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손 등 6개 당사자단체 성명, “폐쇄병동에 감금하는 정신질환 정책 포기해야”
파도손 등 6개 당사자단체 성명, “폐쇄병동에 감금하는 정신질환 정책 포기해야”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0.02.28 18:35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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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남병원 참사 본질은 ‘장기입원·폐쇄병동’ 시스템 때문
사회 격리와 장기간 정신병동 감금은 신체에 치명적
입원과 약물 만능주의는 인권 침해..아무 효과도 없어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이 요구하는 주거와 복지 제공돼야
“당사자 목소리 듣고 강제입원 전면 폐지해야”

한국정신장애인 당사자 단체들은 28일 성명서를 내고 정신병원 폐쇄병동의 폐쇄, 지역사회 주거서비스 확충, 폐쇄병동 전면 실태 조사를 촉구했다.

정신장애와인권 파도손,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한국정신장애인협회, 수원마음사랑, 부산침묵의소리, 부산희망바라기 등 6개 기관은 합동 성명서를 통해 ‘죽음의 자유조차 없는 정신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라’며 정부와 병원 당국을 규탄했다.

앞서 청도대남병원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정신과 폐쇄병동에 입원해 있던 정신장애인 7명이 연이어 사망했다. 사망한 정신장애인들은 창문까지 열 수 없는 폐쇄된 병동에서 약물에 의존해 생활하면서 감염병에 대응할 수 있는 신체적 면역력이 현격히 떨어져 이 같은 참사가 발생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중 첫 번째로 사망한 60대 남성 A씨는 20년 이상 이 병원 폐쇄병동에 입원해 있었으며 사망 당시 몸무게는 42㎏에 불과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단체들은 “20년이라는 시간은 국민들은 쉽사리 가늠하지 못할 시간”이라며 “첫 번째 사망자는 폐쇄병동이라는 한정된 공간 속에 머물러 있었다. 이것이 오늘날 정신장애인이 겪는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42㎏이라는 몸무게는 우리 모두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며 “물리적인 환경보다도 오랜 기간 자유가 박탈된 그의 생활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단체들은 청도대남병원 참사의 본질이 ‘장기입원’과 ‘폐쇄병동’으로 구성된 정신건강 시스템에 있다고 지적했다. 중증정신장애인의 재원 기간이 여전히 120일을 넘고 폐쇄병동에서의 장기입원은 정신질환이 위험하고, 질환에 걸린 개인의 잘못, 사회에서의 격리 등이 전제된 현행 제도의 모순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단체들은 “장기간 정신병원에 감금돼 있는 중증정신장애인들의 신체는 약에 찌들고 병들기 마련이고 사회로부터 격리돼 있기 때문에 사회적 기능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그렇기 때문에 가족과 사회의 관심에서 더 멀어지고 결국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것”이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장기입원과 폐쇄병동이 아닌 ‘단기입원과 개방병동’, 더 나아가 ‘지역사회 자립’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 “청도대남병원의 비극은 ‘입원과 약물’ 만능주의에서 예정된 참사”였다며 “폐쇄병동에서의 입원은 자유가 없고 모든 ‘재난’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매스컴을 통해 공개된 청도대남병원의 충격적인 모습은 정신장애인에게는 전혀 충격적이지 않다”며 “열악한 시설과 침대 없는 좁은 방은 여러 명이 수용돼 있고 집단적으로 생활하는 모습은 매우 흔한 정신병원의 실상”이라고 전했다.

이 같은 비인권적 치료 환경을 접하는 정신장애인은 신체적으로 취약하게 되고 장기간의 정신과 약물 복용으로 전염병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입장이다. 청도대남병원 참사는 ‘약물, 입원 만능주의’와 더불어 국가가 정신건강 서비스 정책·예산을 입원과 약물에만 쏟아붓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당사자 단체들은 “당사자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며 “국가가 지키기로 약속한 (유엔의) 장애인권리협약에 따라 폐쇄병동에 감금하는 정신질환 정책을 포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장기입원과 폐쇄병동, 입원과 약물 만능주의는 인권 침해일 뿐 아니라 아무런 효과도 없다”며 “폐쇄병동에 감금된 정신장애인을 지역사회로 돌려보내야 한다. 지역사회에서 주거와 복지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폐쇄병동 감금 정신장애인에 대한 전면 실태조사 실시 ▲정신병원 폐쇄병동 폐쇄 ▲지역사회 주거서비스 확충 ▲지역사회 쉼터 제공 ▲직업, 동료지원, 자조단체 등 복지서비스 확충 ▲응급입원 이외의 비자의입원 폐지 ▲비자의입원은 국공립 병원에서만 실시 등을 요구했다.

<성명서 전문>

“죽음의 자유조차 없는 정신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라!”

코로나로 인한 정신장애인 사망자 ‘7명’(한국 전체 사망자 중 54%)

폐쇄병동 첫 번째 정신장애인 사망자 당시 몸무게 ‘42kg’

생활 ‘20년’

1. ‘7명, 42kg, 20년’

국민들은 너무나 충격적이고, 현실이라고 쉽사리 믿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현실이다! 코로나19가 대한민국에 상륙하여 지역사회로 전파되고 있는 와중에, 이 나라의 불행한 소수자, 정신병원에 감금되어 있는 정신장애인들은 생명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 그것이 ‘청도대남병원 참사’로 나타났다.

2020년 2월 27일 현재 전체 확진자 1,595명 중 청도대남병원의 확진자는 114명(환자 103명, 직원 10명, 가족접촉자 1명)으로 나타났다. 현재까지 총 13명이 사망하였으며 이 중 7명이 대남병원 폐쇄병동 입원자였다. 전체 사망자 중 절반이 넘는 ‘54%’가 폐쇄병동에 입원 중인 정신장애인이었다.

‘20년’이라는 시간은 국민들은 쉽사리 가늠하지 못할 시간일 것이다. 한 명의 아이가 태어나서 성인이 되는 것까지의 긴 시간. 그러나 그 기간 동안 대남병원의 첫 번째 사망자는 폐쇄병동이라는 조그만, 한정된 공간 속에 머물러 있었다. 이것이 오늘날 정신장애인이 겪는 현실이다.

도대체 왜 그런 긴 시간 동안 감금해 두었어야 했나? 도대체 왜 자유로운 공기를 숨쉬지 못했을까? 정부와 사회는 이 문제에 진지하게 답을 해야만 한다.

‘42kg’이라는 몸무게는 우리 모두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물리적인 환경보다도 오랜 기간 자유가 박탈된 그의 생활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2. 본질은 장기입원과 폐쇄병동으로 구성된 정신건강시스템이다!

청도대남병원 참사의 본질은 장기입원과 폐쇄병동으로 구성된 정신건강시스템이다. 정신장애인의 입원병상은 지속적으로 증가했으며, 중증정신장애인의 재원기간(중앙값)은 2000년 277일에서 2016년 303일로, 정신건강복지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여전히 120일 넘고 있다. 그 중에는 20년이란 긴 시간동안 정신병원에 갇혀 있는 사람도 허다하다.

폐쇄병동에 장기입원하는 것은 ‘정신질환은 위험한 것이고, 질환에 걸린 개인의 잘못이며, 사회에서 격리시켜야 한다.’는 전제 하에 만들어진 지금의 제도와 정책 때문이다. 장기간 정신병원에 감금되어 있는 중증정신장애인들의 신체는 약에 찌들고 병들기 마련이고,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있기 때문에 사회적 기능은 더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가족과 사회의 관심에서 더 멀어지게 된다. 결국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것이다.

우리는 장기입원과 폐쇄병동이 아닌 ‘단기입원과 개방병동’, 더 나아가 ‘지역사회 자립’을 강력히 촉구한다. 더 이상 외면하거나 미룰 일이 아니다. 정신질환을 개인의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장기입원을 경험한 정신장애인은 사회적응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어서 지역사회로 복귀한 이후에도 오랜 적응기간을 거쳐야 한다. 인내심 있게 그런 기회를 주지 않으면 다시 재입원을 하게 된다.

더 이상 회전문 현상, 증상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정신장애인에게 장애인권리협약에서 요구하는 주거와 복지를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3. ‘입원과 약물’ 만능주의를 타파하라!

청도대남병원의 비극은 ‘입원과 약물’ 만능주의에서 예정된 참사였다. 폐쇄병동에서의 입원은 자유가 없고, 모든 ‘재난’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코로나19가 아니었어도, 지진, 쓰나미 등 어떠한 재난이었어도 폐쇄된 공간에 모여 있는 정신장애인은 취약할 수밖에 없다.

매스컴을 통해 공개된 청도대남정신병원의 충격적인 모습은 정신장애인에게는 전혀 충격적이지 않다. 전국에 산재한 비슷한 동네에 비슷한 규모의 정신병원의 모습과 별다르지 않다.

열악한 시설과 침대 없는 좁은 방에 여러 명이 수용되어 있고, 집단적으로 생활하는 모습은 매우 흔한 정신병원의 실상이다. 42kg이란 몸무게는 식사 또한 매우 열악했음을 짐작하게 해준다.

당연히 신체적으로 취약하게 되고, 장기간의 과도한 정신과 약물복용으로 인해 전염병에 더 취약하게 된다. 대남병원 참사는 바로 그 결과였다. 대남병원 참사에는 지금까지 안일하게 고수되고 있던 ‘약물, 입원 만능주의’가 깔려 있다. 사회와 정책, 예산, 서비스 모두 ‘입원과 약물’에만 모든 자원을 쏟아 붓고 있다.

그 결과 20년’이라는 긴 시간. 어쩌면 그 안에서 그는 조금씩 조금씩 이미 죽어가고 있는 존재였을 수 있다. 이처럼 정신장애인 ‘살아있어도 산 존재’가 아니었을 수 있다. 우리는 요구한다. 당사자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우리는 요구한다. 이제는 국가가 지키기로 약속한 장애인권리협약에 따라 폐쇄병동에 감금하는 정신질환정책을 포기해야 한다. ‘장기입원과 폐쇄병동’, ‘입원과 약물’ 만능주의는 인권침해일 뿐 아니라, 아무런 효과도 없다. 폐쇄병동에 감금된 정신장애인을 지역사회에 돌려 보내야 한다. 지역사회에서 주거와 복지를 제공해야 한다. 우리는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정부는 폐쇄병동에 감금되어 있는 정신장애인에 대해 전면적인 실태조사를 하라.

정부는 정신병원의 폐쇄병동을 폐쇄하라.

정부는 정신장애인을 감금하지말라!

정신장애인을 위한 지역사회 주거서비스를 확충하라!

정부는 정신장애인이 자유를 숨쉴 수 있는 지역사회 내 쉼터를 제공하라!

지역사회에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직업, 동료지원, 자조단체 등 복지서비스를 확충하라!

비자의입원은 응급입원 이외의 모든 비자의입원을 폐지하라.

비자의입원은 국공립병원에서만 실시하라.

2020.02.28.

한국정신장애인당사자단체

(사)정신장애와인권 파도손,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한국정신장애인협회, 수원마음사랑, 부산침묵의소리, 부산희망바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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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호연 2020-03-01 18:20:32
뉴스에서도 정신병원의 내역조사 한번도 하지 않는 상황이다.
뉴스에서도 한 번이라도 내부조사를 했으면 합니다.

안타까움 2020-02-29 08:33:01
슬픕니다. 누구보다 슬프셨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먼저 이분들을 살려야한다고 주장해야하지 않을까요? 그런 주장도 없고 장애인단체나 유관단체와 함께하지 못하고 섬처럼 따로 움직여서는 언론은 물론 국민의 관심을 받기가 어려울 것같아 걱정입니다. 함께 할수 있으면 좋겠습니다.