 시체 등에 대한 원초적 혐오도 있지만 정신장애인과 같은 비이성성에 대해 사회가 구성하는 혐오도 있다.

그런데 이 혐오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왜 정신장애인은 존재론적으로 혐오와 배제의 대상이 되는 것일까, 아니면 어떤 이데올로기의 조정에 의해 혐오의 존재로 배치되는 것일까.

정신장애인이 사회적 약자이자 정치적 목소리가 없는 3류 시민의 위계질서에 포진해 있다면 이는 누구의 잘못인가. 정신장애인 스스로 그런 하층 계급의 자리로 알아서 내려간 것일까. 그럴 리가 있나. 인간이 존엄하다면 왜 인간인 ‘정신장애인’이 자기 자리를 사회의 하부 계급에 위치하겠는가.

한국 사회에서 정신장애인에 대한 혐오는 깊고 광범위하다. 안타까운 건 이 혐오를 통해 법이 정초된다는 점이다. 법이 있고 난 후 혐오가 생산되는 것이 아니라 혐오가 있었고 이후 법이 그 혐오의 정당성을 재구축하는 것이다.

현재 정신장애인은 의사도, 간호사도, 미용사도, 요리사도 될 수 없고 하다못해 선원(뱃사람)도 될 수 없다. 정신장애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은 그만큼 줄어들어 버린다.

묻고 싶은 것은 왜 정신장애인은 사회적 혐오의 대상으로 늘 기능해 온 것일까이다. 이 혐오 이데올로기를 사회가 구성한 것이라면 그 사회에서 이데올로기를 구성하는 주체는 누구일까.

기자는 그 의심의 대상의 하나로 언론을 주시했다. 우리 국민 10명 중 8명은 미디어를 통해 정신장애인의 폭력성과 위험성을 학습한다는 연구보고도 있다. 그렇다면 언론은 어떻게 작동하는 것일까. 혹시 기자들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원초적인 혐오와 두려움을 정신장애인에 투사하는 건 아닐까. 그들에게 정신장애라는 표상은 어떻게 해석되는 것일까.

기자의 고민은 그랬다. 그래서 의도와는 다르게 혐오와 두려움이라는 기호를 생산하는 언론에 말을 걸고 싶었다. 왜 그런 것인지. 이게 전면적으로 언론만의 문제인지, 아니면 사회 자체가 가지고 있는 타자를 향한 폭력적 배제 때문인지.

김동훈(54) 한국기자협회장을 만난 건 그 같은 고민에 대한 작은 실마리를 찾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김 협회장은 지난해 12월 한국기자협회 선거에서 회장으로 당선됐다. 임기 2년의 초반을 이끌고 있는 그에게 만남을 요청했고 그는 흔쾌히 기자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현재 한국기자협회는 189개의 회원사가 가입해 있다.

김 협회장은 대학 시절 대학 신문사에서 일을 했다. 바이라인(기자 이름)과 함께 활자화되는 글의 세계를 보며 그는 직업적 기자로서의 꿈을 키웠다. 1999년 한겨레신문에 입사해 정당팀, 법조팀, 스포츠 팀장을 역임했다.

김 협회장은 자살보도준칙처럼 정신질환을 다루는 ‘정신질환 언론보도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데 적극 동의했다. 다시 태어나도 기자로 살고 싶다는 그를 만나러 지난 20일 중구 프레스센터 한국기자협회 사무실을 찾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김동훈 한국기자협회장 (c)마인드포스트.

-기자들이 정신장애인 사건사고를 과도하게 내보내는 건 단순히 클릭수 유도 때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동의할 수 없어요. 어떤 사건사고든 간에 언론의 본령에 충실한 기자라면 그걸 클릭수로 활용하는 건 있어서는 안 될 일이죠.”

-사회는 정신질환=조현병=강력범죄로 연결해서 해석합니다.

“그렇게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긴 있겠죠. 그런데 저는 동의할 수 없어요. 흥미 위주, 자극적 보도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고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기자들도 인간인 이상 조현병 등 정신질환에 대해 내면적으로 두려워하는 건 아닐까요.

“솔직히 깊이 생각해보지 못해봤는데요. 제가 사회부 취재기자라면 그런 선입견을 갖지는 않을 거 같아요. 어떤 범죄가 발생하면 동기라는 게 있잖아요.

그 동기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의 동기가 이 분이 그런 (정신적) 병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범죄의 원인이 됐구나. 원래 나쁜 사람이 아니구나. 원한을 가졌던 게 아니구나, 라는 이해의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저라면 선입견을 갖지 않을 거 같아요.

사람이기 때문에 우발적이고 돌발적인 행동에 대해 두려움을 가질 수는 있겠죠. 그런데 그거 때문에 아예 대화를 기피하거나 사람을 멀리 하거나 하면 안 될 거 같아요.”

-경찰이나 검찰이 한 사건을 정신질환자 범죄로 추정해 브리핑을 했을 때 이를 바로 기사화하는 건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국민의 알 권리를 대변하는 상황에서 취재원의 공식 브리핑을 기자 마음대로 삭제하거나 가감할 수는 없거든요. 검찰이나 경찰의 브리핑 멘트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쓸 수밖에 없을 거 같아요. 거기에 대한 해석의 문제지, 팩트 전달의 문제하고는 구별돼야죠.”

-해석의 문제는 무슨 의미입니까.

“(보도 이후) 차후에 기회가 되면 기자수첩이나, 칼럼, 사설을 통해 검찰이나 검찰의 브리핑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겠죠.”

-고혈압을 앓고 있는 50대 남성이 길 가던 행인에게 우산을 휘두르는 것과 조현병을 가진 정신장애인 50대 남성이 역시 행인에게 우산을 휘두르면 협회장님은 어떤 것을 기사로 선택하시겠습니까.

“우산을 휘둘렀다고 하면 두 개 다 기사가 안 된다고 생각해요. 우산 휘두른 정도 가지고는 기사가치가 없죠. 칼을 휘둘렀는데 어린이나 일반 시민이 다쳤다면 기사밸류가 있겠죠. 어린아이가 다쳤다면 더 좀 기사화가 되고요.

심장병이건 조현병이건 우발적인 행동과 질환의 상관관계가 있다고 추정할 수 있잖아요. 그렇다면 저는 두 개 다 기사가 안 되거나, 되거나 똑같이 취급할 거 같아요. 고혈압 환자가 그랬으면 ‘아, 고혈압이 그런 위험한 병이었어’라고 다시 한 번 환기할 수 있는 계기가 되거든요.

고혈압 환자가 우산을 휘둘렀건 칼을 휘둘렀건 그게 질환과 상관관계가 있다면 우리의 상식하고는 다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더 기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국장님의 질문의 의도는 알겠는데 국장님 의도대로 답변을 한다면 문제가 있는 거죠. 고혈압은 기사가 안 되고 조현병은 왜 기사가 되느냐 이런 차원이잖아요. (질문 의도에는) 동의합니다.”

김동훈 한국기자협회장 (c)마인드포스트.

-정신장애와 관련된 사건 보도는 특이성 때문일까. 예를 들어 개가 사람을 물면 기사가 안 되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기사화가 된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아무래도 그렇겠죠. 우리 주변에서 아무래도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분들을 흔히 볼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다 보니 어떤 행위의 정도에 따라 기사가치가 있고 없고가 달라질 수 있고요.

팩트를 전달하는 기자들 입장에서는 그렇게 쓰겠죠. 하지만 차후에 사설이나 칼럼을 통해 의견을 밝힐 수 있겠죠. 해명이라기보다는 하나의 병, 질환으로 봐야 한다. 그런 행위 자체가 범죄화됐지만 그 범죄를 비장애인과 똑같이 취급해서는 안 된다라고 얘기할 수 있겠죠.”

-한국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5대 정신질환인 우울, 공황장애, 조울증, 강박장애, 조현병에 대해 국민 10명 중 7명이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유독 조현병에 대한 이해는 8%로 가장 낮았습니다. 협회장님은 조현병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계십니까.

“저도 솔직히 100% 다 안다고 장담할 수 없네요.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상식선 정도로밖에 모르겠네요.”

-기자들이 조현병에 대해 모르다가 조현병 가진 사람이 사고를 쳤다, 그러면 받아쓰기 바쁘거든요. 기사가 되니까요. 그래서 정신질환 관련 뉴스 대부분은 사건사고 범죄가 중심입니다. 이를 어떻게 바꿔나가야 할까요.

“좋은 지적이에요. 기자들이 팩트를 전달하기에 바쁘지 거기(조현병)에 대한 고민은 못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틈틈이 신문사나 방송국 차원에서, 또 기자협회 차원에서 기자들이 평소 취재하고 기사 작성할 때 깊이 고민 못했던 부분에 대해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교육을 하는 게 필요한 거 같아요. 물론 조현병 내지 정신질환만 따로 떼어내서 교육을 할 수는 없겠지만요.”

-언론이 혐오를 부추긴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럴 때도 있죠. 많죠. 작년에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혐오 표현에 대한 토론회가 있었어요. 제가 토론자로 참여했죠. 거기서 좋은 의견들이 많이 나와서 혐오 표현 가이드라인을 저희가 만들었어요.

기자협회 회원이 1만300여 명인데 기자 회원들이 보도할 때 (혐오표현 가이드라인을) 염두에 두고 (보도)하면 좋은데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기도 해요. 기자협회 차원에서 좀 더 노력해야죠. 100%가 될 수 없지만 100%에 가깝게 기자들 교육 프로그램도 만들고요. 혐오 표현 가이드라인을 잘 지키고 있는지 검증하고 또 평소에도 홍보가 필요할 거 같습니다.”

-미 듀크대 제프리 스완슨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정신질환과 폭력성은 상관관계를 지니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를 보고한 바 있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상관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인터뷰를 통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는데요. 이건 정신질환을 앓고 있으면 부지불식간에 폭력이 일어날 수 있다는 선입견이죠. (정신장애인 폭력) 비율이 굉장히 적은데도 침소봉대돼서 크게 알려지다 보니까 일반적으로 그릇된 인식을 갖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되네요.”

-형사정책연구 논문에 따르면 2016년 검거된 범죄인 184만 명 중 정신감정 결과 조현병 진단을 받은 이는 82명, 전체의 0.04%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도 이 같은 과학적 분석에 대해 기자들은 고민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렇죠. 개가 사람을 물면 기사가 안 되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기사가 된다는 것처럼 기사밸류 판단에 있어서 특이한 것만 찾다보니 그런 현상이 벌어지는 거 같아요. 전체 범죄 비율이 0.04%인데 이를 과장되게 알리는 거죠.

기자협회가 그래서 존재하는 거 같아요. 기자들의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는 거. 혐오표현 가이드라인 제정뿐만 아니라 기자협회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드네요.”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은 정신과적 병을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하는 것을 막아 버립니다.

“맞습니다. 좋은 지적이고요. 이건 질병이잖아요. 신체 질병이든 정신 질병이든 하나의 질병인데 일반인들이 선입관 때문에 치료를 거부하고 숨기면 더 큰 화를 부를 수 있잖아요. 그래서 언론에게 큰 책임이 있다고 봐요.

언론이 범죄사건 보도를 할 때 사건의 개요만 전달하는데 그것과 더불어서 칼럼이나 사설을 통해 (정신질환의 올바른 정보를) 지속적으로 전달할 필요가 있어요. 정신질환도 하나의 질환에 불과하고 고칠 수 있다. 그리고 숨겨서는 안 된다. 그러려면 주변에서 도와야 된다.

대중들에게 전달하는 영향력이 큰 언론매체들이 (정신질환에 대한) 큰 이해를 가지고 보도를 자제하거나 알릴 건 알리고 해야죠. 선입견을 가져서는 안 되고 일반 시민들도 같이 도와줘야지 (정신)질환을 극복할 수 있다, 이런 쪽으로 많이 유도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동훈 한국기자협회장 (c)마인드포스트.

-안인득 사건 이후 조현병에 대한 ‘혐오 보도’가 크게 늘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조현병 보도에 대한 고민을 해 보셨습니까. (안인득 사건: 지난해 4월 경남 진주시 한 임대아파트에서 40대 안인득이 자신의 아파트에 불을 지르고 화재를 피해 내려오던 주민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5명이 숨지고 15여 명이 부상을 입은 사건-편집주)

“솔직히 따로 고민하지는 못했고요. 오래 전 제가 사회부 기자일 때 배운 점이 많은데 장애인 기사를 쓰면서 장애인의 대척점 반대 개념이 일반인이 아니라 ‘비장애인’이란 걸 알게 됐어요. 20년이 지난 일이지만 그때부터 말과 글에서 저는 항상 비장애인이라고 쓰고 있어요.

마찬가지로 정신질환에 대해서도 선입견을 가지지 않으려 노력하는 편인데 스스로 돌아봤을 때 제대로 잘 지켜졌는지는 부끄럽지만 장담할 수 없습니다.”

-사건사고 보도에서 정신질환, 조울증, 조현병 등 정신적 질환 용어를 사용하지 않도록 하면 어떨까요.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겠네요. 검찰·경찰 브리핑에 조현병이나 정신질환 표현을 쓰기보다는 구체적으로 적시하지 않는 방법도 될 수 있고요. (정신질환) 가이드라인을 정한다면 그것도 하나의 항목으로 들어갈 수 있을 거 같아요.”

-검찰·경찰 출입기자들이 브리핑을 그대로 쓰잖아요. 이 사람들에게 왜 이렇게 썼냐고 하면 기자들은 우리는 브리핑 나온 대로 썼을 뿐이다. 이렇게 말하고 끝나버리는 거거든요.

“그건 저라도 안 쓸 수가 없을 거 같아요. 경찰과 검찰의 발표니까요. 그런데 거기서 그쳐서는 안 돼요. 선입견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담긴 별도의 칼럼이나 사설을 써야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자살 사건을 보도하지 않기로 한 나라에서는 실제 자살률이 감소했다는 사례도 보고된 바 있습니다.

“동의하고요. 한국기자협회도 20여 년 전에 자살보도준칙을 만들었어요. 그걸 만들고 나서 자살 보도에 대해 훨씬 조심스러워졌어요. 자살보도준칙 제정 전에는 자살의 방법, 주변 인물에 대한 구체적 적시 이런 게 상당히 많았는데 준칙 만들고 나서는 기사의 품질이 굉장히 좋아졌어요.

공교롭게도 저도 자살보도준칙 만들기 전에 자살보도 토론회가 있어 토론자로 나갔거든요. 그때 기자 경력 5~6년밖에 안 된 사회부 검찰 출입할 때인데요. (토론회 나가기 전에) 제 기사의 잘못된 자살보도가 몇 건이나 있는지 검색해 보니까 아홉 건 있더라고요. 이십 몇 년 지났는데도 제가 기억을 해요.

그래서 토론회 때 제가 ‘저부터 반성하겠다,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자살보도를 썼다’고 말했죠. 자살보도준칙을 보면 자살 방법, 도구, 동기 등을 보도하지 않는다. 사진이나 동영상도 모방 자살을 부추기기 때문에 유의해야 한다. 자살을 미화하거나 합리화하지 말라. 유가족의 사생활을 보호한다. 이런 것들이 있는데 저는 이런 것들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기사를 써댔거든요(웃음).

그때 토론회와 자살보도준칙을 제정하면서 저도 상당히 반성했어요. 자살보도 윤리강령을 하나하나 외우지 못하더라도 자살보도에 신중해야 한다는 생각들은 이제 광범위하게 힘을 얻고 있는 거 같아요.”

-영국, 캐나다, 아일랜드, 뉴질랜드는 정신질환 관련 사건사고에 대한 보도준칙을 마련했습니다. 우리도 정신장애 보도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솔직히 평소에 고민하지 못했던 부분인데 보도준칙 필요성에 대해 충분히 공감하고요. 차후에 기회가 된다면 관련 단체들과 토론회도 해서 준칙을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사건기자와 수습기자 대상으로 일정 시간 이상의 정신장애 인권 교육을 받게 하는 게 어떻습니까.

“저도 기자 생활 초반에 경찰 출입도 하고 사회부에 많이 있었는데 그 교육이 필요하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들어요. 왜냐하면 (기자 생활이) 정말 정신없이 굴러가거든요. 정말 별 보고 나와 가지고 별 보고 들어가는 생활의 계속이기 때문에 (교육 자료를) 만들어서 교육을 하자라고 하면 과연 얼마나 공감하고 따라올까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생길 수 있거든요. 같이 고민하면서 현실성 있는 대안을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언론이 장애인, 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의 의견을 전담하는 부서를 만드는 건 어떻습니까.

“좋은 생각입니다. 오늘도 오전에 한국기자상 시상을 하고 왔는데 제가 인사말 하면서 그런 얘기를 했어요. 우리가 기자로서 언론 행위를 하는 게 정치권력이나 경제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 견제도 한 덩어리가 있다.

또 하나는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거거든요. 빈자(貧者), 여성, 장애인들이죠. 이런 분들에게 힘이 돼주는 게 언론이어야 하기 때문에 그 부분에 충분히 공감합니다. 신문사나 언론사 내에서 소수자와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전담취재반이나 전담팀 구성이 유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신질환 보도와 관련해 어떤 일화(逸話)가 있었습니까.

“딱히 없었던 거 같아요. 사회부에 오래 있어서 의료사고나 자살 보도 등도 있었는데. 정신질환과 관련된 보도는 딱 떠오르는 게 없네요(웃음).”

-협회장님은 정신적 어려움은 없습니까.

“제가 1월 1일자로 취임을 했거든요. 작년 12월에 선거해서 지금 한 달 조금 지났는데 주변 사람들에게 농담으로 ‘한 달이 지났는데 일 년이 지난 거 같다’고 말해요(웃음). 일도 많고 바쁘긴 한데 이게 스트레스라고 생각은 안 하고 즐기면서 하고 있습니다.”

김동훈 한국기자협회장 (c)마인드포스트.

-정신장애인은 가장 천대받는 존재들입니다. 언론은 이들의 편견 해소를 위해 어떤 행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첫째는 선입견을 배제해야 하는 거고요. 똑같은 질환으로 봐야죠. 그리고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기 위해서는 우리가 같이 도와줘야 되고 언론도 중요한 역할을 해야죠. 그게 개인적인 마음가짐이라면 조직적으로는 여기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 필요가 있어요. 그런 노력이 동시에 병행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기자라는 직업을 사랑하십니까.

“저는 다시 태어나도 기자를 할 거 같아요. 참 힘든 직업이기는 해요. 제 아들이 대학교 3학년인데 기자를 하고 싶어 해요. 제가 대놓고 반대는 못하는데 속으로는 좀 안 했으면 하는 생각이 있어요. 기자는 보도하면서 느끼는 애환이 많은데 참 힘든 일이죠.

취재를 한다는 건 항상 우리가 즐거운 것만 보도할 수 없잖아요. 취재원과 갈등을 빚을 수도 있고 민·형사 소송까지 당할 수 있어요. 제가 쓴 기사가 파급력이 있어서 세상을 바꾸는 데 일조할 수 있지만 그런 기사는 제가 10건을 쓴다면 1건도 채 안 될 확률이잖아요.

특히 요즘에는 기자가 일반 직장인처럼 달라지고 있어요. 기사 쓰는 기계처럼 돼 있는 거죠. 땡하고 출근하고 땡하고 퇴근하고. 그렇게 변모하는 모습이 서글퍼요. 저는 기자가 적성에 맞고 좋은 기사를 썼을 때의 희열, 그리고 제 기사로 인해 약자가 보호받고 억울했던 사람의 억울함을 풀 수 있는 이런 매력들이 있기 때문에 다시 태어나도 기자라는 직업을 선택할 거 같아요(웃음).”

-세월호 6주기인 4월 16일 안산 정부합동분향소에 찾아가 유족들에게 사과하겠다고 했습니다. 그게 기자 신뢰 회복의 시작이라고 했죠. 왜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기레기’라는 말이 나온 게 세월호 참사 보도하면서부터잖아요. 그 이후에 언론이 국민들로부터 칭찬받을 때도 있었죠. 이를테면 박근혜 정권의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고 결국 탄핵 정국이 만들어졌을 때 국민들이 박수를 쳐줬는데 그 이후 언론에 대한 비판이 굉장히 높아요.

작년에 조국 사태 겪으며 다시 한 번 국민들이 언론에 실망을 많이 했는데 물론 우리 기자들도 할 말은 많죠. 너무나 일방적으로 매도당하는 느낌이랄까요. 그리고 우리 사회가 진영논리고 갈라져서 자기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기사에는 막말에 가까운 댓글을 달고 하면서 그런 것에 기자들이 많이 서운해 하죠.

그렇지만 본질적으로 언론과 기자가 신뢰받지 못하는 부분은 기자 스스로 자정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생각은 분명히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피해자, 유족 들에게 사과를 해야 언론 신뢰 회복의 출발점이 된다고 생각해요. 4월 16일이 공교롭게도 총선 다음날이에요. 시기적으로도 너무 늦고 총선하고 맞물려 있어서 가급적 좀 일찍 만나려고 합니다.”

 김동훈 한국기자협회장 (c)마인드포스트.

-기자들의 자존감이 떨어졌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기레기라는 소리를 듣기도 하죠. 협회장님은 어떻게 기자들의 자존감을 높일 수 있습니까.

“정말 힘든 일이죠. 제 선거 구호가 ‘2020 기자 자존감 회복의 해’였어요. 기자들이 외부적 요인들 때문에 자존감이 떨어지다 보니 그 어느 때보다 이직을 많이 하고 있어요. 기자가 아니라 직장인화 돼 버리면서 기업으로 이동을 많이 해요. 안타까운 일이죠.

자기 적성은 기자인데 기자라는 직업이 너무 국민들의 신뢰를 잃다보니까 그걸 포기하고 적성에도 맞지 않는 다른 직업으로 옮긴다는 자체가 언론계 선배로서 굉장히 서글프고요. 그렇기 때문에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자존감을 회복해야겠다(라고 생각했죠). 그건 저 혼자 할 수 없지만 제가 자꾸 부르짖으면서 격려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뉴스를 접하거나 신문을 보다가 정말 좋은 보도가 나오면 그 기자의 전화번호를 찾아가지고 제가 문자 메시지를 보내곤 했어요. ‘이 좋은 보도가 우리 언론 신뢰 회복에 밑거름이 된다. 정말 기사 잘 봤다. 이런 게 하나하나 쌓이면 시냇물이 강물이 되고 바다가 되듯이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불신의 벽을 허물 수 있다. 고맙다’ 이런 메시지를 많이 보내죠.”

-기자의 덕목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성실과 진실요. 기자는 팩트 파인더(fact finder)잖아요. 사실을 넘어선 진실을 찾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성실과 진실이 아닌가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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