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정신장애인의 죽음...그의 정신병원 입원 20년이 이미 사회적 죽음”
“코로나19 정신장애인의 죽음...그의 정신병원 입원 20년이 이미 사회적 죽음”
  • 정신건강사회복지혁신연대
  • 승인 2020.02.25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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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사회복지혁신연대 입장문 발표
대남병원 정신장애인 죽음은 정신병원 치료환경 과제 드러내
열악한 병원 환경…방 하나에 10명씩 집단생활
종합병원 의사 1명에 환자 20명 vs 정신병원 의사 1명에 환자 60명
입원환자 66%가 의료급여 환자…입원 기간 건강보험환자의 2배
정신병원 치료환경 아닌 정신질환 치료환경 개선해야
사회적 입원환자 지역사회 돌아갈 권리 보장해야

“청도대남병원에서 20년 넘게 거주했던 정신장애인 A씨(조현병, 63세)가 2월 19일 사망했다. 청도군청에 따르면 오랜 기간 폐쇄병동에서 생활하면서 만성폐질환을 앓던 A씨의 최근 몸무게는 42kg에 불과했으며, 건강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쇠약해진 상태에서 코로나19 감염이 치명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몇 줄 되지 않는 짧은 기사를 읽는데 한참이 걸렸다.

20년 전, 보통의 남자들에게 사회생활의 절정기라고 할 수 있는 40대 초반의 나이에 정신병원에 들어갈 그때, A씨는 자신이 죽어서야 그곳에서 나올 수 있을 거라 상상이나 했을까?

종신형에 처해질 중죄를 지은 것도, 그 어떤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도 아닌데 A씨를 20년 넘게(14일이 아니다!!) 격리하고 치료라는 명목으로 가둔 것은 혐오 바이러스에 감염된 우리 사회다.

정신질환자는 위험하므로 사회에서 솎아내는 방식으로 사회의 안전을 도모하자는 혐오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격리된 그들을 마치 분리 수거된 쓰레기처럼 대하는 무관심으로 인해 A씨는 20년 전부터 사회적 죽음을 당해왔고, 코로나19로 인해 생물학적 죽음을 맞이한 것 뿐이다. 솔직히, 그의 죽음보다 살아온 삶이 더 슬프다.

A씨의 죽음은 정신병원 치료환경과 탈원화의 과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대남병원 집단감염 이후 정신병원의 감염관리와 관련한 전문가들의 지적은 대체로 동일하다.

‘일반적으로 정신병동 환경이 열악하고, 방 하나에 10여 명씩 집단생활을 하며, 위생관리도 제대로 안하는 경우가 많아서 감염관리가 잘 안 된다’는 내용이다. 중요한 건 감염관리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정신의료기관에 대해 일반 의료기관과 다른 별도의 인력과 시설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병원급 의료기관 중 종합병원이나 일반병원은 의사 1명 당 입원 환자 20명, 요양병원은 의사 1명 당 40명인데 비해 정신병원은 정신과전문의 1명 당 입원 환자 60명이다.

간호 인력의 경우 종합병원이나 일반병원은 간호사 1명 당 입원 환자 2.5명, 요양병원은 간호사 1명 당 입원 환자 6명인데 비해 정신병원은 간호사 1명 당 입원 환자 13명이다.

시설 기준을 보면 입원실의 경우 일반 의료기관의 입원실 면적은 1인실 10㎡ 이상, 2인실 이상은 1명 당 6.3㎡인데 반해 정신의료기관은 1인실 6.3㎡이상, 2인실 이상은 1명당 4.3㎡ 이상이며, 입원실 1개당 입원 정원도 일반 의료기관은 최대 4개 병상(요양병원은 6개 병상)인데, 정신의료기관은 입원실 정원이 10명 이하이다.

우리나라의 정신의료기관은 일반 의료기관에 비해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비좁은 공간에서 생활하도록 하고, 더 적은 의료인들이 더 많은 환자를 돕도록 체계적으로 차별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전체 정신과 입원환자의 66%가 사망한 A씨와 같은 의료급여 환자인데, 이들의 입원비와 식대는 건강보험 환자의 약 70% 수준으로 묶여 있어 제대로 된 치료도, 건강한 식사도 제공하기 어렵다. 이렇게 열악한 조건에 있으면서도 의료급여 환자의 입원 기간은 건강보험 환자 대비 2배가 더 길다.

이런 환경에서는 정신적 치유가 일어날 수 없다. 신체적·정신적·영적 안녕이 조화를 이룰 때 인간은 비로소 정신적으로 건강해질 수 있다. 인간다움의 모든 조건을 제거하고 오로지 정신과약으로만 정신 건강을 회복하라는 건 넌센스다. 약 주는 교도소 같은 병원 환경은 정신장애인의 회복에 독(毒)이 될 뿐이다.

우선 급한 것은 2월 21일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에서 발표한 성명서에 적시된 것처럼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있는 정신장애인들이 코로나19로부터 보호될 수 있도록 다중시설의 방역 대책에 기울이는 것과 동일한 수준으로 관심을 가지고 대책을 마련해야 하며, 대남병원에 계셨던 정신장애인들의 치료와 안전을 위한 조치를 다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면 또다른 무명의 정신장애인 A씨의 죽음은 계속될 것이고 우리 사회의 야만성은 전혀 치유되지 못할 것이다.

이제는 정신질환 치료환경 개선과 탈원화를 위한 국가적 노력을 기울여야한다. 첫째, ‘정신병원’ 치료 환경이 아니라 ‘정신질환’ 치료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정신질환 병원을 신체질환 병원에서 분리시키고, 정신질환자를 의료급여 환자와 건강보험 환자로 구분해서 각각 전자에게 더 차별적인 처우를 하고 있다.

그 결과 정신병원에 입원한 정신장애인이 신체질환을 적시에, 통합적으로 치료 받기가 매우 어렵다. 신체질환으로 인한 외래 진료 시 정신병원 종사자가 동반해야하는 번거로움과 비용 문제가 겹쳐지면 정신장애인의 고통은 무시되기 쉽다.

정신질환자의 사망 원인 1위는 정신질환이 아니라 심혈관질환이다. 평생을 정신질환과 싸우지만 몸이 병들고 사망에 이르게 되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것은 신체질환의 이환이다. 이 때문에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Mental Health Action Plan 2013~2020'에서 정신병원을 분리하여 설치·운영할 것이 아니라 종합병원 내에 정신과를 운영하도록 권하고 있다.

정신질환 치료환경 개선을 위해서는 정신의료기관의 인력기준과 시설 기준을 일반 의료기관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의료급여 환자에 대한 식비·입원비 차별을 해소하며, 종합병원과 국공립병원 내에 정신과 입원 병상을 확충하면서 민간 정신병원의 입원 병상을 줄여 나가야만 한다.

둘째, 사회적 죽음 상태에 있는 약 3만여 명에 이르는 사회적 입원 환자(치료 목적이 아니라, 거주할 곳이 없어서 입원해 있는 환자)에게 지역사회로 돌아갈 권리를 보장하고, 더 이상 사회적 입원이 발생하지 않도록 지역사회 생활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사실, 이 방향으로의 움직임은 이미 시작됐다. 문재인정부 출범 후 돌봄(care)을 필요로 하는 주민들이 자택이나 그룹홈 등 지역사회에 거주하면서 개개인의 욕구에 맞는 서비스를 누리고, 지역사회와 함께 어울려 살아가면서 자아실현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지역주도형 사회서비스 정책으로 시행 중인 ‘커뮤니티 케어’가 바로 그것이다.

2019년 시범사업 형식으로 시작된 지역사회 통합 돌봄 선도사업에는 정신질환자 커뮤니티 케어 모델이 포함됐으며, 경기도 화성시가 선도사업을 운영 중에 있다. 장기입원 정신질환자의 지역사회 복귀 기반을 조성하고, 방치된 정신질환자를 위한 찾아가는 서비스 체계를 구축하고, 정신질환자 지역 안착을 위한 정책 대안 마련을 목표로 하는 이 사업에 많은 기대와 응원을 보내지만 대단한 성공을 거두리라고 예상하지는 않는다.

이번 시범 사업에서는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어떻게 해 나가야 하는지를 잘 정리하면 된다. 그 다음에는 우리 모두의 책임 있는 반응이 요구될 뿐이다.

고단한 삶을 살다 가신 정신장애인 A씨의 명복을 빈다.

※2월 25일 현재 코로나19 감염으로 사망한 사망자 수는 모두 9명이며 이중 6명이 청도대남병원 정신과 폐쇄병동에 입원한 정신과 환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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